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6_0317_목요일_06:00pm
2016 아티스트 릴레이 프로젝트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CHEOUNGJU ART STUDIO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로 55 Tel. +82.43.201.4056~8 www.cjartstudio.com
2016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는 입주기간동안 작품성과물을 프로젝트 형식으로 선보이는 아티스트 릴레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아티스트 릴레이 전시는 스튜디오 전시장에서 그간 작업했던 결과물에 대한 보고전시로 해마다 작가 자신의 기존의 성향과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감각과 역량을 보여주는 전시로 개최했다. 이에 9기 작가들의 전초 전시로서 선보였던 『워밍업전』은 어떻게 개개인의 코드와 미적 언어들을 하나의 전체성으로 풀어낼 것인가가 관심이었다면 그 후 작가들의 작업을 풀어내는 워크숍은 그간의 작업과 앞으로의 방향성을 이해할 수 있는 대화들이다. 이렇게 좀 더 개인 작업에 집중하는 릴레이 전시 프로젝트는 체류하는 동안 기존 자신의 방법론을 어떤 방식으로 의미를 새로이 전달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개별 스튜디오에서 전개하는 독특한 실험적 아이디어와 날 것의 이미지, 불완전한 예술적 의미들, 모호하고 불편한 상황들을 전시장 속에 잠시 머무르며 그런 첨예한 문제들을 관람객과 나눈다. 이에 현장을 찾는 관람객들은 “우리 자신에게 현대의 '미'와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통해 동시대의 시각과 미감을 나눈다. ● 스튜디오 23번째 릴레이전 작가로 김기성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그간 김기성의 작업은 책, 서점, 도서관을 소재로 지식이라는 아날로그적인 사유와 현대의 디지털의 베이스의 간극을 은유적으로 이미지화하는 작업을 전개해 오고 있다. 김기성은 지식의 보고라 여기는 도서관 혹은 서점의 공간을 하나의 자신과 관계하는 인식, 시간, 사건이 생성하는 담지체로 자연적 생성에서 문화적 생성으로 교차하는 공간이라 사유하는 것이다. 그가 유년시절의 아버지의 백과사전에서 모든 생성된 세계를 그 속에서 읽으며 시간을 여행한 듯 김기성의 세계관은 그 끈끈한 매개체로 책 속에서의 분절들, 모나드로 연결된다. ● 특히 그의 작업에서 오래된 서점의 서가에서 책을 거꾸로 꽂으며 만들어 냈던 '책의 장면'은 아주 거대한 세계를 지탱하는 미시적인 '의미소(素)'로 은유되며 오래된 지식의 구조를펼쳐 놓은 풍경이자 장면들이라 할 수 있다. 또 그 지식들이 충만하던 책의 기표는 하나의 시간적 흔적의 이미지로 혹은 지식을 전달하는 아날로그의 장(場)으로 대변되어 김기성의 사진적 아카이브로 계열화된다. ● 이번 릴레이전시에서의 작업들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써 책, 지식이라는 소재와 연결된다. 이번 전시주제인 '아틀라스코프Atlascope'는 아틀라스Atlas라는 거대한 천공, 자연을 떠받치는 신을 매개체로 하여 거대한 우주와 소우주, 과거와 현재, 시간과 공간, 실재와 재현, 대상과 이미지라는 사이를 오가는 변화의 층위를 사유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에게 거대한 의미가 파생되었던 아날로그식 지식백과 아틀라스는 '의미 찾기'의 사유에서 점점 멀어지며 서가의 오브제로 대체됨을 또 하나의 '빈 의미'로 의미화하여 재현하는 것이다. 김기성은 그 '빈 의미'가 갖는 시공간성의 변화를, 혹은 에피스테메의 변화를 다시 아날로그의 감성으로 번역하여 그 오래된 의미체계를 공유하고자 한다. ■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구텐베르크의 은하계 가장자리에서 ● 『아틀라스』전을 채운 김기성의 최근 작품들은 책을 주요 소재로 한다. 