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6_0906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am~06:00pm / 월,일요일 휴관
Art Gallery 2ND AVENUE 서울 서초구 방배동 796-13번지 Tel. +82.2.593.1140 blog.naver.com/gallery2ndavenue
전시를 기획함에 있어서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고 구성하고 어떤 관점으로 전시에 오시는 분들에게 어떠한 관계와 방향으로 나아가며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이번 첫 전시는 때마침 1년 중 달이 가장 크게 차오르는 한가위와 맞물려서 다섯 작가의 작품을 하나의 주제(달빛마음)으로 하여 관객과 하나로 어우러지는 인간의 삶과 자연을 주제로 하여 재해석과 시절교감을 시도했다. 갤러리 2ND AVENUE는 작가, 작품, 관객의 교류를 통하여 지역갤러리로서 소통과 안식처로서 자리매김하는데 있어서 바탕과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 Art Gallery 2ND AVENUE
김선두의 그림은 넉넉하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기분이다. 김선두의 그림은 보는 이를 평안하게 한다. 만약 그림에 온도가 있다면, 그의 그림은 산보를 나서기에 좋은 기온을 지녔다. 만약 내 아버지에게 그림 한 점을 안겨주고 싶다면 나는 주저 없이 김선두의 그림을 선택하련다. 보자기 가방을 메고, 검정고무신을 신고, 두어 개 정도의 산 고개를 너끈히 넘어 학교를 다녔던 내 아버지의 고향을 되돌려주고 싶어서다. 확신컨대, 내 아버지는 그의 그림 앞에서 이미 증발된 줄 알았던 고향의 추억이 응결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가난했던, 지독히 가난했던 유년 시절을 감사함으로 읊조리게 될 것이다. (「느린 선의 꿈과 노래」 발췌) ■ 윤동희
박현수의 작업과정은 깊이와 넓이의 구조에 맞게 출발한다. 먼저 화면에 무수한 색의 드리핑으로 가득 채운다. 그 위를 다시 색면으로 완전히 덮은 후 물감이 마르기 전에 고무 칼로 부분적으로 걷어낸다. 그것들이 영롱한 기호의 파편으로 떠오른다. 때로는 한글자모 같기도 하고 때로는 알파벳이나 숫자모양을 띄기도 한다. 우주공간에 부유하는 성운의 신비스런 현현을 보는 느낌이기도 하다. 때로는 원환의 배경 속에 작은 빛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면서 제의적인 공간을 만드는가하면 단위적인 원들의 유영이 알 수 없는 공간에로의 여행을 독촉한다. 거대한 울림이 뒤덮는가하면 작은 밀어들의 은밀한 속삭임이 잔잔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헤나시거라 한 다음의 언급도 이 비밀스런 구조의 역설에 대한 것이다. "그의 구성의 지배적인 구조를 형성해가는 커다랗고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들은 수많은 그리고 때로는 수백개의 정밀하게 분절된 작은 형태들의 집합이다." (「구조로서의 평면 또는 광휘의 공간- 박현수의 작품에 대해 」발췌) ■ 오광수
최익진 작가는 바로 그런, 현실과 해석 사이의 차이와 간극에 관심이 있고, 현실적 표현과 역설적 표현이 혼재하는 현실인식에 관심이 있고, 언제나 역설적 표현을 경유해서만 현실성을 얻는 현실적 표현에 관심이 있다. 있음과 없음이 그 경계를 허물면서 있는 것, 아니면 그렇게 있음이 다시 태어나는 것, 아니면 원래 은폐되어져 있던 있음이 비로소 드러나 보이는 지점이며 현상에 관심이 있다. 하이데거로 치자면 원래 은폐되어져 있던 진리가 비로소 진리로 드러나지만, 그것이 다름 아닌 진리임이 판명되는 순간 비진리로 변질된다는, 그런 역설적 표현에 관심이 있다. (「거울의 환영효과, 이데올로기 효과」발췌) ■ 고충환
화가 오흥배는 「Bodyscape」로 명명된 이전 시리즈 작품에서 클로즈업된 신체의 일부분을 극도로 정밀하게 그려내는 작업에 골몰해 왔다. '누드의 절단된 상반신' 혹은 '클로즈업된 하이힐을 신은 발' 등을 담은 그의 회화는, 철저하게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조형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일련의 '생경한 시각적 경험'을 지속적으로 안겨 주었다. 등신대를 훌쩍 뛰어넘는 크기로 확대한 절단된 신체의 일부분, 과도할 정도로 치밀하게 묘사된 피부 표피는 오히려 비재현(non-representation)의 양상을 드러냄으로써 그의 회화 속 인간 육체를 어렵지 않게 '낯선 풍경'으로 치환시킨다. 신체의 탈이상화(脫理想化)와 더불어 익숙한 것들의 과도함이 이르게 한 낯섦과 생경함의 세계인 것이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 뉴-바니타스」발췌) ■ 김성호
