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강세림_고민서_고중흡_김내영_김소영_김수호 김은정_마혜련_목선혜_문유미_박동빈_박소윤 빅터조_안용선_어진선_유민서_유성호_이덕용 이승호_이재선_정두진_조윤국
주최 / 청년작가 후원 / 춘천시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춘천미술관 CHUN CHEON GALLERY 강원도 춘천시 서부대성로 71(옥천동 73-2번지) Tel. +82.33.241.1856 cafe.daum.net/CCART
처음 춘천시청을 보았을 때,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 주변의 건물들과 어우러져 담 하나를 끼고 다른 공간에 와 있는 듯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바로 앞 도로에서 들리는 바쁜 일상의 소음들이 담장을 넘어 오지 못하는 느낌, 그 시청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니 뭔가 생소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조용하지만 묵묵히 제 일을 하고 사라져 버리는 듯했다. 그래서 탄생과 시간의 흐름, 그리고 그냥 끝이 아닌 끝을 통한 재탄생을 생각하며 새롭게 생길 시청의 모습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번 시청전시에서 '순환'이라는 주제를 선택했다. 그리고 시청전시 답사 중 '화분'이라는 소재를 떠 올렸다. 시청 안에 자리 잡고 항상 그 자리에서 시청 안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등의 감정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던 존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화분이 시청의 시간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 하는 모습이 '순환'이라는 주제와 가장 알맞다는 생각을 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이 이 작품에서 보일 수 있길 바라본다. ■ 강세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 구시청사도 사라졌다. 60여 년 동안 춘천의 수많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담고 있었던 구시청의 모습은 이젠 기록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구시청사가 부서진 현장은 마치 거대한 잔해(殘骸)가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구시청사의 흔적들... 이 흔적들도 결국 사라지겠지? 온전한 형태에서 가루가 되어버린 구시청사의 잔해를 가져왔다. 구시청사의 최후의 모습,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이 잔해들을 가지고 의식을 치르려 한다. 부디 진정으로 살기 좋은 춘천으로 만들어줄 시청으로 다시 태어나길 염원하면서... ■ 고민서
봉의산 자락 밑에 자리 잡은 구 시청사는 60여년의 세월동안 묵묵하게 많은 춘천 시민들의 기쁨과 고충을 함께 해왔다. 이제 이 청사는 잠시 우리들의 곁을 떠나 현대시대가 반영된 모습으로 재탄생하려 한다. 여기서 나는 스스로 되물어 본다. 구 시청사가 견뎌온 오랜 세월을 그리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가끔 그 시간의 무게를 잊고 살아가는 듯하다. 새로움, 편안함도 좋다! 그러나 역사와 전통이 공존하는 시청의 모습을 생각해 보고 싶다. ■ 고중흡
춘천시청에 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관계로 '시청'이라는 소재를 나의 작업과 어떻게 연관 지을 수 있을지 고민하였다. 그러던 중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접한 시청사 기공식 장면 중 신호탄 연기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겼다 희미하게 사라지는 현상에 주목하여 작업을 전개하였다. ■ 김내영
춘천지역은 나에게 타지 공간이다.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본 춘천의 자연을 공간분할을 통해 표현하였다. 2차원의 평면 위에 여러 면의 공간분할을 함으로써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또 다른 타지 공간이 나타난다. 이 낯설음과 새로운 공간은 내가 서울에서 춘천으로 향하는 설레임과 닮았다. ■ 김소영
시청은 시의 주민들을 위한 일을 하는 기관이면서도 주민들이 있기에 시청이 운영이 된다. 시청 내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한명의 주민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하, 좌우로 나뉘어져있지 않고 하나의 관계로 이루어져있다고 본다. 그렇기에 시청을 하나의 기관으로만 특정 짓고 싶지 않았다. 특정한 모습보다는 사회, 개인을 지속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며 개개인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러한 모습에서 형광등은 낯익은 사물로 인식된다. 화려한 이면과 반대편에 서있는 모습들이 불편하지만 그 현실에 마주하고자 한다, ■ 김수호
