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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10:00pm / 주말_10:00am~06:00pm
아트갤러리21 ART GALLERY21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434 더 청담아트홀 5층 Tel. +82.2.518.8016 www.facebook.com/thegallery21
여정 ● "덧없는 것은 영원한 것의 반대가 아니에요. 영원한 것의 반대말은 잊히는 것이죠. 잊히는 것과 영원한 것이, 결국에 가서는,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들은 틀렸어요. 영원한 것이 우리를 필요로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이 옳아요." (존 버거, 『A가 X에게』)
"풍경화로는 더 이상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모더니스트 평론가의 말에 데이비드 호크니는 "모든 세대가 다르게 본다. 그것은 늘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를 다르게 말한다면 "회화로는 더 이상 어떤 일도 할 수 없다"쯤 될 테고 "회화는 모든 작가가 다르게 보는 방식이며 그것은 모든 시대가 늘 다르다"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다. 회화는 단순히 선과 색채, 형태 등 감각의 질료를 통해 공간을 재현하거나 이미지를 표현하거나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회화라는 장르를 규정하는 이러한 형식들 이외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다. 그 안에는 감금된 시선, 애끊던 작가의 흔적, 해방의 몸부림과 열정과 고독이 숨겨 있다. ● 그것은 마치 깨친 창의 틈처럼, 쏟아진 피처럼, 절개된 상처처럼 작품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잉여의 범주이기도 하다. 작품은 어쩌면 보이는 것보다 숨기는 게 많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작품은 바라보는 조건의 변화에 따라 늘 의미가 생성되거나 새로워진다. 그러니 머무름의 과정, 대화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머무름의 과정에서라야만 관객은 사물과 인간의 관계를 확장하고 다른 양식의 주체로 이행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회화, 넓게는 예술, 구체적으로 예술체험은 늘 그런 봉인된 시간의 상자를 슬그머니 열고 잃어버린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 같은 것이다.
덧없고 무상한 것을 보존하는 한 방식 ● 「봉인된 시간」시리즈는 지난 「영원과 하루」연작과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물이 강조되거나 색채의 변화인데 이마저도 미묘하여 큰 변화라 보기 어렵다. 벽면으로서 기능한 배경은 인물이 강조됨으로 인해 회화 자체의 배경으로 뒤바뀌어 좀더 비현실적인 공간감(평면감)이 생겼다. "침묵과 고독으로 동결된 이미지", "영원이라는 순수한 시간성을 부여"한 것처럼 나뭇잎과 나뭇가지, 새와 인물은 캔버스에 밀착되어있다. 배경은 회벽처럼 무채색에 가깝고 나뭇잎은 푸른색이나 갈색이 아니어서 본래의 색채와 멀다. 언뜻 보면 인물, 새, 나뭇잎이 나란히 혹은 겹쳐 놓인 풍경의 교집합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텅 빈 밤 어딘가, 어슴푸레한 새벽녘 언저리의 풍경처럼 비현실적이다. ● 작가는 그림이라는 재현적 효과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상징과 사념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작품은 어떤 정념(affection)을 건넨다. 그게 무엇일까? 욕망으로 치환되는 화려한 색채도 없고 고난한 삶의 지표로서 주름진 얼굴도 아니며 자아의 또다른 상징으로서 새거나 시간과 흔적의 나뭇잎이거나 바람 이미지도 아닌 것이. 현실 같지만 비현실감이 드는 이러한 것을 영원에 대한 갈망 같은 것으로 읽어도 될까. 불멸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있는, 그래서 끝없는 시간 속에 사는 것이라면 영원은 시간을 벗어나 잠시 어딘가에 다다르는 느낌, 시간을 초월하는 감정이다. 그래서 영원은 늘 봉인된 시간 속에 설핏 드러나는 구원의 가능성이다.
봉인된 시간의 상자를 모두 열어젖힌다고 해서 우리는 간직하고자 하는 것들을 다 가질 순 없다. 산이 아름답다고 산의 흙과 나무를 모두 가져오지 않듯 사랑과 고통, 덧없음과 무상한 것들은 아주 작고 짧은 순간에 구원처럼 다가와 영원을 만든다. 한 때 나였던 어린 아이, 시린 겨울 천사처럼 내린 첫 눈, 한 여름 장독대 옆 빨간 맨드라미, 가엽지만 굳건한 것들. 아프지만 아련한 것들. "달빛 속이나 푸른 소나무 아래 숨겨"두고픈 그런 감정들. 영원한 시간의 향기 같은 것들. 그런 봉인된 시간들은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나를 지탱해주는 비밀 같은 거다. 작가는 그러한 것을 표현하려 한 것은 아닐까.
「봉인된 시간」은 저 세상 혹은 너머의 이야기로만 읽을 건 아니다. 질료와 형식 너머엔 "존재의 비참이 안락에 의해 상쇄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사색하는 아름다운 소녀가 있다. ■ 정형탁
Vol.20160922h | 황인란展 / HWANGINRAN / 黃仁蘭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