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6_0811_목요일_06:00pm
후원 / 서울시립미술관 신진미술인 지원프로그램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조선 GALLERYCHOSUN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64(소격동 125번지) Tel. +82.2.723.7133~4 www.gallerychosun.com
최근 여성미술의 한 조류를 감지하면서: 서해영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도구 ● 내가 맨 처음 협업의 방식에 관심이 가게 된 계기는 주디 시카고의 "디너파티" 작업이 가진 작업방식이 여성협업이었고, 그 여성협업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작업방식과 결과물에서 협업참여자들의 존재가 보이기보다는 주디 시카고라는 카리스마 있는 여성작가의 모습만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주디 시카고의 작업방식은 여성들과 함께 한 여성협업으로 의미는 있었겠지만, 나는 그 방식이 결국 작가 한 사람이 드러나기 위한 권위적인 작업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스테이트먼트 "나에게 협업은 어떤 의미인가", 2016년) ● 서해영은 「여성 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 2」(2014) 이후로 일군의 "일반인" 여성 참여자들과 함께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하지만 특정한 그룹들과 협업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아니 작가 스스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작가와 일반인의 협업이 언제나 민주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주디 시카고(Judy Chicago)는 1970년대 여성미술 프로그램을 만든 여성미술의 선구자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기존의 권위적인 [남성] 작가상을 타계하기 위하여, 혹은 명예의 전당에 천재로 호명되어 격상된 남성 작가들의 그늘 속에서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여성 공예가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도자기 페인팅, 이불 꿰매기 등의 테크닉을 사용하여 수많은 여성들과 협업하였다. 하지만 서해영 작가가 예리하게 관찰한 바와 같이 미술계 내부의 엘리트주의를 타파하기 위하여, 그리고 나아가서 가부장적인 남성 작가들의 계보를 타계하기 위하여 사용된 협업이 실제 이끌어낸 성과는 좀 더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 물론 협업의 과정에서 작가들이 일방적으로 작업의 과정이나 결과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문인과 비전문인의 꼬리표가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일반인들 스스로가 위축되는 경우들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즉 협업하는 과정을 도입한다고 해서 참여자들이 자신 있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저절로 마련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예술가의 의무는 어떻게 하면 그들의 목소리를 이끌어 낼 수 있는가이다. 실제로 이번 서해영의 작업은 작가에게나 협업에 참여하는 일반인들에게나 새로운 과제를 던져준다. 적어도 작가의 입장에서 협업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협업의 과정에서 주도권을 누가 잡아야 하는가, 동시에 협업을 통하여 무엇을 도출해 내야하고, 나아가서 이러한 과정에서 작가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위에 인용한 "나에게 협업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글 또한 작가가 협업을 통하여 나타나게 되는 작가와 참여자들의 관계를 고민하면서 필자에게 전달해 준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 그렇다면 참여하는 일반인들의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관객들은 어떻게 참여자들과 자신을 동일시 할 수 있는가? 나아가서 작가가 특별히 다루고 있는 여성들과 도구의 관계는 어떠한가?
