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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924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공휴일_01: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토스트 GALLERY TOAST 서울 서초구 방배로42길 46(방배동 796-4번지) 3층 Tel. +82.2.532.6460 www.gallerytoast.com
작가는 시각적 이미지 작업을 통하여 소통의 예술, 커뮤니티(community)를 이야기한다. 여러 소재로 펼쳐지는 작가의 작품구성은 일상에서 보여지는 소소한 사물을 통해 예술로의 변환과 그로 인한 관객과의 소통을 상기시킨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작가가 작업해왔던 다양한 소통의 전시에서 벗어나 작가 개인적으로 느껴진 필요함(necessary)와 불필요함(unnecessary)의 차이를 만들어 '커뮤니티'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매 전시마다 관객이 직접 만져보고 옮겨보는 다양한 체험을 진행했다면, 이번 전시는 작가 일상에서 소소하게 시작된 '식물키우기'에서 일상의 특별한 의미를 찾아보고자 함이다. 이번 작업을 통해 작가의 작품세계를 함께 공유하고 생각의 전환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 갤러리토스트
(불)필요한 것들, 무용지용의 아름다움 ● '나는 필요에 의해서 시작된 작업들인데, 이 중에 단 하나라도 꼭 필요한 것이 있나!?' 적어도 스스로의 작업을 두고 '(불)필요한 것들?'이라 의구(疑懼)하는 것만큼 작가의 작업은 예술적이지 않을까 싶다. 오늘날의 예술들이 기대만큼의 관람객과의 충분한 교감, 소통의 과정을 실현하지 못하고 (미적) 필요성과 (현실적) 불필요성 사이의 숨 막히는 길항관계를 거듭하면서 삶에 그다지 많은 유용성을 구동시키지 못한 채 결국은 애매하기 이를 데 없는 (불)필요한 것들로 치부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작가의 이런 소박하지만 진솔한 문제설정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게 다소 겸손하다싶을 정도로 작업이 가져야하는 어떤 유용성을 고민해왔던 작가는 줄곧 자신의 작업의 중심을 관람객과의 소통으로 보고 이를 위한 갖가지 시도들을 펼쳐왔다. 작가에게 참여란 관람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작품의 의미를 비로소 완성하는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서로 간의 오해의 여지를 줄임으로써 작품의 의미를 공감, 소통할 수 있는 것에 가까운 것 같은데 이런 면에서 때로는 난해함과 애매모호함을 미덕쯤으로 여기는 미술의 흐름과도 과감하다 싶을 정도로 비껴 자리한다. 동시대 미술의 짓궂은 흐름에 대한 날선 비판을 은근히 담고 있는, 건강하고 단단하기만 한 문제의식을 작업의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전체적인 얼개를 봐도 작가의 이런 의중이 잘 드러난다. 전시의 바탕이 되는 작가의 사연은 동시대 미술 자체에 대한 한편의 우화처럼 평범하고 단순하지만, 의미심장한 교훈마저 담고 있는 것만 같다. 작가는 새롭게 구한, 집이자 작업실의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식물이라도 키워볼 요량으로 화분을 구입하게 된다. 때로는 사소하고 하찮은 사건들이 모든 복잡한 문제들의 중심이자 해결일 수 있는 법, 간단하고 현실적인 이유로부터 비롯된 이러한 작업의 출발부터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 비어있는 화분 자체가 예술의 어떤 필요 이유이자 수많은 잠재적인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 작가는 이 화분을 기왕이면 자신만의 느낌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형광색의 도장을 하게 되었고 고심 끝에 선택한 식물인 선인장을 직접 그리고 다시 만드는 과정을 거치면서 작업을 이어가 결국은 화분마저 다시 그리게 된다. 돌고 도는 묘한 순환의 내러티브가 만들어진 것이다. 마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연쇄반응처럼 우연한 작은 계기들이 또 다른 작업의 이유들로 자라나면서 새롭게 작업이 펼쳐지는 방식이 꽤나 흥미롭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러한 작은 변화들을 작가가 유심히 관찰하고 이러한 미세한 차이들에 관한 사유를 덧붙여갔다는 사실이다. 싹처럼 자라나는 이러한 변화들이야 말로 예술의 잠재적인 가능성일 수 있는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작가는 처음의 동기가 된 계기 자체를 다시 반복하면서 의문시하게 된다. 