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6_0723_토요일_05:00pm
작가와의 만남 / 2016_0723_토요일_03:00pm, 06:00pm
관람시간 / 11:00am~08:00pm / 7월25일 휴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Hangaram Art Museum, Seoul Arts Center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서초동 700번지) 제7전시실 Tel. +82.2.580.1600 www.sac.or.kr
김품창의 제주도환상 연작은 틀림없이 대단히 훌륭한 예술적 성취이다. 그의 예술적 성취를 제대로 이해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그의 작품들이 '제주도 풍경 (風境)'이 아니라 '제주도 풍광(風光)'이라는 것이다. 혹자는 풍경이고 풍광이고 그게 무슨 차이냐고 짜증낼 수도 있겠지만, 이건 단순한 말 장난이 아니다. 중요한 개념적인 차이점을 내포하고 있고, 심지어 미술창작에서 어떤 개념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작가가 주제를 접근하느냐에 따라 그 작품의 내용적인 깊이와 창의적 조형의 수준과 예술창조적 성취의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 한국에서 사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 있는 도(道)는 제주도뿐이다. 제주도는 가장 작은 행정구역으로 비록 그렇게 크지 않은 섬이다. 그래도 충분히 큰 섬이어서,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하면 각기 그 충청도 또는 전라도의 특별한 지역 색이 있듯이, 제주도만의 고유한 지역의 특색을 이야기할 수 있다. (한국의 몇 천 개의 수많은 작은 섬들은 전라도 또는 경상도의 섬이지, 그 섬만의 지역적 특성을 갖기에는 너무 작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행정구역으로서의 제주道가 갖는 지역적 특성은 이 지역이 제주島이기 때문에 다른 도 단위 행정구역들이 갖지 못하는 그 어떤 것들일 텐데, 그것은 무엇일까. 분명히 제주도는 망망 대해의 거대한 파도물결의 어깨에 올라 앉아, 아주 길고 긴 주기(frequency)지만, 아래위로 좌우로 파도의 물결의 리듬과 속도에 진동하면서 제자리를 고수하는 그런 형국이리라. 즉, 제주도의 특성은 땅은 작고 바다는 망망한 대해로서 거대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주도의 하늘에도 또 그 하늘 아래의 조그만 땅의 섬과 그것을 둘러싼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에도 거대한 공기의 그리고 바닷물의 파동의 흐름이 있다. 그리고 우주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하늘과 바다가 같은 색으로 맞닿아 있고, 그 하나로 맞닿은 온통 청색의 전체 속에 하나의 검은 점 또는 하얀 점일 뿐인 제주도는 그 거대한 우주의 바람과 바다물의 파도의 순환의 흐름에 어떤 방해를 주어 그 순환을 바꾸어 놓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제주도의 지역적 특성은 어디서나 항상 바다를 바라보고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곧 바다인 것이고, 그렇다면 다른 모든 한국의 타 지역에서는 하나같이 땅을 파서 농사를 지어 살아가는 것이 농본제일주의를 모토로 삼은 전통한국인들의 삶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제주도는 농사지을 땅이 부족하고, 땅이 있어도 모든 화산 폭발로 이루어진 섬들처럼, 맨 현무암의 돌멩이투성이여서, 농사에 부적절하니, 한라산에서 나는 여러가지 나물이나 열매들을 제외하고는 제주도사람들한테는 가장 풍부하게 가까이 있는 바다를 상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바다에는 엄청나게 풍부해서, 결코 바닥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의 물고기들이 있고, 또 수면 밑에는 다양한 해초와 다른 생명체들이 서식한다. 