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끝에 대서양 The Atlantic at the edge of a swimming pool

송민규展 / SONGMINGYU / 宋旼奎 / painting   2016_0719 ▶ 2016_0815 / 월요일 휴관

송민규_SFD Part 3-93_종이에 아크릴채색_29×40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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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규 홈페이지_http://www.mingyusong.com

초대일시 / 2016_0719_화요일_04:00pm

『퀀텀점프 2016』 경기도미술관 & 경기창작센터 협력 릴레이 전시

주최 / 경기문화재단 주최 / 경기도미술관_경기창작센터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 마감 1시간 전까지 입장가능

경기도미술관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동산로 268 (초지동 667-1번지) 1층 Tel. +82.31.481.7000 www.gmoma.or.kr www.facebook.com/ggmoma

공상과학 소설 '덕후' 송민규가 살아가는 방식 ● 태국 파타야의 작은 호텔 수영장 수심 깊은 장소에서, 잃어버린 안경을 발가락 끝으로 건져 올렸던 공포스러운 경험에서 비롯된 수영 배우기에 대한 결심. 그 이후 시작한 수영장 끝에서 헤엄쳐 가야 하는 반복되는 훈련의 기록들과... 수영을 배우며 겪는 과정을 고난도의 게임을 하는 게이머가 마지막 엔딩을 보기 위하여 공략집을 참고하며 노력하는 태도에 비유해본다. (작가 노트 1 송민규, 2016) ● 대부분 장르 영화들은 이야기의 원형을 지닌다. 그리고 그러한 원형들은 시간을 거치면서 끝없이 변조되어 왔다. 예를 들어 로맨스 소설은 원래 중세의 기사도 무용담에서 비롯되었다. 로맨스 이야기에 흔히 등장하는 남성들의 격투신은 중세 기사도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에 자주 등장하던 것들이다. 뿐만 아니라 공상과학 영화는 기사도 무용담의 결투 장면이나 웨스턴 영화의 선과 악의 구도를 지구인과 외계인, 자국민과 침입자의 구도로 변화시킨 것이다. 여기에는 19세기 낭만주의 문학에 등장한 과학기술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도 덧입혀져 왔다. 이와 같이 인기 있는 장르는 고전적인 소설의 원형에 대한 감동을 새롭게 현대적으로 승화시키고 변형시켜온 결과들이다. 장르 영화나 소설에 마니아가 존재하는 것도 오랜 장르의 원형이 지닌 미학적이고 정서적인 흡인력 때문일 것이다.

송민규_SFD Part 3-42_종이에 아크릴채색_29×40cm_2016
송민규_SFD Part 3-62_종이에 아크릴채색_29×40cm_2016

서두에서 송민규와 장르 소설, 영화를 연결시킨 것은 단순히 작가가 공상과학 영화의 마니아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장르 영화가 지니는 이중적인 속성이 송민규의 작업 방식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원형에 대한 관심, 그러나 동시에 그것을 지속적으로 변형시켜가는 과정은 송민규와 장르 영화의 공통된 특징이다. 예를 들어 송민규의 두 번째 전시 『풍경의 구호』에는 사각형으로 둘러싸인 현대인의 풍경을 다룬 작업들이 선보였다. 그런데 각각의 사각형은 전적으로 작가가 만든 것이라기보다는 기본 형태로부터 파생된 것들이다. 장르 영화의 이야기들이 언제나 기본적인 원형으로부터 파생된 것과 유사하게 말이다. ● 작가는 군대에 있을 당시 '한글 97'을 가지고 「주둔지 요도」라는 부대 배치도를 완성하였다. (이 배치도는 작가가 전역한 후에도 군부대의 대대적인 구조 변경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작가는 이를 「당신의 품위를 위하여」(2010)라는 채색된 그림으로 완성하였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사각형이나 특정한 패턴과 레이아웃이 많은 군대 막사에서 반복된다는 것이다. 획일화된 군대의 사회적인 구도가 정형화된 공간 배치를 통해서도 반영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작가는 기초적인 한글 프로그램을 사용한 투시도를 연상시키듯이 사각형의 블록을 쌓아서 전체 풍경을 완성하였다. ● 덕분에 송민규의 거대한 도시 풍경이나 실내 책장을 묘사한 그림은 서로 유사해 보인다. 바깥 풍경 속에 위치한 거대한 상자 갑은 실내 풍경에 놓인 사각형의 박스들이나 책장들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사각형은 이들 풍경화에서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반복적이고 동시에 억압적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획일적으로 보이는 높은 빌딩이나 그 존재감이 미비해 보이는 현수막이나 매우 정갈하게 정리된 실내 박스들은 모두 같은 형태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반복적인 사각형은 고층 빌딩으로, 비루한 도시의 현수막으로, 정리정돈을 즐기는 작가의 취향을 보여주는 수납함으로 다양하게 반복, 변형되었다.