작업의 조건 1 : 취미를 끌어 들이기 ● 서해영은 기술이 출중한 작가이다. 작가의 말을 빌자면 원래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일을 즐겨하고 얼마간 그에 대하여 자신도 갖고 있는 편이었다. 작가가 작업의 과정 자체에 대한 개념적인 성찰을 하게 된 것도 자신의 기술적인 결함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기술적인 고민 그 이상을 찾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실제로 1960-70년대 현대예술에서 작업의 개념성이 강조되거나 비전통적인 작업 방식이 사용되게 된 배경에는 특정 작가들이 전통적인 매체를 다룰만한 기술을 충분이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서해영은 예의주시할만한 케이스이다.) ● 이와 연관하여 작가는 등산이라는 자신의 취미 생활을 작가라는 '본업'과 맞바꾸었다. 작가는 최선의 상태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구현하도록 작업 환경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등산이라는 작가의 취미 생활이 허용하는 특정한 조건을 작업 조건으로 정하였다. 그녀는 평소 대학교 때부터 참여하였던 등산 동아리에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각종 소조와 사진 촬영 장비들을 배낭에 메고 산을 오른다. 산에 오르기 전에 그녀는 그날 들고 갈 수 있는 배낭 속 짐의 무게를 미리 계획하고 딱 그만큼의 재료와 도구를 갖고 산을 오른다. 그리고 물론 사진으로 특정한 산봉우리의 모습을 기록해 놓기는 하지만 작업은 산에서 진행되었다. 즉 작업의 조건은 작가가 최상의 미학적인 효과나 결과를 예상해서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날에 등산해서 산에 자리 잡고 완성할 수 있는 정도의 매우 단순하고 물리적인 환경들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여기서 작업의 조건을 우연적으로까지 여겨지는 단순한 요건들로 한정시키는 것은 작가가 원래적으로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기술, 그리고 그 기술로 대변되는 작가적인 권위를 봉인해제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 때문에 서해영의 「산에서 조각하기」 시리즈(2012-2014)는 개념미술가들의 고민을 연상시킨다. 예술가의 정체성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1960-70년대 서구에서 예술이라는 정의에 도전하기 위하여 개념미술 관련 작가들이 자신들의 기술을 배제한 우연적인 조건들에서 작업을 생산했던 것과 같이 서해영도 등산이라는 취미의 조건을 작업의 조건으로 내세웠다. ●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2014년 김종영 미술관에서 열린 그녀의 개인전에서 작업의 조건을 결정지었던 온갖 흔적들과 함께 전시된 그녀의 결과물들은 생각보다 깔끔하였다. 작업의 조건에 해당하는 등산 도구들과 작업의 결과물을 나란히 전시해 놓았을 때 우연적으로 규정된 조건에서 탄생한 작업들 치고 그 결과물에 해당하는 소조와 조각들은 꽤나 완성도가 높았다. 서해영 작가의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작가가 자신의 무기인 기술을 봉인해체하고자 하였으나 원래의 의도가 시각적으로 전달되기에 작가는 아직도 너무 계획적이었고 완성도에 집착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작업의 조건 2: 다른 창작자들을 끌어들이기 ● 작가가 기술적 완성도를 배제하기 위하여 도입한 또 다른 방법은 타인들과 협업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다른 창작자들을 끌어들이게 되면 작업의 조건, 진행 과정, 그리고 결과를 전적으로 작가가 조절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여성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2014-2016) 시리즈를 통하여 결과물인 태피스트리(tapestry)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빗(comb)도 함께 제작하였다. 여기서 '빗'은 '등산하기'와 마찬가지로 작업의 또 다른 조건에 해당한다. ● 물론 숙련된 작가라면 연장 탓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주어진 연장의 표현가능성을 확대하는 것이야말로 전통적인 작가들의 의무에 해당한다. 하지만 고전적인 예술가의 정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즉 예술가의 기술적인 측면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하여 작업의 조건 만큼이나 연장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다시 말해서 작가는 연장 탓을 하려는 것이다. 작가의 기술이 연장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연장의 조건이 창작자의 과정을 결정하게 된다. 어떠한 도구들이 어떠한 결과를 낳는가? ● 「여성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 시리즈에서 작가는 '여성주의적인 시각'도 도입한다. 통상적으로 조소는 물리적인 힘을 필요로 하는 예술분야이다. 작가가 받아온 교육도 남성적인 힘을 가지고 재료를 변형시켜서 순수 형태를 만들어 내야만 하는 모더니즘적인 조각 교육의 유산이다. 이에 반하여 작가는 한때 공예로 폄하되었던 태피스트리의 분야로 나아갔다. 그리고 조각에 사용되던 끌이나 망치 대신에 옷감을 짜기 위하여 사용되는 빗을 각 참여자들의 손에 맞게 제작하였다. 협업의 결과인 태피스트리가 아니라 협업에 참여한 이들의 손 둘레나 상태에 맞게 만들어진 도구가 작업을 대치하게 되었다.
