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도 바람은 분다

진양욱展 / JINYANGWOOK / 晋良旭 / painting   2016_0608 ▶ 2016_0801

진양욱_종이에 수채_1980년대 초반 추정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대담미술관 기획초대展

기획 / 최정미

관람시간 / 10:00am~10:00pm

대담미술관 ARTCENTER DAEDAM 전남 담양군 담양읍 언골길 5-4(향교리 352번지) Tel. +82.61.381.0081~2 www.daedam.kr

오늘날 한국의 현대회화(現代繪畫)는 동양화, 서양화, 한국화 등 여러 가지 장르가 각각 명맥(命脈)을 이어오기는 하지만 사진이나 목재, 섬유, 유리, 아크릴. 텔레비전, 비디오, 컴퓨터 등 각종 뉴 미디어(New Media)로 표현을 하는 등 소재와 매체(媒體)가 다양하고 자유로워져 회화의 정통성이나 경계선은 사라진 듯 보인다. 다시 말해서 현대문명의 놀라운 기술적 혁신과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여러 나라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은 작가들이 예술에 접근하는 방식에 변화를 주어 예술의 기능과 사회적 목적을 질문하여 현실에 참여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는 등 예술가들을 단지 각자의 나라에서 하나의 화풍과 전통을 이어오는 작업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랜 전통을 이어오는 한국화 기법이나 뒤늦게 받아들인 서양화기법도 작가가 가지고 있는 콘셉트에 따라 많은 기술적, 방법적 변화를 거듭하며 그 개념을 더욱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진양욱_종이에 수채_1980년대 후반 추정

진양욱展은 급변하는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눈에 들어온 새로운 발견이자 우리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정서(情緖)에 대한 그리움에서 기획되었다. 현재 우리는 그가 살았던 시대와는 달리 세계 각국의 미술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어떤 유명한 작품들을 보아도 크게 놀라거나 매료되는 일이 드물게 되었다. 그 가운데 서양의 미술은 더욱 빠르게 한국의 정서와 맞물려 빠른 발전과 변화를 거듭해나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진양욱의 그림을 마주하게 되면 처음에는 프랑스의 어떤 인상주의 작가의 작품처럼, 또는 현란한 붓 터치와 화려한 색상으로 자연을 그려내는 한국의 화가들 중 한 명쯤으로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그림들을 재조명하고 싶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그가 시대적으로 앞선 시기에 서구 미술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인상주의의 영향은 받았으나 인상주의 화법과는 다른 한국적 감성이 묻어나는 자신만의 색채와 기법을 창조해냈다는 것, 세 번째로는 2016년인 지금 보아도 그가 그린 유화작품의 색상과 스펀지를 사용해서 다루고 있는 기법들이 지극히 현대적이라는 것에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데생 북에 빠르게 그려낸 수채 드로잉이나 크로키에는 그의 스승이었던 오지호나 임직순 그리고 서구의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구별되는 독창성이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전라도는 산과 초목(草木)이 있고 철에 따라 화려한 색채(色彩)의 꽃들이 시시각각(時時刻刻) 피어 자연의 생명력이 온전히 전달되는 곳이다. 1980년대 한국의 서양화를, 그 시대의 작가들을 떠올려보면 진양욱은 그 누구보다도 현대적인 감각으로 그가 태어나고 살아왔던 전라도의 풍취(風趣)를 제대로 전달했던 화가라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에 오랜 시일에 걸쳐 끈질기게 자연을 탐구하면서 자신이 받은 인상을 표현하고자 했던 인상파의 창시자 모네(Claude Monet)나, 자연의 경치를 본 후. 상상력으로 유추해 매혹적인 색으로 표현했던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가 있었다면 미국에는 선으로 이루어진 회화적 형상에 다양한 색면을 추가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렸던 조안 미첼(Joan Mitchell)이나 동양예술에서 이용되는 여백의 미와 선의 미학을 연구하고 이를 작품에 적용했던 색면추상의 샘 프랜시스(Sam Francis)가, 그리고 한국에는 색을 통해 자연의 생명력과 작가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고자 했던 진양욱(Jin Yang-wook)이라는 화가가 있었다고 나는 이번 전시를 빌어 말하고 싶다. 전통과 현대적 감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대담미술관의 정서로 볼 때, 진양욱 선생님의 '꿈에도 바람이 분다.’展은 말 그대로 이미 고인이 된 그의 그림들이 보는 이들의 꿈에서 살아나 과거에 불었던 바람처럼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불어 작품을 보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감성을 자극했으면 하는 염원(念願)으로 기획된 전시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진양욱_꿈에도 바람은 분다展_대담미술관_2016
진양욱_꿈에도 바람은 분다展_대담미술관_2016
진양욱_꿈에도 바람은 분다展_대담미술관_2016

