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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1026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0:00pm~06:00pm
갤러리 구루지 GALLERY GURUJI 서울 구로구 가마산로25길 21 구로구민회관 1층 Tel. +82.2.2029.1700 www.guroartsvalley.or.kr
가스통 바슐라르는 몽상을 연구하고 예찬하는 철학자였다. 그에게 몽상은 쓸모없는 시간이 아닌 무의식의 바닥으로 가도록 도와주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몽상을 한다는 것은 양립적인 이분법적 사유, 인과 관계를 따르는 변증법적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몽상이란 혼란과 질서 사이에 머무는 우리의 의식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이자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향유하는 시간일 터이다. 몽상은 현실의 시간을 갖지 않는다. 과연 그곳에 시간이 존재할까? 그곳의 시간은 낮과 밤,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과 같은 연속성을 갖지 않는다. 만약 몽상의 세계가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시간의 개념과 다른 곳이라면 그곳은 기억도 내세도 없을 것이며 탄생과 죽음의 주기를 갖지도 않을 것이다. 기억을 갖지 않은 세계에서 역사가 만들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몽상은 역사가 없는 세계이다. 바슐라르는 강조한다. 몽상의 세계는 밤에 꾸는 꿈의 세계와 같은 상태는 아니라고. ● 박미경의 회화는 밤의 풍경처럼 보인다.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회화는 풍경을 닮았지만 그렇다고 자연을 재현한 것은 아니다. 근작들은 거의 검정색을 기반으로 한 무채색으로 펼쳐지지만 초기작들은 이와 반대로 다채로운 색의 향연에 가까웠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교통사고를 당한 후 꽤 긴 시간 동안 입원 생활을 겪은 후 그녀의 회화에서 색이 사라지고 어두운 그림자나 얼룩 같은 검정색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신체의 제약은 작가를 몽상의 세계를 탐닉하고 배회하도록 해 주었을 것이다. 그것은 신체의 한계 속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정신의 요구였을 터이고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상황을 극복하려는 몸 바깥에서의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그녀의 회화, 몽상적인 풍경의 세계로 다가가 보자.
소통의 중추로서의 불확실성 - 추상과 구상 사이 ● 박미경의 회화는 그 결과만큼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그녀의 그림을 만나는 첫 순간 어둡고 묵직한 중량감을 지닌 초현실적인 풍경에 압도될 수 있다. 하지만 조금씩 그림에 가까이 다가가자 공격적으로 보일 만큼 강한 검은 풍경은 짧은 선의 묶음이자 강박적인 움직임이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짧은 붓질에 의해 완성된 그녀의 회화를 추상이라 불러야 할지, 아니면 이 모든 과정을 뒤로 하고 결과론적으로 풍경화라 불러야 할까? 이에 관해 작가는 특정적인 규정을 하지는 않는다. 본질적으로 작가가 추구하는 것은 붓질에 의해 나타나는 형태가 유기적으로 다른 형태와 만나는 과정을 추적하는 데에 방점을 두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자연의 재현과는 다르지만 '풍경'이라는 개념으로서의 이미지를 떠올린다고 한다. 마치 판타지 영화에 등장할 것만 같은 초자연적인 풍경과의 유사성은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보는 이가 가진 인식의 틀에 의해 해석될 수 밖에 없다. 박미경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 듯 하다. 또한 작가는 회화의 형식적 틀에 대한 작가적 선언과 같은 웅장함 같은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알다시피 모더니즘 추상회화는 모더니즘 이후 작가의 태도, 이론가들의 연구에 의해 많은 공격을 받은 바 있다.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주장한 아방가르드 미술과 순수성의 관계야말로 집중포화를 견뎌내어야만 했다. W.J.T. 미첼은 오늘날 추상미술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오늘날 비판적 추상회화가 가능한가를 물으면서 대표적 화가로 게르하르트 리히터를 언급한다. 이 물음은 구체적으로 비판적 태도가 작업 과정과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가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일견 마르크스주의자의 회화작업을 떠올리게 하는 이 물음은 리히터가 화가의 붓이 아닌 도배공의 붓을 사용함에 따라 회화적 과정이 삭제되어 화가로서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에 비판적 추상미술의 정당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W.J.T. 미첼,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이미지의 삶과 사랑, 그린비, 2010, 334쪽 참조)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미술사학자 벤저민 부클로(Benjamin Buchloh)의 해석에 대해 리히터 자신은 본인에게 붓은 붓일 뿐이며 "자신의 예술이 무언가를 파괴하기 위한 것도, 과거와 단절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같은 책, 335쪽)
박미경의 회화를 장르나 양식으로 정의 내리려하는 것은 불필요한 과잉 해석일 것이다. 앞선 리히터의 예와 같이 오늘날 시각예술작업을 과거에 구축된 의미, 상징성, 가치를 비롯해 반대급부로써 다른 의미를 발굴하려는 노력은 어쩌면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다. 모더니즘의 추상회화 경우만을 살펴보면 당시의 추상성은 절대적인 이념, 서사의 거부를 가장 비정치적 숭고함으로 해석하면서 보는 이의 주관적 해석이나 개입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다. 반면 동시대미술은 지금까지 존속하는 모든 것들, 모든 이미지와 양식들을 작업의 소재, 주제, 형식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그렇다고 추상회화가 굳이 순수함을 지향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불결한 추상화를 그릴 수도 관람할 수도 소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첼에 따르면 "추상화는 모더니즘과 자본주의보다 더 먼저 존재했으며, 미술관과 큐레이터, 비평가, 미술품 판매상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추상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논쟁적인 선전선동의 정치가 아니라,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를 넘어서면서 작가들과 대상들, 관람객들의 친교 속에서 새로운 대화를 여는 더 섬세한 친밀성의 정치라면 가능할 것이다."
