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40603a | 박홍순展으로 갑니다.
작가와의 대화 / 2016_1122_화요일_07: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수요일_02:00pm~07:00pm / 일요일 휴관
비컷 갤러리 B.CUT casual gallery & hairdresser's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라길 37-7 Tel. +82.2.6431.9334 blog.naver.com/bcutgallery
11월의 B.CUT비컷 갤러리는 박홍순의 작업에서 「사람, 박홍순」을 찾아보기로 했다. ● 박홍순은 우리 민족의 정신을 잇겠다는 염원으로 1997 년, 「대동여지도–계획」이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1999 년 전시, 『백두대간』을 시작으로 2014 년 전시, 『강, 스스로 그러하다』 까지 이 프로젝트로 여섯번의 개인전을 착실히 수행하였다.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던 그 거창한 염원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 덕분에 우리는 영화관이나 달력에서 보아왔던 수려한 금수강산이 아닌 우리 국토의 민낯을 박홍순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대면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대동여지도에 버젓이 있던 산이 순식간에 없어지고, 수천년의 세월이 만든 물길이 하루 아침에 바뀌고, 급기야 산업화 시대의 상징인 콘크리트 기둥이 무차별적으로 전 국토에 꽂히는 광경을 목도했다. ● 이쯤되면 사회 고발적인 익숙한 시각으로 볼 법도 한데, 지난 여섯번의 전시에서 보았던 박홍순의 사진은 우리에게 낯선 경험을 내어 주었다. 그의 사진 속 지시대상인 이념과 자본이 주체가 되어 이익을 창출해내는 자원 정도로 전락한 국토는 사진적 언어가 삭제된, 단지 선택되어지고 기록되어진 대상일 뿐이었다. 그렇다, 먼발치에서 조망하는 그의 카메라 워크는 환경 파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거나 사회 참여를 유도하는 데는 분명 실패하였다. 대신 끝도 없는 인간의 욕망,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기와 무지가 횡행하는 사건도 역사의 일부임을 침묵으로 증언하였다. ● 또 하나 그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십구 년의 시간은 작가가 결정한 순간의 장면 이외에 프레임 밖에서도 작동한다. 사진에서 시간이 갖는 힘은 물리적으로 측정할 수 없고 개별적으로 작동되어져 기록되지 않은 부재의 시간에 있었던, 혹은 있을 사건의 흐름을 기억해 내게도, 상상하게도 한다. ● 그리고 결코 짧지 않은 십구 년의 시간은 사진 속 지시대상이 아닌, 결정하는 순간을 늘 같이 했던 작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한여름 땡볕아래서, 한겨울의 칼바람을 맞으며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는 「사람, 박홍순」을 프레임안으로 불러들인다. 그래서 초기 전시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국토의 민낯, 아니 우리의 민낯 앞에 착잡한 심정으로 서성이는 그를 풍경에서 발견하게 된다. 우리 국토를 한장, 한장 기록하겠다던 패기넘치던 서른 초반의 작가와 그 시간만큼 훌쩍 커버린 딸을 둔 이 시대의 평범한 아버지가 오버랩된 모습에 순간 먹먹해지기도 한다.
