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hoes

박정화展 / PARKJYUNGHWA / 朴淨華 / photography   2016_0608 ▶ 2016_0612

박정화_Head #1_gum bichromate print on BFK rives paper_132×107cm_2016

초대일시 / 2016_0608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2-1(관훈동 100-5번지)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공진(共振)하는 세계, 소노그라프 ● 사진은 빛(photo)의 그림(graph)이다. 사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광원과 반사면을 가진 피사체가 필요하다. 박정화의 사진은 소리(sono)의 그림(graph)인 소노그라프(sonograph)다. 광원의 역할을 대신하는 초음파가 향하는 곳은 비가시적인 상태로 잠복하고 있는 내부의 피사체다. 내부의 피사체에서 반사된 음파는 전기신호로 포착되어 영상으로 전환된다. 포토그라프이든 소노그라프이든 사진의 최종목적은 그라프이다. 즉 캔버스나 종이 위에 결과물이 고정되는 일반적인 회화와 마찬가지로 사진의 최종 목적지는 상(像)으로 고착된 상태(그라프)라고 할 수가 있다. ● 박정화의 작업은 일반적인 사진가들이 거의 하지 않는 소노그라프와 소수의 사진가들이 채택하는 검 프린트(gum print) 기법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작가적 정체성의 일단을 추적할 수 있다. ● 빛의 반사면이 가시적인 외피(外皮)임에 반해 초음파의 반사면은 비가시적인 내피(內皮)가 된다. 사진이란 행위와 대상이 현상(現象 phenomenon)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건 빛과 외피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진이란 빛으로 인해 드러나는(現, 現의 古字는 見으로 둘 다 빛이 있어 '드러나 보인다「pheno-」'는 뜻) 사태만을 다룬다. 그런데 사진이 비가시적인 내피를 다룰 수 있다면 상황이 다소 달라진다. 이런 상황의 설명에는 포토그라프 보다 한자문화권에서 원래 사용해왔던 사진(寫眞)이란 용어가 더 적절해 보인다.

박정화_Head #2_gum bichromate print on BFK rives paper_42×34cm_2016

사진(寫眞)이란 상(象, 相)을 상(像)으로 옮기는 일 즉, 진상(眞相 참모습)을 다른 데로 그려서 옮긴다는(寫) 게 원래의 뜻이다. 이런 까닭에 과거에는 그림을 사진이라 부르기도 했다. 사진기가 없어도 진상을 옮길 수만 있다면 사진이 가능하다. 사진이란 전체집합은 포토그라프, 소노그라프 그리고 그림 등의 부분집합을 포용한다. 박정화는 전체집합으로서의 사진을 이해하고 수용하려 한다. ● 그녀의 작업에는 임산부의 뱃속에 있는 태아의 진상이 등장한다. 인터넷으로 구할 수 있는 초음파사진들이다. 이런 점은 피사체를 직접 찾아서 대면하는 일반적인 사진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자세다. 사진에서는 사진기의 렌즈를 전후로 하여 주체와 객체가 일직선으로 배치되는 선형적 질서가 엄격하게 자리 잡는다. 피사체를 향해 사진기를 든 사진가의 장소성과 신체성이 사진작품의 반대편에 위치하면서 그 정체가 쉽게 파악이 된다. 관람객은 사진을 앞에 두고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사진가의 처지를 실감나게 떠올리게 된다. 사진에서는 주체(subject 사진가)와 객체(object 피사체) 사이의 자리바꿈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박정화의 이번 작업에서는 사진기를 든 주체는 작가 본인이 아니다. 주체는 병원의 대형 초음파 촬영기계일 것이다. 주체가 불명확한데다 여럿으로 분산되어 있다. 그 결과 사진기의 렌즈를 전후로 조성되었던 주체와 객체의 일직선상의 배치와 질서는 와해가 되어버렸다. 모든 것이 주체와 객체라는 질서를 떠나 인연으로 함께 뒤엉켜 버린 상태가 된다. 오직 만남이 있고 그 접점에서 인연이란 이름으로 함께 공진(共振)하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 주고 있다.

박정화_Head #3_gum bichromate print on BFK rives paper_42×34cm_2016

초음파 촬영기의 떨림, 존재감이 돋아나는 태아의 떨림, 공감하는 작가의 떨림 등, 모든 존재들은 우주적 차원에서 함께 떨고 있다. 생면부지일지라도 상대방의 처지에 깊이 공감하는 전일(全一)적 행위는 이런 경지가 아닐까. 이를 옛사람들은 관음(觀音)이라 하였다. 일본의 어떤 사진기 제작 기술자가 자신의 자작 사진기에다 굳이 관음(觀音 칸온 Canon)이란 브랜드를 붙인 일도 이런 맥락이 아닌가 한다. ● 박정화의 작업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검 프린트'라고 하는 작업과정이다. 사진을 포토그라프라 했을 때 초기의 사진에서 현대의 사진으로 넘어 올수록 포토의 요소가 강조되어지는 대신 그라프의 요소는 미약해지거나 기계에 맡겨버려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찰나의 빛이 주어지면 나머지 과정은 자동화 프로세스가 알아서 해결해 준다. ● 판화의 기술적인 영역확장이 사진의 발명을 이끌어 낸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 초기의 사진은 판화와 회화의 경지를 많이 의식했고 그만큼 사진가의 신체성 또한 어느 정도 수반되었다. 검 프린트는 초기사진의 피그먼트 프린트 기법이다. 검 프린트는 종이 위에다 붓으로 수성물감을 바른다는 점에선 회화적이고, 레이어를 거듭하며 판수를 올린다는 점에선 판화와 흡사하다. ● 검 프린트의 작업과정은 칠하기, 노광, 세척 등의 복잡한 경로를 거쳐 매우 느리게 진행이 된다. 느린 시간이 흐르는 동안 붓질을 한 작가의 신체성은 점점 희박해져가고 서서히 물성이 지배적으로 공간을 점령하기 시작하면서 상(像)이 드러난다. 애초에는 색채의 선택, 물감의 두께 등, 작가의 의지가 크게 개입하지만 결과는 물성과의 인연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박정화_Head and Arms #1_gum bichromate print on BFK rives paper_42×34cm_2016

소노그라피는 흑백의 단판이 원칙이다. 박정화의 경우, 단판 작품도 있지만 어떤 작품은 판수를 13도까지 올렸다. 레이어도 그만큼 중첩되고 물성이 강화되어 마침내 회화에 버금하는 경지까지 실험해본다. ● 그녀에 작업에 등장하는 태아처럼 모든 생명체의 생장과 소멸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우주만상의 도움과 인연이 따라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로 엮이어 함께 떨고(共振) 있다. 이번 개인전 에코스(Echoes)에 나온 박정화의 사진도 그러하다. ■ 황인

Vol.20160608b | 박정화展 / PARKJYUNGHWA / 朴淨華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