역사가 없는 몽상적 회화 - 반복과 수행 ● 미술에 대한 해석, 반응, 요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지형도를 그리는 중이다. 과거의 지식의 가치와 중요도가 적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과거 미술을 수용하는 관람객의 자세, 미학자나 역사가가 생산한 미술의 의미화, 예술이 이상적이고 숭고한 상태를 추구한다는 이념 등은 이제 힘을 잃어가는 중이다. 물론 앞서 언급된 가치들은 여전히 교과서적 교육관, 이윤추구를 위한 상투적 홍보문구, 현대인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세속적인 철학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이는 현실과 분리된 예술계/지식계층의 자의식만을 강조하는 셈이다. 오늘날 일반 관람객들은 자신만의 관점과 취향 그리고 가치관을 기반으로 미술을 향유하고 분석한다. 만약 그들이 미술작품으로부터 공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 어떤 가치도 절대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절대적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미술은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첼은 오늘날 추상미술이 갖는 힘을 관람객과의 친밀성으로 상정한다. 여기서 추상은 더 이상 과거의 표상, 진리를 파괴하려는 의지로 출현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삶의 방식, 관람객의 생각과 만나는 친밀성을 의미한다. 그는 추상과 친밀성의 관계를 호주의 원주민 회화를 통해 구체적으로 표명한다. 원주민 회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추상성은 서구문명주의가 추구하는 우상파괴와 무관하다. 미첼이 아비 로이라는 호주 원주민 화가에 대해 쓴 글을 다소 길게 인용해 보겠다. ● "가까이서 보고 멀리서 보기를 반복해 보면, 우리는 이 작품의 붓놀림 자체가 춤을 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로 1.8미터, 세로 1.2미터의 표면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상태에서, 작가가 확신에 찬 몸짓으로 표면을 길게 가로지르다가, 고동치는 선에서 중단하는 장면을 거의 눈앞에서 보는 듯하다. 이 고동치는 선은 또한 점들의 연속이 될 것만 같다. 또한 다소 규칙적인 간격으로 붓이 마르면서 안료의 질감이 가늘어지고, 동시에 각각의 선이 두 번째로 고동치는 듯이 되며, 그럼으로써 인접한 선들에 그 고동이 울려 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중략) 모든 것은 고려하더라도 한 마디로 멋진 그림이다. 그러나 이 그림 혼자 힘으로 정상에 오른 것은 아니다. 그것은 깊은 전통으로부터, 즉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으면서도 비원주민 관람객에게 보여지기 위해 존재하고 있는 전통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그림의 형태는 그녀에게 그림과 그에 수반되는 의무 사항들을 가르쳐 주었던 아비 로이의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다. (중략) 이러한 종류의 그림은 단순히 앞선 종류의 그림을 부정한다고 해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여성들의 바틱 그림에서 나온 것이며, 장소와 공동체와 가난에 대한 (종종 절박한) 감각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회화의 전통은 결국 냉혹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살아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묘사하고 이해하고 동일시해야 했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막에 뿌리박고 있다." (앞의 책, 359-360쪽)
다시 박미경의 회화로 돌아가자. 위의 인용문은 마치 박미경의 작업을 묘사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녀의 회화는 마치 주술적인 의례를 치르는 것처럼 간헐적인 선과 반복적인 행위로 이루어진다. 초반에 언급했듯, 사고 이후 신체 마비 상태에서 머리로 그릴 수밖에 없었던 세계는 시간을 초월한 비현실적인 장소, 자연을 닮았으나 자연과는 무관한 어떤 형상, 하나의 선이 다른 선을 만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나는 자연을 닮은 이미지였다. 추상과 구상 사이 어딘가를 부유하는 그녀의 작업은 아마도 작가 자신이 생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의 '그림 그리기'를 수행하는 듯하다.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실처럼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풍경에 가까이 다가가자 모든 것이 환영이었다는 듯이 결국 몇 개의 선들, 붓질의 겹침이 만들어낸 추상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야말로 박미경의 회화에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일 것이다. 바람이 있다면, 다음 전시에서는 원형의 파노라마 공간을 그녀의 판타지아로 가득 채운 장면을 목격하는 것이다. ■ 정현
Vol.20161026i | 박미경展 / PARKMIKYOUNG / 朴美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