그중에서도 한 시대의 지식이 집대성되어 있는 백과사전이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 쉽지 않았던 시골 소년에게 삼라만상 담겨 있는 세계를 향한 창이었지만, 지금은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정보를 집대성하는 백과사전적 방식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일정한 볼륨(Vol.)을 가진 책자의 형식을 가지기엔 역부족인 시대가 왔다. 작가가 소환한 책이라는 미디어는 종이에 인쇄된 매체가 기존의 구술문화로는 감당하기 힘들만큼 정보가 폭주했던 시기에 발명되어 수행해왔던 역할을 생각하게 한다. 책은 소통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위치에 있었던 미디어였다. 랜슬롯 호그벤은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만화경」에서, 인류의 역사를 소통의 역사와 등치시키면서 주요한 대목들을 지적한다. ● 그에 의하면 B.C. 3500-3000 년경에 이집트에서 초기 형태의 상형문자/그림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B.C.1700 년 경에 페니키아인이 22 개 문자로 구성된 알파벳을 사용하여 글을 썼다. 그리고 A.D. 105 년에 중국에서 종이 제조법을 개량했고, A.D. 720 년에 중국에서 목판 인쇄가 시작되었다. 1936 년 콘래드 추세는 진공관이나 트랜지스터 대신 전자식 계전기를 이용한 원시형 디지털 컴퓨터기기 제조했다. 이러한 역사는 책의 바탕이 된 인쇄술과 종이가 발명된 곳이 동양임을 알려준다. 우리나라도 인쇄에 관한한 선구적 위치를 차지한다. 인쇄는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그것은 감각의 방점을 공동체에게 말해지고 들려지는 청각의 세계에서 개인적 시각의 세계로 옮겨왔다. 감각의 분화와 특화 속에서 개별적 시점을 중시하는 자율적, 내면적 주체도 생겨났다. ● 미디어 이론가 마샬 맥루한은 「구텐베르크 은하계」에서 인쇄술이라는 중세적 발명은 중세가 근대세계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이륙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그에 의하면 중세후기로부터 르네상스에 걸쳐 정보가 쌓이기 시작했는데, 이와 같이 정보 데이터의 처리조직화가 필요해졌고, 이는 시각적 도식과 조직화에 대한 강한 요청과 압력을 낳았다. 중국으로부터 유럽으로 도입된 리넨지는 인쇄를 위한 중요한 예비조건이었다. 당시에 종이는 20 세기의 컴퓨터 못지않은 첨단매체였고, 인쇄는 종래의 구술문화를 문자문화로 이끈 혁명이었으며, 책은 그 구체적인 구현물이었다. 그러나 한 시대를 열었던 매체는 그 시대가 저물어감에 따라 그 위상이 달라진다. 책은 정보를 담는 투명한 용기로서의 역할을 다른 매체에 넘겨주고 불투명한 사물로 변해간다. 계통의 역사는 개체의 역사에도 반복된다. ● 어른이 된 작가에게 백과사전은 이제 세계와 만나는 창구의 역할보다는 추억이 깃든 오래된 사물로 다가온다. 책은 그에게 향수를 자아내는 오브제인 것이다. 사라진 것, 또는 사라져가고 있는 것에는 아우라가 있다. 독일에 유학 가서 베를린의 어느 고가구점 탁자위에 오디오, 레코드 판, 청동 조각상 등 오래된 물건들과 함께 놓여있는 낡은 백과사전을 발견했을 때, 작가는 오래된 사물에서 뿜어져 나올 법한 황금빛 아우라를 감지했다. 책등에 휘황찬란한 금박으로 씌여진 'NEUES UNIVERSAL LEXIKON'(새로운 보편적 백과사전)은 그 이후에도 사진, 설치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었다. '새로움'과 '보편'이라는 근대 시대의 키워드들은 문화재같은 고색창연한 분위기의 사물의 반열에 오른다.
