초대일시 / 2016_1111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25일_05: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가비 GALLERY GABI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69(화동 127-3번지) 2층 Tel. +82.2.735.1036 www.gallerygabi.com
본질. 자유, 욕망과 사랑, 사람과 자연, 아름다움…. 구도자가 일생 동안에 찾는 파편들. 또한 내포외연內包外延적으로 작가를 감싸고 있는 가치들이다. 본질을 아는 것, 깨달은 본질을 재현하는 것, 재현할 수 있는 것을 심미적 시각으로 새롭게 묘사하는 것을 창작과정이라고 하면 이는 오체투지五體投地하는 순례의 길이다. 작가가 가는 길이다. 길 위에서 서성이는 민연식을 만났다. ● 나는 심장에서 핏줄이 뻗어 나오는 줄 알았다. 가뭄에 논바닥이 갈라져 있다. 청순한 어느 여인. 바람에 휘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 고혹한 모습. 가을 어느 저녁. 낭만주의자가 사색에 잠겨 가로등에 기대고 있다. 등등…. 그의 작품이 세상에 던지는 느낌이다.
흑백사진은 다양한 흑백 계조가 이미지 곳곳에 은은하게 발색되었을 때 아름답다. 안셀 아덤스Ansel Adams는 자신의 저서 '사진 만들기(Making a Photograph, an Introduction to Photography,1935)'에서, 그리고 그의 제자 섹스톤John Sexton이 계승하여 존 시스템zone system을 만들었다. 그들은 이 체계에 따라 완전한 흑과 백, 중간색을 10등분하였다. 10등분된 다양한 색이 고루 나타나는 사진을 최고의 흑백사진으로 보았다. 특히 중간색들이 널리 펴져 있을 때 작품다운 작품이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이때 흑백은 고혹적이 된다. 그래서 21세기 지금에도 20세기의 zone system을 책으로 쓰고 작품에 반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도 화답을 했다. 평론가들도 흑백사진을 평가할 때 존 시스템으로 기준으로 했다. 안셀 아덤스의 작품 'Moonrise, Hernandez, New Mexico, 1941'은 경매시장에서 최고가격으로 판매되었다. ● 근, 현대 사진에 끼진 그들의 업적은 위대하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현재 흑백사진은 이 시스템에 빠져있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이 거의 나오고 있지 않다. 솔직히 따라가기 바쁘다. 이럴 경우 작품은 그저 프린트가 되어 버린다. 작품은 요세미티에서 설악산으로 장소가 변했을 뿐이다. 나무가 자작나무에서 소나무, 대나무로 소재 변화만 있을 뿐이다. 이를 발전이라고 할 수 없다. 정체다. 이 답답한 지루함 속에서 전통 이탈을 고민하면서 나온 사진이 있다. 민연식이다.
그에게 사진의 기술이나 소재, 매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앞에 말한 순례의 과정에서 형식적인 것은 버렸다. 겉껍질을 버렸다. 그랬더니 칼 같지만 너무 날카로워 오히려 여유로운 상징과 추상만이 남았다. 그러나 상징하면 떠오르는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것은 아니다. 별로 관련 없다. 민연식은 자연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깊고 단순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현자들은 단순은 극과 통한다고 했다. 본질에 가깝다고 했다. 그래서 색을 없앴다. 그의 작품에는 색이 없다. 흑백이 금과옥조로 생각하고 있는 안셀 아덤스-존 섹스턴을 없앴다. zone system을 없앴다. ● 완전검정과 완전흰색은 색이 아니다. 사진에서 색이 없다는 말은 말이 된다. 완전 하얀색과 검정만이 있는 사진. 중간 계조를 없어버린 극단적인 단순미. 헤라클레이토스Herakeitos는 '감추어진 조화는 드러난 조화보다 언제나 강하다'라 했다. 고대 철학자의 말처럼 민연식의 작품에는 숨겨진 조화가 단순 추상으로, 극단 상징으로 들어 나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강하다. 단순함에서 승무를 연상께 하는 율동을 볼 수 있다. 속박 없는 자유를 생각하게 한다.
과거, 그리고 지금까지도 흑백사진은 인물이나 풍경이 주류이다. 다큐멘타리에서는 흑백을 버린 지 오래되었다. 더구나 이런 사진은 다소 몽환적이기는 하나 대부분 사실적 사진이다. 안셀 아담스를 신사실주의new realism 라고 부르는 이유다. 소재도 주제도 내용도 제한되었다는 점이 흑백사진의 한계이다. 흑백이 적용되는 분야가 다양하지 못하다. 그 적용이 국지적이다. 이 말은 흑백을 즐기는 소비자도 관객도 넓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흑백에는 개념사진도 초현실적 사진도 보기 힘들다. 개념사진을 즐기는 관객은 흑백사진을 가까이 하기 어렵다. 초현실적 작품을 선호하는 사람의 눈 맛을 흑백은 충족시켜주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 민연식의 사진은 이 한계를 넘고자한다. 고민의 흔적이 있다. ● 그의 사진은 사실에서, 신사실에서 추상과 상징으로 넘어가고 있다. 사진을 움직이는 작동 메커니즘이 추상이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시적詩的이다. 연초점 효과도 없이 회화적이다. 선명사진인데 회화다. 그래서 아픔이 주는 사디즘 sadism적 가치를 흑백에서 느끼게 된다. ■ 최병권
Vol.20161111a | 민연식展 / MINYEONSIK / 閔軟植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