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6_0730_토요일_05:00pm_시티갤러리
참여작가 피터 캠퍼스_캐서린 J. 그레이브스 안토니오 트리마니_이토 림
후원 / 주한이탈리아대사관_주한미국대사관_주한이탈리아문화원 주최 / 서울특별시 주관 / 서울문화재단_아트앤리얼무브먼트
관람시간 / 09:00am~09:00pm
2016_0730 ▶ 2016_0831_시티갤러리 2016_0730 ▶ 2016_0812_시민플라자
서울특별시 시민청 SEOUL CITIZEN HALL 서울 중구 세종대로 110 B1 시민플라자, 시티갤러리 Tel. +82.2.739.9922 www.seoulcitizenshall.kr
시민청 특별전시 『De Bello Naturae 자연』전은 백남준과 더불어 초기 미디어아트의 선두주자인 미디어 아트 작가 피터캠퍼스의 첫 내한전시로, 피터 캠퍼스를 비롯하여 안토니오 트리마니, 캐서린 J.그레이브스, 이토 림의 자연을 주제로 하는 미디어와 사진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입니다. 본 전시는 서울시가 주최하고 서울문화재단, 아트앤리얼무브먼트가 주관하였으며, 주한이탈리아대사관, 주한미국대사관, 주한이탈리아문화원이 후원하였습니다. 4명의 작가의 작품은 현대인들의 관계 및 갈등과 이를 둘러싼 자연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라틴어로 'De Bello Naturae'는 아름다운 자연과 투쟁하는 자연의 양면적인 뜻을 담고 있습니다. 자연을 재해석한 작품들을 감상하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내 작품을 전달하는 매개체는 카메라의 시야이다. ● 나는 카메라를 어떤 특정 장소로 가지고 간다. 그 곳은 나의 예술 작품 의도와 어울리는 장소이다. 그 곳에 머무르면서 안팎에서 울려 퍼지는 어떤 이미지를 포착하려고 헤맨다. 그 이미지를 풍경 속에서 찾고 있다. 그 안에서 생각과 어떤 찰나를 포착하는 작은 의도, 그리고 한층 더 강렬해지는 의도를 표현할 것이다. 나는 조화미가 돋보이는 작품을 추구하고 있다. 카메라는 은빛 풍경, 시간의 작은 파편, 제한적인 시계를 포착한다. 이 이미지는 풍경 바깥쪽의 존재를 암시한다. 하지만, 풍경의 경계 안쪽에 있는 존재도 표현해 내야 한다. 카메라는 드넓은 작업 현장에 설치된 중심과 같다. 카메라는 선택적이고, 간소하고, 제한적이기에 나의 의도가 있어야만 카메라의 시야는 비로소 확장된다. 나는 그 지점으로 차를 몰고 갔다. 걷거나, 하이킹을 하지 않았고 캠핑이나 밤을 지새우는 일도 없었다. 10년 남짓 자주 그곳에 갔었다. 30대 후반 이후로는 롱 아일랜드 동쪽 끝으로 향했다. 그 지역 그리고 그곳에 비치는 빛을 알고 있었다. 그곳의 바다에서 수영도 했고, 모래 언덕의 해변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거기서 일식을 보았다. 자연의 무한성을 이해하는 이런 과정은 내 인생의 일부이다. ● 카메라의 경험은 나의 경험과는 다르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나의 눈과 비교하면, 카메라 렌즈는 고정적이다. 카메라는 수동적이며, 무엇이든 렌즈를 통해 앞에 있는 피사체를 시모스(cmos) 칩 속으로 단순히 기록할 뿐이다. 나는 셔터 속도를 1/1200초로 설정했다. 나는 한 마리의 새가 창공을 비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나의 카메라는 분당 24 프레임으로 구성된 불연속적인 정지 이미지를 본다. 즉, 카메라에 포착된 새는 프레임을 따라 빠르게 스쳐 지나가듯, 초당 24번 축적된 시간 속에 멈춰져 있다. 카메라는 나와는 별개이며, 이질적인 도구이다. 카메라에 갇힌 이미지는 나의 경험과 다르다. 중요한 것은, '나의 경험이 카메라를 통해서 재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카메라는 나의 경험에서 볼 수 없었던, 인식할 수 없었던 무언가를 포착한다. 카메라는 나의 감성을 증폭시켜주고, 감각을 확장시켜주며, 인식할 수 없었던 요소를 또 다른 방식으로 덧붙여준다. 나는 이미지를 구성하는데 대형사진 촬영 카메라에 소요했던 시간만큼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나는 카메라 안에 빠져 그 자리에 서있는다. 카메라를 통해 보고, 이렇게 저렇게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면서 움직인다. 삼각대를 집어서 몇 걸음 걸어보고 반복한다. 짓조 삼각대를 30년 동안 사용해왔지만 카메라는 최신이고, 라이카 렌즈도 새로 마련한 것이다. 과거에, 라이카 렌즈를 사용해본 적이 있기에 고정식 라이카 렌즈에 특별한 애착을 느낀다. 이 렌즈는 롱 아일랜드의 빛을 담아내는 데 완벽하다. 수 년 동안 사용해왔지만 이것이 특별한 이유와 무엇이 차별적인지를 말해보려고 시도해 본 적은 없다. 이 렌즈는 빛을 전송하는 품질이 남다를 뿐이다. 카메라는 이미지와 다양한 매개 변수로 이루어지고, 이미지를 받을 수 있는 장소에 설치된다. 나는 카메라를 설치하는 장소를 알고 있지만, 카메라가 어떤 사건을 포착할 지는 전혀 모른다. ■ 피터 캠퍼스