우리는 길을 통해 어디론가 떠나고 돌아온다. 길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기능적인 직선 길에 비해 곡선 길은 사람의 왕래와 소통의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난 길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굴곡을 따라 같이 흐르며 생성된 길이다. 과속을 허용하지 않는 곡선 길에는 만보 산책의 여유가 흐른다. 그 길에서 우리는 향긋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만나고 꽃향기에 한눈을 팔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가 있다. 하여 사람다운 길은 곡선이다. 「느린 풍경」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보다 밀도 있는 삶이란 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사는 직선적인 것이 아니라 가끔은 삶의 여백으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는 곡선 같은 것이다. ■ 김선두
본인의 관심은 빛을 색으로 환원시켜 내는 실험들이다. 선행한 기억 속에 축적된 이미지를 팝과 추상의 복합적 형식을 취해 평면에 나타내는 것이라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이중성이라는 내, 외적이며 또한 복합적인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내적으로는 오랜 시간 직접 체험한 동,서 문화의 충돌, 갈등과 융합의 문제를 다루고 외적으로는 작업을 실행에 옮기는 행위에 있어서 자유로운 드리핑의 반복과 극단적인 집중을 요하는 '디깅' 즉 페인팅을 깍아내며 형체를 만드는 절제의 미를 한 화면에 대치시킴으로서 새로운 에너지를 화면 또는 공간 위에 생성시켜내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의 결과물로 얻어진 부유하는 다양한 기호들은 나만의 시각적 언어이며 이를 통하여 소통을 꿈꾼다. 다양한 기호들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표현한 나의 시각언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종과 인간의 다양성과도 유사하며 또한 우주의 탄생과도 맥을 같이 하지만 이를 거꾸로 돌려보면 결국 하나에서 출발된 다양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박현수
나는 바니(Matthew Barney)의 작품이 잘 읽혀지지 않는다. 이유는 그가 디자인 했다고 하는 리움미술관의 소장품인 "크리매스터 3" 의 경우 러닝 타임이 무려 3시간이 넘는다. 그리고 그 상영 시간표가 없어, 현재 내가 바라보는 장면이 몇 시간 경과했는지 등 일체의 정보가 없다. 그래서 일단 작품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보아야 하니 실제 그 작품으로 감상하기에는 최소 4시간 이상이 필요하다. 또한 작품을 보기 위해 딱딱한 의자에 앉아 몸을 비스듬히 틀고 다시 2미터 정도 높이의 모니터를 주시해 들릴까 말까 하는 사운드에 온 신경을 쓰는 것 자체가 엄청난 육체적 피곤함을 주는 그야말로 "억압의 시청(視聽)"이 아닐 수 없다. 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가 만든 작품의 호 불호를 논 할 때, 정작 실제 작품을 본 사람보다 몇몇 평론가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읽히기 어려운 이미지 동영상 보다, 넓은 인문적인 견해를 갖춘 평자가 해석한 글로 대신 읽게 되는 것이다. ● 그 결과 동적 흐름의 이미지 동영상을 어떤 틀에 맞추어진 텍스트를 통해서 접근하는 아주 역설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지와 텍스트는 그 존재 양식으로나 그것들이 인간에게 수용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들이라는데 있다. 그래서 이러한 두 가지 상이한 이미지와 텍스트를 하나의 지면에 배치함으로서 이 둘이 각기 다른 시간적 흐름에 따라 어떻게 서로 유리(遊離)되고 갈등하는지를 극적으로 구성해 보고자 하였다. 동시에 여기에 사운드를 첨가하여 한 차원 더해진 시간적 맥락을 도입함으로서 이미지 동영상, 텍스트 그리고 사운드의 다차원적 구성 통해서, "너 되기" 과정에 있어 먼저 사람들이 각자 서로 다른 시간적 자리매김 속에서 각기 다른 차원의 역동적인 이미지, 텍스트, 사운드를 통해 얼마나 다양한 미적 컨텍스트를 구성하며 살아가는지를 겸손하게 표현코자 하였다. ■ 최익진
Vol.20160910b | 달빛마음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