작업의 조건 3: 일반인들을 끌어들이기 ● 작가는 여성 창작인들 간의 협업을 이끌어내고, 그들을 위한 도구를 제작한지 1년 반 만에 협업의 방식을 다시 채택하였다.1)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작가가 협업에 대하여 긍정적인 입장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협업은 작가의 입장에서는 작가 스스로가 작업의 시작과 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도 획기적이다. '당신의 꿈'이라는 매우 사적인 테마를 다루기 위해서 10주 동안 6명의 일반인 참여자들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어떤 때는 이야기가 구심점이 없이 흐른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평생 엘리트 미술교육을 받아오면서 매우 계획적으로 움직여온 작가에게 쉽지만은 않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 「여성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 3」(2016)에서 작가는 태피스트리 때와는 달리 물리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공간이나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1대 1로 참여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미술치료사'와 같이 참여자들이 사적으로 밝힌 꿈들을 이루기 위하여 도움이 될 만한 도구들을 직접 제작하였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왜 도구일까의 문제이다. 물론 도구는 조각가에게는 매우 친숙한 물건이다. 특정한 재료를 깎고 붙여서 자신의 미학적 의도에 맞게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는 조각가에게 도구는 분신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동시에 도구는 연장과 유사한 개념으로 강한 변화나 개혁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한 행위와 연관된다. 심지어 어떤 미술사가는 연장이나 도구의 개념을 젠더의 개념에 따라 해석한다.2) 공공교육이 시작된 19세기 말부터 여성들이 비교적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작업과 연관된 기술을 익혀왔다면, 남성들은 정교하고 입체적인 사물의 구조를 드러내는 도면과 그 구조를 변경시키는 도구에 대하여 익혀왔다. 이러한 측면에서 일반 여성들이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도구'를 사용한다는 발상은 매우 흥미롭다. 달리 해석하자면 도구나 연장의 개념이 젠더적으로 형성되어온 것이라면, 여성의 꿈을 도구와 연관시킴으로써 여성의 꿈은 새로운 정치적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 그러나 정작 「당신의 꿈을 위한 도구」에서 참여자들의 꿈은 지나치게 사적이다. 원대한 목표가 아닌, 그야말로 일상적인 희망사항, 인생의 지향하는 바를 보다 추상적으로 묘사한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글을 꾸준히 쓰고 싶다", 혹은 "'나는 괜찮다'라고 느낄 물건을 갖고 싶다"라든지 등은 사회적인 지위나 경제적인 목표를 인생의 꿈과 동일시 해온 입장에서 보자면 생뚱맞다. 덕분에 도구라는 단어도 어색하게 들린다. 도구나 연장은 당면한 문제를 헤쳐 나가기 위하여 결정적으로 필요한 해결사의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반면에 작가는 자신의 도구가 일종의 매개체 정도가 되기만을 희망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매개체는 있으면 도움이 되겠지만 결정적이지는 않다. 이 또한 꿈이나 도구를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하여온 관습에 대한 저항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나가는 말: 최근 여성미술의 한 조류를 감지하면서 ● 여기서 주목할 만 한 점은 작가 스스로가 자신을 매개체로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다. 물론 예술 작품은 원칙적으로 매개체이다. 특정 추상적인 개념을 작가가 해석하는 과정에서 공적이고 사적인 양면이 공존하게 되고 작업이 전시장에 놓이게 되었을 때 작가 개인의 생각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특정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할 수 있는 개념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보다 넓은 의미의 매개체가 된다. 하지만 정작 그러한 개념을 작가가 진정으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작가가 스스로를 매우 우연적인 틀에 던진다손 치더라도 예술가의 손은 완성도에 대한 집착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한다. 예술작업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하던지 간에 마음속으로 예술가들은 자신의 의도를 쉽게 포기하지는 못한다. 그 의도가 지속적으로 변하는 것일지라도. 이 때문에 협업의 과정은 예술가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든다. ● 자신의 기술적인 오만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마조키스틱(Masochistic) 하게 등산 배낭을 지고 산을 올랐던 작가는 이제 아예 타인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활용한다. 작가가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공적인 장소에 내놓는 것이 아니라 아예 타자들과 함께 타자들 속의 한명으로서 집단의 사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삼는 매개체의 역할을 자처한다. 자신의 전공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아쉬움, 능력 있는 바쁜 부모님을 둔 덕택에 어른이 되어서도 느끼는 외로움과 소외감, 경쟁사회의 피로감을 해소시켜줄만한 편안하고 안정적인 환경이나 물건에 대한 갈망, 불면증 등 참여자들의 고민은 매우 일상적이다. 전통적으로 작가들이 다루어온 소재들에 비해서도 소박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도구들을 매개체로 부르고 있는 작가는 자신의 사회적인 역할도 보다 소박하게 정의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 때문에 필자는 서해영의 작업에서 젊은 세대의 작가들, 특히 여성 작가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예술가의 사회적인 역할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서해영 작가의 최근 행보를 바라보면서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미술이 점차로 고전적인 여성주의 미술가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일상의 이데올로기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협업의 과정에서 구심점에 해당하는 작가가 특정한 미학적, 정치적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우연적인 경로를 통하여 모두가 자신들의 일상적인 삶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도구를 미리 참여자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의 동의를 작가라는 위치에서 받아내는 과정도 생략하였다. 여성 예술가는 최대한 자신을 매개체의 자리에 놓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이러한 전술이 얼마나 효과적인 여성미술의 전략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참여자들의 소박한 일상의 꿈을 읽어 내려가면서, 그리고 최대한 해석을 삼가려는 작가의 태도를 접하면서 30대 국내 젊은 여성미술가들이 택하고 있는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미술의 한 방향을 감지할 수 있었다. ■ 고동연
1) 참여자들은 정확히 예술가들은 아니지만 순수한 의미에서 일반인이라고도 할 수 없다. 고양레지던시 오픈스튜디오 때 「태피스트리 협업의 도구」를 보러온 관객들로부터 참가신청을 받았고 그중에서 참여자를 선택하였다. 그렇다고 5명의 참여자들이 작가는 아니었다. 섬유미술과 대학생, 미술이론전공자, 아트 매니지먼트(작가가 작품을 홍보하고 유통할 수 있게 관리해주는 일), 미술을 했었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 참여자, 조소과 휴학생, 작가를 포함한다. 2) Pen Dalton, The Gendering of Art Education: Modernism, Identity, and Critical Feminism (Buckingham, UK: Open University, 2001).
