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선비의 경성나들이 Mythos of modern Sunbi

박창환展 / PARKCHANGHWAN / 朴昶奐 / painting   2016_0422 ▶ 2016_0527 / 월요일 휴관

박창환_후이넘(Houyyhums)어로 말하다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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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422_금요일_07:00pm

관람시간 / 02:00pm~07:00pm / 월요일 휴관

피아룩스 PIALUX ART SPHERE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706-5번지 새마을금고 제2분소 옆 Tel. +82.2.732.9905 pialux.co.kr www.facebook.com/pialuxartsphere

피아룩스 아트스피어(대표:윤정아)는 오는 4월 22일부터 5월 27일까지 박창환 작가 기획초대전 『모던선비의 경성나들이』를 연희동 피아룩스 갤러리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시골에서 서울, 서울에서 런던, 다시 서울로 삶의 터전을 옮겨가며 전통적인 가치들이 파편화되어가는 세계를 낯설지만 애정어린 시선으로 시각화해 담아낸 박창환 작가의 작품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명하는 국내 최초의 시도로서 의미가 있다. 2000년 홍익대학교 회화과 대학원 재학시절의 작품부터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작가의 눈에 새롭게 비친 서울의 풍경을 그려낸 최근작들을 아우르는 20여점의 회화작품들은 눈에 보이는 실체가 없기에 더욱 집요하게 동시대인들의 정신세계를 옭아매는 계급과 욕망의 문제를 유쾌한 템포로 탐구한다.

박창환_듬뿍바르다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11

현대사회에서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혈통 기반의 계급구조 안 상위계층으로서 우월함을 포기하지 못한 선비는 경성 나들이를 나서지만 도착한 곳은 이미 경성이 아닌 서울. 양반의 시대가 아닌 시간, 양반의 점잖음을 지켜주지 않는 공간이다. 돌아보면 이 시대에 나들이를 나선 자신도 선비일 수는 없을테다. 나들이옷을 떨쳐입고 나선들 단정한 의장과 예의바른 몸가짐이 계급을 뚜렷이 나타내 주던 시절은 지난 지 오래다. 고급 옷과 스마트폰은 언뜻 경제력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계급을 나타내는 듯 하나 사실은 팍팍한 삶을 감추고 소비의 깃털을 부풀려 법으로 정해지지 않은 상위집단, 보이지 않는 상류층에 속하려는 절박한 허영심의 표상일 수 있다.

박창환_Obscure Clothes_우레탄,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접착제_91×73cm_2005

유혹적이지만 실체없이 블러(blur)처리된 꿈과 욕망의 세계 위로 부서진 옛 가치의 조각들이 또렷이 덧칠되고 도시의 경제논리에 입각해 벌집처럼 들어선 연립주택 속 삶의 고단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을 말하는 듯 견고한 물성의 평면 안에서 명랑한 단색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 사회적 변화를 마주보는 동시대 작가로서 성실하게 고민하고 발전해온 박창환 작가의 지금은 개인의 삶에 대한 명상적 성찰과 침잠을 넘어 현대사회 일상의 본질들을 담백하면서도 낙관적으로 녹여내고 있다. ■ 피아룩스