나는 아이디어를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방식에 대해 늘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를 바로크 또는 혼돈의 공간으로 보는 것이 좋다. 이런 공간에서의 나의 시선, 즉 관람자의 시선은 봇과 풍경이 서로 대치하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깊게 음영을 처리하고 전체적으로 어두운 공간을 추가하여 정지하고 경고하는 느낌을 강조한다. 이런 방식으로 이미지를 형상화하면 물리적으로 디테일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따라서 관람자는 이미지를 검토할 수 있다. ● 어둠의 정원은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여 하나의 최종 이미지로 조합된 대규모의 사진 이미지들로 제작된다. 나는 작업을 할 때, 이론화 작업과 디자인 과정을 진행하고 전자 펜을 사용한다. 이 작업 방식은 회화, 드로잉, 판화 및 아날로그 사진작업과 꽤 유사하다. 나의 디지털 기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했다. 과거에 드로잉과 암실 인화방법을 배우던 시절과 아주 유사하다. 나는 새로운 전자도구를 활용하고 이런 방법을 결합하여 독특한 결과물을 찾는다. ● 나만의 기술로 탄생한 존재에 대해 판타지를 느끼고, 그런 사물을 자연으로 다시 내보낸다. / 기술로 태어났지만, 자연에 묻혀 살아가는 존재에 대해 판타지를 느낀다. / 나는 자연을 재배열한다. / 나의 봇과 나의 풍경, 나의 정원을 배열한다. / 구성, 컬러, 디자인 모두 배열이다. / 강박적이고, 끊임없는, 배열 과정 / 배열을 통해 나의 불안감은 진정된다. / 나는 단 한 번의 낭비 행위라도 죄책감이 느껴진다. / 나는 자연을 보존하고 싶고, 안전한 환경을 추구한다. / 나는 광범위한 영향을 가져올 새로운 기술을 조사한다. / 기술은 어떤 의도를 구현하다. / 나는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 그 기술을 구현한다. ■ 캐서린 J. 그레이브스
안토니오 트리마니 비디오의 발전과 부동성 ● 트리마니는 일정한 방식으로 디지털 아이콘을 감독한다. 작가는 움직임이 없는 풍경 앞으로 고정된 부동 지점에 오직 카메라 하나 만을 설치하기 때문이다. 미동 없는 정적인 이미지는 풍경의 느린 변화에 의해 연출된다. 너무 느린 탓에 마치 고의적으로 정지시켜 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디오 프레임 속의 움직임은 우리의 내재적인 시간과 접속한다. 또한, 비디오 속에 갇힌 시간은 순수한 시간이며 매우 제한적이다. 따라서 아무 변화가 없는 시간과 어떤 변화가 발생하는 시간을 분리시킨다. 이것이 바로 그의 비디오에 생명력을 불어 넣은 진정한 주제, 진정한 콘텐츠이자 디자인, 즉 내재적 시간과 그 시간의 임계값이다. 그는 특정한 풍경에 매혹된다. 그런 풍경은 깊은 관찰과 사색 후에 작가 본인이 선택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 풍경이 작가의 사적인 감성 속에 이입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 방식은 시각적이거나, 자연주의적이거나 또는 직관적이라기보다는 신비스럽다. 트리마니는 외부 시선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 외부 시선은 한층 난해하고 복잡한 내부 시선을 반영한다. 왜냐하면 개체가 바라보는 감성이 아니라 주체가 느끼는 감성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이 정체성에 연속성을 부여하고 내부 감각과 일치하는지 포착한다. 또한, 작가 본인의 내재적인 에너지에 따라 요동치고 있는 어떤 것을 포착한다. 그 결과, 디지털 풍경과 전자 매체의 시간 프레임 속에서는 그렇게 포착된 영상이 구현된다. '풍경'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이 용어의 은유적인 감각뿐 아니라 생태학적인 반향 즉, 전자 생태학을 반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작품, '각도와 곡선'에서 풍경은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있는 데 전기 전도체인 송전탑 구조물로 도도하게 점령되어 있다. 구조물은 침략적이며 위협적이고 겉으로 보기에는 계속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비록 태생은 거대한 녹색 나무였지만 점차 부자연스러운 디지털 적열상태로 변하고 있다. 이때, 예상을 깨고 비상하는 갈매기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뜻밖의 시야에 겹쳐지면서 위험한 분위기를 강조하고 훨씬 더 위협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가는 오밀조밀하면서 대륙적인 차원을 다소 가벼워진 공중 차원으로 투사하며 비디오를 마무리한다. 아마도 우리가 흘려보내거나 순식간에 흘러가는 순간의 기억을 강조하는 듯하다. ■ 마르코 토넬리
불가능한 시선과 정지된 활동 속에 내 자신의 살고자 하는 몸부림이 있다. 끝없이 소진되어져 가고 사라져만 가는 존재의 끝엔 이뤄질 수 없을 시선의 환영이 강박관념처럼 존재한다. 나의 불안은 더욱 안정을 원하는 간절한 희망처럼 기능과 행위의 장면을 요구하기 시작하고 이뤄질 수 없는 공간의 간절한 수평을 통해 내면의 안정을 찾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채울 수 없을 두려운 선만 존재할 뿐이다. 과연 나는 이를 극복해 낼 것인가. 나는 이것에 매우 관습적으로 익숙하게 지각하고 반응한다. 나의 주변을 에워싸듯이 끊임없이 펼쳐진 선들을 통해 혼재된 내면을 정제된 고요함으로 야기시킨다. 또한 내면에 선재한 것들을 감추는 표면적 특징으로 자신을 극복하기 위한 연장된 희망의 대응인 것이다. ■ 이토 림
Vol.20160730b | De Bello Naturae-자연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