나는 실제 풍경과 내면의 풍경을 화면 위에서 조합하며 혼재된 가상의 풍경을 만든다. 사람은 어떠한 곳에 사회문화적으로 영향을 받고, 그 곳은 개개인에게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닌다. 같은 장소에 동시에 공존하는 다양한 이야기와 심리적인 측면에 관심을 가진다. 춘천은 내가 동경하기도 했고, 싫어하기도 했고, 그리움을 느끼기도 한 곳이다. 같은 공간이지만, 그 때 그 때마다 나에게 보이는 것과 그에 대한 감정이 달랐다. 특히, 내가 다녔던 학교가 다른 쓰임으로 바뀌면서 평소에는 기억의 저 편에 있던 추억들이 떠올랐고, 은행과 민원실로 바뀌어버린 교실을 보며 그 곳이 나에게 가졌던 의미와 앞으로 가지게 될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무엇이 진짜 그 곳의 모습일까, 생각해보면 공간이 변함과 동시에 나도 변했고,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어있는 것, 그 자체였다. 그림에 들어가는 이미지는 모두 춘천의 모습이다. 맨 위에 가장 처음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춘천시 홍보자료에서 가져온 풍경이고, 그 아래에 들어가는 선 드로잉은 지금의 시청이자 내가 다녔던 학교의 이곳저곳을 그려 넣었다. 이미지와 공간의 중첩과 충돌로 캔버스 표면 위에 공간의 층위를 만들고, 실제의 풍경과 그 사이에서 나타나는 감정을 추상적인 표현으로 나타낸다. 추상과 구상의 레이어가 충돌하고 집적되면서, 그 경계에 부유하는 새로운 감각과 이야기가 생기는 여지를 주고자 한다. ■ 김은정
'시청 視靑_청년의 눈으로 바라 봄' _ 장소 수집 ● 4월 마지막 날 시청의 마지막 모습을 보러갔다. 그 현장 속에서 나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그 기능을 상실한 '사인보드'였다. 사인보드는 공공장소에서 보는 이에게 이곳이 어디인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를 알려주는 기호가 된다. 시청 안에서 장소를 지칭하는 이 사인보드들은 당시 그 기능을 상실한 채 남겨져있었다. 즉, 장소를 지칭하는 그 기능은 사라지고 장소를 기억하는 기능으로 바뀐 것이다. 난 이러한 기능의 바뀜을 나의 작업으로 그리고 전시장으로 가져갈 계획이다. 나의 작업에서 사인보드는 완전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텍스트의 해체와 겹침을 반복으로 사라진 시청과 그 자리에 세워질 새로운 시청에 관한 기대를 작업을 통해 전달하려 한다. ■ 마혜련
구 청사가 허물어지고 부지를 다지는 터는 옛 공간에 대한 어슴푸레한 흔적만 남겨 놓았을 뿐 새 청사의 건축을 위해 자리가 옮겨졌다. 부서지거나 옮겨지거나 베어진 터에 아직 자리하는 것은 역시 연약하게 느껴지는 풀들이다. 시청전을 통해 흔적을 기억하는 대상으로서 식물의 이미지를 표현해 본다. ■ 목선혜
공간 +공간 -시청 블라인드를 사용 ● 이삿짐을 옮기고 난 뒤에 찾아간 시청에는 물건들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업무에 필요한 가구들, 중요한 문서들이 있던 곳, 끊어진 전선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청을 찾는 사람들이 떠나고 그곳에 남겨진 물건들은 이제 폐기처분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 중에서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블라인드' 였다. 무작정 창문에 붙어있던 블라인드 떼어내어 작업실에 가지고 왔다. 왜 블라인드를 선택했을까 하는 질문을 해 보았다. 업무에 꼭 필요한 물건이었던 것도 아니며, 수많은 흔적이 담긴 물건도 아닌, 그저 햇빛가리개에 불가한 블라인드를 선택한 것일까? 질문 속에 답이 있었다.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지만 없으면 불편한 ... 그러한 존재의 것 나는 그러한 존재의 것들을 사랑한다. 나 또한 그러한 존재는 아닌 것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 . . 블라인드를 통해 전시장에 새로운 공간 연출을 해보고자 한다. 블라인드 설치를 통하여 전시장(공간)안에서 또 다른 공간으로써...작업을 연구하였다. ■ 문유미
한국화를 하고 있는 박동빈입니다. 시청에서 버려진 폐철망을 보았을 때 떠오른 건, 검은 비단에 전통자수를 놓은 병풍이었습니다. 한 폭의 병풍 속에 춘천의 꽃을 그려 넣었습니다. ■ 박동빈