자연의 생명력을 강렬한 색채로 표현했던 진양욱은 초대 조선대 미대 학장을 역임하며 서양화 2세대의 선두주자로서 서구 인상파와 사실주의 화풍을 한국적 정서로 풀어냈던 화가이다. 1955년 3월 조선대학교 미술학과에 입학하여 낭만주의적 문학성과 장식성이 강한 그림을 그리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수학한 후 직관을 통한 데생력을 토대로 대상을 단순화시키고 거친 붓질로 원색을 즐겨 사용했던 스승 오지호의 영향 아래서 초기 미술을 시작했다. 그런 후에 오지호 이후 부임한 임직순의 영향을 받으며 자연의 대상들을 주관적으로 해석해 조금씩 변형을 가하는 추상적 화법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당시 임직순은 일본 유학시절 야수파의 대가 루오와 피에르 보나르의 영향을 받아 색채주의를 자신의 화풍으로 승화시켰던 화가였다. 진양욱은 이런 두 스승의 영향을 그대로 이어받아 인상파에서 시작, 야수파를 거쳐, 색채주의까지 섭렵하며 자신의 미술세계 기반을 다져나갔다. 진양욱 작업의 주제는 보통 자연이었는데 1955년에서 1963년은 사실주의로 시작해 추상에 가까운 풍경의 내면적 색채주의의 작업을, 그리고 1962년부터 1963년에는 자연의 대상들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며 변형을 가하는 추상적 화법을 구사한다. 3차원적인 원근법을 무시하고 2차원적 화면으로 단순화하는 이런 기법의 사용 이후 번지고 퍼지며 오묘한 색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자신만의 화법을 발견하게 된다. 이 때 진양욱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다양한 색채가 각각의 색면들과 어우러지며 연출하는 화면의 내적 울림에 있었다. 1988년 9월 26일 김흥수 선생이 재직하던 필라델피아의 'Pennsylvania Academy of the Fine Arts'로부터 연구교수로 초빙을 받은 후 그 곳 자연을 보며 자신이 지금까지 그려온 작업들이 너무 외적인 색상과 형상에만 치우쳐왔다는 것을 깨달게 된다. 이 후, 한국적 정서가 묻어나는 사실주의를 완성하는 일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며 그림의 내면이 어떻게 변해가는 지를 관찰하기 위해 캔버스에 일일이 번호를 매기며 그것들을 순서대로 늘어놓기 시작한다.

진양욱_꿈에도 바람은 분다展_대담미술관_2016
진양욱_꿈에도 바람은 분다展_대담미술관_2016

강물에 비치는 숲과 저녁노을을, 달빛의 내면을 그렸습니다. 인상주의를 뛰어넘어 풍경에 깃든 정기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 정기의 숨결을 그리려고 몸부림쳤는데 붓으론 잘 안되더군요, 그래서 스펀지에 물감을 묻혀 찍는 기법을 사용해봤습니다. 조금씩 내면의 진실 된 모습이 몸을 열어 보이더군요.”(진양욱. 필라델피아 작업실에서 하동철과의 대화 내용 중) ● 회화란 대상의 표피를 지나 무한한 심층을 향해 파고들어야 작가 나름의 내면세계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깊이 들어가느냐는 무한정한 것이지요. 그러나 현미경으로 바라보는 미시적 세계의 묘사가 회화세계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연히 꿈의 세계로 가까이 가게 됩니다.”(진양욱, 귀국 후 서울 예화랑에서의 전시 중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 그 후 그의 작업은 자연풍경의 내면을 한국적 정서로 표현해내는 사실주의를 화법을 완성하는데 이르게 된다. 당시 진양욱이 머물던 필라델피아의 숙소 옆에는 인디언 마을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강이 흐르고 강가에는 원시림 같은 숲이 우거져 강물에 비춰났다. 그는 날마다 창밖으로 강을 바라보며 강 위로 보이는 미세한 변화를 관찰했다. 그 가운데 그가 지금까지 익혀온 인상주의의 외광파적 기법이 서구적 표현이었으며 모든 생명에 잠재된 내부적 진실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그렇게 작업실에 그림들을 펼쳐 놓은 채 그림에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서 그 자신이 오랜 세월 꿈꿔오던 한국적 사실주의를 표현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 최정미

Vol.20160613c | 진양욱展 / JINYANGWOOK / 晋良旭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