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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 2016_0922_목요일_07: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수요일_02:00pm~06:00pm / 일요일 휴관
비컷 갤러리 B.CUT casual gallery & hairdresser's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라길 37-7 Tel. +82.2.6431.9334 blog.naver.com/bcutgallery
9월의 B.CUT 비컷 갤러리는 '사적 취향의 공유'라는 지점에서 김명진 작가의 작업 중 일부를 선보인다. 이는 작가에 의해 계획되어진 것이 아닌, 그렇다고 대단한 기획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닌 B.CUT 비컷 갤러리의 지극히 단순한 사적 취향을 드러내는 전시라고 미리 밝혀둔다. 작가의 많은 작업 중 이번에 고른 작품들을 선호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작품 외에 작가가 삶과 작업을 마주하는 태도에 대한 취향마저 공감한다면 그의 작업을 더 내밀히 만나게 되리라 기대한다. 김명진 작가의 첫 인상은 진지한 열일곱 살 소년 같았다. 통영이 고향인 그의 사투리에 묻어 나오는 바다 내음은 유년 기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했고, 느릿하지만 간결한 어투는 그의 삶을 짐작할 만큼 명쾌했다. 지난 유월, 남양주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느리고 간결한 일상을 작가는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주거 공간과 같이 있는 작업실, 아니 작업 공간과 같이 있는 집은 작가와 그의 아내가 직접 씽크대를 만들고, 타일을 붙이고, 벽에 칠을 하고, 작은 창을 만들고… 어느 하나 허투로 만든 것이 없었다. 소박하고 정갈한 침실을 볼 때는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해 순간 미안해지기도 했지만, 그와 그의 아내와 담소를 나누는 내내 곱게 깎은 연필로 쓴 그 일기장은 한장, 한장 넘어갔다. 조금은 서툰 솜씨로 작가가 직접 만든 집이 이제는 그를 담백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모습으로 삶을 마주하게 만든다. (사람이 집을 만들고, 그 집이 그 사람을 만드니) 집에서 몇 발짝 떨어진 작가의 작업실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물감이나 캔버스가 아니라 나무껍질에 한지를 대고 탁본을 뜬 뒤 다시 세로로 길게 잘라 놓은 색색의 한지 뭉치였다. 캔버스에 '한지꼴라쥬'라는 방식으로 그려질 드로잉 재료이다. 물감과 붓대신 작가는 색색의 한지 띠를 캔버스에 붙였다 뜯어내고, 나이프로 긁어내고, 다시 덧붙이면서 형태를 찾아간다. 이는 작가가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인 탁본을 뜨는 것과 같은 층위에서 이해 가능한 작업 과정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그린다기 보다 그의 심상에 있었던 이미지를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노동의 수고로움을 통해 무의식에 갇힌 기억을 소환해서 현재의 자신과 마주하는 관조적 태도를 보여준다. 짐작건대 그에게 노동은 타자에 의해 강요받는 계급적 관점으로 이해되기 보다는 자신을 마주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수행적 관점으로 이해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작가에게 작업과 삶을 마주하는 태도의 유사성을 갖게 했을 것이고 이러한 유사성은 앞서 언급한 취향이 충족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인 사적 취향은 전시되는 작품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작가의 작업은 오랜 시간 밀도 높은 노동이 요구되는 프로세스를 반복하여 무의식의 심연에서 건져 올리는 관념의 형상들이다. 이들은 때로는 혼돈의 이미지를(식물도 동물도 아닌 혼성의 이미지로 형태를 알아 차릴 수 없는), 때로는 구체적인 형태를 가진다. 그 중에서 전시되는 작품은 후자이다. 작가가 이미 알고 힌트를 준 듯 이들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작가는 불안한 형태의 이미지에 모호한 이름을 붙였다. Land-escape501102, organscpe… 이미지와 제목 둘다 해석이 불가하다. 반면에 이번 전시에서 감상자가 마주할 작품은 구체적으로 호명했다.
'붉은 정원', '가려진 얼굴', '가족, 열매', '목마', '소녀 복사'… 작가의 무의식과 기억에 유영하던 인물들은 이렇게 호명되어 현재의 작가와 마주했을 것이다. 먼길을 돌고 돌아 만난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어쩌면 그들의 서사는 노동의 수고로움을 통해 진정 작가가 찾고자 했던 것일지 모른다. 그러한 짐작은 물론 취향을 충족하는 이유가 되었다. (취향은 원래 실체없는 짐작일 뿐이니) 작가의 기억법은 시간을 각인하며 기억하는 나무와 많이 닮았다. 그가 지나 왔던 시간이 구축한 기억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때로는 소년으로, 가족으로, 소녀로 화면에 형상을 드러낸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마주하면 누구나 한번쯤은 썼던 오래된 기억 속 그림 일기를 보는 것 같다. 어슴푸레 들리는 진지한 열일곱 살 소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
기억해줘 쌍둥이 소녀는 각자의 의식을 치른다. 등 돌린 생각의 덩어리는 머리카락의 긴 뭉치처럼 겨우 결속되어 있다. 소녀가 쌍둥이 소녀에게 말한다. 거인이 난장이에게 당부한다. 나를 기억해줘! 잊지마! 나무에서 바람에서 비루한 현실에서 기억은 가라앉고, 덮히고 포개지며, 서로에게 잊지 말자며 손을 내민다. 호출된 기억과 현실이 교차되면 환각과 환상으로 스며난다. 기억은 좋은 것이든 아니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덮이는 것이다. 마치 더 큰 통증이 더 작은 통증들을 순간적으로 잊게 하듯이, 더 큰 소리가 더 작은 소리들을 침묵하게 하듯이.... 풍경은 움직인다. 풍경은 기억을 따라 움직인다. 풍경은 기억과 일상이 서로 포개진다. 얼룩 혹은 흔적 주검을 덮는 것처럼, 장님이 앞을 더듬는 것처럼, 마리아 막달레나의 수건에 찍힌 얼굴처럼, 그렇게 하얀 한지에 흔적이 스며온다. 한지에 스친 얼룩에는 계절이, 여러 얼굴이, 흩어진 옷자락이, 달의 표면이, 계절이 담겨 있다. 그것은 미미하고,무심하고, 초라하며, 작고, 이슬처럼 겨우 존재하는 것들이다. ■ 김명진
Vol.20160907d | 김명진展 / KIMMYUNGJIN / 金明辰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