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복展 / LEEYUNBOK / 李允馥 / sculpture   2016_0317 ▶ 2016_0330

이윤복_Woman_스테인리스 스틸_51×30×16.5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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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317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안국동 7-1번지 Tel. +82.2.738.2745 www.gallerydam.com cafe.daum.net/gallerydam

이윤복는 스테인레스라는 가장 견고한 금속을 손 해머를 두드려 작업한 작업을 한다. 스테인레스 스틸의 평면을 입체로 만들기 위해 긴 시간을 노동으로 망치질과 용접, 또다시 망치로 두드리고 숱한 사포질을 통해서 용접후의 상흔은 사라지고 하나의 유기체로 변신을 하게 된다. 그 형태는 물방울로 사라지기 전의 사람의 형상일 수도 어스름한 안개 속에 보이는 그의 뒷모습일 수도 있다. 이윤복의 작업에서 스테인레스의 딱딱함은 사라지고 액체와 같은 흐름만을 보여주고 있다. 평론가 최태만은 이윤복의 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이윤복_Hello!_스테인리스 스틸_12×21.5×21.5cm_2016
이윤복_Boy_스테인리스 스틸_12×7.5×6cm_2016

이윤복의 작품에서 표면의 투명성은 재료가 지닌 강도(强度)를 잠시 잊어버리게 만든다. 때로는 지구로 떨어진 운석이 되었다가 때로는 마법의 거울이 되기도 하는 그의 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투명한 덩어리이며, 노동의 승리를 알리는 증거이자 우리의 의식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그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경험이다. 언젠가 그의 작품 앞에 섰을 때 나는 내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 분해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은 적 있다. 만약 그의 작품이 마력을 지닌 것이라면 바로 이러한 자기상실을 유혹한다는 데 있지 않을까. 현실세계에서 나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비록 그것이 찰나에 일어나는 '지각의 착오'일지언정 이 마법의 공간 속으로 빨려 드는 것은 흥미진진한 모험임에 분명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실재와 가상을 매개하는 통로일지 모른다. 무거우면서도 금방 날아가 버릴 것처럼 가볍고, 견고하면서도 마치 투명한 젤라틴 덩어리처럼 부드러운 그의 작품은 모방을 거부하는 '이상한 나라'의 자기복제적 생명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포분열을 하지만 동일한 형태로 복제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그런 생명체. 그래서 나는 그가 말하는 진화란 말을 다른 방식으로 수긍한다. 그것은 형태의 진화를 일컫는 말일 것이다. ● 이윤복은 말한다. "작품은 정신과 육체의 한계의 경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몸의 아픔을 느끼면서 자고, 그리고 일어난다. ..……나에게는 작업의 과정도 작품의 일부이다" 라고(覺書). 자신의 분신 혹은 타자(他者)라고도 해야 할 작품과의 끝없는 대화와 갈등, 영혼은 이것들을 작가와 함께 하며, 작품 속에 무(공허)라는 요소로 작용한다. 작가에 의해서 '우연' 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은밀한 작업과정의 집적, 혹은 총체야말로 영혼의 궤적, 흔적 혹은 기척 그 자체이며, 마침내 작품은 '영혼의 은유' 로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게 된다. 스테인리스를 굴곡시킨 거울과 같이 갈고 닦은 작업은 모두 기묘하게 인간적이다. 우리가 거기에 우리의 영혼이 비추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 갤러리 담

