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6_0418_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아마도예술공간 AMADO ART SPACE 서울 용산구 한남동 683-31번지 Tel. +82.2.790.1178 amadoart.org
『누구의 것도 아닌 공간』은 특정 공간과 장소, 더 나아가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더 정확하게는 특정 시공간을 부유하는 기억과 남겨진 흔적을 추적하는 과정으로부터 시작하여 작게는 사람의 만남이 일어나는 최소의 공간부터 넓게는 도시 재활성화와 같은 지역적 현상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과거를 추적하고 개인의 기억과 경험을 현재로 소환하는 일련의 과정에 기초하여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을 진단하고 현재적 좌표를 새롭게 설정하여 그것으로부터 다가올 미래를 가늠하고자 한다. ● 본 전시에서 지칭하는 기억이란 역사라는 이름 아래 기록되지 않은 개인의 기억과 경험, 공간에 산재하는 흔적들,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존재해온 이야기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가상의 것까지 포함한다. 과학적 실증을 무기로 삼는 역사가, 그리고 그들의 사관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기억이란 아주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그래서 너무나도 주관적이고 불확실한 의심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왜곡되거나 조작 가능한 기억은, 동시에 기억력과 건망증이라는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그 형태를 바꾸며 진화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기억과 공간의 긴밀한 관계를 '기억'이라는 화두를 통해 새롭게 성찰하고자 했던 프랑스의 역사가 피에르 노라 (Pierre Nora)에 따르면, 우리 시대의 역사는 더는 생생하거나 객관적이지 않으며, 어렴풋한 이미지와 그것이 남긴 흔적의 형태로 존재한다. 그는 '사물적 차원', '상징적 차원', '기능적 차원'이라는 세 가지로 동시대의 공간과 기호, 그리고 기록물을 분류하면서 기억의 터(장)를 개념화하였고, 선명하지 않은 역사의 부분을 기억의 흔적이나 잉여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보았다. ● 본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이러한 기억과 흔적, 잉여물을 추적하여 그것을 기록하고 새롭게 재구성한다. 기억이란 정서적 작용을 동반하며 과거를 생동하게 하는 기재라고 언급한 바 있는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의 말처럼, 그들은 날것 그대로의 기억을 현재로 소환함으로써 눈앞의 공간을 새롭게 생동하게 한다. 자신의 경험과 기억, 공간에 남겨진 흔적들과 그로부터 유추 가능한 과거의 사실, 지역민들의 이야기는 각 작가에 의해 또 다른 시점을 형성하게 되며, 그것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또 다른 차원의 공간이거나 현재 위에 과거가 덧대어지고 미래와 과거가 뒤섞인 모호한 시간대의 공간이 된다. 그렇게 분절된 시간 속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사건이나 현상, 선형적 시간의 질서는 해체되고 우리의 눈앞에서 시시각각 새롭게 존재감을 발산하는 과거-현재-미래의 순환적 공간으로 제시된다. 이렇게 재구성된 공간은 현재의 시점이나 하나의 관점에서 특정 정체성이나 기능과 결부되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과거의 맥락을 기억과 흔적을 통해 재기억화(rememoration)함으로써 현재의 공간과 장소, 그리고 지역의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며 그 가치를 재고하게 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젊은 건축가인 BASEMENT BASE는 공간의 껍질, 즉 공간이 가진 물리적인 건축적 구조와 그 껍질 안에 존재해온 '점유'의 주체와 형태에 주목한다. 현재의 아마도예술공간이 가진 거친 외/내형적 구조와 그 위를 뒤덮은 거친 표면들은 이 공간이 간직한 역사와 기억에 대한 물리적 흔적이다. 이것은 과거 다른 용도로 쓰였던 연유로 공간에 남은 이질적인 흔적에 현재까지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작업이 계속해서 덧입혀짐으로써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쌓여온 흔적들은 과거 특정 시간을 점유했던 사람들에 의해 축적된 레이어이며, 예술행위의 흔적이 버무려져 생겨난 독특한 퇴적층이다. 작가는 이렇게 남겨진 흔적을 바라보며 공간에 반복적으로 일어나는/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점유를 떠올리고, 전시라는 형태의 짧은 주기의 점유에서 시작하여 시대적 변화 및 지역을 관통하는 유행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 조금 더 긴 주기의 점유로 그 눈을 돌린다. 지역과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난 다양한 형태의 점유를 가시화하기 위해 작가는 공사현장에서 사용하는 비계 (현장에서는 주로 일본어인 '아시바'로 불린다)와 지역구청으로부터 발행된 (재)건축을 위한 점유허가서, 아마도예술공간의 도면을 활용하여 새롭게 도면화한 가상의 공간들을 병치한다. 공사가 진행되는 건축물의 외벽에 설치되는 비계는 재건축 및 공사를 위한 필수적 구조이다. 그리고 비계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관할구청으로부터 '점용 허가서'를 받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모든 재건축의 시작에는 점용 허가서, 즉 점유를 위한 허가서가 선행되어야 하며, 이것을 시작으로 목적에 맞게 공간의 변형이 시작되는 것이다. 비계와 점용 허가서는 그렇게 '점유'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오브제로서 기능한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과거 소규모의 윤락가가 존재했던 한남동의 역사에 기반한 성매매 공간, 새롭게 재편집된 현재의 공간, 이미지를 콜라주하여 만들어낸 부동산 버블 이후의 디스토피아적 풍경을 제시한다. 이 공간들은 과거와 현재 실재하는(했던) 지역적으로 (불)필요한 공간이며, 현재의 지역적 현상 안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습들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렇게 점유를 상징하는 오브제와 가상의 점용허가서, 그리고 현실로부터 파생된 도면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이 전시 또한 28일이라는 잠시 동안 공간을 점유하는 하나의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더 나아가 공간과 장소, 지역에 일어나는 유행의 흐름과 그것에 열광하여 모여드는 우리의 모습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드리운다.
