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권혜수_김수희_류정원_민수진 방은희_방재일_신경훈_이설애
기획 / 허남주(3577)
관람시간 / 07:00am~12:00am / 금,토요일_07:00am~01:00am
강릉 안목해변 키크러스 커피 KIKRUS COFFEE 강원 강릉시 창해로14번길 48-1(견소동 1번지) Tel. +82.33.653.6004
어떠한 장소를 방문하는 경험은, 그 경험을 수행하는 자의 상황과 기억, 그리고 방문의 의도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 동일한 장소에 함께 방문하더라도, 그 방문이 처음인지 그렇지 않은지, 혹은 연고를 두고 있는 장소에의 익숙한 방문인지 등에 따라서 새로운 시각으로서의 경험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 방문의 첫 단계는 늘, '관찰'에서 시작한다. ● 관찰은, 방문의 실재적 경험 이전과 이후에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방문 이전의 관찰은 그 장소에 대한 지식과 기존의 이미지들을 탐구하며, 도착 이전의 '사전(pre)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사전 이미지를 통하여 방문자는 목적지에 발을 디디고 공기를 마시기 이전에, 철저히 '정형화', 혹은 경우에 따라 '이상화(idealization)'된 이미지로서의 장소를 인식하게 된다. 이와 같은 사전이미지를 지닌 채 실제 방문이 이루어질 때, 방문자는 장소를 실재적으로 관찰하게 된다. 표면적으로 이루어졌던 사전의 관찰은 방문의 경험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실재적이고 감각적인 관찰로서 변이되고, 이 때 사전 이미지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해체되고 변화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변화는, 곧 방문 이후의 '사후(after) 이미지'를 구축하는 과정에 영향을 준다. ● 방문의 경험이 종결되고 난 후에는, 기존의 사전 이미지와 실재 방문의 경험 자체가 융합되고 방문자에게는 새로운 이미지가 생겨나는 과정이 이어진다. 여기에서 사후 이미지가 생성되고, 그 이미지를 통하여 방문자는 특정 장소에 대한 본인의 방문을 규정짓기에 이른다. 관찰의 과정을 통하여, 장소에 대한 기억, 혹은 추억이 내면에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 서울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8명의 작가는, '강릉 안목해변'이라는 장소에 대해서 제각기 다른 사전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방문 전의 구상으로 생성된 사전 이미지는, 강릉에 발을 디디고 작업을 진행하는 작가들의 관찰기가 쌓이는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이 사전 이미지는 지금, 사후 이미지의 형성으로 향하는 관찰의 과정에 놓여있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하고 있다. ■ 허남주
"오롯이 나와 나의 여행. 우리 둘의 추억이 쌓여지고 있다. 밤 10시에 버스는 서울로 출발하고 나만의 당일여행도 끝나간다. 여행에서 무엇을 얻고 떠나는 걸까. 서울에 도착하며 아직도 노란불 켜져 있는 집들을 보니 아직 마저 할 일이 안 끝났다는 것이 생각났다." (2016년 5월 13일 서울가는 버스안에서, 권혜수) ● 지나치게 바쁜 사회. 작업을 위하여 방문하는 지역에 대한 여정도 서두름을 전제하고 있다. 오래도록 앉아 지치도록 거닐며, '뭉근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과정을 통해야만 작업이 진척될 수 있다는 편견은, 그러나, 권혜수가 사진 화면상에서 드러내는 친절하고도 거침없는 시각에 의해 깨진다. 방문 전에 구축했던 작가의 사전이미지는, 일차적으로 카메라의 렌즈와 이차로는 아크릴의 색감과 마띠에르를 통하여, 재구축된 풍경으로서의 사후이미지로 변화한다.
"전해들은 이야기들과 예측되고 떠올렸던 / 안목해변의 풍경들은 함께 뒤섞이며 / 누구나 알고있는 바다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 도착하여 실제 이곳에 위치하며 관찰했던 풍경들은 / 함께한 사람들과 작업을 위한 재료, 자재들, 익숙한 장소에 대한 기억들이 뒤섞이며, / 철저히 작가본인의 시선으로 그려지게 된다. // 이번 작업은 이런 관찰된 풍경들과 이미 예측되었던 풍경들을 / 유리의 안과 밖이라는 경계를 통해 / 오버랩 시키며 어우러지기 위한 작업들이다." (김수희) ● 손 안에 꼭 담기는 김수희의 '풍경'은, 정형화되어있는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따뜻함을 선사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머리맡에 놓인 스노우볼처럼, 2주간의 전시기간동안 풍경을 그려내며 풍경으로서 자리잡을 작업은 '예측된' 사전 이미지와 '관찰된' 사후 이미지들이 각각 직간접적 소재를 통하여 오버랩되어 있다.
"어느 장소의 어느 시간은 매일 반복된다. 하지만 내가 본 그 장소의 그 시간은 단 한 번뿐이다. 사진으로 그 시간의 풍경을 담을 수 있어도 바람, 공기, 향기, 무엇보다 나의 감정은 담을 수 없다. 그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 스케치북을 폈다. 훗날의 희미해질 기억이 이것을 보면 좀 더 선명해지지 않을까. 내 눈에 보이는 그 시간의 색들을 담아본다." (류정원) ● 장소에서의 '순간'에 집중한 작가는 지극히 본인 색이 담긴 색감으로서 화면을 덮는다. 색이 중첩되면서 함께 쌓아올려져 가는 질감은, 그 자체로 또다시 작가의 '순간'에 내재되었던 생각, 혹은 사유, 감정 등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이상적인 바다의 모습도, 현실적인 바다의 모습도 함께 느껴낸 작가는 그 순간들을 병치시킴으로 하여 관객 역시 '이 장소에서', 작품을 보는 '순간'에 매료되게 만든다.
