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 김서경운성(김서경+김운성)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일요일_11:00am~05:00pm
갤러리 고도 GALLERY GODO 서울 종로구 율곡로 24(수송동 12번지) Tel. +82.2.720.2223 www.gallerygodo.com
사회예술로서의 소녀상 현상 ● 서울 도심의 주한일본대사관 앞에는 한 소녀가 앉아있다. 단발머리에 치마저고리를 입은 소녀는 맨발에 두 주먹을 쥐고 전방의 주한일본대사관을 응시하고 있다. 일본군의 성노예로 고통 받은 소녀의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역사적 사건을 다룬 일반적인 공공미술 작품들과는 달리 상당히 절제된 형상 표현을 보인다. 치마저고리의 소녀상과 그 옆의 빈 의지와 바닥의 할머니 형상 그림자. 이 작품의 외형이다. 세부를 들여다보면 경직된 얼굴 표정, 주먹 쥔 두손에는 분노가 서려있다. 댕기머리는 단발머리로 뜯겨 나갔다. 뒤꿈치를 살짝 든 맨발에는 살아돌아온 후에도 외면받은 불안한 삶이 담겨있다. 소녀의 어깨 위 새는 먼저 돌아가신 할머니들과 연결하는 영매다. 빈 의자는 먼저 떠난 이들의 자리이자 관객이 함께 할 수 있는 참여의 자리다. 바닥 좌대에 새겨진 할머니 그림자에는 환생을 뜻하는 나비가 있다. ●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는 1992년 1월 8일부터 지금까지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이 집회가 1000회를 맞이한 2011년 12월 14일에 일본 대사관 앞 도로변에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했다. 수요시위의 20주년을 기념하는 일이었다. 애초에는 기념비를 구상했지만 예술작품으로 방향을 잡았다. 작품 제작은 김서경운성이 맡았다. 김서경(1964-)과 김운성(1965-) 부부가 함께 하는 아티스트 듀오 '김서경운성'은 위안부 할머니를 소녀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국가폭력의 희생자를 표현하기 위하여 앳된 소녀시절 당시의 모습을 끌어냄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시간거리를 좁힌 것이다. 또한 그것은 이들이 추구해온 따뜻한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인물형상조각의 전형적인 언어이기도 하다. ● 김서경운성은 같은 대학 같은 학과 출신이다. 이들은 대학 졸업 후부터 '조소패흙' 동인활동을 시작으로 형상조각 작업을 해왔으며, 각자 수차례의 개인전을 열어왔으며, 10회에 걸쳐 2인전을 열었다. 2002년 주한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미선·효순양 10주기 추모 조형물인 「소녀의 꿈」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선교교육원에 설치하기도 했다. 역사적 사건을 추념하고 상처를 위로하는 예술가의 마음이 담긴 프로젝트이다. 서울역사박물관 앞 전시돼 있는 「전차 381호」 안팎의 조각 작품 「전차와 지각생」도 이들의 작품이다. 역사성과 장소성을 살린 공공미술 작품으로 익히 시민들과 친숙하게 만나온 예술가 듀오다.