삶 속에서 내게 흔적으로 남는 경험들과 만남, 감정 등이 재형성 되어진 이미지들은 제한되지 않는 다양한 공간들로 존재한다. 그 공간들과 식물이 어우러진 또 하나의 공간은 나의 마음의 정원(쉼터)이다. '춘천'은 나에게 있어서 어릴 적, 춘천에서 자라온 시간들과 대학 시절 나를 있게 한 중요한 곳이자 나를 회복시켜주는 마음의 정원(쉼터, 여행지)이다. '시청전'을 준비하면서 어떤 주제로 작업할 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춘천시청'은 '춘천'을 상징하는 곳이다. 춘천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 추억과 기억, 감정, 상징 등을 자유롭게 기록한 드로잉을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방식으로 작업하면 좋을 것 같았다. 첫 번째 작업은 과거의 춘천에 대한 기억(기록)이자 마음의 정원이다. 춘천 지도를 그리고, 그 안에 나만의 기록물의 조각들이 퍼즐조각처럼 맞춰진다. 또한 하나의 휴식을 취하는 여행 공간이자 마음의 정원으로 거듭난다. 작업을 통해서도 작업에 부담보다는, 작업에 대한 즐거움과 마음을 회복시킬 수 있었던 작업이었다. 두 번째 작품은 새로운 춘천 시청을 기대하며 자유롭게 그려보고자 했다. 시민(여행객)이 함께할 수 있는 시청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시청이 하나의 휴식처가 되고, 다양한 역할과 모습으로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드로잉, 페인팅 등으로 미래에 밝고 건강한 이미지의 춘천시청을 표현하고 싶었다. 곡선을 많이 표현하여 딱딱하고 어려운 공간이 아닌, 좀 더 열린 공간의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표현하고자 했다. ■ 박소윤
비틀즈의 11번째 앨범인 Abbey Road 의 자켓 사진을 패러디 한 작품입니다. 춘천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소양강 처녀, 호반이, 레고)과, 저의 분신이자 아이덴티티인 바우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모습입니다. 길이라는 것은 작은 의미로는 그냥 사람들이나 차가 지나다니는 일정한 범위의 공간에 해당되지만 큰 의미로는 마을과 마을, 도시와 도시, 나라와 나라, 세상과 또 다른 세상의 경계일 수도 있습니다. 길을 건넌다는 것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별 것 아닌 행위일 수도 있겠지만 확장된 의미에서 생각하면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을 의미합니다. 청년작가 빅터조는 구 시청사가 허물어지고 신 시청사가 새로이 지어지는 일을 새 옷을 갈아입은 춘천시 혹은, 춘천시의 새로운 도약으로 바라보고 춘천을 상징하는 캐릭터들이 길을 건너는 모습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새 옷을 갈아입은 춘천시의 미래가 보다 살기 좋은 도시이기를, 보다 희망적인 도시이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 빅터조
맨 처음 시청 부시장실(시장실 창문이 더 맘에 들었지만, 사정상)창문을 보았을 때, 유리에 시트지 작업이 되어 답답하고 막힌 듯 소통부재의 단절을 떠올리게 된다. 작가는 답답한 창틀을 뜯어내고, 불투명한 유리를 제거한다. 그때부터 창틀은 소통의 불가능에서 가능의 아이콘으로 변모하게 된다. 즉 창틀너머는 투명한 인식가능공간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된다. 창틀너머로 보이는 매화나무는 고고한 절개를 상징하는 사군자의 하나이다. 매화는 막연함에 대한 희망이며, 첫 마음가짐으로 초지일관하는 굳은 의지를 의미한다. 그러나 매화는 보는 이에 따라 단순히 꽃으로만 인식되기도 하고, 그냥 나무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창틀너머에 존재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우리는 저 창을 통해 무엇을 보길 바라고 있었으며, 무엇을 보고 있었던 것인가? ■ 안용선
시간이지나 쓰임을 다한 것은 사라지지만 우리의 기억에선 사라지지 않는다. 구 시청에서 임시청사로 업무이전을 끝내고 새 시청 기공식이 열린 다음날 단 하루, 건물이 철거되기 전에 시청건물에서 작품으로 쓸 수 있는 소재를 수집할 수 있었다. 수집한 재료 중 측량도구로 쓰이는 폴대와 건물출입문에 있는 스테인레스 원형 손잡이를 선택했다. 춘천 시민들의 손이 깃든 문손잡이와 춘천시의 땅을 측량하는데 쓰인 폴대표간. 시간이 지나 본래에 쓰임을 다한 도구들은 조용히 사라졌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것들을 다른 시각으로 보고 새로운 도구로 쓰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혹시 모르는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 어진선
나에게 있어 시청의 이미지는 어쩐지 딱딱하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수많은 일들,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역동적이면서도 정적인 이미지이다. 내가 생각하는 겉모습 속에 그와는 다른 다양한 것들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시청. 그 속의 이야기를 상상해본다. ■ 유민서
춘천시청은 5개의 국과 2개 담당관실, 26개의 과,1개의 팀 등이 있으며, 이들 각 부서 및 사업소는 하는 일은 조금씩 달라도, 지역주민이 더 잘 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한다. 다시 말해 시청은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보아진다. 그러나 매스컴에서는 여러 시민들의 불만이 가득한 기사들이 쏟아지고는 한다. 시청은 늘 시민의 소리를 들으며, 시민의 편의를 위하여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30만 시민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인가 해결책이 없다면 이런 불화는 더 커져 갈 것이다. 결국 서로 다른 두 입장은 결국 낮은 담을 쌓고, 듣지도 들리지도 않게 될 것이다. 이런 안타까운 사건들을 보며 시청과 시민의 소통의 불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시청과 시민 관계뿐만 아니라 가족, 연인, 동료, 선후배 등 모든 관계에서 서로간의 오해가 아닌 이해를 바라는 마음으로 '담' 이라는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다. ■ 유성호
