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곽경민_김수희_김영희_김종희_박남경 박소윤_박여진_박종인_백순희_송명순 유경자_이두리_이미선_이미애_이부강 이성숙_이월미_이재순_이종기_전태연 전화순_정원_주선희_최미혜_한영숙
관람시간 / 11:00am~08:00pm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Hangaram Art Museum, Seoul Arts Center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서초동 700번지) 7관 Tel. +82.2.580.1600 www.sac.or.kr
작가는 삶의 수많은 경험과 느낌과 잔상들을 잡을 수 있는 기억의 스케치를 하는데 이러한 작업노트는 생각의 기록 공간이자 창의성의 원동력이 된다. 스케치북에 드로잉된 기억의 이미지를 통해 작가의 삶의 현장, 그의 현실적인 감정, 그가 인식하는 외부세계와 주변현상에 대한 진지한 사고가 그대로 작품으로 표현된다. 작가는 사물을 이해하고 관찰할 뿐만 아니라, 그 본질의 미를 승화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그만의 의지를 또한 드러낸다. ● 이번 전시에서 몇 가지 질문을 해본다. - 작가들이 직접 체험하고 표현하는 활동은 그들의 조형적 사고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 작가의 조형적 사고는 사물과 재료를 만나 어떻게 창작되고 변화되는가? -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참여 작가들의 공간의 확장 그리고 그들의 예술적 존재가치는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가?
전시 참여 작가들은 사물에 대한 사색들을 이미지화 시키는 방법을 연구해 왔는데, 그림 속의 관심 대상은 빛, 달, 꽃, 나무, 항아리, 잉어, 의자, 생명체, 구름, 산, 하늘, 우주 등 자연물에서 부터 시공간, 존재와 흔적, 내면세계, 심상, 평온, 생성과 소멸, 기쁨, 사랑, 분노, 슬픔, 절망, 꿈 등 추상적 사물에 이르기까지 그 범주가 다양하다. 작가들은 특이한 어떤 대상, 이미지화 하려는 의미가 있는 어떤 사물, 재미있게 설명하고자하는 그 무언가의 이야기, 만나고자 하는 특별한 인물, 상기하고자 하는 풍경들을 화폭에 재현하고자 했다. 작가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미지는 작가의 내적 심상과 다양한 미적 체험을 통한 감성에 의해 구체화된 이미지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그 어떤 언어의 기술보다 더 정확하고 풍부하다. 세잔느는 그의 작품을 통해, 평면회화에서 사물이란 무엇일까를 집요하게 질문했는데, 그래서 메를로퐁티는 "세잔느는 물감을 가지고 사고하는 철학자의 모습을 닮았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 작가들도 작품 제작의 다양한 표현매체와 기법이 새로운 상상력과 창의적 사고에 작용하는 것을 중요하게 염두에 두고 있다. 이들은 말과 손과 더불어 사고하고, 붓과 물감과 또 다른 도구와 더불어 사고를 스케치해 가는 사색가들이다. 즉, 머리가 손이 되고, 생각이 몸의 행동으로 나타나고 그리고 손놀림에 의해 사고에 새로운 자극을 주는 충돌이 창작현장에서 발생한 것이다. "무엇을 표현했느냐 보다 어떻게 표현했느냐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칸딘스키는 말했는데, 우리는 같은 대상을 통해서도 각기 다른 매체로 심상을 표현한 흔적을, 또는 작가의 내면세계를 거치며 재창조된, 그리고 다른 기법으로 표현된 풍경들을 이번 전시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창의적인 실험들은 작가들에게 자신이 만들어 낸 결과에 기쁨과 만족감을 느끼게 함은 물론이거니와, 궁극적으로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통한 실험 작업이 좀 더 자유로운 표현임을 전시 작품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들 스스로의 개성에 기초해서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고 여러 기법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실험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좀더 나은 결과물들을 제시해 주고 있는데 이는 뜨거운 감동과 따뜻한 평온함을 모두에게 선사해 준다. 특히 우연의 결과를 통해 연상되거나 상상한 것들 위에 재미있는 표현을 할 수 있도록 두 가지 이상의 다양한 기법을 적절하게 혼합하여 사용한 작업들이 많다. 이러한 다양한 표현매체를 통한 조형 활동들은 작가의 무의식 세계에 대한 자유로운 표출, 깊은 내면세계에 대한 이해, 그리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데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장점을 가지게 된다.