송민규_SFD Part 3-01~20_종이에 아크릴채색_29×40cm_2016
송민규_SFD Part 3-21~40_종이에 아크릴채색_29×40cm_2016
송민규_SFD Part 3-41~60_종이에 아크릴채색_29×40cm_2016
송민규_SFD Part 3-61~80_종이에 아크릴채색_29×40cm_2016
송민규_SFD Part 3-81~100_종이에 아크릴채색_29×40cm_2016

최근 공상과학 소설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제작된 '수영장 끝에 대서양'이라는 시리즈도 알고 오면 유사한 경로를 따른다. 수영장에서 대서양으로의 추이는 한편으로 이해가 갈 것도 같지만 동시에 낯설다. 부연 설명하자면 원래 수영장은 늦은 나이에 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수영을 다시 배우기 시작한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과 연관된다. 반면에 대서양은 딱히 설명이 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영장이라는 자전적인 경험과 연관된 소재로부터 대서양이라는 거대하고 잘 알려진 객관적인 대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이중적이다. '끝말잇기'를 해 나가듯이 개연성 있게 연계된 듯 하지만 이미지들 간의 관계는 비선형적이다. 이와 연관하여 작가는 작가 노트에서 매우 의욕적인 태도로 드로잉을 시작한 후에 스스로 덧붙이기와 지우기를 반복하거나, 혹은 정리하기를 반복한 후에 원래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되는 작업 과정에 대하여 언급한 바 있다. 이것은 수영장과 대서양이 둘 다 '거대한 물의 집적체'라는 점에서는 연관성을 지니지만 궁극적으로는 특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발전되지 않는 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 송민규는 언어적인 차원에서도 처음 주어진 단어가 반복되면서도 동시에 변형되는 과정을 실험한다. 작가가 공상과학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장면들을 확대하고 유사한 장면들을 지속적으로 변형하고 정리해가면서 일기를 써가듯이 매일 작업을 완성해 간다면 그는 그러한 과정에서 끝없이 그의 머릿속을 오가는 단어들을 잡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시나 소설이 아닌 비선형적인 구도로 적어 내려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과정들이 전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것은 아니다. 수영장에서 대서양처럼 그것은 연결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방향성을 잃기도 하면서 비선형적인 패턴을 보여준다. 작가에 따르면 '수영장 끝에 대서양' 시리즈에 나오는 많은 이미지들은 공상과학 소설의 '클리셰(cliche)', 즉 유형화된 특수효과의 효과들을 모방한 것이다. 따라서 전적으로 이미지들 간의 개연성이 결여된 것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선의 효과를 모방한 선들, 화면 구도, 영화의 대사들을 취사선택하고 그것들을 이어가는 방식은 다분히 직관적이고 우연적이다. 결과적으로 일종의 원이 유사한 자리를 머물면서 발전해가기도 하지만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오듯이 그의 이미지들과 글들은 독특하게 계속 변형된다.

송민규_SFD Part 4-11_종이에 아크릴채색_76×56cm_2016
송민규_정신노동자의하루_아크릴, 스테인레스_가변크기, 설치_2016

그렇다면 왜 송민규는 이리도 유사한 이미지와 대사들을 반복하고 변형하기를 계속하고 있는가? 그에 대한 해답은 단순할 수 있다. 끝없는 변형과 반복의 과정은 작가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실제로 그는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수영장 끝에 대서양을 " 수영을 배우기까지 결심과 수영을 배우는 과정에 대한 기록적 드로잉"이라고 규정하였다. 지나치게 소박하게 들리는 위의 문구는 그의 생존방식에 해당한다. 야심차게 시작해서 끈기 있게 나아가고자 하지만 매번 좌절하고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는,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일종의 소시민적인 영웅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해당한다. 그리고 끝없는 반복의 과정에서 각종 즐거움들이 파생된다. 작가의 엄청난 그림 양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는데 미련하리만치 반복적인 그의 훈련과정은 결과적으로 작가를 대서양에 다다르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방대한 양의 시각적인 기록들은 작가가 지닌 야심의 크기와 대서양을 향한 그의 경주가 얼마나 끈질긴 것인지를 반증한다. ● 알고 보면 '덕후'라는 존재도 유사한 특징을 지닌다. 덕후의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는 고전에 대한 경외, 거대하고 찬란한 것에 대한 환영 등과 같이 비현실적인 정서적 반응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중용이나 균형의 미덕을 강요받게 되지만 덕후는 한사코 이를 뿌리친다. "게이머가 결과가 어떠하던지 간에 마지막 엔딩을 보기 위하여" 나아가듯이, 수영장에 띄어든 작가가 대서양을 가로지를 듯한 기세로 나아가듯이, 덕후는 자신이 꽂힌 무엇인가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지속해야만 한다. 나아가서 원형적 이야기에 대한 열망을 이어가면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언어로 탈바꿈 시키는 것이 장르 영화의 특징이라면, 그것은 덕후의 특징이기도 하고 송민규가 작업하고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 고동연

Vol.20160719f | 송민규展 / SONGMINGYU / 宋旼奎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