불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한 화분 때문에 시작한 작업이지만 이어지는 필요 때문에 돌고 돌아 다시 그 화분 자체마저 다시금 그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다시 그리게 된 화분은 처음 시장에서 구입한 화분과는 다른 존재 층위와 형태를 가지는 것들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어떤 변환이 일어난 것이고 이러한 변이의 과정에 줄줄이 덤으로 다른 부산물, 파생물들을 만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러한 잉여들이야말로 예술의 어떤 존재양태일 수 있다는 면에서, 작가는 이렇게 돌고 도는 순환의 과정과 그 과정에서 새롭게 파생된 것들을 통해 얄궂기만 한 예술의 운명 같은 것들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현실적인 필요로 이어지는 것들과 다르게 예술의 경우 불필요함으로 귀결되기도 하고 불필요함에서 시작되었지만 다시 불필요함이나 필요함으로 순환하기도 하는 이러한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과정에 예술의 의미들이 자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은 작가가 불필요함이라 여긴 것들이 결국은 스스로 예술의 어떤 필요함을 만들어내면서 결국은 필요함도, 불필요함도 아닌 어떤 것들을 만들게 했다는 점이다. 사실 예술이야 말로 그런 것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필요성과 불필요성, 유용성과 무용성을 가로지르면서 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 경계에서 긴장감 있게 존재하는 것이 예술일 테니 말이다. 사실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 볼 측면은 필요성과 불필요성이라는 이항대립의 설정만큼이나 작가의 작업이 이러한 경계에 다소 비딱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분은 선인장을 필요로 했지만 작가는 실재의 선인장과는 다른 그림으로 그려진 선인장이나 F.R.P.로 형태를 단순화시킨 선인장을 만들었고 이들 선인장이 필요로 한 화분도 실재의 화분이 아니라 시장에서 본 여러 화분들을 하나의 그림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서로 어떤 필요성에 의해 연결되지만 그 존재 형태는 상이하고 이질적인데 이들이 서로 연결되는 방식에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작업이 개입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림 선인장은 이젤로 설치되어 있어 시각적으로만 비스듬히 연결될 뿐 서로 다른 층위에 자리하는 식인데 이러한 모순된 설정이 극을 이루는 작품이 '바위에 핀 꽃'이라는 작품이다. 모조로 만든 바위도 그렇지만 프레임을 통해 비쳐지고 있는 꽃 그림과의 조합이 엉뚱하고 생경하여, 작품의 제목만큼이나 예술이 갖고 있는 모순적인 비현실성, 그러나 그만큼 적극적인 예술의 의미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불)필요성에서 출발한 처음의 문제의식이 다른 맥락과 지반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인데 작가가 예술의 존재 의미를 그만큼 자유롭고 유연하게 설정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불필요함이 필요함을 낳는, 혹은 그 반대의 그 과정에서 작가는 미적, 혹은 예술적이라 할 만한 변용을 자유롭게 덧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유로운 변이를 통해 결국은 불필요/필요를 넘는 또 다른 미적, 예술적 유용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의 많은 것들이 그 자리에 그렇게 일상적으로 존재할 때와 다르게 심미적인 어떤 선택, 개입, 연결, 생성 여하에 따라 다른 의미로 전환된다. 고정된 방식으로 관행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용(쓰임) 여하에 따라 다른 의미로 전용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이번 전시 역시 되묻고 있는 질문 이상으로 이러한 세부의 과정에서의 자유롭고 도발적인 변환, 배치의 설정들이 더 큰 의미들로 남는다. 형상을 가급적이면 단순화시켜 이미지의 수용과정에서의 오해의 여지를 최소화시킴으로서 소통의 가능성을 확대하고 있지만, 이들 단순한 이미지의 연결이나 조합에 있어서는 무척이나 과감하고 자유로운 설정을 통해 예술이 내포하고 있는 잠재적인 (변환) 가능성의 맥락을 강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1개의 꽃 그림'은 평범한 꽃 그림일 수 있지만 이들 그림들을 쌓아 놓은 '옆면에 보이는 꽃 그림'은 그림의 측면을 통해 작품을 시각적으로 접하게 하는 형식도 그렇지만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대하게 함으로써 기존의 그림 감상법과는 다른 유용성을 가지게 하는 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부의 과정이나 설치 자체가 무척이나 과감하고 도발적이다. 작가 스스로의 일상의 일부를 전시의 전체적인 설정으로 옮겨온 것도 그렇지만 세부적인 구성과 내용에 있어 은근한 파격과 실험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이번 전시는 작품이라는 한정된 틀 내에서의 의미들 못지않게 그 의미의 맥락이 되는 것들, 혹은 그 과정에 개입하고 있는 작가의 자유로운 개입과 설치가 더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일상의 평범한 것들, 불필요하고 무용한 것들을 다른 의미들로 전환시키는 작가의 자유로운 개입이나 설치처럼 결국은 '다르고 자유롭게 보기', 혹은 '자유롭고 다르게 사용하기'가 더 중요한 것임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전시는 필요성, 불필요성이라는 작가의 화두만큼이나 그러한 필요성과 불필요성을 가로지르는 것들이 결국은 작가만의 색다르고 독특한 관점이나 태도에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현실적인 유무용성의 논의로는 걸러지지 않는 것들이 예술적이고 미적인 것들에 자리하고 있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혹은 그러한 현실의 유무용성에 대한 것들을 의심하고 다른 식으로 접근하고 전용하는 것이 예술적이고 미적인 관점이나 태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쓸모없음조차도 쓸모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결국은 예술일수 있기 때문이다. 