박창환_연립주택_캔버스에 유채_91×65.5cm_2011

감각 시(詩)로서 회화 - 뺑뛰르-포에지 드 상사시옹(peinture-poésie de sansation) ● "만일 예술과 현실이 구별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하튼 종말에 도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 아서 단토는 밝힌다. 이 노구의 미학자는 해서 워홀의 '브릴로 상자' 앞에서 예술이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라면, 박창환의 회화는 아직 예술의 한창 때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 해도 무방할 테다. 현실에 발을 담고 있으면서도 현실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세계로서의 회화가 여전히 가능성으로 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박창환의 「브릭브릭」 연작이 말하는 바가 바로 그런 의미라고 나는 생각했다. 박창환의 세계에서 내가 보았던 것은 회화의 가능성, 또는 가능성으로서의 회화가 여전히 신뢰되고 있는 현장이다. ● 「브릭브릭」 연작의 의미를 조금 음미해 보자. 이 연작은 1960년대 초, 그러니까 개발시대의 초입부터 서울에 대량으로 건축되기 시작한 일종의 패턴화된 건축양식에 그 미적 기반을 두고 있다. 이를테면 개발시대의 '서울양식'이라 해야 할, 통상 연립주택이나 다세대 또는 다가구주택으로 불리는 그것으로부터 말이다. 알다시피 이 개발시대적 양식의 담론은 주거형태의 경제성과 효율성, 곧 최단 기간의 공기(工期)와 최대 주거 밀도의 실현 이상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영세업자, 조악한 자재. 부실시공 등의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미적 고려 따위가 끼어들 자리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이 개발시대 서울양식의 외장은 거의 적색 계열의 벽돌, 곧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브릭(brick)'으로 뒤덮이기 일쑤였다. 헌데 이 일체의 미학적 고려가 일소된 핍절한 실용주의로부터 어떤 예술적 양식이 파생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흥미로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박창환_더더더_C 프린트_2012

조밀하게 건축된 연립주택은 개발시대가 양산한 난민들의 양식이 되었고, 그 외관을 뒤덮은 암적색계열의 브릭 벽면들은 서울의 고유한 피부가 되었다. 이것이 박태환의 실존이 영위되어 온 도시의 물질적 기반이다. 이 주제는 얼마간 그람시(A. Gramsci)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이를테면 시민들은 적어도 그것보다는 더 나은 주거환경을 가질 수도 있었던 자신들의 권리를 충분히 알지 못한 채 그 같은 조건이 최선이라는 자본과 정치 담론에 설득당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중미학적 관점을 견지하는 일련의 작가들에 의해 그렇게 다뤄지기도 했고 여전히 그렇기도 하다. ● 하지만 영국 철학자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e)의 표현을 빌자면 박창환의 시야는 고슴도치보다는 여우의 그것에 해당된다. 오해하지 말길! 벌린에 의하면 고슴도치형은 플라톤처럼 하나의 큰 담론에 의존하는 반면, 여우형은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수많은 작은 관념들을 지니는유형을 의미하는데, 이에 의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론이 하나의 '압도적인 개념'에 짓눌리지 않고 보다 자율적인 관찰과 활동들을 허용할 수 있었다. 사실 오늘날은 '하나의 압도적인 개념'에 자신의 '호모 아르티스티쿠스(homo artistiscus)'를 저당 잡힌, 자칭 철학적 예술가들과 그 지지자들 때문에 예술이 몹시도 쓸모없고 피곤한 것이 되어버린 시대가 아니던가. 톨스토이도 상이한 인간성들을 '보편적 형제애'로 통일시키는 데는 여우형의 작가가 훨씬 더 필요하다는 사실에 기꺼이 동의했을 것이다.

박창환_Negative face - Positive fac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사진, 나무_105.5×78.5cm_2001

적어도 나는 부조리한 자본이나 정치적 결탁 같은 이데올로기의 하위주제가 아니라, 장방형의 형태를 띤 대체로 암적색의 질서정연한 나열에 끌리는 것에서, 박창환의 양질의 작가적 자질을 감지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 쪽이다. 누가 조악한 건축양식과 그 비인간적 주거밀도의 내부에서 그렇듯 가지런한 실존의 결을 발견하고, 그렇듯 운률을 동반하는 기하학적 질서에 집중할 수 있겠는가. 이 세계는 어두움의 내부를 밝히는 밝음, 쓸쓸함의 이면을 지탱하는 아름다움의 세계다. 이 미의 잔칫상에는 패턴화된 외로움과 삶에 대한 소박한 경의 뿐 아니라, 심지어 지나치게 망막적이지 않도록 하는 촉각적 처방까지도 올라있다. 그래서 이례적인 밀도의 브릭 벽면은 사적 사유의 단위이자 그 친근함으로 인해 감정적 쾌의 요인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것은 사회적 가난을 뛰어넘는 온건한 카타르시스, 이성적 해석에 유폐되지 않는 도시적 실존의 뮤지케(mousikê)다. 이쯤에서 칸트의 어법을 슬쩍이라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박창환의 회화는 '아직 그런 방식으로 현존한 적이 없기에, 누구도 그것에서 그렇게 연역적으로 도출되라곤 생각해보지 못했던 풍부한 상태'에 도달한다. ● 2008년 이후로 지속해 오고 있는 「Floating」연작도 박창환의 그러한 세계를 아는데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이 연작은 상이한 시각적 명료함을 지닌 층들로 이루어진다. 색과 형태의 명확하거나 흐릿한 층들에 의해 표상 환기력은 선명함과 선명함의 공백 사이를 오간다. 예컨대 수평적 붓질로 시각적 선명함을 삭감시킨 층 위에 고도로 선명한, 하지만 모호한 정체의 파편들을 부유시킴으로써 정념의 리듬을 조율해낸다. 몽환과 실존의 간극인가? 아니면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 어쩌면 역사의 강물 위를 떠다니는 현존의 유빙일 수도 있겠다. 어떤 쪽이든 이 회화는 명료성이라는 시각적 급수를 통해 긴장과 쾌를 조절하는 일종의 '감각 시(poésie de sansation)에 근사하다. 18세기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Edmand Burke)의 전언(傳言) 지적이 아니더라도, 시각적 명료함은 감정적 전염을 일으키는 데는 방해가 될 수 있다. "비상한 명료함은 모든 열광적 감정(enthusiasm)의 적이 되기 십상이다."

