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6_0719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12:00am
프로젝트 스페이스 공공연희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25길 98 카페 보스토크 1층 Tel. +82.(0)2.337.5805 www.facebook.com/cafevostok
독구는 말을 걸었다. 대화에 이르지 못하는 대부분의 순간들은 웅얼거림에 그쳤고 상대를 향한 시선은 '장막'에 가로막혔지만 짖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걸었다. 종종 「긴 산책」(2012)을 떠났으며 주로 혼자였고 '쓰나미'와 '천둥번개'도 만났다. 하지만 곁을 내어줌에 인색하지 않아서 다른 생명체를 만나고 종(種)을 겪었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다.
개는 오랜 시간 박장호의 화면에 등장해 오고 있다. 개의 형상이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으로 이전의 작업에는 주로 사람이 있었다. 이 시기 작가의 주된 고민은 「보는 방법」(2009~2010)을 찾는 것이었다. 즉자적인 시선의 구축을 위한 것이었는데 이 과정에는 보이는-보이지 않는 것의 구분과 보아야 하는 것을 찾는 과업이 수반됐다. 이 시기가 작가의 자전적인 성찰과 반성의 시기였다면 바깥으로 시선이 향하게 되는 것은 이 다음이다. 그렇게 화면엔 개가 등장한다.
개는 작가에게 보아야 하는 것으로 선택된 생명체다. 짐승이자 이종(異種)이지만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 사이에서 가장 충직히 인간의 서사를 견뎌온 생명체이다. 작가가 보았으며 드러내고자 천착해 온 것은 이런 짐승들의 시선이며 서사다. 인간의 관점에서 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하나의 생명체인 개가 바라보는 것들 또 그들의 행보를 드러내고자 했다.
『Non-Human Nature』(반인간주의)라는 전시명은 다소 격양된 듯 보이지만 인간이라는 생명체와 삶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곁을 지켜온 인간적이지 않은 것들의 생명력에 눈길을 주고 화면으로 불러들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장자(莊子)의 내편 중 덕충부(德充符)에 등장하는 유심(遊心)은 모든 것을 살아 숨 쉬는 생명으로 느끼는 마음을 나타낸다. 또한 생명들이 서로 숨을 뿜어주는 것을 느끼는 순수하고 천진한 마음이다. 유심의 지점에서 인간과는 다른 생명체를 느껴내고 그들의 서사에 숨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작가의 주된 과업인 것이다.
화면의 구성에 있어 작가는 광목에 백자토를 얹은 바탕을 사용한다. 자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미색의 점토를 광목에 바르길 수번 반복해야 작가가 사용하는 바탕에 이른다. 많게는 10회가 넘는 공정을 거치기도 하는데 바탕뿐만 아니라 그 위로 등장하는 개들 역시 몇 번이고 표정이 덧씌워지기도 한다. 스밈에 그 기본이 있는 먹-작업과는 다르게 쌓고 쌓이는 흙과 개들의 표정들이 각 작품의 성격을 좌우한다. 백토를 사용하면서 채도가 줄었고 따라서 회화가 가질 수 있는 투명함과 깨끗한 느낌은 다소 줄었으나 전체적인 톤에서 느껴지는 먹먹한 느낌이 살아났다. 작가는 여기에 깊이를 더해오는 작업을 해왔을 것인데 무차별적인 깊이의 짙음을 좇아왔다기 보다는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서사의 농담을 다스려 왔을 것이다. 박장호의 개들에게서 '망막에의 자극'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들이 온몸으로 겪어낸 특정한 정서를 전달받았다면 작가가 제시하는 서사에 한 발자국 다가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12년부터 등장한 「독구」는 여러 상황에 처하게 된다. 「긴 산책」(2012)을 떠나고 「왕의 길」(2012)에도 잠깐 발을 들이지만 이내 다시 새로운 길을 떠났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 속에 독구가 던져진 것인지 독구가 걸으며 여러 상황을 만나는 것인지 선후를 가리기보다는 저러한 상황들 자체를 「독구」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독구라는 상황과 생명체는 작가가 새로운 생명을 느끼고 알아가기 위해 고안해 낸 또 하나의 몸이자 정서일 것이다. 작가는 인간과 인격이라는 단단한 구속을 내려놓는 일과 더불어 "내내 함께 짐승이어도 괜찮은 이"(이주희,『나의쓸모』중에서)들을 찾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채 'Non- Human Nature'를 외치며 삶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솔직하고 자연에 가까운 생명체로서의 '나'를 바라보며 주변으로 시선을 확장해 나가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유심(遊心)의 가장 마지막 단계는 함께 노니는 것이다. 종과 이종, 생명체와 비생명체, 자연과 비자연적인 것 모두가 하나로 숨 쉬며 길을 걷고 서로를 느끼는 것이다. 이들이 「In Woods」(2016) 숲으로 향하는 수순은 어찌보면 지극히 자연스럽다. 숲은 생명의 근원이자 집합이며 그들이 가장 편히 짐승일 수 있는 장소이다. 또한 새벽의 질서를 품고 있는 곳이어서 그들에겐 도전하고 개척되어야 할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독구는 함께 온 이들의 안부를 묻고 다음 산책을 위한 준비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금 시간이 되었을 때, 독구는 길을 떠날 것이다. 숲속으로. ■ 이주희
Vol.20160719e | 박장호展 / PARKJANGHO / 朴壯晧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