땅에서 달리기보다 수영을 먼저 배우는 제주도 사람들에게는 바다가 그들의 삶의 터전인 것이다. 바다를 터전으로 경제적인 생산적 활동을 할 뿐 아니라, 바다는 제주도인들한테 휴식과 여유를 누리는 터전이기도 하다. 누가 뭍에서만 서로 어울릴 수 있다고 했던가? 바닷가에서 수영을 함께 하면서, 해변가에서 소라나 조개를 주우면서, 또는 물장난을 하면서, 제주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바다 속의 각종의 물고기 종류들과, 바다 밑 바닥에 서식하는 수많은 해초나 다른 생명체 들과 어울림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니 제주도 풍광은 무엇보다도 바다와 바다 빛 그리고 그 속의 생명체들과 어울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닐까? 바다가 없는 풍광은 제주도의 풍광이 될 수 없다고 까지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풍광이 아니라 제주도 풍경이라면 이이기는 좀 달라 진다. 왜냐하면, 풍경은 어떤 제주도라는 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한 단면 (예를 들면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밖에 보이는 제주도에 있는 한 단면이 면 제주도 풍경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 그렇다면, 그런 풍경이 과연 제주도의 지역적 특성을 나타낼 수 있을 까? 지역의 특성이란 그 지역 사람들의 지역적 사투리쓰기, 음식이나 성격적 특성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지역의 산세가 다를 수 있고, 그 지역의 지세가 다를 수 있다. 즉, 그 지역에 들어가면, 뭔가 그 지역의 자연환경 속에서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순환계의 움직임이 그리고 리듬이 달라서, 하늘도 땅도 강도 바다도 독특한 색깔 톤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 지역의 이러한 특성을 그 지역적 풍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 까? 그렇다면, 그런 개념의 풍광은 그 지역의 한 조그만 단편적인 풍경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현재 김품창보다 더 유명하고 작품 값이 몇 배 더 나가는 제주도 화가들은 제주도의 풍경을 그리는데 그치고 있어서, 제주도의 풍광에는 접근도 못하고 있다고 한다면, 내 주장이 너무 독단적인 것 일까? 아니라고 나는 단언한다. 왜? 설득력 있게 설명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이런 설명을 하면 되지 않을까?
우주와 자연에는 리듬이 있다. 사계절이 있듯이. 마치 여자의 몸에는 생리 역시 리듬이 있듯이. 자연과 생명은 오직 '순환' 과 '운행' 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한의학에서 기혈이 막히면 병이고 통하면 건강한 것이다. 바로 자연, 그것이 바다건 땅이건 하늘이건, 그 한 단면의 풍경이 아니라, 바로 자연의 그 순환성, 그 필연성의 순환 운동이 바로 자연이지, 어떤 정적인 자연의 단면을 그리는 것으로 는 많이 부족하다. 바로 그 천혜의 자연환경의 제주도의 특징일진데, 제주도의 그림은 바로 제주도 자연의 순환을 보여주는 그림은 제주도 풍광화 일뿐이다. 또 그렇게 하는 것만이 동양의 예술정신을 구현하는 것이지, 그냥 제주도 일상의 한 단면을 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그 구도와 작품이 비록 세련되고 장인적이어도, 그것은 서양 풍경화의 아류로서 동양적 예술성을 구현하는 독특한 제주도 풍광을 잡는 것은 아닐 것이다.
