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아주 이전(Before Nouage)

신성희展 / SHINSUNGHY / 申成熙 / painting   2016_0707 ▶ 2016_0831 / 토,일요일 휴관

누아주 이전; Before Nouage展_space k_대구_2016

초대일시 / 2016_0707_목요일_05:00pm

주최 / 코오롱

관람시간 / 10:00am~06:00pm / 토,일요일 휴관

스페이스K_대구 SPACE K 대구시 수성구 동대구로 132(황금동 600-2번지) 2층 Tel. +82.53.766.9377 www.spacek.co.kr

신성희(1947-2009)는 '누아주(nouage)의 화가'로 명성을 날렸다. 누아주는 캔버스 바탕을 잘라 그 띠로 그물망을 만드는 작업이다. 그는 1997년부터 누아주 작업을 시작해 생애 마지막까지 이 양식에 매달렸다. 누아주는 그물망의 조성 방법에 따라 '엮음'과 '묶음'으로 나눌 수 있다. '엮음'은 띠의 방향성이 일정한 구조이고, '묶음'은 방향성이 일정하지 않은 탈중심적 구조다. 따라서 '엮음'은 멍석이나 마대처럼 부조(浮彫)의 뉘앙스가 강하고. '묶음'은 보다 더 적극적인 입체 구조를 띨 수밖에 없다. ● 신성희의 누아주는 평면 회화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과 도전으로 '회화를 넘어선 회화'의 세계를 파고드는 데 있었다. 그리하여 신성희의 회화는 이미지나 평면성이라는 고정관념을 넘어 입체와 공간 속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바로 이 점에서 신성희의 누아주 작업은 '조각적 회화/회화적 조각' 혹은 '구조-회화'라는 비평 용어를 적용할 수 있다. 결국 신성희는 누아주 작업을 통해 평면과 입체를 통합하는 '3차원 회화'를 실현했던 것이다.

누아주 이전; Before Nouage展_space k_대구_2016
신성희_확장 EXPANSION_캔버스에 유채_161×130cm_1974
신성희_확장 EXPANSION_캔버스에 유채_161×80.5cm_1974

이번 전시는 신성희의 누아주 이전, 마대 작업으로 꾸몄다.(도불 이후 신성희의 마대 그림만으로 전시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1971년 대학을 졸업하고, 국전 등 공모전에서 두각을 나타내다가, 1975년부터 마대 위에 마대를 그린 모노크롬 회화로 한 시기를 보냈다. 마대 작업은 올이 성근 마대를 캔버스 대신에 사용해 그 위에 마대를 그리는 작업이다. 신성희는 직물공이 마포를 짜듯이 마대의 씨실과 날실, 그 음영을 극사실로 묘사했다. ● 1976년에 열린 신성희의 개인전에 부친 이일의 평문은 마대 그림의 실상을 잘 전하고 있다. "그는 화면의 지지체(support)를 가능한 원상태로 두고, 다시 그린다는 행위를 그 지지체의 텍스추어 속에 동화시킴으로써, 텍스추어 자체를 작품의 기본 요소로 삼고 있다. ...묘사된 대상과 묘사된 이미지 사이에는 그 어떤 허구적 일루저니즘(illusionism)도 개입할 여지가 없다." ● 그렇다. 신성희의 마대 그림에는 허구적 일루저니즘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만큼 실재처럼 보인다. 그러니, 관객들은 '지지체(마대)'와 '그린 것', '마대'와 '마대처럼 보이는 것' 사이에서 일종의 착시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결국 신성희의 마대 그림은 실상(마대)과 허상(마대 그림)을 한 화면에 공존시켜, 실재와 시각적 환영(illusion) 사이의 미묘한 존재론적 차이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의도적으로 환영을 적나라하게 강조함으로써 역설적으로 회화가 결국 하나의 환영임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신성희_회화 PAINTING_리넨에 유채_114×162cm_1978
신성희_회화 PAINTING_리넨에 유채_89×116cm_1979

신성희의 마대 그림은 1970년대에 우리 화단을 풍미했던 하이퍼리얼리즘과도 관련이 있다. 그러나 하이퍼리얼리즘 작가들이 형상성을 견지했다면, 신성희는 마대라는 개념에 천착했다. 그러니까 마대 그림은 '개념 회화'에 더 가깝다. 이 개념에의 천착 이후 신성희는 탈이미지의 작품 세계로 방향을 돌렸다. 1980년 파리로 건너간 신성희는 채색한 판지를 찢어 화면에 부치는 콜라주 작업(1983-92년), 채색한 캔버스를 일정한 크기의 띠로 잘라내, 그것을 박음질로 이어붙인 「연속성의 마무리」(1993-96년), 그리고 누아주 작업(1997-2009)을 이어갔다. ● 한편 신성희의 시대별 양식 전개와는 별개로, 마대 그림을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금 새로운 눈으로 평가해 보는 일도 아주 흥미롭다. 한 올 한 올 그려낸 전면균질(all-over)의 구성, 부분의 동어반복(tautology)과 무수한 증식, 보푸라기처럼 피어나는 미묘한 물성, 은은한 모노톤의 중성색, 명상의 바다와 같은 무한의 감성... 이러한 조형 요소에서 동시대 한국미술의 추상 양식인 단색화와 유사한 DNA를 감지할 수 있다.

신성희_회화 PAINTING_리넨에 유채_162×97cm_1978
신성희_회화 PAINTING_리넨에 유채_163×115cm_1978
누아주 이전; Before Nouage展_space k_대구_2016
누아주 이전; Before Nouage展_space k_대구_2016

신성희의 마대 작업과 누아주 사이에는 거의 20년의 시간과 공간의 간극이 가로놓여 있다. 신성희는 마대 그림을 거쳐 결국 누아주로 생을 마감했다. 두 양식은 서로 대척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서울/파리, 모노톤/색채, 질감/양감, 구축/해체, 일루전/비구상, 평면/입체... 그러면서도 두 양식은 운명적으로 결국 서로 만난다. 마대를 그렸던 '환영 회화'로부터 탈출해 그 너머의 세계를 추구한 것이 '누아주(nouage)'다. 그런데 이 누아주의 방법론이야말로 실제의 마대(캔버스)를 엮어 묶어 짜는 일이 아닌가.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 해야 옳다. ​● 신성희는 마대 그림의 씨줄과 날줄을 찢고 다시 엮고 묶었다. 누워 있던 그림을 일으켜 세웠다. 한 올 한 올을 살아있는 세포로, 무수한 그물망을 신경조직으로, 색채를 혈맥으로 삼아 신성희 예술의 뼈와 살을 일구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예술 지표를 이렇게 말했다. "입체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갖고 평면에서 태어났다." 누아주는 마대 그림에서 태어났다. 마대 그림은 누아주의 원천! ■ 김복기

Vol.20160709e | 신성희展 / SHINSUNGHY / 申成熙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