이정형 작가는 본인에게 주어진 조건과 환경을 작업의 요소로 적극 활용해왔다. 그는 특정 전시를 위한 공간디자이너로서 현장에서 겪었던 자신의 경험과 타자의 행위들, 작가로서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파편과 흔적들을 작품을 위한 원천이자 재료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본 전시에서 작가는 아마도예술공간이 과거 주거공간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되어온 공간의 목적과 용도, 그리고 정체성을 현재적 시점에서 충돌시킴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시간대를 교란한다. 그는 전시장이라는 맥락 안에서 산발적으로 존재하는 흔적과 사물, 물리적 구조를 그것과 상응하거나 대조되는 주거공간을 상기시키는 구조 또는 오브제들과 재조합 및 병치한다. 현재의 공간에 존재하는 전시로부터 발생한 부산물, 흔적, 전시에 대한 단편적 기록, 더 나아가 기존 전시장의 상징적 구조인 흰색 벽은 과거 80년대 주거공간의 마룻바닥, 난방용 라디에이터, 용도변경 및 재건축의 과정에서 발생한 현장의 부산물과 어떠한 시점이나 관점에 의한 명확한 구분 없이 서로 의지하거나 지탱하고, 또는 병치되는 형태로 그 존재감을 새롭게 드러낸다. 작가는 이러한 변용과 조합을 통해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선 공간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불러일으키며, 하나의 시점에서 공간을 이해하기보다는 그 안에 부유하는 시간의 중첩 속에서 그것을 다르게 바라보고 이해하기를 요구한다. 즉 이정형 작가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공간이자 현장, 상황이자 무대는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며 전시장과 주거공간이라는 목적이 상충하게 되는 지점이며, 이것에서 저것으로 변화하는 시간과 과정이 압축된 새로운 시공간이다. 또한 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선형적 시간의 개념이 뒤틀리며 미세한 균열이 생겨나는 지점이자 공간에서 공간으로 전이되는 과정 그 자체이기도 하다. 본 전시에서 작가의 과거에 대한 접근과 그것의 활용은 단순 기록에 의한 지난 시간의 환기이기보다는, 현재까지도 물리적/정서적으로 남겨진 기억의 차용으로 볼 수 있으며, 그가 만들어낸 독특한 정서를 동반한 새로운 차원의 시공간은 현재와 과거의 교차와 충돌이 일어나는 어떤 지점으로부터 출몰하는 것이다.
백현주는 본 공간에 존재했던 꿀&꿀풀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참여 작가로서 이 공간의 과거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이자, 아마도예술공간의 전시에도 참여했던 현재적 맥락을 구성하는 일부이다.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보다 밀접하게 경험으로 간직한 신체이자 그 기억의 주체이기도 한 작가는 본 전시에서 과거 꿀&꿀풀로부터의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을 현재의 아마도예술공간으로 소환한다. 하나의 건축물에 존재하는(했던) 현재와 과거의 기억을 추적하던 작가는 그것이 개인의 역사 속에서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자신과 타인의 관계 속에 생성된 하나의 이미지에 불과하며, 그것은 공기와 같이 공간에 부유하는 당시의 시간과 관계있음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렇게 당시의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와 함께 시점이 불분명한 이미지를 자의적인 방식으로 뒤섞음으로써 그때이거나 지금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가까운 미래일지도 모를 '여기'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유한다. 또한, 작가는 사람들이 모여 수놓은 시간,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어떤 기억으로 존재하게 되는 지점인 공간 그 자체에 주목한다. 기존에 사회적 공동체나 특정 집단으로부터 생성되는 어떤 맥락을 뒤트는 작업을 하던 백현주에게 사람과 사람이 특정 시간을 공유하며 하나로 묶이는 지점인 최소 단위로서의 공간에 관한 관심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로부터 작가는 전시장의 지상층 외부에 기존의 건물에 마치 기생하듯 위치해 있는 공간을 변주한다. 주로 80-90년대 가옥의 옥상에 덧대어 지어진 창고형 공간들을 하나의 독특한 토속적 건축형식으로 상정하고, 한국의 대도시 전반에 걸쳐 짧은 주기로 해체와 구축을 반복하는 건축물의 주기, 지역과 건축물 사이의 공생과 기생관계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렇듯 작가는 과거의 공간과 현재의 공간을 뒤섞고 시간대를 넘어 상호 참조하게 하거나, 공간을 점유했던 사람과 그들의 시간에 눈을 돌림으로 공간에서 지역으로 화두를 확장하고자 한다. 