무용지용(無用之用)의 아름다움 같은 것들 말이다. 평범하고 단순한 일상의 사물들조차도 이를 대하는 이의 눈길과 손길여하에 따라 아름다운 것들로 얼마든지 변모될 수 있는 것이라 한다면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일상적인 것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가의 여부, 다시 말해 (감성적) 실천의 차원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 역시 최종 결과물로서의 작품들 이상으로 그 작업들의 파생과정에서 작가가 고민한 것들, 그리고 그러한 고민 속에서 결국은 다른 방식으로 이들 사물들, 작품들이 자유롭게 자리하게끔 한 작가의 시각과 손길, 배치의 묘미들에서 전시의 의미를 찾아야 하지 않나 싶다. 평범한 작가의 일상 자체가 전시의 바탕이자 맥락이 된 점도 의미심장할 뿐만 아니라 작가의 단순해 보이지만 과감한 작품의 배치와 설치들처럼 때로는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일상의 사물들조차 작가적 개입 여하에 따라 또 다른 미적인 가능성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자유로운 시선과 배치의 미학이 눈길을 끄는 것이다. 관람객 역시 작가의 이러한 의중을 파악하고 스스로의 일상 또한 편하고 자유롭게 변용시킬 수 있다면 이러한 과정이야 말로 작가가 원했던 소통의 모습들이 아닐까? 일상의 감성화, 심미화의 모습들,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 일상적이고 미시적인 삶의 의미들을 조금은 다른 의미들로 바꾸려는 노력들 말이다. 설령 그것이 현실적인 유용성과는 거리가 있고 다소 엉뚱하고 무모한 것일지라도 이를 남다른 시선과 상상력의 즐거움으로 세상을 대하고 변하게 하는 것이야 말로 예술이 존재하는 어떤 이유이자 필요성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번 전시는 이러한 오래된, 하지만 새삼 새겨 들여야 할 예술의 어떤 교훈들을 편안하고 솔직한 방식으로 전한다. 이를 기반으로 한 작가의 이후의 더 달라지고 풍부해질 어떤 변화들을 기대하게 하면서 말이다. ■ 민병직
지금까지의 작업은 소통의 매개체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소통의 예술, 즉 커뮤니티 (community)의 기반이 되는 것이 내가 보여주고자 했던 시각 이미지 작업이다. ● 이번 전시에서는 필요한 것과 불 필요한 것의 구분을 모호하거나 혹은 억지스러운 조화가 될지도 모르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Necessary 는 필요한 으로 해석되는데, 이 단어 앞에 un을 붙이면 unnecessary 불필요한 것이 된다. 많은 언어에서 어떻게 붙여지느냐에 따라서 다른 뜻이 되기도 하고 다르게 해석된다는 점이다. ● 이와 같은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예술이란 매개체에서 느끼는 감정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소통의 매개체를 예술로써 접근하고자 했던 나 또한 그 모호함은 다를게 없다. 나는 내가 하고자하는 시각미술에서 관객과의 소통을 원한다. 하지만 무엇이 소통이라 할 수 있을런지 의문만 늘어날 뿐이고, 억지로 참여를 유도한다하여 그것이 소통인지 . 사실 관객들은 예술에서 직접적인 소통을 원하는 것만은 아니다. 예술을 통한 일상의 삶 속에서 감각을 키워가는 도구(?)가 되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서 이번 전시에서는 unnecessary불필요한 것과Necessary필요한 것의 차이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최근에 거처(居處)를 옮기게 되면서 집 안의 분위기를 바꾸고자 식물을 키워보기로 했다. 결심 후 꽃시장을 찾았고, 그 곳에서 화분을 하나 장만한다. 그리고 그 화분에 심을 식물을 찾아보았고, 식물을 고르다가 이 식물은 잘 자랄까? 저 식물은 까다롭진 않나? 이런 저런 계산 끝에 나는 선인장을 선택했다. 미리 장만해뒀던 화분은 이태리재 황토 화분. 황토 화분보다 나만의 화분을 만들고자 형광 그린으로 화분 색을 바꿔주고, 그 안에 심을 선인장 마저 내가 직접 선인장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만들어낸 선인장을 심을까 하다가 또 실제 사이즈의 선인장을 그림으로도 그려본다. 선인장의 스케치를 보면서 선인장의 색을 바꿔 칠하게 된다. 선인장의 조형물과 선인장의 그림을 만든 후 화분도 그림으로 대신해보기로 한다. 스케치 하면서 화분의 그림이 삐딱하게 그려져 그냥 캔버스 바닥부분에 나무 토막을 받쳐 각도를 바로 보이게 한다. 이렇게 최근에 내게 있었던 일상의 일부를 작업으로 옮겨보기로 한다. ● 나는 필요에 의해서 시작된 작업들인데, 이 중에 단 하나라도 꼭 필요한 것이 있나? ■ 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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