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 (Line 1)

노기훈展 / NOHGIHUN / 盧基勳 / photography   2016_0318 ▶ 2016_0422

노기훈_동인천-도원 채미전_피그먼트 프린트_80×100cm_2014

초대일시 / 2016_0325_금요일_07:00pm

8th KT&G SKOPF 올해의 최종작가

주최,주관,기획 / KT&G 상상마당 후원 / 고은사진미술관

관람시간 / 12:00pm~10:00pm

KT&G 상상마당 갤러리 KT&G SANGSANGMADANG GALLERY 서울 마포구 어울마당로 65(서교동 367-5번지) Tel. +82.2.330.6223 www.sangsangmadang.com

또 다른 파리, 텍사스: 중국집에서 웨딩홀까지파리 혹은 패리스(Paris or Pǽis) 미국 서부 텍사스에는 파리(Paris)라는 소도시가 있다. 지역 사람들은 '패리스'라 부른다. 그 누구도 프랑스 파리를 연상하지는 않는 듯하다. '파리'라는 지명에 대한 구체적 정황이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프랑스와 무관하지 않다는 정도만 알려졌다. 1993년에는 크기를 축소한 파리 에펠 탑 레플리카를 세우기도 했다. 물론 우리에게 텍사스 주 파리는 영화로 더 알려졌다.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1984)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가 아들과 함께 아내를 만나기 위해 텍사스 파리를 찾아가는 내용을 담았다. 언뜻 로맨틱한 인상을 주는 파리라는 언어 기표는 황량한 대지와 온기 없는 모텔, 퇴락한 상가 뒤로 자취를 감추고 관객은 기호의 불일치로 인한 당황함을 견뎌야 했다. 영화는 제목의 이중성이 자아내는 궁금증을 풀어 주기보다 관객의 기대 반대편 세계를 그린다. 우리가 기대하는 파리의 이미지가 어디에서 어떻게 기인했는지 구체적이지 않고 파편적일 수밖에 없듯이, 감독은 남자 주인공이 서서히 기억을 되찾는 과정을 통해 기억의 원형 자체에 물음을 던진다. 이 영화는 아메리칸 드림을 가졌던 독일 출신의 빔 벤더스가 미국을 이중적으로 바라보는 고민을 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에서 꿈을 좇는 유럽인이 마주한 것은 생존을 위해 미래를 포기한 기성세대의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더불어 유토피아를 꿈꾸는 인간의 욕망에 비해 너무도 거대한 자연과 대비된, 표정이 사라진 인간과 도시의 모습은 현재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노기훈_도화-주안 커플_피크먼트 프린트_100×125cm_2015