백과사전 한가운데 구멍이 뻥 뚫려있고 그 사이를 슬라이드 프로젝터의 빛이 통과하는 작품 「NEUES UNIVERSAL LEXIKON」(2008) 에서의 펀칭작업은 마치 용도 폐기된 문서의 상태를 상징하는 듯하다. 맞은편에 비치는 원 안의 내용은 오려진 백과사전의 내용이다. 그것은 백과사전이 담은 정보의 일부지만, 그 모체인 백과사전 역시도 이제는 일부의 정보밖에 담을 수 없음을 암시한다. 그 작품이 만들어졌던 2008 년은 터치 패드가 깔린 스마트 폰이 개발됐던 시기였다. 책이라는 대표적 아나로그 매체는 그 위상이 변모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정보매체를 초월할 것이 요구되었고, 그 중 하나는 예술작품이 되는 것이다. 백과사전과 똑같은 형태로 투명한 백과사전을 만들어 관통하는 구멍을 만든 설치작품은 자체의 정보량과 물질성으로 채워진 백과사전이 텅 비워지는 과정을 표현한다. 죽 나열된 불투명/투명의 책자는 시간의 축을 타고 생성 소멸하는 대상의 과정을 나열한다. ● 독일에서 발표한 설치작품 「기울어진 책상」(2009)은 기울어진 책상 위에 구멍 난 백과사전들이 줄지어 놓고 환등기 빛이 구멍을 관통하면서 맞은편에 둥근 내용물이 비춘다. 한 시대 지식을 담은 매체는 마치 좌초되는 배처럼 기울어있다. 동시에 그것은 투명하고 중립적인 서술을 자신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또는 그럴 수 없는 지식의 편파성을 상징한다. 백과사전식의 정보를 서술하는 중립적 태도에 이미 어떤 경향이 내포되어 있다. 시간이라는 시험대는 중립성보다는 경향성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담론의 역사에서 부침했던 백과사전파가 그러했듯이, 거기에는 상승하는 보편계급의 경향성이 담겨있다. 백과사전파는 귀족에 대항하는 부르주아 계급의 투쟁을 담론의 차원에서 지원했다. ● 근대 초기에 떠올랐던 부르주아 계급부터 21 세기에 떠오르고 있는 다중(多衆)까지, 보편성을 대변하는 특정 세력들은 있기 마련이다. 상승하는 보편계급은 기존 기득권 세력의 신비주의를 벗겨내려 애쓴다. 떠오르는 세력은 구질서의 불투명성에 투명성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백과사전은 그런 면에서 투명했다. 김기성의 작품에서 겹겹의 벽체로 보일 법한 책들을 관통하는 빛은 이전 시대의 상징적 장벽들을 꿰뚫는 계몽의 빛이기도 하다. 백과사전은 근대적 파토스가 가득한 사물이다. 전래된 관습이 아닌 관찰을 통해 얻어진 진술의 축적을 중시하는 영국의 근대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신의 진리가 새겨져 있을)'자연의 텍스트'가 거대한 백과사전적인 사실 발견에 의해 복원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마샬 맥루한은 「구텐베르크의 은하계」에서 백과사전적인 방식에 의해 인간의 지혜는 다시한번 완벽한 '자연의 책'을 비출 수 있도록 재건될 수 있다는 근대적 신념을 전한다. 맥루한에 의하면, 베이컨의 방법은 새로운 인쇄된 페이지라는 아이디어를 모든 자연현상 전체에 확장하는 것이다. 인쇄술은 베이컨이 분절을 통해 동질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통하여 응용지식을 확보할 뿐 만 아니라, 그러한 방법은 인간을 그들의 능력과 수행능력을 평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실증적 지식에 의해 인간은 진보할 것이다. 실증주의 철학자 콩트는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과학으로부터의 예측, 예측으로부터의 행동'이라는 주장을 폈다. 백과사전은 이러한 실증주의적 진보의 개념을 확증하는 대표적인 매체라고 할 수 있다. ● 백과사전에는 흔히 대(大)--작가는 이 글자에서 아버지 부(父)를 떠올린다. 그것은 선재하는 상징적 질서의 위상을 알려준다--붙듯이, 세세한 항목을 담는 백과사전에는 세계를 분류하고 설명하며, 앎으로서 소유하고 지배한다는 담론이 깔려있다. 담론과 권력은 분리불가능하다. 현재에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실증주의에 충실한 교육법이란 발견된ㅍ지식들을 백과사전식으로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실증주의적 세계관이 발견된 지식이 아니라, 확립된 지식으로 변모하는 순간 보수적 이데올로기가 된다. 진도 나가듯 학습하다 보면 진보가 가능할 것이라 믿어진다. 필자의 학창시절 참고서 이름이기도 했던 '완전 정복'은 단지 시간의 문제일 따름이다. 이러한 시간관은 공간 또한 계층화한다. 가령 저기에 미개한 나라가 있고 여기에 선진국이 있다. 그렇게 시간은 공간을 점령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 지식이 사회의 진보를 담보할 수 있다는 근대적 사고는 근대가 저물어감에 따라 역사화 된다. 그것은 한 때 필연적이었지만 지금도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아틀라스' 전은 세계를 떠받히고 있던 거인 아틀라스의 형상이 디지털 시대의 빅 데이터에 자리를 넘겨주고 있음을 암시한다. 