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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공주대학교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 ART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6(관훈동 119번지) Tel. +82.2.734.1333 www.ganaartspace.com
상식의 전복과 일상의 재발견 : 임재광의'작업' 읽기 - 1. 상식을 비튼 작업과 전시 ● 임재광은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용보다는 형식과 방법에서, 결과물보다는 해석의 방식에서 찾고 있다. 예를 들어, 재개발 지역의 폐가에서 수집한 폐기물들을 투명 아크릴 케이스에 넣어 작품전시대 위에 올려놓고 조명을 비추는 방식으로 전시장에 설치하여 폐기물을'소중한 유물'로 혹은'멋진 작품'으로 변신시키는가 하면, 이와 반대로 자신이 그린 모든 그림들을 전시장에'늘어놓기'도 했다. 마치 전시의 ABC도 모르는 작가처럼 액자도 하지 않은 상태로 그림들을 즐비하게 늘어놓은 것이다. 개인전이라면 당연히 전시할 작품을 심사숙고해서 선별한 후 작품에 잘 어울리는 액자를 끼고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최상의 상태로 디스플레이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임재광은 이 모든 과정을 생략한 채 전시장을 마치 "벼룩시장처럼" 연출했다. 즉 벼룩시장에 가면 맥락 없이 빼곡하게 펼쳐져 있는 물건들처럼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작품과 전시에 대한'상식'을 비틀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맨 얼굴로 편안하게, 자신의 작품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십분 느껴진다.
2. 발견자이자 수집가로서의 작가 ● 임재광의 이번 개인전에 전시된 작품은 테이프로 그린 그림이다. 화가의 필수 도구인 붓을 버리고 테이프로 그림을 그린 것이다. 제작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캔버스에 바탕색을 칠하고 그 위에 테이프를 오려 붙여 이미지를 정교하게 그린 후 다시 그 위에 색을 칠한 다음 테이프를 떼어내는 식으로 완성되었다. 과정 자체가 복잡하거나 어렵지는 않지만, 붓으로 간단히 표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테이프를 오려 붙이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 이채롭다. "테이프로 그리기"는 회화와 판화의 경계에 위치한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테이프를 붙였다 떼어낸 자리에서 바탕과는 다른 색이 보이는 효과는 공판화 기법과도 일맥상통한다. 다만 공판화는 물감이 구멍을 통해 지지체 위에 얹힘으로 인해 형상이 찍히는 데 비해, 임재광의 테이프 작업은 지지체에 물감이 올려지기 때문에 형상이 오목하게 들어가게 된다. ● 테이프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작가가 이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판화의 연장선에 있기도 하지만, 더 정확하게는 탁본과의 상관성이 크다. 그는 1990년대 초반에 탁본에 매료되어 충남 예산과 서산 인근 지역에 산재한 비석에서 추사 글씨를 탁본하고 거기에 다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한 적이 있다. 비석의 글씨를 탁본하면 바탕이 어둡고 글씨 부분이 흰색으로 남게 되는데, 이러한 기법은 테이프로 그린 그림에서 형상이 오목하게 들어가는 기법과도 상통한다.
사물에서 형상을 떠내는 기법은 임재광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이다. 비석글씨를 탁본하는 작업 이후에는 나무토막, 짐승의 뼈, 액자 등의 입체물을 한지로 복제하기도 했다. 임재광은 새로운 것을 창작하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다시 발견하고 선택한 후, 미술가의 개입(손작업)을 통해 일상의 물건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해왔다. 그의 작업에서'발견'은 매우 중요한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오브제를 발견하고 이를 탁본, 프로타주, 캐스팅, 촬영 등의 방식으로 채집하는 작업방식은,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창조할 것이 없고 이미 존재하는 사물로 충분히 주제를 전달할 수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 작가가 관찰자 또는 채집자로서 주변을 관찰하고 주변의 사물의 형상을 광범위하게 채집한 후, 여기에 작가적 개입을 더해 작품으로 전시하는 방식은 임재광의 주요한 작업방식이다. 요즈음에는 카메라로 이미지를 수집한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주로 나무의 형상을 카메라에 담아 채집한 다음, 작가에게 떠오른 이미지들을 꼴라주하는 과정을 거쳤다. 작가가'작품'보다는'작업'이라는 단어를 선호하는 것은, 이러한 과정 전체가 작품에 고스란히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 테이프로 그림 그린 작품들 역시'발견-수집-간섭'의 프로세스를 거친 것으로, 자연에서 소재를 발견하고 사진으로 찍어 수집한 이미지들을 토대로 작업하였다. 이 작업 역시 작가는 유일무이한 어떤 것을 창작하는 존재가 아니라 기성의 오브제에'개입'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동시에, 붓 대신 테이프를 사용함으로써 화가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존재라는 통념을 전복시키고 있다.
