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김봉규 『아버지 마음으로』展 노순택 『사람들』展 홍진훤 『기다리다』展
기획 / 안대웅 주최 / (사)416가족협의회_세월호 2주기 안산지역 준비위원회 후원 / 안산희망재단_416연대_안산시_416기억저장소 후원자_컬러랩_아라액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노순택展 / 2016_0402 ▶ 2016_0414 홍진훤展 / 2016_0516 ▶ 2016_0702 김봉규展 / 2016_0704 ▶ 2016_0903
416기억저장소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인현중앙길 38 416가족협의회 기억저장소 Tel. +82.31.411.7372 416memory.org
홍진훤展 / 2016_0402 ▶ 2016_0414 김봉규展 / 2016_0516 ▶ 2016_0702 노순택展 / 2016_0704 ▶ 2016_0903
기억공간 리:본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3982 www.facebook.com/memoryreborn0416 memoryreborn.modoo.at
김봉규展 / 2016_0402 ▶ 2016_0414 노순택展 / 2016_0516 ▶ 2016_0702 홍진훤展 / 2016_0704 ▶ 2016_0903
광화문분향소 전시관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72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앞 가건물
선배 큐레이터로부터 전시 의뢰 전화를 받고 몇 일을 망설였다. 언젠가 예술계에서도 4/16 전시를 해야되지 않겠냐고 몇 마디 던졌던 것이 그 선배 눈에 띄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4/16이 유가족 차원을 훌쩍 뛰어 넘은 우리 모두의 문제며, 파국을 영접하고 있는 (혹은 이미 그러한) 한국 사회 구조의 거울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삭발을 하고 단식을 하고 목에 피가 터지도록 진상규명을 외쳐도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배가 바다 속에서 썩기 시작한지 2년인데도 인양에 관해선 여전히 덧셈 뺄셈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런 사회 안전망 붕괴의 가시화는 국가의 존재 이유와 정부 행정 시스템부터, 압축 근대화의 성과, 혹은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과연 무엇인지까지 근본적인 물음표를 찍게 한다.
여기에 관해선 얼마든지 그럴싸한 말로 떠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 상황으로 들어가서 뭔가를 행한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그러니까 이 전시를 위해 심지어 4/16을 배우기에 앞서, 나는 내 안의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과연 그 자격이 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백하건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버거운 소시민이며, 그런 점에서 4/16은 여전히 일상과 거리감이 있다. 그렇게들 살아왔다. 팽목항에 가본 적이 없다. 광화문 시위 현장도 마찬가지다. 뉴스 같은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세월호의 전형화된 모습은 더 이상 핫이슈로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감정이입을 해서 눈물을 흘려본 적조차도 한 번도 없다. 더욱 솔직하고 분명히 말하자면 앞으로도 그럴지도 모른다. 한국 서울에 사는 시민 중 한 명으로서, 혹은 한 인간으로서 나는 딱 그 정도의 거리에서 4/16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4/16이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다. 심지어 누가 보기엔 대단치 않은 감상적인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결심이 섰다.
서두를 이렇게 서투른 고백으로 채우는 것은 4/16이라는 커다란 응어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이야말로 큐레이터가 전시를 시작한 상황이자 동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4/16은 분명히 우리의 문제이지만, 내가 단숨에 뭔가를 초월해 유가족과 동일한 입장에 놓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의 어떤 글러 먹은 점에 관해 지금 여기서 고해성사하려 들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엇보다 이 전시가 불편함이라고 하기도 뭣한, 말하자면 찰나의 신경쓰임에 동기부여를 받았다는 것에 솔직하고 싶다는 쪽에 가깝다. ● 몇몇 선배 작가에게 4/16 전시를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했을 때 돌아왔던 답변의 중론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였다. 유가족을 포함해 사회적 트라우마가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에, 여기에 예술이 무언가를 할 수는 있겠지만 '잘 해야' 함으로, 그 트라우마가 잦아들기를 신중하게 기다려야한다는 취지의 조언이었다. 솟아오르는 조바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말은 역설적으로 '곧 괜찮아질 거야'라는 일종의 확신처럼 나에게 들렸기 때문이다. 이미 괜찮아진 다음에 (여전히 안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일일까? 그런데 그 조바심으로 미루어 보건대, 나 또한 그 선배와 비슷한 가정을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과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난 뒤 얼마나 세월호를 기억할 수 있을까? 좀 더 솔직해지자면 장담할 수 없다. 어떤 다른 이슈가 나를, 사회를 신경질적으로 덮칠지 모른다. 당장 내일 먹을 것이 마땅치 않다면 까마득하게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사실상 그런 불확실한 미래를 가만히 기다리며 서로의 눈치를 보며 그 선배의 말처럼 세월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고 싶다. 서로 말조차 꺼내기가 힘들다. 여기엔 절반의 불충분한 관심이 있다. 나머지 절반에는 멀쩡히 살아있는 자의 죄책감이 무의식에 크게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 저러한 이유가 중첩되어 지금, 여기서 모두가 침묵하는 이유가 된다면 그것도 코미디다. 그렇게 두 해가, 스물네 달이 흘렀다. 이 시간을 문득 상기할, 그래야만 하는 시점에서,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른 이유를 가지고 깜짝 깜짝 놀란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나의 이런 부족한 생각을 솔직하게 풀어 놓으면서, 또 한편으로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에게 세월호가 어떤 것인지, 두 해, 혹은 스물 네 달이 지나는 동안 그것이 어떤 것이어 왔는지 들어보고 싶다. ● 앞서 적었듯이 나는 팽목항 사고 현장에도, 주요 시위 현장에도 있어 본 적이 없다. 오직 알고 있는 것은 여러 언론 보도로 접하는 피상적인 사실뿐이다. 미디어는 종류를 막론하고 똑같은 이미지를 찍어 나르는 데 여념이 없는 것 같다. 아무 검색창에 4/16과 관련된 검색어를 넣어 보면 몹시 전형화된 이미지만이 보인다. (예컨대 당장 스마트폰을 꺼내어 '유가족'으로 검색해 보라.) 그런 이미지는 비록 순간의 사실일지언정 비탄과 절망의 감정을 사회적 차원에서 손쉽게 만들어 낸다. 지겹게도 그것만을 반복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와 동일하게 되기를 강요한다. 또한 암묵적으로는 그렇게 될 수 없다면 침묵하기를 강요한다. 언제, 누가 이런 모습에 합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그렇게 '되어' 있다. 미술 큐레이터로서 내가 이미지의 문제를 다룬다면, 이 상황은 실로 문제적이라고 느낀다. 분명히 이것이 다는 아닐 것이다.