사진의 체험 ● 굳이 『파리, 텍사스』를 언급한 이유는 노기훈의 『1호선』이 정통 스트레이트 사진을 표방하고 그가 발견하고 포착한 장면들이 현실을 재현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현실이 곧 영화 세트처럼 내용이 사라진 표면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1호선』은 대한민국 최초의 철도 1호선 기점인 인천역부터 당시 종점인 노량진역까지 걸으며 사진으로 기록한 프로젝트다. 작가가 인천의 창작 스튜디오에 입주하면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를 설명하기 전에 그의 또 다른 작업 『구미』를 돌아본다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 『구미』는 2009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진행형 프로젝트인데, 구미는 노기훈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는 정기적으로 구미를 찾아서 가까운 친구들의 삶을 사진(최근에는 영상도 함께)에 담는다. 올해부터는 아예 서울 생활을 잠시 접고 귀향했다. 그의 사진은 일터, 기념일, 결혼식, 출산 같은 친구들의 일상을 담고 있다. 일상과 작업의 경계도 느슨하다. 구미 친구들의 일상은 평범하다. 버스 타고 출근하는 모습도 있고 가족사진도 보인다. 자연스레 친구들의 일터도 사진 속으로 들어온다. 구미 성장기라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사실 사진은 구미라는 지역을 특별히 드러내지 않는다. 자주 등장하는 공장의 모습들이 구미라는 도시의 성격을 알려 줄 뿐이다. ● 노기훈이 사진을 찍는 이유도 의외로 단순하다. 본인의 말처럼 사람과 걷기를 좋아해서일 테지만, 그는 사진을 찍기 위해 길을 걷고 촬영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덕분에 그의 사진은 체험의 인상이 감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길을 떠나는 것만으로 체험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내가 말하려는 '사진의 체험'이란 사진을 통해서 발견하는 인식의 경험으로 제한하고 싶다. 이러한 사진의 체험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롤랑 바르트의 사진 읽기 역시 사진의 체험이라 부를 수 있다. 바르트는 어떤 사진에 유독 이끌리는 것을 모험(adventure)이라 불렀다. "모험의 원칙이야말로 사진을 존재하게 만든다. 반대로 모험 없이는 사진도 없다."1) 글쓰기의 영도를 주장한 바르트에게 쓰기와 읽기(창작과 감상)는 분리된 행위가 아니었을 것이다. ● 노기훈의 작업 과정을 바르트의 관점을 보면 장소를 경험하는 행위와 사진 촬영이 서로 분리되지 않은 듯하다. 그는 한 세기 전에 살았던 만보객처럼 배회하면서 세상을 이해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다. 여전히 필름 사진을 고집하는 이유도 비슷한데, 사진을 저장한 외장하드를 잃어버린 뒤로 사진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에게 사진이란 정보가 아닌 이미지이며 걸으면서 마주하는 것들, 이끌리는 사람, 사물, 건물과 풍경을 담는 생활이라 불러도 무방할 듯싶다. 그의 사진에 담긴 구미의 일상은 오늘을 사는 많은 젊은이의 삶과 유사하다. 지구 현실의 파편을 방백처럼 폭로하지도, 그렇다고 『인간극장』식 긍정의 미학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단, 작가의 시선에 담긴 '낭만적 우울감'을 지우기는 어렵다. 사진 한 장은 정지된 장면으로 보지만, 연속되는 앨범 사진을 볼 때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사진과 사진 사이에 호흡과 리듬이 생기고 곧이어 감정이 덧붙여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30대 초반의 작가가 갖는 자아의 부풀림인지, 아니면 낭패감인지 파악할 수 없으나 무표정한 현대 사진의 특징 이면에 감출 수 없는 감정이 밴 것은 빔 벤더스의 영화2) 세계와 흡사하다.

노기훈_온수-오류동 폴라로이드_피그먼트 프린트_100×125cm_2013

질문으로서 인천 ● 구미의 사진이 작가에게 익숙한 사람과 장소에서 시작하여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심급으로 향한다면, 『1호선』은 인천이라는 장소가 갖는 특정성과 역사성에서 출발한다. 이 프로젝트는 애초 심급을 가질 수 없고 작가와 장소 간의 일시적이고 즉흥적인 관계만 기록된다. 작업의 시작은 단순하다. 한번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는 인천이라는 장소와 그곳에 관한 상투적이고 다소 악명 높은 소문이 전부인 상태에서 직접 몸으로 인천을 경험해 보자는 취지가 시작이었다. 인천에 관한 소설, 문헌 등을 수집하고 대한민국 최초의 철도길 주변을 거슬러 가면서 개통 백 년에 이르는 시간의 겹을 관찰하고자 했다. [중략]

노기훈_동암-백운 이현신_피그먼트 프린트_80×100cm_2013

최원식은 경인선 개통을 "'모든 고정된 것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세계 자본주의의 물결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5)고 설명한다. ● 그렇다면 노기훈이 포착한 인천-노량진 간 1호선 역 주변의 모습은 어떠한가? 정말 고정된 것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것일까? 아니면 권력 관계에 의해 인천과 노량진 주변이 서로 다른 시간의 길을 걸었던 것일까? 『1호선』의 사진들은 특별히 기억을 환기시키지도 않고 압도적인 시각의 스펙터클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너무도 소박하여 어디서 본 듯한 인상을 주는 정도다. 적어도 근대 이후의 예술에서 낯선 것을 통한 환기는 매우 중요한 창작 요소이자 기억과 인식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점에서 노기훈의 사진이 인류학적 반향이나 조형적 공명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가 포착한 대상은 역사의 흔적이나 유적도 아니고 도시 전체를 하나의 조형물로 압축한 현대 예술 사진의 전형도 아니다. 어쩌면 의도적인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하거나, 아니면 하이테크놀로지 대신 감각을 최대한 활용한 대형 사진을 찍음으로써 자신이 인식하는 만큼의 세계를 도려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알다시피 눈으로 보는 세계와 사진으로 보는 세계는 다르다. 닮았을 뿐 절대로 만날 수 없는 평행의 세계다. 이미지가 위험한 이유는 현실의 세계가 이미지의 세계를 닮으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노기훈은 그 누구보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아는 작가다. 더 스펙터클한 사진, 더 유혹적인 사진 대신 인간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세계를 포착하고 특별한 사건이나 장소 대신 흔하디흔한 대상에 시선을 주는 이유는 지식이 아닌 사진을 통한 경험적 사유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중략]