'의자에 앉아있는 소녀'라는 익숙한 어법으로부터 출발한 이 작품은 예술작품의 역사성과 장소성 문제를 상기하게 해준다. 근대 이후의 미술에서 여성의 모습은 가장 평범한 예술적 표현의 소재였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모자상, 소녀상, 여인상 등의 형태로 여성의 모습을 담았다. 근대 이후의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한 특정한 관념, 가령 현모나 양처, 사색하는 소녀, 독서하는 소녀, 성적으로 대상화한 객체로서의 관능적인 여성 등의 모습이 그것이다. 이러한 통속적인 맥락의 여인상들이 식상한 그 식상한 메시지로 인해 별로 주목하지 못하는 반면에, 「평화의 소녀상」은 매우 강력한 대시민 소통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 소녀상의 주목도는 역사성과 장소성에서 나온다. 이 작품은 관념적인 여성상의 한계를 넘어서는 공공미술 작품이다. 예술작품은 그것이 놓인 장소에 따라 의미생성의 맥락이 달라진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이 소녀상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어린 시절 모습이다. 이 소녀상이 놓인 공간의 바닥에 있는 그림자는 세월의 흐름을 반영한 할머니의 그림자이다. 소녀상 옆에는 빈 의자 또한 아픈 역사를 지나 온 소녀의 손을 관객들이 잡아줄 수 있도록 유도하고 배려한 장치이다. 관람객들은 이 소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소녀의 손을 꼭 잡고 고난의 역사를 살아간 소녀를 위로하는 따뜻한 마음과 우리에게 주어진 팍팍한 현실을 성찰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는다. ● 이 작품은 수난의 역사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던 20세기 한국의 상처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과거사 문제를 의제화 하고 있다. 여성의 신체를 예술작품 제작의 소재로 대상화해온 근대적 예술가들의 관행과 달리 이 작품 「평화의 소녀」는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우리시대의 시민들이 폭넓게 공감할 수 있는 예술적 소통을 만들어냈다. 시민들은 평화의 소녀에게 자아를 투영한다. 그들은 이 작품 앞에 서서 소외와 억압의 역사를 살아온 20세기 한반도의 한국인들의 힘겨운 역사를 자신의 현실에 비춘다. 따라서 소녀상은 탈식민의 서사를 담은 공공미술 작품으로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예술적 소통의 주제로 채택하여 의제화 했고, 그것을 쟁점화 하고 있다.
예술작품이라는 상징은 사적으로는 작품과 감상자간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공간이지만, 크게 보면 공론영역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상징투쟁의 장소다.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전쟁에서 발생한 국가폭력의 상처를 상징한다. 그것은 예술작품이 얼마나 치열한 상징투쟁의 장으로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소녀상은 위안부 합의 이전부터 전 국민으로부터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의 과거와 현재를 담은 이 작품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놓여 탁월한 장소성을 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때 일본의 한 우익 인사가 현장을 방문해서 '다케시마는 일본땅'이라고 쓴 팻말을 의자에 묶고 사진을 찍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소녀상 말뚝테러가 발생했다.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외면하는 일본인의 태도는 국민적 공분을 유발하기도 했다. ● 이렇듯 국민정서를 자극하는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이 작품은 현대미술 작품으로는 보기 드물게 온 시민으로부터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한일 일본국 위안부 합의문 발표 이후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소녀상 철거에 반대하는 청년들의 노숙이 이어지고 있다.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외면하는 일본의 태도는 국민적 공분을 유발했으며, 특히 소녀상 철거를 전제로 합의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이 작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더욱 커졌다. 한겨울 혹한에도 이어진 소녀상 지미키 청년들의 노숙과 온 국민의 관심은 가히 '소녀상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열기를 띄고 있다. 나아가 그것은 소녀상 현상의 주체가 민족주의가 호명하는 국민인지, 아니면 민주주의적 성찰을 내포한 시민인지를 놓고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소녀상 현상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은 피해자 한국인의 민족주의 정서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것이 민족감정을 자극한 선동적인 어법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소녀상 현상을 둘러싼 민족/국가주의 관점으로부터 사회적 관점으로 프레임 전환을 한다면 이 작품을 둘러싼 과정과 결과의 풍부한 맥락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소녀상 현상은 오작동하는 국가와 저항하는 사회의 대결이다. 나아가 그것은 예술의 사회적 맥락, 즉 사회적 예술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평화의 소녀상」은 사회적 소통 과정을 거쳐 예술적 소통을 매개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사회예술(Social Art)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예술의 사회적 소통을 위하여 결과만큼이나 과정을 중요시하는 사회예술의 면면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회예술은 비판예술, 행동주의에술, 공동체예술, 공공예술 등 사회적 소통 맥락을 강조하는 예술이다. 비판정신과 공공성을 강조하는 것이 느슨한 사회예술이라면, 행동주의와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것은 본격적인 사회예술이다. ● 사회예술로서 이 작품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첫 번째 틀은 비판예술이다. 비판예술은 객관대상에 대한 예술가주체의 비판정신을 근거로 하며 예술적 표현을 통하여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추구하는 예술이다. 「평화의 소녀상」은 비판적 리얼리즘의 관점을 조각작품이다. 김서경운성은 1980년 이래 한국사회의 변혁에너지와 함께 등장한 민중미술운동의 당사자다. 1980년대 후반 학생미술운동에 가담했던 이들은 민중미술의 역사를 갈무리한 전시 「민중미술 15년전」(국립현대미술관, 1994)의 출품작가이기도 하다. 이들의 작품은 일관성 있게 형상조각을 바탕으로 역사와 당대, 리얼리티와 판타지, 구조와 개인 사이의 관계를 성찰하는 비판적 메시지가 담겨있다. 소녀의 자세와 동작, 위치, 시선 등은 비판적 리얼리즘 관점에서 인체형상조각을 다뤄온 이들의 미학적 태도를 잘 보여준다.
