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종근당 예술지상

김효숙_박승예_이만나展   2016_0526 ▶ 2016_0606

초대일시 / 2016_0526_목요일_06:30pm

주최 / (사)한국메세나협회 주관 / 아트스페이스 휴 후원 / 종근당

관람시간 / 11:00am~08:30pm

세종문화회관 SEJONG CENTER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75(세종로 81-3번지) 미술관 1관 Tel. +82.2.399.1114 www.sejongpac.or.kr

제3회 종근당 예술지상-노동과 사유와 예지가 만나는 회화의 길1. 제3회 종근당 예술지상 전시는 김효숙, 박승예, 이만나 작가의 작품으로 준비되었다. 종근당 예술지상은 미술가들에게 역동적인 플랫폼을 제공하는 지원 프로그램이다. 종근당 예술지상은 작가들이 다양한 난관을 극복하고 창작을 지속하는데 지지대 역할을 하는 플랫폼으로 기획되었다. 훌륭한 작가들이 종근당 예술지상을 통해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며 견고하게 구성하고 있다. 종근당 예술지상으로 창작지원을 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는 작가가 15명에 이르며,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세 명의 작가는 이미 여러 전시와 프로그램을 통해 좋은 평가를 받은 작가들이다. ● 회화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모든 그림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묘하며 신비로운 힘이 작동하는 회화는 더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밀어내며 움직인다. 이는 간접경험으로는 만날 수 없는 활동과 경험을 말한다. 노동과정에 사유하고 사유과정에 노동하는 이중의 활동이 동시에 벌어지는 것이다. 그림은 벽에 세워 그리거나 아니면 바닥에 놓고 엎드려 그리거나, 사람의 신체활동과 하나의 비전을 향한 노동과 사유와 예지가 복잡하게 녹아있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김효숙_꿈의 도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227×363cm_2011~14
김효숙_파란 방 A Blue Room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2015
김효숙_파란 방(가상 수족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1×131cm(5cm)_2015
김효숙_파란 방(가상 수족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1×131cm(5cm)_2015

2. 김효숙은 분열하고 해체되는 현실을 체험하고 재현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빈번하게 반복되던 이사의 경험과 화가로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여러 도시의 레지던시 경험을 통해 바뀌는 거주공간의 구조와 풍경의 탓이리라. 이는 세상의 변화를 바라보는 작가의 고유한 시각을 형성하는 기원이 되는데, 그녀에게 환경변화란 결국 닮은 듯 조금씩 편차를 지닌 삶의 변화이다. 변화를 담은 이미지는 도시와 현실의 구조가 분열하고 재조합(융합)되는 날카롭게 파편화되는 세계의 유기적 운동으로 나타난다. 작가의 하루하루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현된 이미지를 수집하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사방으로 복잡하게 풀어헤쳐진 세계의 조각을 주워 모은다. 이렇게 수집된 이미지들은 작가 자신의 위상학이 된다. 수집된 이미지들은 절개되고 접착되고 교직하면서 작가 개인의 시공간이자 공통의 경험의 시공간을 구성한다. 대부분 100호 이상의 화면에 빽빽하게 세계의 구조가 뒤틀리고 꼬이고 복잡하게 조직되어 있다. 초기 컴퓨터그래픽을 연상케 하는 대상의 분할과 조합이 어떤 알고리즘을 따라 진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모든 것이 두 손에 쥐어져 있는 레고블록처럼 그러나 결코 아름답거나 부드럽지 않은 삶의 조각들을 맞춰나가야 할 것 같기도 하다. 그물망처럼 세계로 확장되며 자기 복제하는 도시는 누군가에게 불길한 미로처럼 보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보물을 안겨줄 궁전(迷宮)으로 보일 것이다. 궁전의 내부는 마치 세계의 내장(內臟)처럼 드러난다. 칙칙하고 날카로운 내장. 아이디어와 집중력, 그리고 정교한 결합의 기술을 마치 숙제처럼 던져놓는다. 그 과제는 작가가 던진 것인지 아니면 외부의 다른 힘이 작용하여 작가에게 또는 관객에게 던져놓는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말이다. 반복해서 쪼개지고 증식되는 이미지는 불안을 낳는다. 해체, 단절, 접속, 치환의 운동이 무한히 반복되고 확산하여 마침내 평균적인 인식판단의 범위를 넘어선 세계에 편재하는 것들을 재현하려는 시도이다.

박승예_Close Your Eye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펜_150×130cm_2014
박승예_You Can Count On Me-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펜_110×80cm_2015
박승예_You Can Count On Me-2_종이에 펜_110×80cm_2016
박승예 _Handog-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펜_130×150cm_2014