반 고흐의 작품 속에 집안 한구석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모습을 한 낡아빠진 구두 한 켤레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그림이 있다. "왜 그는 '구두 한 켤레'를 그렸을까? 그냥 정물화 연습을 위해서.., 아니면 그릴 것이 딱히 없어서...?" 하지만 자세히 들어다보면 구두 외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그가 어떻게 가시화하는지 그의 능력을 엿볼 수 있다. 이 구두의 안쪽 어두운 틈새로부터 구두 주인의 힘겨운 삶을 유추할 수 있는데, 이에 하이데거는 닳아빠진 헌 구두 한 켤레는 농부의 노동, 벌판의 땅, 그리고 삶의 무게가 구두 가죽의 주름부분에 깊은 내밀성으로 담겨져 있다고 보았다. 고흐의 '헌 구두 한 짝'은 사물이 유용성을 벗어나 삶의 진실, 즉 존재를 잠시 열어 보이는 순간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고흐가 그랬듯이 사물은 화가들의 시선에 대하여 사물 자신의 시선으로 응답할 것이다. 바슐라르는 "사물은 우리가 그것을 무심한 눈으로 보기 때문에 무심하게 보인다. 그러나 맑은 눈에는 모든 것이 거울이다. 솔직하고 진지한 눈길에는 모든 것이 깊이를 가지고 있다."라고 사물과의 관계성을 이야기했다. 마르셀 프루스트도 "참된 발견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라고 했다.
실제의 사물은 일반적으로 누구나 볼 수 있는 사물이지만 화가가 재현한 사물은 존재의 특수성을 갖게 되는데, 경험과, 느낌과 잔상의 순간 작가는 그 과정을 스케치로 메모하는데, 그 스케치 된 드로잉은 그 시간의 작가의 삶과 그 공간의 상황을 반영한다. 여기 전시되는 몇몇 작업들은 작가의 사고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조형적 사고의 표상으로서의 흔적들이 되었다. 이번 예술의 전당 전시에서는 그러한 과정들 - 작가의 사유의 공간과 사물, 구상과정 에스키스 그리고 표현물들이 전시된다. 또한 작가 자신의 사색의 세계를 오픈하고 다른 이들이 그 공간으로 들어가서 직접 경험하도록 대화의 틈새를 제공한다. 기존의 전시장이라는 단절된 공간에서 좀 더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하는 활동적인 연극 장소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이는 마치 픽션의 드라마세트장에 현실의 관람객이 들어가서 연기자를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과 같다. 창작활동은 자신이 경험한 감정을 자기 자신 속에 불러일으키는 것이며, 선, 색채, 형상, 영상, 사운드 혹은 텍스트 등의 표현형식에 의해서 다른 사람들도 그와 같은 경험이나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그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다.
예술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다. 작가로서의 의무는 이렇듯 보통의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거나 길들여진 현실에만 관심을 두려 할 때 그 너머의 것에 관심을 두고 그 저편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표현하려 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한 세상에서 대중은 작가의 사고의 흔적인 조형활동의 결과물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 바라는 일과 행위가 늘 생각대로 쉽지는 않겠지만, 세계와 인간의 원초적인 관계를 그림으로 잘 드러내기 위해 여기 작가들은 오늘도 자신의 바라봄이 진정한 대상 그 자체에 닿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성찰하고 노력하는 것이고 이 자리를 빌어 창작의 과정이나 결과물을 기쁜 마음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각적 언어의 소리를 느껴 보시라! ■ 최철
Vol.20160421e | 25인(人)의 그림, 노트 속 기억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