풍경이나 풍정이 제주도 자연과 생활의 한 정적인 단면의 묘사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작가의 예술가적 능력에는 무관하게, 그의 개념적 이해의 불충분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일 것이다. 즉, 동양적 예술성의 구현을 통한 현금 허무주의적 서구중심 예술의 위기에 출구를 제시할 수 있는 그런 예술을 하자면, 개념적으로 우선 서구의 문화적 철학적 세뇌에서 해방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풍광이란 개념의 우월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풍광은 바람과 빛이다. 둘 다 파장을 의미한다. 파장은 움직임이고, 파장을 통한 모든 자연의 순환이 이루어진다. 파장 또는 물결은 하늘에서 바람으로 구름으로, 바다에선 파도로 조류로, 땅에서 역시 감지가 어렵지만 파장의 움직임이 있다. 지진이나 화산 분출이 바로 땅의 파동의 결과인 것이다. 이런 우주의 모든 파동들은 서로 어우러져서 하나의 거대한 자연의 순환계를 이루는 것이다. 김품창은 바로 제주도 자연의 순환계를 그의 풍광그림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더 잘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그의 2010년 '어울림의 공간: 제주환상'을 보라. 맨 밑에 두 개의 봉우리 같은 것이 보인다. 그 봉우리 위에는 나무나 다른 식물군으로 보이는 것들이 눈에 보인다. 바로 제주도에 널려있는 오름의 봉우리로 보면 될 것이다. 이 오름들은 제주도 육지에 곳곳에 솟아 올라, 한라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로 퍼져나가는 어떤 지층파동운동의 그 파장의 CREST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맨 밑의 두 봉우리도 눈에 다 안 보이는 땅의 파동의 일부이다. 그 위로 여러 개의 오름과 내림, 즉 wave crest 와 wave trough 가 있는 파동들이 첩첩이 그려져 있다. 그것은 각기 오름과 내림이 있는 파동으로서 바다의 파도라는 파동의 오름과 내림이 될 수도, 또는 하늘에 부는 바람 파동의 오름과 내림일 수도 있다. 또, 바다 해저에도 봉우리와 골짜기가 있어 수 많은 어류와 해조류들이 그 곳에 서식하고 있다. 바로 이런 여러 가지의 파동을 타고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와 갖가지 개체들이 서로 얽혀서 진동하면서 어울리는 것을 동적인 화면을 구현하여 어디서도 정체 되지 않고 계속 순환하는 자연의 모습을 어느 누구보다도 더 잘 보여준다.
풍경화나 풍정화가 정적인 한 단면을 보여주어, 계속적인 순환의 운동성이 그 핵심인 자연을 담는데 실패하여, 캔바스의 경계안에 가두어 놓은 임의의 자연이라면, 김품창의 자연은 어떤 한계가 없이 계속 움직임을 부여하여, 그의 화면 속의 각 파동의 움직임들은 각기 캔바스의 밖으로 진동하여 뻣어나간다고 볼 수 있다. 완전히 다른 종류의 그림인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풍광을 그것도 동양적인 이해의 자연관을 담은 그림은 김품창한테서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 홍카이
나의 제주 15년 살이 ● 2001년 여름, 답답하고 메마른 서울도심을 버리고 나만의 창작세계를 찾기 위해 제주도로 떠나왔다. 하지만 제주도라는 새로운 환경은 무척이나 이질적이었고, 생소한 낯설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오로지 나의 가족만이 유일한 벗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뀜에 따라 변하는 경이로운 자연현상과 그 속에서 서서히 발견되어 드러나는 작은 생명체들은 신비로움으로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에게 친구로 다가와 말을 건네기도 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제주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 하는 어울림의 공간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들 모두가 서로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서로 소통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상세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제주에 정착한지 어느덧 16년이 흘렀다. 나는 정착초기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과 풍광을 온몸으로 느끼며 2004년 어울림의 공간, 2009년 어울림의 공간 제주환상을 테마로 제주의 한라산, 바다, 밤하늘, 별, 해녀, 고래, 문어, 갈매기, 소라, 인어, 외계인, 귤나무, 야자수 등 소재로 하여 10여 차례 개인전을 통해서 동화적 판타지를 발표 해왔다. 나의 그림에서는 하늘, 땅, 바다의 구별을 두는 것을 중요시 하지 않는다. 표현되어지는 모든 생명체들과 대상 모두가 둘이 아닌 하나로 귀결된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들은 서로의 독립된 존재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나의 그림에서는 서로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평화와 공존 사랑과 소통을 이야기한다. 즉, 인간 중심적인 사고는 인간의 우월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이며 이는 곧 대 자연의 질서와 순리를 거스르는 잘못된 발상인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또 내 가슴속에 꿈틀 거리는 무언가를 찾아 표현하고 싶다. 온전히 나의 작가적 진실의 몸짓으로 말이다. ■ 김품창
Vol.20160723f | 김품창展 / KIMPOOMCHANG / 金品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