박창환_브릭브릭 c-628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16

다시 단토로 돌아오자. 단토는 자신의 미학적 언설을 담은 『예술의 종말 이후』에 쏟아진 비난을 피하기 위해 "심미적 즐거움을 피해야 할 위험"이라고 했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뒤로 몸을 숨겼다. 뒤샹으로부터 이미 심미적 경험에 기반하는 미술은 막을 내렸고, 미학이론이 핵심적 근거가 되는 미술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자신은 그 행렬에 슬쩍 편승했을 뿐이고. 뒤샹 이후에 미술이 어떻게 되었던 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는 바대로다. 이제 미술은 그 초보적인 인식과 체험을 위해서조차 이론에 의존해야 하는 불구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미술을 감상하기 위해 이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작가 톰 월프(Tom Wolf)는 화가 치밀어 마시던 모닝커피를 던져버리고 말았다. ● 오늘날엔 거꾸로 대중의 삐뚤어진 취향에 아양을 떨기 위해 포르노 콜라쥬나 코끼리 배설물, 심지어 내장기관 노출증까지 마구잡이로 동원되는 실정이다. 어제는 표현의 예술의 종말이 선언되더니만 오늘은 우박처럼 쏟아져 내린다. 하지만 감흥도, 의미도, 자극도 이미 엷어질 대로 엷어져 없어지기 직전이다. 다른 편에선 철학화된 미술이 우리의 감각에 대한 공개처형을 여전히 단행하고 있다. 현대미술은 감각의 집단학살의 현장이 된다. 독일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니콜레 채프터(Nicole Zepter)의 말이다. "우리는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미술관이 하는 것은 전부 우리 감각을 죽이는 짓이다." 인정하건 하지 않건 대체로 사실이다. 고등학위 소지자들의 창작과 '압도적인 철학적 개념'에 매몰된 미술이론이 하는 일은 이성과 지성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의 감각을 깨우는 것과 대체로 무관하다. 오히려 미술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지 규정하는 것이 그것들이 하는 일이다.

박창환_연립주택 S5-12_캔버스에 유채_182×227.5cm_2015

박창환의 회화를 조사하다가 다소 멀리 나간 감이 없지 않다. 그렇더라도 분명한 것은 박창환이 차린 상에는, 칸트적으로 말하자면 "오성(五性)의 여지를 보다 풍요롭게 할 만한 것"으로 여겨지는, 예술적 미식가의 취향을 실망시키지 않는 제법 많은 것들이 올라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드물게 웅변적이지도 압도적인 철학적 개념에 짓눌리지도 않은 것들, 심취할 수 있을 만큼 감각적인 것들, 망막과 촉각의 용처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 표현수단의 맹목적 확장에 매몰되지 않는 작가적 줏대! ■ 심상용

Vol.20160422d | 박창환展 / PARKCHANGHWAN / 朴昶奐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