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의 새벽

오새미展 / OHSAEMI / 吳새미 / painting   2016_1102 ▶ 2016_1115

오새미_창백한 균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94cm_201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20718f | 오새미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_서울디지털대학교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2-1(관훈동 100-5번지)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내 삶의(또한 작업의)화두는 항상 '시간'이었다. 진학 때마다 장애물 경주 하듯 겪어온 잦은 입시 경험 탓에 나는 경쟁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시간의 효율적 사용과 그 중요성을 진저리 날 만큼 체득할 수 있었다. 시험을 위한 공부가, 합격을 위한 그림이 있었다. 합목적성을 지니지 않은 모든 것들은 가차 없이 버려졌다. 학교는 '무한 경쟁'으로 일컬어지는 사회의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한 유예기관에 불과했다. 의미와 가치에 대한 주체적 판단 기준을 상실한 채 길들여진 목적을 위해 숨 막히는 경쟁을 지속하는 폭력적 구조의 근간에는 '시간의 효율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현대인의 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최소의 시간으로 최대의 성과를 거두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현대 사회에서 시간의 '낭비'는 곧 죄로 간주된다.

오새미_징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3cm_2015
오새미_포식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116.8cm_2015

나는 작업 속도가 매우 느린 편이다.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에 맞춰 일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그 익숙함만큼이나 내게 큰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시간의 제약 아래 버려질 수밖에 없는 수많은 가능성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누구나 옳다고 판단하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접근 방식에 저항하고 싶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흩어진 시간들을 촘촘한 붓질에 새겨 넣어 의미 있는 형상으로 구체화시키고 싶었다. 나는 완성을 지속적으로 유예함으로써 작업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수정과 재구성의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 목젖까지 가득차서 더 이상 쏟아내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농축된 밀도를 만들고자 했다. 그것은 매우 지난한 과정이지만, 외적인 제약에 대한 타협 없이 내적 한계를 시험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였다.

오새미_영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72.7cm_2016

"다 이루어져 완전한 것으로 만들어지다." 어떠한 결핍도 부재한 사전적 정의처럼 '완성' 은 너무나 매혹적이다. 하지만 더 이상 어떤 변화의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완성은 죽음과 한없이 가깝다. 완성을 추구하는 것은 성장과 분열을 반복하는 불완전한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모든 것이 완벽한 상태로 정지된 '절대적 순간', 즉 '죽음'에 이끌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완성을 동경함과 동시에 끝없이 지연시키고픈 욕망은 인간의 유한성으로 말미암은 근원적 욕망과 맞닿아있다. 절대적 진리에 대한 열망과 그에 따르는 필연적인 절망. 안개 같은 혼돈 속에서도 선험적 믿음에 근거한 방향성을 찾아가는 내적여정을 나는 회화의 언어로 담아낸다.

오새미_단계 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60.6cm_2015
오새미_단계 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72.7cm_2015
오새미_단계 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72.7cm_2015

끊임없는 변화만이 내면의 성장을 촉발시키고, 변화는 필연적으로 파괴를 수반한다. 균열과 주름, 허물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이 화면 곳곳에 유기적으로 점철되어 있다. 두터운 마티에르나 격한 붓질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잔잔한 표면. 그 사이를 미묘하게 가르는 다양한 형태의 선형들은 그래서 더 서늘하고 날카롭다. 입을 벌린 균열들의 틈새로 '절대적 완결성'을 향한 환상은 유령처럼 흩어지고, 그 빈자리로 매서운 갈증과 허기가 엄습한다. 아무리 회피하고 달아나도 '그날'은 응당 그렇게 나를 찾아오고, 나는 언제나 그랬듯 도달할 수 없는 '그곳'에 대한 열망으로 좌절한다. 반복되는 절망의 순환 속에서도, 새로운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결핍이다. 절망 뒤에 남겨진 오래된 허기는 현재를 환기시키고 내일을 만들어 가는 강한 원동력이다. 그렇게 끝은 늘 새벽을 향해 열려있다. ■ 오새미

Vol.20161102c | 오새미展 / OHSAEMI / 吳새미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