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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2016_0907_수요일_05:00pm_최정아 갤러리 2016_0903_토요일_04:00pm_원천아트갤러리
2016_0906 ▶ 2016_0912 관람시간 / 11:00am~05:30pm / 일요일 휴관
최정아 갤러리 CHOIJUNGAH GALLERY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94(상수동 72-1번지) 홍익대학교 홍문관 로비 Tel. +82.2.540.5584 www.jagallery.co.kr
2016_0902 ▶ 2016_0930
연희동 원천교회 원천아트갤러리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32길 19
428개의 퍼즐, 그리고 투과되지 않는 어떤 빛 - 사과, 구조적 응시의 그늘 ● 한상진의 작업을 보기 위해서 428개의 사진 컷을 받았고 그 중 먹기 위해 칼로 베어내고 남은 사과 하나를 발견했다. 반복적인 컷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사과의 형태는 분명 구조적이고 힘과 중심을 지니고 있으며 복잡한 면의 구획이 있다. 빛과 형태의 변화를 통해 화가들에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응시의 한 형태, 구조에 대한 강박이다. 이러한 강박은 가령 봄에 가지를 자르고 남은 나무들의 형태에 대한 관찰에서도 나타나는데 잘려진 나무는 형태적으로 자연에 대한 구조적 은유라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발견은 그다지 별다른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사진을 관찰해보면 한상진이 포착한 것은 구조적 은유의 형태에서 나무에서 나타나는 그늘이 겹쳐 보이는 어떤 것, 잘려진 몸체와 그 몸체에서 자라난 것과 같은 그림자의 연속, 형태의 구조와 그 연속이 나타난다. 그리하여 형태의 관찰에서 투과되지 않는 어떤 잔여물, 구조적 응시의 그늘이 그의 작업에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구조적 응시의 그늘을 딱히 표현할 말은 사실 없다. 가령 흔적, 경계불분명, 지연, 소멸, 순간, 형태에서 형태 없음 등의 말로 설명되기 어려운 어떤 것, 그가 찍은 장면인 " 화사한 목련을 덮고 있는 넝쿨자리공 풀" 같은 것이다. 목련의 만개와 절정은 형태의 분명함이고 넝쿨자리공은 그러한 형태의 분명함에 성가신 불순물 같은 것, 구조에 대한 응시와 시선의 자여물쯤이 되겠다.
검은 풍경의 침투성 ● 분명함과 분명하지 않은 형태에 대한 발견과 흔적은 검은 풍경의 나무에 대한 관찰, 뚜렷하지 않은 숯 사진들, 저물녘 풍경이 삼키는 사물들, 기계, 속도, 빛에 대한 장면들, 그리고 야간 골프장의 희미한 조명에서 빛난다. 아니 빛난다기 보다는 검은 풍경에 사로잡혀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가 포착한 장면은 사물의 분명한 경계를 드러내주는 어떤 것이 아니다. 희미한 풍경 저 너머 존재와 부재의 착각을 만드는 것들이 마치 그가 믿었던 물질적인 형태의 어떤 것을 거부하게 만드는 침투성들, 그것의 시각적 환영들처럼 다가온다는 것이다. 가령 한상진이 캔버스의 표면을 확대한 어떤 컷, 물감의 재료가 침투하는 흔적들을 확대한 사진 컷은 사물의 침투성에 대한 하나의 시각, 침투하면서 반발하는 물질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면서도 이 모든 것이 검은 화면에 흡수되는 하나의 장면을 보여준다. 형태와 표면의 관찰에 적절한 검은 색의 환영이 하나의 유비가 되어 돌아온다면 그것은 형태에서 표면으로의 회귀, 그리고 그것의 모순이다. 형태와 표면을 지우고 등장하는 물질성이 검은 풍경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재현은 모순된 재현이다.
경계불분명, 투과되지 않는 어떤 빛 ● 빛의 반사를 최대한 지우고 등장하는 검은 풍경이 평면의 형태로 되돌아와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지점에 다음과 같은 설정이 있다. 콘크리트 바닥위에 바닥과 거의 구별할 수 없는 이미지의 작업을 배치시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의 경계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미 인공물인 콘크리트와 그것의 모사가 구별 불가능한 지점에서 재현은 어떤 식으로 가능한 것인가? 검은 풍경의 윤곽, 그리고 그것의 형태없음과 이미지는 이와 같은 모순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에 캔버스에서 전시벽면으로 옮겨졌을 때도 이 형태없음은 낯설다. 이것은 존재의 부재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부재한 어떤 것을 호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빛의 반영으로부터 생성된 자연계의 진리와는 멀어진 듯한 풍경이 그의 화면에서 연출되는 것은 색채와 형태의 세계로 파악된 이 모든 빛의 진리가 불투명한, 투과되지 않은 어떤 세계로 도치되어 가는 풍경을 보여준다는데 있다. 그는 분명 자연계의 대상을 분명한 색과 형태를 그렸다. 검은 색이라는 분명한 색과 사각이기도 하고 육면체이기도 한 어떤 형태의 진실이 공간안에 있다. 자연이기도 인공이기도 한 불편한 진실이 형태가 되기도 하고 형태이지 않은 어떤 것이 되기도 한다. 이 검은 풍경, 그늘의 변형, 안과 밖, 흑백의 도치는 형태와 색, 지나친 분명함과 진실에 대한 알레고리를 화면위에 펼치고 있다고 하겠다.
구조의 구조 ● 흰 캔버스 위의 검은 풍경, 검은 선과 면의 중첩, 그리고 그것의 구조처럼 보이는 어떤 것이 공간을 구획한다. 긋고, 흘리고, 흡수하고, 침투하는 화면위의 모든 작업은 기실 시간의 중첩에서 발견한 사물과 빛의 반사이지만 그것이 구조적이라는 설계가 중요하다. 한상진의 작업은 시간의 명멸이라는 구조를 공간적으로 구획한다. 그가 바라본 응시와 명상의 풍경은 구조속의 구조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고 그것이 검은 풍경처럼 보이는 시간의 알레고리를 적절하게 형상하며 사유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전 작업에서 시간과 감각의 파편과 채집, 그리고 동등한 직조의 모형을 그리드의 형태로 보여준 작가는 이제 형태의 평면을 넘어서 공간속에 담겨진 구조, 형태와 감각이 과연 믿을 만한 것이고 그것의 인과는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를 시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 류철하
Vol.20160914f | 한상진展 / HANSANGJIN / 韓相振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