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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907_수요일_05:00pm
작가와의 대화 / 2016_0924_토요일_02: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료 / 월~금요일_무료 토요일_1,000원(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 후원)
관람시간 / 09:30am~06:30pm / 일,공휴일 휴관
이화익 갤러리 LEEHWAIK GALLERY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67(송현동 1-1번지) Tel. +82.2.730.7818 www.leehwaikgallery.com
삶은 매일 불확실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택의 연속이다. A 를 선택하면 뒤에 이어질 B 를 고려해야 하고 B 를 너무 신경 쓰다 보면 A 를 선택하는데 고민이 따른다. 선택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상은 한 사람이 모두 이해하기에는 벅찬 여러 현상들과 조건, 관계 속에서 지켜내고 버려야 할 갈등의 연속이다. 어떠한 것도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고 여러 사회와 삶의 구조 속에 얽혀 복잡한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현상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의 삶에 다양한 형태로 얽혀있다. 애매함의 연속이 반복되는 삶에 잠시라도 그 모호함을 규정지어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생각과 고민을 뒤로 미루며 다시 삶을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혹시 답을 얻기까지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줄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의미에서 우연히 등장한 전현선의 뿔은 그의 작업에 또는 작가 자신의 삶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모호함을 잠시나마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당장 규정짓고 결정하기 힘든 현실의 단면을 유예하여 한 템포 쉬어가는 중요한 지점인 것이다. 지극히 현실인 우리의 삶을 그려가듯 구상적이며 서사적인 전현선의 회화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이미지들과 자신의 기억 속에 간직한 순간들을 불러내어 배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원뿔, 즉 단순히 뿔로도 설명되는 특정한 도형 이미지가 있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인 개념인 뿔은 그의 그림 속에서 특별한 의미와 역할을 하는데 자신의 기준에서 규정지어질 수 없는 세상의 모습을 대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두 아이가 뿔을 가운데 두고 서로 어색하게 바라보며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부자연스럽게 위아래가 반대로 놓인 채 그들 사이에 나타난 두 개의 뿔은 아이들 사이에서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갈등을 대신 설명한다. 이렇듯 뿔은 작가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천연덕스럽게 놓여있음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듯하다. 그렇게 우연히, 우발적으로 등장한 뿔은 전현선의 회화에 가장 중요한 존재로 자리 잡게 되었고 작가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인간이 탄생시킨 인공지능이 스스로 지능을 갖고 진화하듯 작가와 대화하며 화면 전반에 조형적 의미로까지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모호한 불확실성을 끝까지 대변하고 지켜주며 스스로 진화하던 뿔의 기능은 작가가 경험한 협동작업(작가는 2016 년 6 월 인사미술공간에서 있었던 『뿔의 자리』 전시를 위해 노은주 작가와 페인팅 협동 작업을 진행했다. 두 작가는 하나의 화면을 공유했고,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대화를 통해 결정해나가며 '하나의 기록들'이라는 작업을 완성했다.)으로 작은 균열을 맞이하게 된다. 마치 스스로 증식하는 유기체처럼 자신만의 영역에서 존재하던 뿔은 작가의 경험을 통해 와해되기 시작했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그렇게 탄생한 이름 없는 산은 조금 더 진화된, 혹은 단순히 상위단계의 카테고리로도 보이는, 하지만 아직 확실하게 규정지어지지 않은 개념으로 태어난다. 이름 없는 산은 말 그대로 아직 이름도 없고 뿔의 모양을 모방한 산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전현선의 작업에 뿔과 함께 등장한다. 하지만 뿔도 아니고 산도 아닌 중간자적 입장으로 탄생되어 또다시 자라나고 있다. 어쩌면 그 이름 없는 산은 작가의 작업 속에 오랫동안 증식하던 뿔이 새로운 형태를 띠며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태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 동안 뿔의 도움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여러 현상들을 주제로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고 그렇게 시작된 작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름 없는 산의 탄생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전현선의 작업에 등장하는 뿔, 산 등 어쨌든 원뿔의 형태를 한 도형은 혼자만의 시간과 자신 과의 대화를 통해 작업을 풀어나가야 하는 작가에게 규정할 수 없는 많은 현상과 물음을 잠시 해결해 줄 존재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세상과 작업의 모호함을 동시에 그리고 적당히 해소 해주는 든든한 역할을 하고 있는 뿔은 사실 그 자체로서 모호함이다. 스스로도 정립되지 않은, 어쩌면 영원히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못하고 평행 선상에서 함께할 수밖에 없는 뿔은, 또는 이름 없는 산은 한편으로 작가에게 유일한 작업의 동반자라 할 수 있다. ■ 김동현
이름 없는 산 ●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산이 있다. 이름이 없는 것인지, 여러 개의 이름으로 불려왔던 것인지. 언제부턴가 나는 이름도 없는 그 산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것만이 내가 산을 앞에 두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이유 없이 그곳에 있는 산, 그리고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내가 나란히 서 있었다. 산이 된 뿔 ● 이름 없는 산은 원래 뿔이었다. 처음 뿔의 등장은 우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뿔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주변의 상황을 더욱 자세하고 명확히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뿔은 굳건하기보다는 무게가 가벼운 존재였다. 책상 위에 놓아두고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이었던 뿔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결국, 산이 되어버렸다. 옮길 수 없는, 잊을 수 없는, 사라지지 않는 산.
그림 속 그림 ● 그림들은 서로를 바라본다.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라고 믿기 때문에, 상대의 얼굴이 자신의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그림들은 서로의 모습을 (교차적으로) 반영하며 더욱 복잡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캔버스 화면에 모인 크고 작은 그림들은 다른 어떤 그림들- 이전에 그려진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 그림들은 또 다른 그림들을 전제한다. 이렇게 그림들은 계속 이어지고 이어져서 끝이 없어진다. 시작점에서 출발하여 점점 포물선을 그리며 멀어지는 듯 하지만 하나의 궤도를 그리며 회전할 뿐이다. 그림이라는 메모 ● 현재의 판단들과 잠정적인 결론들은 순간적이고 번쩍여서, 쉽게 잊혀진다. 흐르는 물 위에 지은 집처럼 불안해서 금세 떠내려가 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림 속에서는 그 모든 것이 (잠시라도) 정착할 수 있다. 이해된 것보다는 이해되지 않은 것들이 받아들여진다. 보류된 확신 또한 그림 속에 자리잡을 수 있다. ■ 전현선
Vol.20160907h | 전현선展 / HYUNSUNJEON / 全炫宣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