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6_0513_금요일_06:00pm
아티스트 토크 / 2016_0521_토요일_04: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2:00pm~07: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SPACE WILLING N DEALING 서울 서초구 방배동 777-20번지 2층 Tel. +82.2.797.7893 www.willingndealing.com
유영진 작가가 좋아하는 풍경은 주로 창 밖을 내다보면서 매일 대하는 도시 풍경인데, 특정 위치에서 보이는 이미지가 마치 자신만의 장소인 것처럼 익숙해질 때쯤 그는 문득 깨닫게 되었다. 저기 보이는 곳은 나만 아는 장소도 아닐뿐더러 누구나 볼 수 있으되 그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을 수 있는 평범한 장소인 것이다. 그는 그 풍경을 자신이 소유하는 방법을 궁리하였다. 하루 종일 해가 뜨고 지는 광경에 변하는 조명과 색감 등을 모조리 포착하는 집요함으로 이 곳을 수십 번 촬영하고 수 많은 시간대의 사진들이 부분부분 해체된 다음 수많은 시간대가 뒤섞어서 하나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버린다. 「Nowhere」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풍경을 구성하는 물리적인 형태와 위치는 그대로이지만 이들 구성요소 하나 하나의 시간대가 각각 다르다. 이는 마치 맘에 드는 부분을 도려내어 이들을 짜 맞추어 새롭게 탄생한 몸뚱아리를 감상하는 엽기적인 행각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존재하지 않는 풍경으로 만들어진 이 화면은 자신만의 풍경이 된다고 생각하는 다소 낭만적이나 괴기한 발상을 실현하는데 집요한 그가 사진작가이며 소유하고 싶은 것이 창 밖의 풍경일 뿐이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서늘한 의식이 스민다
이번 전시에는 위의 방식으로 타인이 의뢰한 풍경을 만들어주는 「Now Here」시리즈를 선보인다. 디지털 시대에 그래픽 툴을 사용한 색 보정으로 이를 조작할 수 있을 법 한데 그리하지 않고 일일이 그 시간대의 장면을 모두 가져다 쓰는 방식에 대하여 작가는 그 시간대의 그 찰나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색감이 있다고 한다. 이는 극히 사실주의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화면 자체에서 생성된 비 현실감이 철저한 현실반영에 의하여 탄생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얼핏 보아서는 잘 모른다. 유영진 작가의 전시를 위하여 방문하였을 때 관객은 평범한 창 밖 풍경이며 흔한 단체사진, 혹은 즉흥적으로 사진기를 갖다 댄 스냅사진 정도의 느낌으로 보고 나가버릴 수도 있다. 알고 보면 촬영에 대한 긴 과정과 섬세한 후속 작업이 있었지만 이는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점점 드러난다. 극적인 효과를 넣어서 바로 눈에 띄게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설명을 들을 때까지는 그냥 평범한 사진 같다라는 일부 관객의 볼맨 소리도 있으나 그는 개의치 않는다 하였다. 세세하게 화면을 만져서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 극적 효과를 주는 것보다 작가에게 주는 만족감이 휠씬 크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유영진 작가는 노동 집약적 과정에 도취되어 있는 것 같다. 유영진 작가의 작품을 평소에 모르더라도 섬세한 눈을 가진 사람은 작품을 보다가 반문한다. "여기는 색이 따로 입혀진 것인가요?" "이 단체 사진은 인물과 주변 풍경이 왠지 따로 있는 것처럼 어색해 보여요." 반가운 관객이다. 작가 또한 이런 관객을 반길 것이다.
유영진 작가의 작업실은 1980년대에 현재의 여러 문학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금까지도 '예술인 마을'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위치한다. 작품 「Never Seen」은 그의 작업실이 있는 동네의 이름 '예술인 마을'에 대한 시각적 증거 수집의 시리즈로서 예술이라는 단어와 연관 지을만한 시각적 장치들을 찾아 다녔다. 그가 찾아낸 이미지들은 과연 평소에는 눈여겨보지 않았을법한 것들이었음에도 독특한 장면임에는 틀림없었다: 우연히도 한 골목에 '아트빌'과 '아파트 예촌'이라는 건물이 하나의 미러 속에서 비춰진다. 전봇대와 한 몸이 되어 자라는 나무의 밑동만 잘라낸 희한한 풍경이나 평범한 건물에 함께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동화 같은 기둥이라든지 주차 선을 누군가 연장하여 벅벅 그려놓은 벽화처럼 보이는 경계선이라든가 하는 따위들이다. 누구나 발견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왜, 어떻게 보이게 하는, 단지 보는 행위와 무엇을 보게 하느냐에 대한 구분이 분명하다. 관점을 주도하고 있는 작가 행위를 통해 (거창하지만), 동시에 누구도 크게 개의치 아니하는 이런 장면을 작가가 사각 프레임으로 옮겨와 하나의 의미 있는 이미지로서 재생됨으로써,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또 하나의 응답을 관객들은 볼 수도 있겠다.
「Celebrate for」는 관객의 참여를 기다리는 작업이다. 버려진 계단에서 신청자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이들을 합성하여 한 장의 단체 사진으로 만들어내는 이 작업은 이 전시 직전에 완성한 단체 사진과 나란히 걸려있다. 버려진 장소와 이에 선물을 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관객이 작가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게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확장되었고, 이것이 뜻대로 빠르게 진행되지 않고 있음은 또한 이 장소와 이 프로젝트가 처한 평행선 같은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임이 흥미롭다.
「Vesuvius」는 인터넷에서 찾은 건물 철거장면이다. 건물에 거대한 중장비가 파괴행위에 무너질 때에 맞춰 자신을 직접 물리적 폭력이 가해지는 상황에 두고 비명을 내지른다. 이는 고대 폼페이를 멸망케 하였던 화산 이름 'Vesuvius'의 이름을 딴 것으로, 한 지역을 송두리째 사라지게 만든 현상을 빗대고 이를 개인의 삶에 가해지는 폭력과 비등하게 다루고 있다. 화면 옆 사진의 장면은 거대한 중장비가 파괴된 건물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모습이다. 이 지점은 개개인의 입장에 따른 이익과 불안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다각적 주관이 존재하는 이 장면에서 작가는 다시 한 번 스스로의 눈을 개입시킨다. 그는 건물이 사라지고 자신만의 풍경을 변하게 만드는 재생의 과정이 싫다. 전시장으로 울리는 그의 고통스러운 신음은 이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 김인선
Vol.20160515b | 유영진展 / YOOYOUNGJIN / 劉永眞 / photography.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