3. 선(線) 드로잉, 사물의 정수를 그리는 작업 ● 임재광의 지난 전시를 살펴보면, 2008년 뉴욕 허친스갤러리(Hutchins Gallery)에서 있었던 개인전 "Found Drawing"을 중심으로 그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그 전시 이전에는 주로 입체적인 오브제가 중심이었다면, 그 이후로는 점차 평면 작업으로 이동했다. 특히 미술의 근본적 요소인 선과 드로잉에 대해 숙고하면서 선 중심의 작업을 해왔다. 물론 이 역시 발견과 채집의 과정을 거친 작업들이었다. 전선(電線), 자전거 바퀴의 그림자, 건담프라모델에서 모형을 떼어내고 남은 틀 같은 인공물에서부터 앙상한 나뭇가지, 눈 덮인 들판에서 시들어버린 들풀의 줄기 같은 자연물에 이르기까지, 선적(線的) 소재를 발견하고 채집하여 자신의 작품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선보인 것이다. 전시의 타이틀이 "found object"가 아니라 "found drawing"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선배 미술가들이 사용해온 기존 용어에 대한 거부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관심이 오브제보다는 드로잉, 즉 선에 있음을 표명하는 것이었다. 선에 대한 집착은 이번 전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4. 나무, 일상적이고 선적(線的)인 오브제 ● 이번에 전시된 작품 중에는 산과 나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대다수가 마치 동양화를 번안한 듯한 느낌을 준다. 그가 나무를 즐겨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런 선택인 것 같다. 어려서부터 항상 자연과 가깝게 지냈고 현재도 작업실 뒤로 산이 있기 때문에 자연은 그의 일상과 다름없다. 즉 나무는 의식적으로'자연'을 표현하기 위한 소재가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발견된 오브제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 나무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1998년 작품인 「나무 위에 한 마리 새」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변에서 발견한 나무 둥치를 한지로 캐스팅한 이 작품에서도 나무는 일상적인 오브제로 다뤄지고 있다. 또 1999년 작품 「땅으로부터」라는, 땅 속을 캐스팅한 작품에서도 고구마 같기도 하고 복령 같기도 한 불규칙한 덩어리 형상 속에 나무뿌리가 채집되어 있다. 이런 일련의 작품들에서도 작가가 나무에 대해 갖고 있는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시선이 묻어난다. ● 현재의 작품에서도 나무는 여전히 중요하게 반복되는 주제인데, 소나무 같은 특정한 종류가 다뤄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나뭇잎이 떨어진 이름 모를 나무들이다. 이는 나무의 상징성보다는 나무 둥치에서 무한히 분기해가는 잔가지의 표현, 즉 선적인 요소에 작가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나뭇잎이 없는 나무를 선 드로잉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면보다 선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화의 표현과도 상통하는 바가 있다. 이처럼 임재광에게 선은 면이나 입체에 비해 추상적이고 개념적이며 내적이고 정신적인 세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5. 일상의 진정성을 발견하는 길 위의 미술가 ● 임재광은 기성 미술의 표현방법과 작업과정, 그리고 미술에 대한 통념을 전복하는 작업방식으로 일관되게 "미술이라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가다. 그는 미술의 사회적 기능이나 미술가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미술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였던 시기의 개념을 그대로 믿고 있는 듯하다. 즉 미술에서 사회적 이슈나 거대 담론을 만들고 사회를 계몽하려 하기보다는 작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보는 이가 이를 공감하며 즐기게 하려는 것이 작가의 의도인 듯하다. ● 한편 임재광은 평론가이기도 하다. 1995년에 미술세계에서 미술평론상을 수상하면서 평론가로 데뷔한 이래 미술세계에는 그의 글이 적잖이 실려 있다. 진솔하고 맛깔스런 솜씨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시 서문으로 가름하기도 했다. 물론 작가 자신은 평론활동을'샛길'이라고 표현한다. 추측컨대, 그에게 평론은 그가 언젠가 언급한 적 있는 "나를 찾아가는 여행"의 한 지점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열린 그의 개인전들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점은 그가 미술작품의 결과보다는 창작의 방법을 모색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작업공간을'화실'이나'아틀리에'가 아니라'작업실'이라고 부른다. 창작의 결과보다는 작업하는 과정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다양한 조형실험은 물론 평론작업도 그에게는 모두 자신을 찾아가기 위한 과정의 일부인 것이다.
그의 "나를 찾아가는 여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여행의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지, 정해진 목적지가 따로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여정은 흥미롭다. 작가들이 흔히 하나의 방법론을 발견하면 그것에 안주하고 그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자기복제적' 방식으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것과 달리, 임재광은 매번 새로운 방법론으로 우리의 생각을 일깨우고 우리의 통념을 전복한다. ● 작가이자 전시 기획자이며 미술평론가이기도 한'멀티플레이어' 임재광은 끊임없이 반전을 일삼으며 부정의 원리에 따라'생성 중인' 작가다. 자연을 스케치북이나 캔버스에 그리는 대신 카메라로 수집하고, 붓으로 그림 그리기를 거부하고, 형상을 창작하는 대신 오브제를 등장시킨다. 또 백화점보다는 동네시장이나 벼룩시장을 선호한다. 화사하게 꾸며진 것보다는 진솔한 삶이 배어 있는 것, 맥락 없이 흩어진 듯 하지만 삶의 진실과 진정성이 있는 소재들을 발견하고자 노력한다. 그에게 미술작품이란 유일무이한'아우라'를 발하기보다는 삶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일상의 빛이기 때문이다. ■ 김이순
Vol.20160511a | 임재광展 / RIMJAIKWANG / 林栽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