시청을 공동체를 운영하는 집단으로 보았을 때, 수장의 가치관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집중하였다. ■ 이덕용
지금의 청춘들이 생각하는 도시는 어떤 곳일까? 편안히 쉴 수 있는 휴양지 같은 곳일까 아니면 많은 시간을 일과 취업 준비와 학업 ,생계에 쏟는 차가운 현실일까.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는 도심 속 시설물과 문화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개개인이 느끼는 활력의 기준은 다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 하는 것은 휴일과 휴식, 그리고 자신 만의 시간을 자유롭고 편하게 보내는 것이다. 일에 찌들어 항상 피로한 모습과 스마트 폰 을 하루 종일 만지는 게 휴식이 되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차가운 건물과 자연물속에서 편안히 쉴 수 있는 진짜 휴식 이란 뭘까. 하루에 2시간도 잠들지 못하고 서서 쪽잠을 자는 초식 동물인 기린은 육식동물에게 공격당할까봐 항상 긴장하며 살아간다. 무한 경쟁 시대에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무리하게 노력을 하는 청춘들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 쉬는 것도 눈치를 보게 되며 어느새 당연한 휴식이 사치로 여겨져 버렸다. 불확실하고 불안한 미래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오늘도 각자의 휴식을 취한다. ■ 이승호
철거를 앞둔 춘천시청은 60여 년간 춘천시민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상징적인 곳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상징적인 공간이 철거됨에 아쉬움을 담아 제작하게 되었다. 작품 속 여학생의 뒷모습은 시청을 통하여 기억되는 추억을 담은 시민의 시선이며 그 뒤에 펼쳐진 시청의 잔상은 저마다 간직한 시청의 단편적 기억이다. 시간이 지남에 시청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지겠지만 사라지지 않고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을 추억으로 그려졌으면 한다. ■ 이재선
공간을 기억하다=여행하다 ● 지나쳐왔던 수많은 공간 속, 특정한 장소를 떠올리려면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야만 한다. 기억하는 과정에서 공간은 나를 통해 재해석된다. 공간을 기억하는 것은 어쩌면 내면으로의 여행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기억으로 찾아간 장소는 결국 실존하는 사물들의 장소와 자신이 만들어낸 추상적 장소를 함께한다. 내면으로의 여행을 할 때면 실제 했던 사물의 존재자체도 의미가 없어지곤 한다. 사물들이 모여서 형성된 공간들마저도 그저 기억이 만들어낸 흐릿한 형상일 뿐이며 그 흐릿한 형상들 속에 내가 가고자 하는 그 장소가 함께한다. 오랜 시간동안 한 공간에서 자리한 시청은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의미로 기억되어진다. 건축적의미의 공간과, 그 속에서 이뤄졌던 많은 사건과 기억들로 인해 만들어진 공간의 두 가지 의미를 담는다. 한 화면 안에 시간의 공간과 기억의 공간을 함께 담으며 화면의 가운데에서 그 공간을 바라보고자 한다. ■ 정두진
이번 전시의 출품작은 허물기 직전의 구 시청사에서 발견한 도장을 이용해 작업을 진행하였다. 시청에서 발견한 이 나무 도장들은 춘천시의 지역 명칭이나 건물명칭, 주소, 등록번호 등이 새겨져 있다. 아마도 문서의 전자화로 대체가 되었고 그로 인해 쓰이지 않는 도장들로 보였다. 춘천이 고향이고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낸 나에겐 현재 춘천의 모습은 매우 낯설다. 분명 많은 개발이 있었고 그로 인해 굉장히 편리해졌으며 여러 의미에서 이 작은 도시가 매우 빠르게 높고 커졌다. 하지만 그 과정 안에서 생략하거나 삭제해버린 것들도 존재할 것이다. ● 나의 작업은 그 '생략되거나 삭제해버린' 흔적의 감정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기존 의 작업과도 같은 맥락의 주제이다. 선택 재료인 도장을 이용해 반복해서 찍는 행위의 제작 방법을 통해 춘천시의 지난 흔적을 기억해보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 조윤국
Vol.20160723a | 시청視靑 청년의 눈으로 보다-청년작가 2016 기획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