녹록지 않았을 삶의 여정을 함께 한 그의 작업은 2014 년 다섯 번째 전시, 『백두에서 낙동강까지』에서 이전 작업과의 차이를 보여주게 된다. 십육년간 흑백 필름으로 작업했던 「대동여지도–계획」 프로젝트에서 처음으로 컬러 사진이 같이 전시되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컬러 사진은 우리 국토를 애써 냉담하게 기록한 흑백 사진과는 달리 물에 잠긴 동네 한 복판에 여전히 버티고 선 상수리 나무에 대한 작가의 감동이 있다. 이러한 변화는 새만금을 찍은 사진에서는 보다 확연히 드러난다. ● 서해안 작업 이후 새만금을 다시 찾은 박홍순의 카메라 렌즈에 포착된 것은 한때 죽음의 땅으로도 불리었던 인공 매립지가 아니었다. 인간의 부조리한 욕망과 이기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버텨내고 있는 생명의 땅이었다. 감히 아름답다는 말도 할 수 없는 핏빛의 함초 군락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증거였다. 그는 붉은 함초와 초록의 잡초로 뒤덮인 원시의 새만금을 강렬한 원색의 대비로 보여주기 위해 컬러 슬라이드 필름을 썼다. ● 지난 십육 년간 그의 선택과 결정은 인간이 자행한 사건에 집중되어졌지만 2014 년 새만금을 찍은 사진에서는 자연의 경이로운 사건에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사진에서 지시대상이 바뀌었다는 것은 「사람,박홍순」의 생각과 태도도 바뀌었음을 짐작케 한다. 시간의 흐름에 자연이 바뀌 듯, 사람도 그 흐름에 순종하고 바뀌는게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대동여지도–계획」 프로젝트의 전면 수정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처음에 품었던 염원대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통일이 되면 북한과 과거의 발해 땅까지 기록하겠다는 원대한 계획도 가지고 있다. 날카롭게 그러나 여유를 가지면서 긴호흡으로 그의 계획이 착실히 수행되길 응원한다.
이렇게 보면, 십구 년의 시간이 만든 그의 사진에서 설핏설핏 보였던 「사람,박홍순」이 어쩌면 우리의 자화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처받은 자연이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치유하고 재생되듯, 해결할 수 없는 물음과 두려움이 반복되는 삶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살아내고 있는 「사람,박홍순」 그리고 우리를 만났던 것이다. ■
"대동여지도 프로젝트" 중 새만금을 중심으로 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 한때 나라를 잃었던 대한민국은 해방이 되자마자 한국전쟁을 겪었고 휴전이 되고 나서는 정작 이 땅에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폐허가 된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제 살리기가 우선이 되었고 윗대들은 허리띠를 졸라 매고 산업화를 부르짖으며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 성장을 이루 었고 그 말에는 다른 모든 것들을 잊게 만드는 달콤함이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에 따른 휴유증은 국토 곳곳에 남아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런 풍경들을 발견하고 찍어온 것이 대동여지도 프로젝트였다.
30대 초에는 단지 산을 좋아 하고 안셀 아담스(Ansel Adams)의 흑백사진에 매료되어서 멋진 풍경사진을 촬영 하기 위해 설악산을 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무분별한 개발로 몸서리 치고 있는 이 땅의 상처가 곳곳에 있는 것 을 보았다. 그리고 이후에도 계속 우리 국토는 항상 개발 중이었다. 그 후 나는 평생의 작업으로 이 땅을 돌아보 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작업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1997년부터 "백두대간"을 시작으로 "한강", 그리고 "서해안", 2012년에는 "남해안"을 더해서 한미 사진 미술관에서 "대동여지도-계획 중간보고서"로 개인전을 가 졌다. 2014년에는 낙동강, 한강, 금강, 영산강의 4대 강을 소재로 "강(江), 스스로 그러하다"란 제목으로 스페이스 22와 로터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섬진강", "남한의 북쪽-DMZ", "동해안", "우리의 섬들"등 전 국토를 망라 할 때까지 이 작업은 계속 하려고 한다. 그러다가 혹시 통일이 되면 북쪽의 산하를 담아내는 긴 호흡의 작업이 되는 바램도 가져본다.
이번 작업은 2008년 "서해안" 작업을 할 때 짧게 지나쳤던 군산과 부안을 잇는 '새만금'과 1994년 완성돼 22년 동안 잊혀졌던 '시화호'를 10여 년 동안 촬영했던 것들이다. 인간에 의해 변한 풍경이 시간이 흐르면서 또 어떻 게 변해왔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모습이 될지 그 중간 지점을 기록한다고 할 수 있겠다. ■ 박홍순
Vol.20161104i | 박홍순展 / PARKHONGSOON / 朴弘淳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