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코포니 12 Cacophony Ⅻ

권민주_박세희_박지윤_변호연_최빛나展   2016_0711 ▶ 2016_0723 / 일요일 휴관

권민주_무리_캔버스에 유채_40×31.5cm_2016

초대일시 / 2016_0711_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분도 Gallery Bundo 대구시 중구 동덕로 36-15(대봉동 40-62번지) P&B Art Center 2층 Tel. +82.53.426.5615 www.bundoart.com

열두 번째 그리고 새로운 시작 ● 나는 매년 쓰는 카코포니 평론에 앞서 되뇌는 구호가 한 가지 있다. '쉽게 생각하기' 하지만 몇 줄 진행하기도 전에 이 원칙적 구호는 금방 흐트러진다. 서로 다른 조건에서 미술에 뛰어든 젊은 작가들을 『카코포니 12』라는 울타리에 넣어보니 이들 전부 평면회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태의연한 평가는 접어두고, 우선 이 작품들 속에 휘몰아치는 심상의 폭풍에 주목하자. 여기에는 숱한 충돌이 있다. 예술세계와 현실세계의 충돌, 구상과 추상의 충돌, 감성적인 직관과 이성적인 평가 간의 충돌이 그것들이다. 작가 초년생들에게 짐으로 다가가는 현실적인 생활의 무게만큼 이들이 가진 창작의 고민은 크다.

권민주_정체_캔버스에 유채_100×80cm_2016

권민주의 작업은 자기가 가진 고독을 이미지로 바꾸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작가는 일상을 거름 삼아, 매일 겪는 소외감을 포착하여 자기 내면에 쌓아둔다. 외로움이 가득 담긴 이미지는 캔버스 위에 표현주의적인 화풍에 드리운다. 절제된 색으로 완성된 그림 속 인물들은 강한 경계선에 둘러쳐져, 다른 사람들과 항상 거리를 두는 마음의 벽으로 단절 돼 있다. 사람들과 어울리다가도 문득 혼자 남겨진 외로움은 문학적 표현처럼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녀의 작업을 바라보게끔 한다.

박세희_무제-untitled_캔버스에 유채_90.9×65.1cm_2016
박세희_무제-untitled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16

박세희는 회화의 기본적 요소들 중에서 물감이 가진 성분의 특성과 붓질의 자국을 통해 본인의 감정을 담아낸다. 어떤 작품에서 간혹 형태를 띤 것들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 대상들이 그림의 주인공은 아니다. 물론 마티에르에 화가의 감정을 싣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작가는 자칫 상투성에 머물 수 있는 회화적 물성을 강약을 조절해가며 자신의 것으로 키워 나간다. 캔버스에 스미고 굳어가는 물감은 미묘한 감정을 이끌어낸다. 그 결과로 완성된 작품은 끝없는 순환 과정처럼 살아 숨 쉬는 듯하다. 작품에 스민 작가의 호흡은 삶에서 반드시 찾아오는 명멸의 필연적 과정을 우연적인 방법에 기대어 보여준다.

박지윤_062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8×38cm_2016
박지윤_어릿광대-기억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27.3×181.8cm_2016

짙은 분장 속에 본래 얼굴을 감춘 피에로는 박지윤에게 있어 강한 영감을 제공하는 뮤즈임이 분명하다. 또한 그것은 작가가 가진 의식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탈출구가 된다. 사람들에게 얼굴은 감정이 가장 쉽게 드러나는 곳이지만, 각자의 표정 밑에 가려진 에고(ego)를 표현해 내기란 어렵다. 그녀는 붓질이 얽히고 물감이 두껍게 쌓인 흔적을 통해 인간성을 탐구한다. 거친 붓질이 화면을 장악하고 있어서 작업 과정이 요구하는 면밀함을 알아차리는 것은 쉽지 않다. 작가는 자신의 얼굴을 직접 분장하고 사진을 찍어서 다시 회화로 그려내는 과정을 반복한다. 현실의 재현도구로서의 사진이 페인팅의 일그러짐을 거치면서 자화상은 그녀 개인을 넘어서 현대인을 표상한다.

변호연_7시44분_화선지에 수묵_45.4×53cm_2016
변호연_7시44분_화선지에 수묵_338×521.2cm_2016

변호연은 이번 전시를 위해 아파트 베란다를 공개했다. 그래서 나온 작품 제목 또한 「7시 44분」이라는 의미심장함을 가진다. 시간과 장소를 가늠할 수 없는 이미지는 이와 같은 부가적인 설명을 함께 거느린 채 화선지 사이로 미세하게 머금은 풍경을 보여준다. 작가가 학창시절 겪게된 지인의 죽음은 그녀의 감정을 벼랑끝가지 밀고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접한 풍경에서, 자신을 간신히 지탱하는 지지대 모습과 자기 삶을 동일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작품에는 구체적인 경관 속 사물들이 옅어져가고 대신 지지대가 늘 등장한다. 중요한 것은 물리적 재현보다는 현상의 경험을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노고가 스며있다는 것이다.

최빛나_남탕(vs여탕)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60.6cm_2016
최빛나_친구의 외박가방(traveling ba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30.3cm_2016

자신의 관심이 닿은 하찮은 사물들을 예술로 번안하는 과정은 작가들이 즐겨 쓰는 방법이다. 최빛나 또한 그와 같은 시도를 한다. 그녀는 예컨대 신발장이나 가방 속에 들어있는 사적인 물건들을 그림 속에 펼쳐내어 각각의 취향을 이미지로 바꾼다. 일종의 퀴즈와 같이 나열된 물건들은 관음증과 친밀함을 이끌어낸다. 마치 잔잔한 대화와도 같은 이 작업은 개인 소지품의 난데없는 호출로부터 시작한다. 대부분이 기성품인 그것들은 사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상품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량생산된 상품들 가운데 같은 물건을 소유한 목록을 발견하는 것은 더 반가운 일일지도 모른다. 단색 톤 화면에 나열된 일상 사물들은 주인의 권능 아래에 이 세계에서 다시 한 번 주목받는다. 아직 젊은 작가의 감성이 건드린 사물의 초상은 첫발을 떼는 다른 카코포니 작가들의 모습과 겹친다. ■ 김지윤

Vol.20160711b | 카코포니 12 Cacophony Ⅻ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