노기훈_영등포-신길 노점_피그먼트프린트_80×100cm_2013

가변적이고 취약한 ● 사진은 대상이 필요하다. 사진의 기록성은 대상과 사건에 관한 정보, 거스를 수 없는 진실의 가치로 평가된다. 물론 사진술에 관한 미학적 해석, 진실을 소개하려는 사진가의 열정도 포함된다. 이렇듯 기록성 중심에 위치하던 사진이 자신의 고유성을 획득하려는 노력으로 찾아낸 현대 예술 사진 또는 조형 사진의 영역에서는 기록성과 정보성의 가치가 희미하거나 아예 제거된다. 1990년대 이후 현대 예술 사진은 인간, 도시, 사회의 단면을 중립적으로 기록하는 유형학적 성격을 강조한다. 더불어 기록이 강조된 사진의 경우, 고전 회화를 독해하듯 스토리텔링에 무게가 실렸다면 현대 예술 사진은 시사 정보가 아닌 시각 정보로 채워진 오브제라 부를 수 있는 규모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노기훈의 사진에 대한 첫인상은 무표정함으로 대표되는 현대 예술 사진의 법칙을 따르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반면 사진 전반을 아우르는 우울의 정서는 그의 사진을 단순히 중립적 사진으로 정의 내릴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낸다. 작가 자신이 본인의 사진을 중립적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앨릭 소스(Alec Soth)의 사진 기행도 떠올릴 수 있다. 소스가 포착한 미시시피는 짐 자무시가 『천국보다 낯선』에서 묘사한 출구가 막힌 세계처럼 불안하고 위태롭다. 소스의 다큐 사진은 그 누구보다 쉽게 그리고 강력하게 미시시피를 산출했다. ● 노기훈의 『1호선』은 소스와 유사한 부분이 많지만 소스처럼 장소를 특화시키지는 않았다. 반대로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노기훈은 1호선 주변의 장소를 산출하는 대신 기호가 미끄러지는 텅 빈 장소로 포착했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각 사진에 명기된 표제가 장소를 지시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장소를 연상시키는 기호의 강도는 희박하거나 아예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박이소의 취약한(vulnerable) 설치 작업처럼 '영등포-신길 노점'은 장소를 갖지 못한 채 주변부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동시대 한국사회의 단면을 하나의 '사진적 장면'으로 포착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사진 한 점이 아닌 사진과 사진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 보자. 꽃집 가판대의 플라스틱 통 안에 꽂아 놓은 꽃다발, 신길역 주차장 풍경, 노량진 거리의 노점 등은 우리가 익숙하게 보는 도시의 틈새다. 그것들은 거대한 자본주의 도시 안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자 어쩌면 가장 한국적인 클리셰지만, 1호선을 지시하는 기호는 아니다. 오히려 『1호선』의 장면들은 중심과 주변, 공존과 기생의 논리가 혼재된 상태이며, 노기훈은 사회적 기호도 역사적 의미도 희박한 불완전하고 연약한 대상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지도 모르겠다. ■ 정현 1) Roland Barthes, La chambre claire-Note sur la photographie, Seuil, 1980, 38쪽. 2) 영화 『파리, 텍사스』보다 먼저 제작한 『도시의 앨리스』(1973)도 추천한다. 3) 김백영, 『지배와 공간–식민지 도시 경성과 제국 일본』, 문학과 지성사, 2009, 34쪽. 4) 최원식, '경인선의 역사 문화 지리-동인천역의 상상적 복원', 『황해문화』 4, 새얼문화재단, 1996. 9., 58쪽