작가가 책에 대해서 가지는 감정은 이중적이다. 그것은 향수에 가득 차 있지만 동시에 쓸모없는 몸체로 나타나는 것이다. 줄지어선 책들, 그 책을 채우고 있는 줄지어선 글자들은 미래를 향한 직선의 길을 고무한 근대의 상징을 말한다. 근대를 연 철학자 데카르트는 인간이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일직선으로 나아갈 것을 충고한바 있다. 단선적 인과론이나 발전주의(developmentalism)는 이러한 줄 지워진 사고에 기인한다. 거시적 차원에서 근대를 돌아본다면, 근대의 선적 세계관은 생산력의 진보와 동시에 좌우익 파시즘을 낳았던 것이다. ●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는 진보사상의 위기가 포스트모더니즘을 탄생시켰다고 보면서, 포스트모더니즘에는 보다 나은 미래라는 개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모두가 책으로 대변되는 인쇄(문자)문화의 결과는 아니겠지만,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중심 가설인 인쇄-문자문화의 선형성과 밀접한 것은 분명하다. 맥루한의 가설에 의하면 인쇄-문자 문화와 연관된 분화된 시각성이 근대적 주체와 자율적 개인도 낳았다. 책에 의해 내면적이거나 계몽적인 인간이 생겨난다. 내면적 인간과 계몽적 인간은 겉으로 달라보여도, 자신의 앎에 대한 확신이 안으로 향하는가/밖으로 향하는가의 차이일 뿐이다. 내면적 또는 계몽적, 또는 때에 따라 양자를 번갈아 수행하는 답답하고도 억압적인 부류들을 떠올릴 때, 책을 통한 앎이 인간을 얼마나 자유롭게 해주었는지는 회의적이다. ● 자율적 개인은 자유주의 사회의 모델이 되었지만, 대중소비사회에서 여전히 성취되지 않은 이상으로 남아있다. 어쨌든 책이나 문자는 조각과 회화라는 아날로그 형식과 매우 친근하며, 책을 주요 소재로 삼은 김기성의 작품들이 특히 그러하다. 책장과 책 수레가 있는 설치작품 「책장과 수레 Bücherregal und Bücherwagen」(2010) 에는 수레 위에 잔뜩 올려있는 올드 미디어, 가령 카세트, 비디오, 브라운 관 텔레비전, 모니터들과 구멍 난 책들이 동일한 반열에 오른다. 책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던 미디어들도 시간이 지나면 책과 같은 운명이 될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실어 나를 매개, 즉 미디어의 역할을 접고 폐기 처분될, 또는 박물관 속에 보존될 사물이 될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한 때 뭔가를 실어 날랐던 것들은 이제 실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 책은 지식의 이정표나 진리의 상징이 아니라, 유물처럼 다가온다. 설치작품 「수평적 기념비 Ein waagerechtes Denkmal」(2011)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백과사전이었지만 더 이상 종이로는 인쇄되지 않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한질을 구멍 뚫어 벽에 수평적으로 고정시켰다. 백과사전적 지식은 이제 컴퓨터의 검색 창으로 이동되었다. 백과사전은 사라졌다기 보다는 컴퓨터를 통해 그 원리를 더욱 확장한 것은 아닐까. 집중도에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우리의 눈은 책 대신에 크고 작은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다. 맥루한은 원초적 구술성의 문화가 아닌 문자에 기반 한 제 2 의 구술성을 말하지만, 시각에 기울어진 감각은 사라졌다기 보다 더 강화된 것은 아닐까. 모니터에 눈을 고정한 채 손가락만 움직이는 우리의 몸은 더 굳어있는 것이다. 김기성의 작품에서 중력의 작용을 더 이상 받지 않는, 그것이 놓여있고 뿌리를 내릴 토대가 삭제된 채 붕 떠 있는 훼손된 책들은 더 이상 정보매체로서의 작동을 정지하고 한 시대를 기념하고 있을 따름이다. ● 기념비는 무덤과 친숙하다. 모든 기념비는 죽은 다음에 세워진다. 백과사전을 소재로 한 작업들은 성상파괴나 진리에 대한 바바리안적 태도를 떠올리지만, 예술 특유의 방식으로 시간을 가속화시켰을 뿐이다. 이후 그가 도서관이나 헌책방 등지에서 수행한 작업들은 말 그대로 책의 세계를 무대로 한 것이다. '책은 하나의 세계이고 세계는 한 권의 책'이라고 말한 보르헤스에게서 그랬듯이, 김기성의 작품에서 책은 하나의 세계이고 우주이다. 그것이 특정 시대의 매체계를 우주라고 표현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최신 스마트 폰의 이름에서도 발견된다. 세계와의 관계라는 차원은 책의 확장인 도서관이나 헌책방도 마찬가지다. 추억의 장소로 변모하는 헌책방, 그리고 책 이외에도 다른 정보매체를 적극 끌어들이는 현대 도서관의 변모는 책의 위상 변화와 함께 하는 것이다.
