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아트스페이스 플라스크 ARTSPACE PLASQUE 서울 성북구 정릉로6길 47 Tel. +82.10.2631.2889 www.plasque.co.kr
김석진은 십 수 년 동안 대구, 일본, 서울로 장소를 옮겨가면서 다채롭게 작품 활동을 펼쳤던 작가이다. 김석진의 작품은 다분히 '시대적'이라 말할 수 있는 특징을 품고 있다. 그의 작품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의 시기에 등장했던 일군의 청년 조각가들과, 그들이 폭넓게 공유했던 조각의 양식을 돌아보게 만든다. ● 그 당시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조각가들은 나무, 돌, 금속과 같은 전통적인 재료로 자연과 인간을 함축적인 형상으로 나타내는 경향을 띠었던 기존 조각의 관습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삶에서 실제로 접하는 사물의 느낌을 새로운 조각의 언어로 풀어내려 했다. 그리하여 대량 생산된 제품에서 감각되는 몰개성적인 매끈함, 견고하면서도 가벼운 표피, 한 번에 눈길을 끌 수 있는 형태와 색체와 같은 요소들을 오랜 터부를 깨고 작품에 수용하였다. ● 하지만 그들의 작품엔 당시에는 쉽게 인식할 수 없었던 아이러니가 담겨 있었다. 그들이 나타내고자 했던 '사물의 느낌'은 기업과 같은 거대한 사회집단이 수많은 사람과 설비를 동원하여 실현시킨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대량생산의 결과로서 도출되는 느낌을 개인의 단독적인 작업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다. 청년 조각가들은 전통적인 조각 재료를 다루는 것에 준하는(혹은 그보다 더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대량 생산된 사물의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느낌에 접근했다. 그러니까 미켈란젤로가 대리석 덩어리를 조각하는 태도로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물건을 제작하는 셈이었다. 여기서 나타나는 이율배반은 두고두고 곱씹을 수 있는 논점을 만들었지만, 반면에 그들의 작품을 지속하기 어려운 무엇으로 만들었다.
청년 조각가들의 작품은 '코리언 팝 아트'라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잠시 미술계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작가와 작품의 정체성마저 대량생산 체제에 적합한 무엇으로 해체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진정성과 독창성을 추구하는 전통적인 예술가에 가까웠고, 변덕스럽게 요동치는 시장과 제도의 요구에 간편하게 대처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앤디 워홀이나 제프 쿤스가 될 수 없었고,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았다. ● 이처럼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의 시기에 등장했던 청년 조각가들이 공유했던 예술관과 그에 따른 아이러니를 인식하는 것은 김석진의 '조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나는 김석진의 작품에 나타나는 매끄럽고, 가볍고, 쉽게 눈길을 끄는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특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진정성과 독창성을 추구하는 한 개인의 손길에 의해 제작된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김석진의 작품이 초기에서부터 지금까지 김석진의 작품이 진행되었던 바를 살펴보면, 그의 작품이 다채로운 재료와 기법의 사용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전통적인' 조각의 물음과 연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그것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물리적 환경 혹은 사회적 환경에 부조리하게 내던져진 '몸'에 대한 물음이다. 그것은 사람의 몸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어떤 생명체의 몸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김석진이 구현하는 몸은 하나의 객체로서 환경 속에 노출되어 있음과 동시에, 하나의 주체로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지각한다. 이처럼 지각되고/지각하는 생명을 가진 몸에 대한 물음과, 그에 대한 해답을 3차원의 공간에 몸을 형상화시키는 과정에서 찾으려하는 시도는 과거와 현재의 조각에 공통된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김석진의 작품에는 입, 항문, 배꼽과 같이 안과 밖을 연결시키는 구멍에 해당하는 형태가 항시 나타난다(이는 그가 오랫동안 다루었던 소재인 사과에서도 확인되는 특성이다). 『자각을 담다』라는 표제를 담고 있는 이번 전시에서 그러한 특성은 한층 두드러진다. 여기에서 김석진은 작가 자신의 몸을 연상시키는 인체 형상을 선보이는데, 그 형상은 모두 이목구비가 없다. 그 대신 '접시나 컵, 혹은 고깔, 원반의 파라볼라 형태'가 머리를 대신한다. 