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여름밤

이수연展 / LEESOOYEON / 李秀娟 / painting   2016_0527 ▶ 2016_0602 / 금요일 휴관

이수연_더위 먹은 달-2_아크릴채색, 색연필_54.5×39.4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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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금요일 휴관

아리솔갤러리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경인로92번길 33 송내어울마당 B1 Tel. +82.32.651.3739 www.bucheonculture.or.kr

나는 사계절 중 여름을 가장 싫어한다. 특히 삼복(三伏)에 해당하는 시기인 7~8월은 나에게 인내심을 가르쳐주는 고난의 시기이다. 이 시기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열기와 장마가 끝난 후 남은 습기가 더해져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무더위가 발생한다. 사람들을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폭염은 밤에도 그 위세가 가시지 않는다. 낮의 열기가 식지 않고 끈적끈적한 짜증과 불면의 분노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 여름밤에는 집안에서 열기를 감내하기 보다는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쉽다. 나는 이 불면의 시기에 어둠 속을 배회하면서 도시 야경을 구경했다. 모든 것이 극명하게 보이는 낮보다는 적당히 가려져 온갖 재미있는 생각이 들게 하는 밤이 좋았다. 여름밤 산책은 나에게 있어 해마다 닥쳐오는 고난을 견디게 해주는 건빵 봉지 속 별사탕 같은 것이다. 아침에 늦잠을 자도 뒤탈이 없다면 더 좋았겠지만 언제나 일요일 같을 순 없다. 이것들은 그동안 부천에 살아오면서 해마다 경험한 것들이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여름철마다 느끼는 도시인들의 밤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 그래서 도시 어딘가를 돌아다니지 않을 때는 그림을 그렸다. 감성에 젖어서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아침에 결과물을 보고 쓰레기통으로 직행시킬 때도 있지만, 대체로 완성작은 만족스러웠다. 평소에 나는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그려왔다. 그것이 내가 이 작업을 즐기고 사랑하며, 양질의 작품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싫어하는 것 중 하나인 '열대야'를 소재로 그림을 그려보았다. 발상의 전환인 셈이다.

이수연_더위 먹은 달-3_아크릴채색, 색연필_39.4×54.5cm_2016

「더위 먹은 달」은 도시의 야경을 그린 시리즈다. 그 풍경들은 뉴스 데스크 배경처럼 아름답게 반짝이지 않는다. 찜통 같은 열기에 녹아 흐르고 있다. 달과 가로등에서 빛나는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열대야가 창궐하는 시기에 도시의 밤거리를 돌아다니던 나의 경험이 반영된 것이다. 너무나 더운 나머지 모든 종류의 빛이 나를 녹여버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달도 유난히 크게 보이고 스포트라이트처럼 나를 쫓아다니며 뜨겁게 달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녹아내리는 달은 텁텁하고 끈적끈적한 열기를 상징하며 작품 전반적으로 저채도의 음울한 톤으로 그렸다.

이수연_아스팔트맛 아이스크림-딸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33.3cm_2016

「아스팔트 맛 아이스크림」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다루어지는 작품이다. 앞서 설명한 「더위 먹은 달」과 같이 더위에 관련된 작품이며, 시꺼먼 배경이 등장한다. 「더위 먹은 달」은 이 배경이 밤이라서 어두운 것 이라면 여기서는 아스팔트 도로라서 검은색이다. 본래 아이스크림은 시원하고 달콤한 간식이지만 부주의로 인해 길바닥에 떨어뜨리거나 상온에 오랫동안 놓아둬서 녹아버린 경우, 더럽고 불쾌한 것이 된다. 녹은 아이스크림은 그렇게 답답한 열기를 상징하는 요소가 된다.

이수연_miliaria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4.2×33.3cm_2016
이수연_miliaria-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3.3×24.2cm_2016

해마다 열대야를 겪으면서 느낀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작품들도 있다. 나는 여름에 더위로 인한 불면증으로 잠을 설칠 때, 캔버스에 미칠 것 같은 열기에 대한 나의 감정을 캔버스에 토해냈다. 이제까지 나는 구상화를 고수해 왔으나, 이번에는 그냥 감정에 충실해 그리기로 했다. 내가 그린 추상화 시리즈 제목이기도 한 「miliaria」는 영어로 땀띠를 의미한다. 땀띠는 여름에 자주 발생하는 피부 질환으로, 더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miliaria」는 내가 여태까지 소개한 작품 중 가장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한 작품이다. 희한하게도, '감정' 그 자체를 그리려고 애쓴 결과, 구체적 이미지는 사라지고 가장 추상적이고 난해한 작품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전시의 본질 '더위의 고통'에 가장 가까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더위에 허덕이며 혀를 빼물고 있다가도 수박을 먹으면서 선풍기라도 끼고 앉아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여름은 나에게 있어 가장 힘든 계절이지만 아이스크림이나 수박이 가장 맛있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름을 무조건 싫어하지만은 않는다. 어차피 언제나 여름은 올 것이고 그때마다 무더위로 인한 땀띠와 불면, 기타 등등 악재로 고통 받을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나는 여름에게 화를 내는 대신 즐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아직 무더위는 오진 않았지만 이 전시를 감상하면서 여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면, 그(그녀)는 내 작품에서 많은 것을 얻어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 이수연

Vol.20160527a | 이수연展 / LEESOOYEON / 李秀娟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