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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우 홈페이지_www.jeongheewoo.com
초대일시 / 2016_0810_수요일_06:00pm
후원 / 서울시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경(境)을 탁본한다는 것 ● 정희우의 개인전 경(境)은 경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경계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기에 모호함을 지닌 매혹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질적인 것들의 접촉 지점이기에 그 곳에는 당연히 거부와 타협이 공존한다. 더구나 그 경이 마음대로 오갈 수 없는 곳의 어떤 지점이라면, 그곳의 바람은 흐르지 않고 고여 있을까? 작가는 이 땅, 남한과 북한의 접경에 가서 이곳의 이정표를 담아왔다. ● 2000년에 북한 땅 개성에 착공되어 2005년부터 사업을 시작한 개성공단은 2016년 폐쇄되었다. 2013년 개성공단 폐쇄 뉴스가 나올 당시 화면에 개성 공단으로 가는 남북출입사무소의 전경이 나왔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그 장면을 TV로 보고 있었는데 갈 수 없는 곳인데도 갈 수 있는 글씨같이 쓰여 진" 개성이라는 글씨가 부각되어 다가왔다고 한다. 그 이후 내내 그곳을 가보고, 그 글씨를 만져보고 싶은 느낌이 고여 있었다. 이렇게 그 느낌과 마음이 이 작품들의 시작점이 되었다.
개성은 접경지역의 바닥에 있는 싸인이다. 서울과 나란히 써 있는 그 글자에는 남북한을 오가던 대형트럭이 만들어낸 자국이 새겨져 있다. 경(境)의 탁본 전시는 이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하지만 이 전시는 그간의 시간과 사건을 사진, 그림, 나레이션으로 재현하지 않는다. 먹을 묻힌 솜방망이로 두드려서 바닥의 글씨를 그대로 벗겨낸 한 장의 커다란 탁본에는 사진이나 그림이 재현하지 못한 것들이 불려와 있다. 그림에 다가가 미세한 균열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라. 그 자국들에는 16년간 개성과 서울을 드나들던 자동차의 바퀴자국, 바람과 비, 눈과 햇빛이 만들어낸 서사가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그곳, 그 글자에는 경계를 넘어 마음껏 가고 싶은 열망이 배어들고 있을 것이다. 마치 우리의 얼굴에 웃음과 고통, 삶에 대한 희망이 흔적을 만들어 가듯이. 정희우 작가는 스스로를 '도시의 기록자'로 부른다. 강남의 변화상을 독특한 시점으로 그려내고, 오래된 간판이며 아파트의 펜스, 담벼락 등을 탁본으로 기록하는 역할을 한다. 탁본 대상은 오래된 것들로, 그들은 단지 세월의 업적을 전달해 주는 정보의 기록만이 아니다. 그의 탁본 작품은 대부분 흑백의 조응으로 담백하면서도 조용하다. 그들은 작가의 행위를 통해 이곳에서 불려와 묻는다. 나에게 이 시간동안 이런 흔적이 쌓여갔으니 다가와서 그것을 들여다보라고. 당신의 그 세월은 어떠했냐고. 그의 작품 '도하부대 목욕탕 탁본'(2013)은 네모의 무덤덤한 타일과 종이 흔적의 탁본이다. 그 앞에 서면 지난 세월 우리 목욕탕의 한 장면이 호명된다. 어렸을 적 엄마를 따라 다녔던, 이제는 없어진 대중 목욕탕에 대한 나만의 기억이 독특한 방식으로 불려오는 것이다. 목욕탕 장면을 오히려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그 장면은 비어있다. 하지만 그 비어있는 공간이 있기에 관람자들은 흑백의 타일자국을 통해 자신만의 기억을 그 작품에 투사한다. 보도 블록의 쓸려간 자국에는 누군가 행인의 발자국 자취가 새겨져있다. 언젠가 그 길을 걸었던 그 사람, 혹은 나의 발자국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작가가 탁본해 온 작품들은 한명의 관람객마다 하나의 서사를 지닌 가장 풍요로운 장소성의 재현일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이 지닌 또 하나의 매력은 작품의 물성과 색채에 있다. 한지에 옮겨진 이 작품들은 부드럽고 따뜻한 우리의 몸에 거부감이 없다. 화려하고 매끈하고 반짝이는 것들은 우리의 시선을 자극하기에 아름답다. 하지만 뻗쳐오르는 생기 못지않게 숨죽이고 침묵하는 것들 역시 우리를 깊게 하기에 흑백의 단순함이 지니는 가치는 영원하다. 대도시는 우리의 부드러운 몸을 반사하고 내비치는 번쩍이는 유리와 거울, 철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차가운 도시를 물감이 스며들고, 경계가 희미하고, 서로 섞여드는 한지에 옮겨 담는 것이 그의 작업의 특징이기도 하다. 정희우 작가의 기록이 예술성을 띠는 지점은 이렇게 개개인의 기억과 해석을 환기시키면서, 동시에 그것을 따뜻한 물성, 기본적이며 영속적인 흑백을 통해 제공하는 그 지점에서 탄생한다. 그렇게 그의 탁본 작품은 아무런 색채도, 형태도 더해짐 없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종이를 통해 불려와 여기 서 있다. 그리고 우리는 작가의 작품을 통해 우리의 기억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그 지점에서 예술가, 재현대상, 관람자는 동시에 다시 생성된다. 그렇기에 전시장에서 우리는 로마의 시인 마르쿠스 마르티알리스(Marcus V. Martialis) 가 말했듯, "과거를 회상하는 삶은 또 다른 삶을 사는 것" 일지도 모른다. ●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두 글 자 '개성'. 개성 공단 사업자에게는 경제적 피해를 준 분통터지는 장소, 정치가들에게는 권력의지를 실현할 도구, 이산가족에게는 아득해져가는 그리운 통한의 장소이다. 하지만 이 외에 얼마나 많은 장소성이 이 경계의 한 단어 '개성' 에서 환기될 수 있을 것인가. 이 모든 감성은 지금은 가지 못할 땅이라는 현실의 명제에 묶여있다. 작가가 작업 하는 내내 불어왔을 맑은 바람은 지금도 남북출입 사무소 한 편에서 그 글자위에서 흐르고 있을 것이며, 그 서사를 그대로 옮겨온 이곳 홍지동 전시장 속의 탁본은 이곳에서 또한 수많은 서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 조현신
Vol.20160810d | 정희우展 / JEONGHEEWOO / 鄭希宇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