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8:00pm
서울 성동구 동일로 59가길 11 Tel. +82.10.8021.9198
2016년 4월 성동구 송정동의 집에서 네 명의 레지던스가 시작되었다. 우리끼리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만들고 약 4개월간(4월-8월) 작업했다. 우리는 방을 나누어 사용하고 공간에 맞는 작업을 계획하고 실현하였다. ● 레지던스 공간은 B가 올해 2월에 작업실로 사용하기 위해 집 근처에서 찾아낸 월셋방이다. 서민들이 사는 동네의 주택가 골목길에 있는 집이다. 잠깐 동네 풍경을 묘사하자면, 대문을 열면 바로 계단을 오르게 되는 비슷비슷한 구조의 집들이 맞은편 집과 서로 마주보며 골목길을 따라 죽 늘어서 있다. 2, 3층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마당이 있는 집은 거의 드물다. 화단을 만들 땅은 없지만 집집마다 화초 몇 개씩은 화분에 심어 키우고 있고, 대문 위에 지붕이라도 있는 집이라면 대문 지붕이 화단이 되어 거기에 풀, 꽃이 무성하다. 요즘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사라진 풍경인 집 밖으로 나온 빨래들이 보기에 정겹다. 창 밖으로 불쑥 튀어나와있는 빨래들이 살랑살랑 흔들거리며 좁은 골목길에 생기를 주고 있다. 우리의 레지던스, 집은 작기는 해도 살림이 가능한 공간으로 큰방 하나, 작은방 하나, 주방, 화장실이 각각 하나씩 있다. 짐작하건 데 그 동안 독신자나 식구가 적은 가족이 세 들어 살면서 그들의 인생의 한 시기를 이곳에서 보내고 떠나기를 반복했으리라. 인간 생활의 세가지 요소인 옷과 음식과 주택 중에서 주택이 가장 부피가 크고 비싼 것이라서 경제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우리사회에서 주택은 경제가치로 환원되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경제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집은 먹고, 자고, 쉬고, 지지고, 볶는, 그야말로 대수로울 것 없는 우리의 사적인 생활을 그대로 담아내는 일상의 공간이다. 그리고 음식이나 옷처럼 고유의 냄새와 촉감을 가지고 있는 친밀한 장소이다. 그러나 집은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있지 않다. 타인의 시선이나 간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피난처이자 휴식 공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엄청난 가사 노동의 공간이거나 인간을 파괴시키는 가정 폭력과 아동학대가 자행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어떤 모습이든, 집은 현재의 우리의 삶과 밀착되어 있어 현실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기억 속에 또는 상상 속에 존재하는 집에 들어가게 된다면 집은 관념이거나 추상이 될 수도 있다. 요즘 각종 단체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많다. 작가들은 그들이 제공해주는 작업실이 필요해서 참여하는 것도 있지만 전시 활동이 작가의 경력이 되는 것처럼 레지던스 참여 자체가 작가 경력이 되는 분위기에다 심적, 물적 후원을 받는 제도의 도움이 절실해서 참여하게 되는 것 같다. 이번 레지던스는 우리가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스스로를 후원한다. 그러므로 자가동력 레지던스 라고 할 수 있다. 레지던스 인 송정동을 통해 우리가 매일 사는 장소이면서 창작의 장소인 집의 모습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연구하며, 작업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자영 「동일로 59가길 에게 여름정원」은 어린 시절의 창호지 문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예전에는 여름과 가을 동안 자기집 마당이나 들에 피어있던 꽃잎이나 나뭇잎을 따다가 눌러서 말려두었다가 창호지 속에 넣어 문을 바르곤 했었다. 창호지 속에서 은은히 비치는 국화꽃잎이나 단풍나뭇잎은 무성하게 꽃피고 자라던 지난 계절의 흔적이자 추억이다. 「동일로 59가길 에게 여름정원」은 들에 흔하게 피는 각종 여름 꽃과 풀을 하나씩 캔버스 천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리고 오려내 창문 크기에 맞는 면천에 붙이는 꼴라주 작업으로 만들어낸 여름 정원의 풍경이다. 천을 방충망을 대듯이 창문에 고정시켰다. 근경, 중경, 원경으로 중첩되어 비치는 여름 정원이 빛과 바람의 통로, 창문에 펼쳐진다. 더불어 풍경의 일부가 된 꽃과 풀을 하나하나 조사하여 이름과 정보를 적어 식물도감 형식의 책자를 만들었다.
변지은 「저녁식사」는 여러 개의 라이트 박스를 이용해 불이 켜진 도시의 창문을 연출하고 있다. 창문에 비쳐진 이미지는 아늑해 보이는 실내풍경과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위해 마주앉은 가족들처럼 보이는 실루엣이다. 그것은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의 전형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창문 밖의 시체처럼 푸르스름한 신체를 가진 두 인물의 관계가 수상하다. 우리가 창을 통해 보는 것은 이미지 일뿐 창문너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없다. 우선 의심부터 하고 보자는 심사는 아니지만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 이면에 내재된 아픔이나 폭력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현실을 목격하는 일이 그다지 낯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없이 화목해 보이는 가족의 저녁식사가 실은 서로를 해치고, 빼앗는 관계의 사슬 위에 놓인 불안한 그림자 놀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정희 「투명한 형태」는 길에 내버린 음료수병, 술병과 같은 유리병을 하나씩 주워다가 상표를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 진열해 놓았다. 다양한 제품의 이름과 용도를 지우고 보니 크기와 모양이 제 각각인 유리병의 투명한 형태가 그대로 드러난다. 용도나 이름은 필요에 의해 유리병에 부여된 부수적 조건들이다. 유리병의 본질을 가리고 있는 그 조건들을 모두 제거하니 속이 환하게 비치는 투명한 형태가 시선을 끈다. 「임플란트」는 식탁의 상판 일부분을 조각도로 파내고 길에서 캐온 풀과 꽃을 옮겨 심었다. 사람과 풀과 꽃이 같은 식탁에서 함께 먹고 자란다. 「헤드 룸」은 원형 빨래 건조대를 천정에 매달고 원기둥 모양으로 실 커튼을 내렸다. 머리만 들어가 쉴 수 있는 방이다. 「컬렉터 되기-드림 하우스」는 송정동 골목길을 돌아보다가 마음에 드는 집을 하나씩 골라 그렸다. 대부분 여러 가구가 함께 거주하게 지어진 반 지하 방이 딸린 2, 3층의 주택들이다. 그 주택들을 정물처럼 자신의 방안에 옮겨 놓았다.
홍혜경 「비밀의 정원」은 주방공간을 식물들이 점령하고 있다. 사실, 집안에는 사람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종류의 생명들이 사람들과 더불어 공존한다. 개와 고양이와 같은 애완동물은 물론이고 바퀴벌레를 비롯해 개미, 거미, 귀뚜라미 등등의 원치 않는 생명들도 자리를 잡고 살고 있으며 집주인의 취향에 따라 거실이나 베란다 곳곳에 선인장, 꽃, 먹을 수 있는 채소까지 다양한 종류의 화분을 키운다. 우리가 사는 집이 꼭 사람들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얘기다. 「비밀의 정원」은 싱크대, 수도꼭지, 가스레인지 위에 그리고 싱크대 위, 아래의 수납장에도 접시나 냄비대신 온갖 종류의 식물들이 살고 있다. 주방을 가득 채운 식물들은 집이 생명이 가득한 장소라는 것을 전해주는 메시지로 보인다. ■ 이정희
Vol.20160807a | 레지던스 인 송정동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