나는 조각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매체의 한계와 가능성을 실험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기존의 전통조각의 관념적인 의미부여나 결과-중심의 획일화된 작업방식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작가 개인의 구체적인 조건들과 삶의 경험들을 반영하는 과정-중심적 조각작업들을 시도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 연작은 나의 조건 중에서 "여성"이라는 조건에 주목하여, 여성이자 조각가로서 느꼈던 기존의 획일적인 작업방식과 작업환경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고, 그것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나는 오랫동안 모더니즘에 입각한 전통적인 조각교육을 바탕으로 작업을 해 왔었고, 작업으로 인정받으려면 그 방식에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를 벗어나고 스스로 조각을 하는 환경을 만들어가면서, 내가 배우고 익숙하게 여겼던 작업환경이 남성의 신체와 사고에 많은 부분이 맞추어져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즉, 작업을 하는 과정과 그것을 전시하는 방식, 서로간에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에서 실제로 내가 느꼈던 정신적, 육체적, 환경적 한계와 제약들은 분명 여성이 조각을 지속적으로 하는 일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이라 생각되었다. 뿐만 아니라, 조각분야가 아니더라도 내 주변의 많은 여성미술가들이 자신의 의지가 아닌, 외부적인 환경에 의해 작업을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나는 이러한 일들이 개인의 의지부족이나 능력의 한계 등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더 큰 원인은 여성이 자신의 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나 다양성이 부족한 작업환경 때문이라고 여겨졌고, 그것을 좀 더 나아지게 하려면 내가 할 수 있는 조각이라는 분야에서부터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 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3개의 연작은 "나에게 필요한 도구 만들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이것은 여성조각가인 나 자신에게 필요한 도구를 만드는 것으로, 대나무 자나 일상의 물건을 이용하여 헤라(조소도구)등을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물건 본래의 기능은 조각을 위한 도구라는 새로운 기능으로 전환되고,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만 존재했던 재료와 도구가 조각의 최종적인 결과물로 등장하면서 전형적인 조각의 상황을 뒤집는다. ● 나의 손에 맞는 조각도구를 만드는 과정은 '여성성'을 반영하는 도구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 작업인 "타피스트리 협업의 도구"는 여성이자 조각가로서, 여성의 조건과 상황에 맞는 대안적인 작업환경을 만들어보고자 실제 협업을 시도하고 이를 위한 협업의 도구를 제작하는 것이다. 다양한 조건과 상황에 놓여있는 여성들과 협업을 한다면, 여성의 특징을 반영한 좀더 실질적인 도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여 7명의 여성들과 하나의 타피스트리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경험한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의 협업에서는 무엇보다 '관계 맺기'가 중요함을 발견하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한 소통의 도구들을 만들어나간다.
이어지는 세 번째 작업 "너와 나의 협업의 도구"는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경험과 생각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도구나 환경을 여성조각가의 입장에서 만드는 작업이다. 타피스트리 협업에서 느꼈던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여성성', 즉, 여성간의 차이와 다양성이 곧 '여성'을 말해준다고 생각하여 이를 드러내는 방식의 협업을 시도한다. "당신의 꿈을 위한 도구"를 통해, 여성 각자의 삶 속에서 드러내지 않았던 자신의 꿈과 욕망을 '도구'라는 대리물로 드러냄으로써, 여성을 둘러싼 보편적이고 획일화된 삶의 기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 이처럼, "여성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 연작은 나 자신에게 맞는 작업도구를 만드는 일로부터 출발하여 여성들과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여성의 삶을 반영하는 환경을 만드는 일로 나아간다. 나는 이 작업을 통해 여성을 위한 대안적인 무언가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협업이 성공인지 실패인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다양한 여성들과 직접 만나고 이야기하는 시간은 그 이상의 것을 느끼게 하였다. 그것은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경험을 공유한 여성들과의 만남이었고, 그 과정 속에서 '여성'이라는 조건을 한계가 아닌 다양한 삶의 가능성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데 있다. ■ 서해영
Vol.20160811b | 서해영展 / SEOHAEYOUNG / 徐海英 / installation.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