이윤복_Lady_스테인리스 스틸_21×8×9cm_2016
이윤복_Body_스테인리스 스틸_115×48×37cm_2016

신의 손, 조각가의 손 ● 로댕의 조각 중에 신의 손이란 조각이 있다. 거대한 손이 한 쌍의 남녀를 빚어 만드는, 신의 손에 의해 생명체가 탄생하는 극적 순간을 조형한 것이다. 비록 신의 손을 조형한 것이지만, 그 조형은 그대로 예술가의 손에도 해당한다. 비록 형상에 지나지 않지만, 신이 그랬던 것처럼 인간을 빚어 만드는 로댕 자신의 자부심이 반영돼 있다. 이처럼 특히 조각가의 손은 예전에 신의 손이 속해져 있던 위상을 물려받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조각가의 손은 존재의 내면과 외면을 아로새겨 존재가 오롯이 드러나게 하는, 존재의 존재다움이 부각되게 하는 도구다. 여기에 스테인리스스틸을 소재로 한 노동집약적인 조각이 있다. 한갓 소재로 하여금 집합과 해체, 부분과 전체와의 유기적인 관계, 밑도 끝도 없이 반영하고 반영되는 반영상, 그리고 상처와 치유의 메타포와 같은 관념을 표상하는 조각이다. 빠르고 편한 것을 추구하는 세상인심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서, 직조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걷기와 느리게 살기 그리고 신성한 노동을 추구하는 영성체험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서, 그래서 오히려 그만큼 더 귀하다. ● 비결정적인 그리고 비정형적인. 개인차가 있겠지만, 이윤복의 작품을 접한 사람이면 누구나 그 조형이 주는 매력에 사로잡힌다. 뭐, 개인적인 인상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여하튼. 보통 스테인리스스틸 소재로 치자면 빛을 난반사하는 금속성의 표면질감이 기하학적인 형태와 어우러진 조형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작가의 경우에서처럼 비정형적인 형태며 유기적인 형태에 이 소재가 적용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소재 자체가 다루기가 쉽지 않은 것과도 무관하지가 않을 것인데, 보기에 따라서 소재를 무슨 흙 주무르듯 하는 작가의 작업이 갖는 자유자재한 표현이며 유연한 형태가 그래서 오히려 더 감각적으로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소재가 다루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단조 곧 두드리기, 굽히기, 용접하기, 그리고 최종적으로 광내기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제작과정에 흘렸을 피와 땀이 무색할 정도로 형태는 가볍고 샤프하고 매끄럽다. 지난한 노동과 함께 원하는 감각의 정점을 정확하게 캐치하고 있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고, 지난한 노동이 가볍고 샤프하고 매끄러운 형태 뒤로 사라지는 지점에 대한 몸적인 이해가 없이는 성사되기 어려운 일이고, 중량감이 공기 속으로 휘발되는 지점에 대한 감각적인 이해가 없이는 성취되기 어려운 일이다. 소재를 흙 주무르듯 하는, 어떠한 중량감도 느껴지지가 않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치열했을 노동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는, 그런 면면들이 뒷받침되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 덧붙이자면, 형태는 무수한 섬세한 굴곡들로 구조화돼 있음에도 어떠한 이음새도 찾아볼 수가 없고, 그 섬세한 굴곡들 위로 반영상이 미끄러질 만큼 완벽한 표면을 보여주고 있다. 굴곡들 위로 반영상이 미끄러진다? 수사적 표현이라고 하겠지만, 실제로 작가의 작품 앞에 서면 반영상의 형태를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섬세한 굴곡과 완벽한 표면이 반영상을 왜곡시켜 비정형의 형태로 견인하고 비결정적인 형태로 유인한다. 예기치 못한 형태를 되돌려주는 거울이라고나 할까. 거울치고는 참 희한한 거울이다. 작가는 작품이 과정을 통해서 진화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진화는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이처럼 변화무상한 반영상에도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다시, 작품이 과정을 통해서 진화한다는 말은 형태가 사전에 전제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과정에서 형태가 결정된다(형태가 스스로를 결정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게 작가의 조형은 서 있는 사람 같기도 하고, 웅크리고 있는 사람 같기도 하고, 흘러내리다 맺힌 물방울 같기도 하고, 흐르다 만 눈물 같기도 하다. 다만 그렇게 보일 뿐 분명한 것도 결정적인 것도 없다. 그렇게 비결정적인, 비정형적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암시적인 형태가 이거지 싶은 알만한 세상의 모든 형태를 싸 안는다. ■ 고충환

Vol.20160317c | 이윤복展 / LEEYUNBOK / 李允馥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