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6_0519_목요일_05:00pm
작가와의 대화 / 2016_0611_토요일_02: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수송동 46-15번지 Tel. +82.2.734.0440 www.ocimuseum.org
잿빛 경계, 보류된 판단 ● 안개 낀 새벽처럼 희뿌연 대기 사이로 단단한 구조를 드러낸 강철 울타리. 오랫동안 무언가가 밟고 지나며 남긴 흔적. 그것의 육중한 무게 때문인지, 한겨울의 추위 때문인지, 단단하게 다져진 채 굳어진 대지의 표면은 울타리의 안과 밖을 잇는 희미한 길목이 되었다. 길이 인도하는 방향을 따라 서서히 시선을 움직이면 알 수 없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 법한 암흑의 세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그 내부로부터 다시 눈부신 빛이 비추는 문턱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 이내 불투명한 회색 공기로 둘러싸인 밀실로 인도하는 또 다른 울타리가 기다리는 풍경. 임노식은 자연에서 목도한 인위적인 상황과 흔적에 관한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경계의 형태와 그것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갈등과 인식, 가치판단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에게 자연은 그림의 소재이기 전에, 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의 유년시절 평범한 일상은 오랫동안 목축업을 일궈 오신 아버지의 곁에 머물면서, 목장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을 직접 체험했던 시간과 궤를 같이한다. 가정이라는 최소한의 사회단위를 경험한 작가에게 목장은 그 다음으로 자연 속에서 접한 사회의 작은 축소판과 다름없는 대상으로서, 가치판단을 하는 나이로 접어든 그에게 자연스럽게 세계에 대한 관찰자적 시선을 심어준 터전이다. 평범한 일상이 관찰과 의문의 대상이 되는 길목에서 그가 경험한 사회는, 목장처럼 울타리로 구획되어 안과 밖의 경계가 있으나 좋고 나쁨, 안전과 위험, 자유와 결박, 일탈과 구속과 같은 양가적 가치로만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모호함이 존재하는 곳이며, 인간의 언어로 말할 수 없는 소처럼 진실을 알고 있으나 침묵할 수밖에 없는 현실 공간이다.
울타리를 경계로 나눠지는 두 개의 세계에는 자연과 인간이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가치판단의 문제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두 대상은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적응하는 과정 안에서 또 다시 옳고 그름을 정할 수 없는 판단의 문제에 계속해서 도전을 받는다. 가로 길이가 약 9미터에 달하는 「안에서 본 풍경1」은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자, 그가 현실을 투영한 하나의 작은 사회로서 목장을 바라보게 된 중요한 계기를 고백하듯 담아낸 대작이다. 그는 몇 년 전 가축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일정량의 전류가 흐르고 있는 구조물 밖으로 목장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젖소 한 마리가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으나, 엄동설한 속에 얼어붙은 세상과 마주한 끝에 결국 다시 스스로 목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목장은 강제적인 임신과 착유가 진행되는 폭력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생명의 탄생과 생존을 위한 출산, 사육, 치유와 보호가 이뤄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목장의 역할과 기능 안에서 정해진 틀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소들의 삶은 외부에 의해 통제된 사회로부터 일탈을 꿈꾸지만 결코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는 인간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가 그려낸 「안에서 바라 본 풍경」이란, 단순히 울타리라는 물리적 공간 구획이 만들어낸 안과 밖의 풍경의 모습을 그린 것을 넘어, 눈앞에 닥친 현실과 그에 반하는 이상이 끊임없이 부딪치고 뒤엎어지기를 반복하면서 갈등하는 내면의 심리와 이를 통해 바라본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이러한 내면의 심리를 담은 임노식의 풍경에는 안과 밖의 경계에 대한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상징적인 공간이 자주 등장한다. 「착유실」과 「급여기」는 제목에서처럼 목장의 업무에 따라 구획된 공간과 시설을 그린 작품이다. 이전의 「길러지다」연작(2014)에서 착유와 교배가 진행되는 일련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던 것과 달리, 작가는 근작에 이르러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목장의 공간 구조를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담아내고 있다. 각각의 공간에서 이뤄졌을 갖가지 일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무언가를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 구획된 장소에서 사육하는 자와 사육을 당하는 대상이 머물렀을 공간의 모습은 모노톤의 화면 안에 건조하게 기록된다. 또한 그의 화면에서 공간은 단단한 벽체와 강철 울타리를 기점으로 안과 밖이 물리적으로 구분된 형태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상징적인 의미를 덧입기도 한다. 빛은 그의 그림에서 표면적으로는 어두운 실내와 대비되는 햇빛 가득한 자연 공간으로의 해방 또는 일탈을 의미하지만(「착유실3」), 심리적으로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야생의 환경으로부터 안전하게 관리되는 목장의 시스템을 의미하기도 한다(「안에서 본 풍경1」의 화면 중앙). 반대로 어둠은 인간에 의해 자유로운 삶을 억압받는 생명들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만 하는 통제의 공간이지만(「착유실1」), 생명이 유지되는 공간이기도 하며(「급여기」), 때론 안락한 목장과 달리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채 방치된 야생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안에서 본 풍경1」의 화면 양측). 이와 같이 안과 밖의 공간이 지닌 중의적 의미에 대한 작가의 사유는 고된 노동 후에 오물이 잔뜩 묻고 땀에 전 작업화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려낸 「장화」(2014)에 대한 그의 작업노트에서도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장화는 외부의 오물로부터 발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보통 더러운 일을 할 때 장화를 신는다. 하지만 일을 마치고 장화를 벗으면 땀에 절어버린 발을 보게 된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외부의 더러움을 인식하지만 그로 인해 내부에서부터 차버린 더러움을 인식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4년작 「장화」에 대한 작업노트 중에서)
이렇듯 그가 그려내는 공간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상대적인 의미를 지니며, 흑과 백의 구분처럼 극단적인 의미를 지녔던 가치들은 뿌연 잿빛처럼 묘사된 대기의 흐름 속에서 절대적인 의미를 조금씩 상실해간다. 즉, 임노식의 그림에서 자유와 구속은 그 어떤 것도 완전한 정의 아래 규정할 수 없으며, 이는 입구이자 출구이며, 안이면서 밖이 될 수 있는 공간의 경계를 담은 화면구성을 통해, 그리고 빛이 비추지만 암울한 현실처럼 눈부시게 환하지 않으며, 어둠이 서려있으나 희망이 사라진 칠흑 같은 암흑으로 표현하지 않는 무채색의 섬세한 변주를 통해 전달된다. 아울러 그가 최근 「무제」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는 일련의 연작은 일상의 풍경 속에서 이러한 양가적 의미와 가치를 환기시키는 인공적이고 건축적인 공간의 구조에 더욱 집중한 작업으로서, 공간과 그 의미에 대한 작가적 관심이 목장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머물지 않고 보다 보편적인 영역으로 확장되어 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 이처럼 임노식의 회화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과 기억 속에 각인된 공간에서 출발하지만, 그가 화면에 담아낸 경계의 풍경은 섬세한 명암대비와 화면구성을 통해 사회 구조 속에 내재한 다양한 의미와 가치의 문제를 환기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마음속에 끊임없이 생성, 소멸, 충돌하기를 반복하면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건넨다. 결박된 현실로부터의 탈출이 가져오는 고통을 감내할 것인가. 고통스럽지만 익숙한 현실의 구조가 만들어 낸 일시적인 안주와 평안을 선택할 것인가. 지금 이 순간 각자가 마주한 현실의 울타리는 과연 무엇인가. ■ 황정인
Vol.20160519i | 임노식展 / LIMNOSIK / 林櫓植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