결국, 백현주의 작업 안에서 과거와 현재는 분절된 것이 아니며, 아마도예술공간 역시 현시점에서 특정한 정체성을 획득한 공간이 아닌, 끊임없이 순환하며 상호 참조함으로써 기능하는 공간이자 지역의 현재적 위치를 가늠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작동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박재영은 본 전시를 위해 아마도예술공간과 그 주변에 거주하는 지역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수집하였다. 주변의 상업공간, 부동산, 지역민 등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이들로부터 수집한 다양한 이야기는 각종 매체에 보도되었던 사건들과 함께 버무려지고 직조되어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한다. 그러므로 박재영의 작업 기저에 깔린 서사는 새롭게 직조된 가상의 것이라고는 하지만 본 전시공간이 가지는 특정한 맥락과 공간이 위치한 지역, 그리고 그곳에 생명력을 부여하던 사람들과 무관하지 않다. 본 전시에서는 이렇게 쓰여진 텍스트와 함께 서사에 짙게 배어있는 어떤 정서가 전시장에 극적인 형태로 펼쳐진다. 이 정서는 현실을 마주하는 우리가 갖게 되는 근원적인 불안함 같은 것인데, 작가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 누군가가 현재의 이 공간에 거주하며 겪어야만 했던 상황을 재현함으로써 이러한 정서를 환기한다. 하지만 그 재현의 방식이란 등장인물을 지시하는 명료한 이미지나 오브제의 배치 같은 가시적 방식을 택하는 것이 아닌, 비물질적이거나 의도적으로 가시성을 떨어뜨리는 장치를 사용한다. 시야를 교란하거나 시각으로부터 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거하고, 서사의 중심이 되는 인물을 감추거나 드러내지 않는 방식은 오히려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들을 활성화하고 공감각적 경험을 유발함으로써 정서의 극대화를 꾀하는 것이다. 물질성을 지닌 무언가를 명확한 이미지로 보여주기보다는 오히려 환영을 생성해내는 방식으로, 시각을 차단하거나 교란하여 시각에 기대어 지각하기보다는 피부로부터 감지하게 되는 상황을 만듦으로써 소설 속에 존재하는 시간대와 현재의 시간, 소설 속 가상의 무대와 우리가 발 딛고선 현실의 공간은 중첩되며, 간명한 언어로 표현하기 불가한 멜랑콜리를 환기한다. 가상과 현실 사이, 실제로 존재했던 시간대이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낯선 어딘가에 위치한 박재영의 이야기는 특정 공간과 장소, 그리고 그것을 살아 숨 쉬게 하던 사람들이 겪었던, 그리고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특정 현상 이면에 도사리는 불안함의 징후이다. ● 아마도예술공간은 위에 언급했던 것과 같이 과거 주거공간에서 '꿀&꿀풀'이라는 이름의 비영리 복합 문화공간으로, 그리고 현재는 아마도예술공간으로 그 정체성을 다소 빠르게 바꾸며 유지되어왔다. 현재 도시 재활성화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다른 지역의 공간들도 비슷하겠지만, 특히 본 공간이 위치한 한남동은 젠트리피케이션 이슈의 한복판에서 지역의 변천을 그 어디보다도 빠르게 체감할 수 있는 지역이다. 자본의 흐름과 그에 따른 도시 공간의 (재)생산과정에서 기인하는 기존의 지역 생태계 파괴와 '현대적'이라는 표어 아래 유행에 발맞추어 삭제되는 과거의 맥락은 어쩌면 불가피하게 마주해야만 하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도예술공간을 포함한 모든 공간과 지역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개인이 또 다른 개인과 만나고, 공간에 정착하여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생겨난 다양한 삶의 표정 위에서 지역의 색깔을 만들어왔다. 게다가 과거란 외부의 어떤 압력에 의해 지운다고 지워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끊임없이 그 모습을 바꿔가며 증식하는 것이다. 본 전시는 이러한 공간적, 지역적인 맥락 아래 공간과 장소, 그리고 지역을 동시대의 빠른 흐름과 유행에 발맞추어 표피적이고 피상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 그것에 얽힌 맥락을 역으로 추적하여 공간과 지역이 가진 현재적 가치를 새롭게 진단하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가늠하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현재 일어나는 다양한 매체의 보도나 겉으로 드러나는 현란한 외형으로부터 공간과 장소, 지역의 가치를 책정하는 것이 아닌, 그 공간 안에 축적되어온 다양한 과거의 맥락들, 즉 개인의 삶과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이야기, 누군가의 기억, 사용자가 남기고 간 오래된 얼룩과 흔적들로부터 그것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고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지금'에만 초점이 고정된 유행에 대항하여 대안적 역사 또는 지식으로 기능하는 기억이 있으며, 그로부터 새롭게 생동하는 현재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 김성우
Vol.20160418c | 누구의 것도 아닌 공간 Nobody's Spac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