박승예는 지난 시기 펜드로잉으로 제작한 기괴하게 변형된 자화상 또는 인간의 초상인 '몬스터'연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작가는 드로잉(그림을 그린다는 행위)을 "노동이라기보다는 좀 삭신이 쑤시는 유희 같다(박승예, 2011)"고 말하는데, 그 유희는 매순간 '우리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고 또 끊임없이 그 질문으로 회귀한다. 그 질문은 개인의 질문이자 동시에 매우 보편적인 질문이다. 난해하고 광범위한 주제를 다뤄야하는 이 질문은 인류사 전체를 아우르는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 마치 산해경 속 듣도 보도 못한 존재들처럼 행복은 무한히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이미지와 관념으로 도피하지 않고 어떤 '존재들'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말을 건다. 몬스터는 얼굴과 손과 다리와 몸통이 결합된 혼돈의 형상이다. 이 형상은 구조와 질서, 상식과 합리의 세계를 방문한 예기치 않은 정체불명의 방문객이다. 그렇다고 몬스터의 이미지가 작가의 내면의 이야기나 개인적인 자화상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서늘한 몬스터 이미지는 인간의 숨겨진 차원이며 세계의 다양성의 얼굴이며 그림자 세계를 은유한다. 인간을 반영하는 거울이며 이 거울은 인간의 내부에 있기도 하고 외부에 있기도 한다. 혼란스럽고 애매한 관계가 요동치는 현실의 반영인 것이다. 인간과 세상이 괴물을 창조하기도 하지만 사유의 원형(신화)의 세계에서는 괴물이 인간과 세상을 창조하기도 한다. 몬스터는 세상의 숨겨진 차원의 거주자들이다. 그들은 현실이 악몽(惡夢)과 구별할 수 없이 가까워지면 어김없이 등장한다. 작가는 그 한가운데에서 자기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만나_긴 겨울 A Long Winter_캔버스에 유채_182×227cm_2015
이만나_벽16-1 The Wall16-1_캔버스에 유채_130.3×162cm_2016
이만나_벽15-1 The Wall15-1_캔버스에 유채_97×130cm_2015

이만나의 이미지는 집요하고 촘촘하게 조직된 일상이다. 매순간의 삶이 사라져버리는 일상은 지루함과 가벼운 존재감을 벗어나 무겁고 단단한 이미지로 조직된다. 역동성을 극도로 집약해나가 마침내 담담한 채색과 음영의 미세한 변화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출현한다. 작가의 긴 독백을 보자. "어느 순간 예측할 수 없는 어떤 시간과 장소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아득해지는 어떤 막연한 감동을 느낀다. 확실히 규정할 수 없는 그런 감각 속에서 그 현기증 나는 모서리 위에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 나는 일상의 보법을 유지하면서 비일상과의 접경을 아슬히 걷는다....이제 초월적인 것은 완전히 사물 안으로 들어와 있다. 나는 사실을 그리면서 그 사실이 가리고 있는 부분을 드러내기를 바란다. 그러나 들여다볼수록 사물의 이면은, 세계의 배후는 사실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느낌으로만 거기에 있다. 초월적인 것은 이미 내 안에 있음을 깨닫는다. 이제 그려내야 할 것은 사물 안에 있고, 그것의 표현은 나의 내부로부터 나온다.(이만나, 2004)" 작가는 일상에서 망각되어 존재감과 의미가 최소화하는 것들을 쌓아 놓으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런 과정은 자기 존재를 긍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실존적 가치, 자기 존재의 의미를 자기 내면에서 모색하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거의 모든 시간을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 온전히 부여하기 위해 나머지 활동을 최소화한다. 일상과 사물과 사건과 자신의 감각을 시간의 탑을 쌓듯 치밀하게 공을 들인다. 무수하게 반복되는 작은 색면과 조밀한 터치를 사용해 마치 압박붕대로 일상을 단단히 조여 놓는 방식 가운데,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현실이 생성된다. 일상과 자신의 내면의 운동과 시름하는 사이에 우리는 창조의 과정을 상상한다. 지루할 수 없는 흥미로운 무수한 사건들이 모이고 엉킨다. 시간 또한 두꺼운 표면들로 쌓인다. 일상은 기념물이 되어버린다. 현실의 풍경은 심리적 풍경으로 전환된다. 성처럼, 벽처럼 단단한 형이상학적 풍경이 나타난다.

이만나_벽 앞 In front of a Wall_캔버스에 유채_130.3×162cm_2015

3. 작가들은 입문과정을 비롯해 다양한 난관에 부딪힌다. 불안하고 고단한 신예의 과정을 열정적으로 관통해가다 어느 순간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나며 중견에 이른다. 그리고 그것이 장애물이나 벽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만드는 당연한 과정이자 길로 전환시키는 성찰과 반성을 통해 인정받는 작가로 변신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작가와 함께하며 묵묵히 지원하는 사람들과 프로그램을 만나게 된다. ● 과거에 비해 아무리 정교하고 지혜롭게 지원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제공하더라도, 여전히 본질적으로 창작이란 극히 개인적이며 고독한 활동인 것이다. 작가 개인의 정신과 운명(운)에 더 영향을 받는다. 창작지원프로그램들은 창작활동을 위한 환경과 조건에 긍정적 영향을 주려하는데, 그것이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창작자 개인의 의지와 역량에 달려있다. ● 예술은 선악이나 취향의 문제를, 교양과 상식의 차원을 넘어선지 오래다. 심지어 그것이 예술인지 아닌지 오랫동안 불분명한 상태로 논쟁을 겪는다. 자연스런 사태이다. 예술가가 예술가인 까닭은 깨달은 자들처럼 '무한성'과 접촉할 만큼 예술가 자신의 사랑(욕망)으로부터 충분히 자유로운 사람이기 때문인 것이다. 요컨대 탈아(脫我)를 통해 더 큰 세계를 '자각(自覺)'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많은 화가들의 이미지는 어떤 느낌과 생각, 영감을 표현해왔고 그것을 정확하게 규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 어떤 진실을 담고 있다. ● 종근당 예술지상을 통해 소개하는 작가들은 우리의 미술현장의 가장 오래된 형식이자 가장 보편적인 미술형식을 견고하게 지지하고 새롭게 모색하는 작가들이다. 회화를 통해 언어와 이미지의 역동적 관계로 드러나는 실재(Reality)와의 접촉을 표현한다. 이번 제3회 종근당 예술지상에서 초대한 세 명의 작가에게서 그와 같은 경험을 기대한다. ■ 김노암

Vol.20160526b | 제3회 종근당 예술지상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