일상 속 인체를 보는 익숙함과 먹장어와 같이 입만 두드러진 생명체를 보는 낯설음이 교차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러한 기묘한 형상이 뒷짐을 지고 아래를 바라보거나, 양반다리에 팔꿈치를 괴고 있는 자세처럼 '생각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형상은 마냥 생각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몸체가 놓여 있는 상황을 느끼는 낯선 생명체의 모습으로도 보인다. ● 그 형상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작가는 '자각(awareness)'이란 단어를 사용해 그러한 상황의 실제적이고도 추상적인 속성을 나타내고자 한다. 하지만 김석진은 더 이상의 구체적인 설정을 생략한 채, 자신의 형상을 친숙함과 낯설음이 공존하는 모호함 속에 그대로 둔다. 그의 작품 앞에 선 관객은 손에 잡히는 해답을 찾기보다, 기묘한 형상들이 조성하는 분위기 속을 해답 없이 맴돌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불확실한 상황 자체가 작가가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내용으로 받아들여진다. ● 그러나 김석진이 조성하는 이와 같은 '실존의 분위기'는 얼마만큼 무겁고 진지하게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 혹시나, 그 형상의 '제품과 같은' 외양 때문에 관객은 아트 숍에 온 것 같은 가볍고 즐기는 기분만 느끼고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러한 모순과 아이러니는 서두에 말했듯 '시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애써 회피하기보다는 두고두고 곱씹어야 한다. 김석진 조각의 비평적 가치도 그러한 곱씹음 속에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ps. 나는 이 글을 쓰고 나서, 김석진이 이번 전시를 위해 공들여 준비한 작가노트를 읽을 수 있었다. 그 노트는 작품 해석의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는 몇 가지 정보를 담고 있다. 특히 그가 유년시절 앓았던 지병, 그리고 병에서 비롯된 생활의 습관 및 그에 따른 지각과 사유의 경향은 그의 조각이 던지는 '존재 물음'을 구체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는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 글이 부각시키고자 하는 김석진 작품의 '아이러니'한 속성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그 노트에 담긴 내용을 이 글에 다루지 않았다. 사실, 그 노트는 이러한 지면에 의탁할 필요 없이 그 자체로서 이미 '완성된' 텍스트이다. 그 노트는 김석진 조각이 품고 있는 실존에 대한 고민을 이해하는데 더 없이 훌륭한 교두보가 된다. ■ 강정호
나는 선천적인 심장질환자였었다. 짧게 예정된 삶이 주는 환경은 스스로의 행동에 부정적인 것 들이 많았다. 뛰어서도, 격하게 움직여서도 안 되는 신체적 부자유의 결함이 자연스레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으로 이어졌다. 훗날의 성격이 만들어진 계기를 나는 태생적 환경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 그러한 탓에 또래의 친구들과는 달리 그렇게 활동적이고 명랑하거나 쾌활하지는 않다. 신체적인 한계는 늘 한 곳에 머무르는 습관을, 소극적인 성격은 뜬 구름 잡듯 하는 허무한 사색을 하게 만든다. 마치 몽상가처럼. 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서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생각의 꼬리를 물고 한정 없이 사색하던 시간들이 지나온 삶에서 가장 큰 행위로 굳어졌다.
그렇게 문득 빠져드는 습관적 행위는 (두서없이 이뤄지는 생각들에 의해) 어느 것 하나 명료하지 않은 희미한 상태로 남겨진다. 그리고 허공에서 부유하는 수많은 생각의 편린들이 정리 되지 않은 채로 막연하게 나를 이끈다.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 불분명하고 확실하게 보이지도 않는 무엇인가를 쫓아가는 생각의 여정에서 나는 꾀나 익숙한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 결론지을 수 없는 그 무엇으로부터 나는 구속되어 있다. 형체를 가지지 않은 그것은 늘 생각의 언저리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속박하고 통제하는 것 같다. 한편으론 중심으로부터 타원형을 그리며 멈추어 지지 않는 물체와 같은 이미지의 연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이 몰아(沒我)의 긴 터널에서 벗어 날 수 있을까? 온 몸을 결박하고 있는 사슬의 첫 머리를 찾을 수 있을까? 결론나지 않는 것들, 모호함으로 가득 채워진 무거운 머리는 자꾸 아래로만 향한다. ● 생각의 시작은 자유로우나 그 길의 끝은 늘 한 지점에 도달한다. 그리고 스스로 만든 그 길의 끝점에서 나를 잊어버리고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 김석진
Vol. 20160830j | 김석진展 / KIMSEOKJIN / 金石鎭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