4/16이 우리 모두의 문제라면, 매개되고 전형화된 어떤 것이 아니라, 혹은 '너'의 4/16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관해 설파하기에 앞서, 무엇보다 '나'의 4/16이 무엇인지 속에서 꺼내놓아야 한다. 물론 심각해도 좋다. 하지만 오해를 무릅쓰고 적자면, 일단은 그렇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느끼는 찰나의 심리적 불편함,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 자연스러운 그런 감정을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면, '우리'라는 공간은 시작부터 불가능하다. 그러한 이유로 4/16이 특정 누군가의 짐으로만 남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절대로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 이런 견지에서 전시하는 사진은 객관적인 진실과 거리를 다소 두고 있다. 하지만 객관적이지 않다고 해서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심지어 객관적 사실이란 것이 공적 담론에서 인준한 사실만을 가리킨다면 더욱 그렇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진실이 항상 구체적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에서부터 비롯된다. 각 작가들은 기존의 진실을 낯선 방식으로, 더욱 주관적인 관점으로 포착함으로써 외려 그 속에 숨어 있는 구체적인 진실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했다.
전시는 3인의 현장 사진가의 사진으로 꾸려졌다. 서울, 안산, 제주에서 동시에 각 작가의 전시가 열리며,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세 곳을 서로 순회한다. 서울 광화문 분향소 전시관에서는 김봉규 한겨레 사진기자가 사건 당일 이후 팽목항 풍경의 추이를 찍은 사진을 전시한다. 사진은 이런 초유의 비극을 마주하며 느꼈던 인간적 슬픔과 저널리스트로서 직업윤리 사이의 사진적 갈등을 오롯이 담고 있다. 기자가 아니라 한 아버지로서 가슴으로 셔터를 눌렀다고 하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아버지 마음으로'를 부제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안산 416 기억전시관에서는 서울 시위현장에서 벌어지는 국가 폭력과 보수세력의 방해공작, 그리고 거기에 맞서는 군중을 찍은 노순택의 사진을 전시한다.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역학 관계는 노순택에 의해 기이한 '꼴'로 구성된다. 여기엔 중의적인 표현으로 '사람들'이라는 부제를 붙여 두었다. 제주 기억공간 리본 re:born에서는 홍진훤이 아이들이 뛰어 놀았어야 할 수학여행 예정 행선지를 순례하며 찍은 풍경 사진을 전시한다. 주인공을 맞이하지 못한, 우두커니 있는 부재의 장소를 두고 '기다리다'라는 부제를 떠올렸다. 한편 세월은 공교롭게도 시간을 의미한다. 세는 해, 월은 달이다. 전시 제목 '두 해, 스물네 달'은 그래서 세월호가 침몰한 후 지난 2년의 시간을 숙고해보자는 의미를 담아 그 시간을 해로, 다시 달로 반복해서 썼다.
전시는 일종의 대화다. 각각의 진실은 여러분에게 말을 걸 것이다. 첫 번째 관객인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김봉규가 울음을 참기 위해 어금니가 흔들릴 정도로 꽉 깨물며 찍었다고 하는 팽목항 사진을 봤을 때는 이상하게도 퇴직해 고향에 계신, 보수정당 지지자이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노순택의 사진에서 군중 앞에서 마치 사정하는 듯한 물줄기와 피자 씹는 일베의 이빨을 보고선 한동안 잊고 지냈던 분노의 감정을 떠올리게 됐다.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소위 언캐니한 관광지를 담아낸 홍진훤의 사진을 보고선 하루하루 좀비처럼 흘려보내고 있는 나 자신의 텅 빈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런 '마음'은 전혀 진실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전시를 본 여러분이 가지게 된 그런 작은 마음 하나하나를 소중히 하고, 나아가 대화해보길 기대한다. 이 문제는 그렇게 (끝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시작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으로 두 해, 스물네 달, 아버지 마음으로, 사람들, 기다리다라는 긴 제목의 전시를 풀어 놓는다. (2016년 4월) ■ 안대웅
Vol.20160405i | 두 해, 스무네 달: 아버지 마음으로, 사람들, 기다리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