노기훈_영등포-신길역 버드나무_피그먼트 프린트_100×125cm_2013

2013년 인천에 새 터전을 마련하면서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낡고 더럽고 눅눅한 파란색으로 상징되는 1호선은 최초의 철로를 달리는 구식 열차라는 점, 인천에서 출발하여 구로를 지나 서울역과 종로를 통과하는 열차라는 점 때문에 다른 지하철 노선에 비해 낙후된 이미지였다. 서울에서 인천을 가자면 용산역에서 급행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어딘가 모자란 표정을 짓고 있다가 텅 빈 지하철 문이 열리면 질주하듯 빈 자리를 찾아간다. 운이 좋아 곰팡내 묵은 군청색 벨벳 시트에 앉으면 일찌감치 10량 객차의 중반을 건너온 앉은뱅이가 가지런히 모은 나의 무릎 위에 구구절절 사연이 적힌 쪽지를 버리듯 놓고 지나간다. 분명히 나와 함께 용산역 플랫폼에 서서 기다리던 그 사람이 맞는지 눈을 돌려 확인한다. 그가 바닥을 쓸고 지나간 후 조금 쉴 만하면 하나님을 외치는 신도가 들어와서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지껄이고, 뒤이어 계절에 따라 품목을 달리하는 행상인이 등장해 목청 높여 떠들다 옮겨 간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매일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어서 이 시간이 흘러 도착지에 이르기만을 기다린다. 지하철 1호선은 노량진역에서 인천역까지 지하로도 터널로도 지나가지 않아 날씨가 변하는 대로 계절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객차를 점유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비춘다. 차창 밖 풍경 역시 열차 속도에 맞춰 빠르게 사라지며 매혹적인 추상화로 변신한다. 풍경에 지쳐 갈 때쯤 다시 객차 안으로 고개를 돌리면 어김없이 현실의 사람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멀뚱히 허공을 응시한다. ● 1899년 9월 18일 오전 9시, 미국산 모갈(Mogul) 증기기관차가 노량진을 출발해 제물포까지 33킬로미터 구간을 질주했다. 대한제국이 철도 시대로 진입한 순간이었다. 20세기 초 일제의 경제 수탈을 목적으로 건설된 경인선은 서구 문물이 한반도 중심부로 유입되는 통로였다. 1960년대부터는 수출 주도 정책이 추진되면서 산업화 도시화의 중추로 탈바꿈한다. 마침내 1974년, 경인선 전철화 사업으로 지하철 1호선이라 명명되며 서울과 인천을 오가는 광역 도시권의 교통 수단으로 자리매김한다. ● 경인선은 아직도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철로 개통 당시에 들어선 역들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도시를 묘사한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오는 동안 1호선은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하나 둘씩 떨어뜨린다. 열차가 인천역으로 가까워 갈수록 건물들이 낡고 낮아진다. 객차에는 맥아더 동상을 보러 가는 할아버지들이나 한국말과 중국말을 기묘하게 섞어 쓰는 화교처럼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사람들만 남았다. 나 역시 그중 하나가 되어 빠져나온다. 1호선에 탄 사람들은 단지 동시대의 풍광이 되어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연기처럼 사라진다. 어깨를 부딪치며 옆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던 사람들은 인천역 플랫폼을 벗어나 재빨리 어디론가 흩어져 간다. 그들을 뒤쫓아 철로 주변에 펼쳐진 삶을 만난다. 화교들은 차이나타운의 목조 주택으로 들어가고 할아버지들은 자유공원을 찾는다. 시대는 풍경을 만든다. 한 세기 전에 만들어진 근대 문물은 풍경을 낳았으며 시대가 변함에 따라 쓸모를 달리하면서, 지금도 21세기 초반이라는 시간 배경 아래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 중이다. 서울인지 인천인지 모를 공간에 멈춰 앉아 백 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제물포에 닿으면 경성에서 호명받지 못한 이름들이 서울로 향한 루트를 따라 나름의 삶을 갖추며 산개해 있다. 인천역에서 노량진까지 26개 역을 걸으면 우연인 듯 인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만남이 이뤄진다. 차창에서 미끄러진 시대의 풍경들이 장소와 시간을 갖추고 분명한 형태를 갖춘다. 『1호선』은 한강철교가 준공되기 전인 1899년 당시 경인선을 따라 인천과 노량진 사이에 있는 26개 역을 걸어 다니며 철로 곁을 떠다니는 인간 군상과 일상 그리고 풍경을 촬영한 사진 도큐먼트다. ■ 노기훈

Vol.20160318h | 노기훈展 / NOHGIHUN / 盧基勳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