작품 「The Screen Saver Show」(2010)는 쾰른의 미디어 아트 아카데미의 도서관 내 열람 모니터를 이용한 장소 특정적 작업이다. 도서관에 설치된 열람 검색 컴퓨터 6 대에 한국, 독일, 영국의 백과사전들에서 발췌한 약 8 만여 이미지들이 스크린 세이버 프로그램을 통해 무작위로 재생된다. 누군가 도서관의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하면 사라지는 그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서는 정보가 아니다. 그것은 정보의 세계에 대한 상징이며, 본격적인 정보탐색을 위한 장식적인 인터페이스 역할을 수행한다. 아직 아이디어 스케치로 남아있는 김기성의 구상은 도서관을 텅 비워 놓는 것이다. 작가는 이 텅 빈 도서관의 공간연출을 통해 책이 사라진 문명의 풍경을 예시한다. 독일과 한국에서 행해진 최근의 『헌책방 프로젝트』는 헌책방의 책들을 거꾸로 꽂는 작업이다. ● 퍼포먼스이자 설치 작업인 헌책방 프로젝트는 관객에게는 사진작품으로 보여진다. 「헌 책방 프로젝트 –침묵의 서책들」(2012) 은 구멍 뚫기와 마찬가지로 책을 소격시키는 또 다른 방식이다. 제목과 저자를 포함하여 책에 대한 핵심적 정보가 기록된 책등이 은폐됨으로서 책에 대한 물성만이 강조된다. 책의 표면이 아닌 책의 이면(배면)은 침묵의 풍경으로 드러난다. 기표가 제거된 대상은 모호한 사물이 된다. 사물은 상품이나 예술과 달리 침묵한다. 책이 침묵함으로서 책 안팎을 둘러 싼 다양한 것들--'책장, 사다리, 탁자, 의자, 창문, 조명 등 헌책방 주인의 취향과 진솔한 삶의 모습을 대변하는 물건들'--즉, 책이 놓여있었던 맥락이 부각된다. 비좁은 장소에 빼곡하게 책이 진열되어있는 헌책방을 대형카메라로 잡은 장면에서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책의 단면들이 이리저리 되는대로 확장된 헌책방의 독특한 구조들과 맞물려 장관을 이룬다. ● 작가는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누르스름하게 변한 책들에서 또 다른 자연을 발견한다. 즉 나무에서 만들어진 종이가 다시 나무로 회귀하고 있음의 발견이다. 작가는 '인간은 나무를 종이로 바꾸는 게 문명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인생을 시작한다. 하지만 인생을 마감할 즈음엔 나무는 그냥 나무로 남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ichard Booth, My Kingdom of Books)는 말을 인용한다. 나이테라는 단면이 시간의 흔적을 기록해온 공간이듯, 수많은 책들의 단면 또한 마찬가지다. 헌책방 프로젝트는 책을 훼손하나 공공장소에서의 작업이라는 큰 부담 없이 책에 대한 작가의 사유를 풀어내는 대안적 방식이다. 물론 헌책방도 유통과 진열, 판매기능이란 것이 있지만, 결국은 책과 운명을 함께 하는 것이다. 그가 찾아낸 서울 서촌의 헌책방은 서울시가 매입하여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단양에서 찾아낸 책방은 산 속 깊은 곳에 있다. ● 우리나라 헌책방의 경우 1970 년 경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어디보다도 빠르게 정보고속도로가 뚫린 나라답게 책과 관련된 풍경은 고풍스럽다. 물론 책이란 매체는 인간이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한 남아있을 것이라 믿어지지만, 백과사전처럼 단순히 정보를 담아 전달한다는 방식으로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회화나 조각은 말할 것도 없다.구멍 뚫은 백과사전을 투사한 광학 기계와 마찬가지로 사진가가 찍어준 장면들은 필름 카메라에 담겨있다. 오래된 책은 물로, 슬라이드 프로젝터나 필름 카메라 등, 구 매체들은 예술작품을 통해 연동되면서 새로운 쓸모를 만들어가고 있다. ■ 이선영
Vol.20160317d | 김기성展 / KIMKISEONG / 金基成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