바다이기에 더욱 새카만 밤하늘에서는 별들이 걸어 다닌다. 빠르게, 혹은 느리게, 완급을 조절하면서 소요하는 별들은 저들을 보기 위해 치켜든 고개가 아픈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바라 볼' 가치를 풍겨낸다. 외로운 듯 서 있는 등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닷가의 별과는 또 다른 빛, 그리고 이 모든 빛들을 어둠 속에서 거닐게 하는 뽀득이는 모래사장. 모든 것이 어우러진 바다는 작가의 작은 화폭 안에서 빛나는 검은색으로 다가온다.
"장소가 가지는-가질 수 있는 성격을 예측하고 수용해서 히스토리를 키워 덧붙이기보다는, 처음부터 시작해서 도달하며 해체해 나간다. 「노란색 습작들(2016)」은 도로선으로 이미지화되고, 공간을 점유한다." (방은희) ● 노란색 풍경, 노란색 경고, 노란색 구획. 온통 노란빛의 작업들은 관객을 색감으로 집중시키는 동시에 일종의 불안함을 선사한다. 발을, 혹은 눈을 디뎌서는 안될 것 같은 노란빛.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작업은 관객을 보다 끌어들인다. 노란 빛의 경고로서 작가가 본 장소를 풍경으로 만들고, 경고로서 점유된 공간에 관객이 함께 함으로써 공명과 공유를 발아시킨다.
"3년 6개월간 지내왔던 작업실이 재개발로 인해 사라지게 됐다. 가볍게 인사하고 지내던 이웃들은 소리 소문 없이 떠나갔고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풍경은 금세 사라져간다. 풍경에 대한 기억은 천천히 부서져가고 나는 그 기억의 조각들을 에메랄드빛으로 덮어간다. 그리고 바다는 아주 천천히 내 기억들을 조각한다." (방재일) ● 파도의 자욱을 물씬 풍기고 있는 작가의 작업은, 그의 묘사와 같이 에메랄드빛이다. 오묘하고 이상적인 분위기의, 지극히 '낙원(paradise)적' 빛깔은, 실상 '콘크리트 조각'이라는, 낙원과는 대비되는 존재의 것이 그 빛깔을 띠게 되는 과정을 떠올려볼 때 썩 유토피아적인 느낌은 아니다. 조각은 파도에 셀 수 없이 부딪히며 닳아 나갔고, 그 침식의 과정이 곧 에메랄드이다. 풍경의 기억에 대한 소멸과 재인식, 조각과 색으로 드러나는 작가의 그것은, 또 한 번의 파도로서 관객을 덮친다.
외지인 ●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그 안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에게 안목해변 이라는 관광지는 또 하나의 낮선 공동체 이다. 외지인인 '나'는 이미 형성되어 있는 공동체 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 지는지, 외지인인 '나'는 공동체를 어떻게 바라 보는지 서로에 대한 경계심으로 작업이 이루어졌다." (신경훈) ● 타자와 자아, 개인과 사회라는 두 극단의 맥락은 사실 존재론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이다. 지극히도 대립적이어 보이지만 실은 깊은 결속의 끈을 가지고 있고, 그 끈이 풀어지는 순간 양립은 물론 한 끝의 독립도 불가능하다. 낯선 공동체를 접한 외지인 작가는, 관찰을 함과 동시에 관찰을 당한다. 그리고 이 관찰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각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유도한다. 경계심을 기반으로 한 접근은 관찰로 이어지고, 관찰은 기록과 기억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영상으로서 이를 나타내며 또다시, 관객이 하게 될 관찰을 제시한다.
"감각에 의하여 흡수되는 기억들은 하나의 보편적인 인상을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인상들은 그 기억과 다른 현상 위에서 유추 가능한 이미지로 변환되곤 한다. 안목해변에서 수집한 수많은 조개 껍질 위의 무늬들은 내가 가지고 있던 우주의 이미지와 중첩되었다. 작은 조개 껍질 위의 무늬는 오묘하고 아득한 밤하늘을 연상시켰고, 그것들은 나아가 그들만의 소우주를 보여주었다. 파도가 잔잔하게 이는 새하얀 해변가를 거닐다 거뭇거뭇 무엇인가가 눈에 밟힌다. 허리를 굽혀 하나 집어 들고는 모래를 걷히고, 그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엄지손가락으로 한번 더 모래를 걷힌다. 가장자리로부터 나오는 듯한 울림이 손가락을 빙빙 돌게 한다. 빙. 빙. 빙... '파도는 바다를 이고 이렇게 왔다 가는 걸까.'" (이설애) ● 흑과, 백. 단순하고 담담하게 펼쳐져 있는 작가의 관찰기는, 해변의 구성 요소들을 속삭이듯 알려준다. 모래, 바람, 파도소리, 바다, 하늘. 그리고 그들이 어우러져 '놓여있듯' 펼쳐진 바다는, 하나의 세계로서 작가에게 다가온다. 조개 위의 자잘한 무늬를 관찰하고 수집한 작가는 새로운 바다를 세계로 구축하여 관객에게 보여준다. ■
Vol.20160612c | 관찰기 觀察記-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신진작가 초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