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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11:00pm
프로젝트 스페이스 공공연희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25길 98 카페 보스토크 1층 Tel. +82.(0)2.337.5805 www.facebook.com/cafevostok
서(序) ●헛짓이라면 봄날의 꿈과도 같은 짓에, 그예, 진심을 담아보겠다는 청이 와 닿기는 했다. 주인은 안보이고 객만 혼자 뜻 없이 서있는 짓, 못하겠다는 것이겠지. 긴 겨울 잠든 몸 느릿느릿 풀어본 것에, 무슨 레드카펫 같은 주롓글 달고 싶은 맘은 없으므로, 기지개 펴듯 남루한 넋두리 몇 마디 늘어놓으면 족할 것이다. 그래 길 잃은 넋두리라도 붙여볼 일이다. ● 봄이다. 꿈꾸듯 햇빛 쏟아지고, 더운 것과 차가운 것 사이로 어지럽게 새바람이 이는 봄이다. 그 안에 산이 있고, 구름이 흐르고, 도시가 있고, 한 조각 한 조각 얽어낸 공간들이 있고 빛나는 얼굴이 있다. 구부러져 감아 도는 것과 외길로 곧게 내닫는 것이 있다. 덮어서 감싸는 것과 뒤집어 드러내는 것이 있다. 작가는 그래서 도시와 자연, 현대와 전통, 찢어져 속절없이 바라보는 그것들, 그걸 보여주고자 했는가. 아니, 딱 보면 보이는 그 곳의 그것들 누가 모르는가. 중요한건 그 자명한 찢어짐이 아니라 그 찢어짐을 견디고 살아가는 일이다. 말하자면, 어떤 솔직한 몸살 같은 것, 몸부림과 헤매임이 있고 부끄러움과 말 못할 답답함이 있다는 것, 텅 비어 쥐어뜯는 허탈함과 끝내 이르고 싶은 애절함과 무모하게 몸 던지는 비상에의 동경이 있다는 것, 치밀어 오른 욕지기와 못 이겨 토해내는 구토와 잊고자 취해버린 너털웃음이 있다는 것, 그래서 그 모두를 부둥켜 앉고 그냥 주저 않았다가, 어떻게든 꾸역꾸역 다시 일어나 기어이 한걸음 질질 끌며 나아가는, 그런 삶의 넋두리 말이다. 신산하게 다시 오는 봄날, 이 전시가 가서 닿고자 했던 것은 그런 것일 게다. 거기에 '하얀 그림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 말하자면 빼앗긴 봄볕의 그림자 같은 것. 빛이 있었고, 그 빛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흔적 같은 것 말이다. 무언가의 사라짐이, 그 부재가 하얀 빛으로 남아있는 그런 그림자 말이다. 그것은 소중한 것을 잃은 자리에 남은 회환의 그림자이지만, 반드시 와야만 할 것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는 자리이기에 하얗게 빛난다. 윤동주의 그 '흰 그림자'다. 윤동주의 시 곳곳에서 보이던 그 역설적 빛은 그의 시 '흰 그림자'에 이르러 어떤 말 못할 정적 속에 신비한 빛을 발한다. 사라질수록 환해지는 이상한 빛이다. 작가는 그 빛에서 자신의 빛이 가서 닿고자 하는 곳을 발견한다. ● 삼월이다. 1919년의 삼월 이후로 아흔 일곱 번의 삼월이 오고 갔는데, 문득 그 자리로 다시 되돌아온 듯한 그런 2016년의 삼월이다. 그리고 곧 벌써 세 번째 사월이다. 젊고 고독했던 윤동주의 죽음이 아직도 우리를 부끄럽게 하며 '흰 그림자'로 빛나고 있다면, 사월의 슬픈 넋들은 그 어리고 고운 '하얀 그림자'로 아직 오지 않은 날을 기다리고 있다. 작가의 빛이 그 넋들의 자리를 조금이라도 밝혀주기 바란다.■ 流澎
음영이 존재하지 않는 하얀 덩어리를 만들고 있다. 음영의 대비가 희미해서 그 형태가 빛으로 확산되는 공간을 죄다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의무감. 어둠을 전제로 하는 상대적인 존재감. 그래서 늘 고민스럽다. ● 모름지기 작품은 세상을 반영한다고 그랬던가? 아니 세상을 전복할 만큼 전위적이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서구의 미술을 무슨 사(史)적개념 따위 불문(不問)하고 추종(追從)하며 찍어내는 판에, 어줍지 않은 작업 어루만지며 부끄러워하고 나의 영혼을 절반쯤 차지하고 있는 알다가도 모를 정체성에 대한 작가적인 대답을 준비한다. ● 아직은 섣부르다. 아니 영원히 부족할 수도 있겠다.그래도 가야 하기 때문에 나는 연연히 사랑하는 '흰 그림자'가 기꺼이 되고 싶다.■ 전영일
Vol.20160516c | 전영일展 / JEONYOUNGIL / 全榮一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