두 번째 틀은 공공예술이다. 이 작품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이라는 장소에 공적재원을 토대로 과거사 문제라는 공공의 의제를 다룬 공공예술 작품이다. 평범한 소녀상의 외형을 가진 이 작품은 예술적 소통에 있어서 장소성이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절감하게 한다. 이 작품은 정대협은 물론 국내외 30여 도시의 시민들과 학교, 지자체 등이 나서서 재정과 후원 체계를 마련하면서 다양한 버전의 기념비조각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 작품의 낮은 자세와 열린 태도에서 나온다. 이 작품은 낮은 공공미술의 미덕을 가지고 있어 시민들과 소통하며 공감대를 확산하는 힘을 발산한다. 대부분의 기념비조각들이 높은 좌대 위에 우뚝 서서 수직상승의 권위를 발산하는 데 비해, 이 작품은 높이 130cm의 작은 조각으로 수평확장의 감성으로 공감대를 넓힌다. 나아가 그것은 열린 공공예술 작품으로서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소녀 옆의 빈 의자 또한 시민의 공감 속에 함께 문제해결을 제안하는 열린 공공예술로서 이 작품은 관객과의 적극적으로 상호작용을 통하여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고자 하는 예술공론장 그 자체다. ● 공공예술은 새로운 주문생산이라는 맥락에서도 매우 중요한 예술개념이다. 「평화의 소녀상」은 시민사회나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요청에 따라 제작 설치하는 새로운 주문생산 방식으로 호응을 얻었다. 김서경운성은 흔쾌하게 주문생산을 수용한다. 그것은 전근대 시기의 일반적인 예술생산 방식이었던 주문생산을 동시대적인 의사소통 과정을 거치면서 새롭게 적용하는 일이다. 김서경운성은 창작의 발상에서 결과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정대협과 의논하고 합의를 통해서 결정했다. 수많은 지역에 시민주체들과 새롭게 설치해온 작품들도 이와 같은 경로를 거쳐 왔다. 예술가의 창의력과 사회적 합의에 따른 예술창작 요청이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공동체예술이다. 공동체예술은 예술가 주체와 시민주체의 상호부조와 공존, 협업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예술개념이다. 김서경운성은 위안부 할머니들은 물론 정대협이라는 시민단체와 함께 다양한 방식의 협업을 진행하면서 예술적 소통 과정에서 공동체와 동행하고자 했다. 이 아티스트 듀오는 철저한 협업으로 작업한다. 예술가와 시민활동가의 협업도 그렇지만, 특히 부부간의 역할 분담도 상호부조와 협동의 공동체정신에서 나온다. 이 작품은 제국주의 폭력의 피해 당사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식민지배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민족 정동을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민족과 국가를 호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의 비평적 논쟁이 일고 있지만, 이 작품이 일본 제국주의와 한국의 국가주도형이 민족/국가주의예술과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 사회예술로서 이 소녀상에 주목하게 하는 네 번째 예술개념은 행동주의예술이다. 그것은 일본군 위안부 여성의 상처와 과거사 문제라는 의제를 쟁점화 한 행동주의예술이다. 행동주의예술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변화다. 김서경운성의 삶과 예술은 사회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자신들의 작품을 작가주의의 권위로부터 벗어난 사회적 실천의 길에 내려놓는다. 최근 김서경운성은 「작은 소녀상」 프로젝트를 벌였다. 3D프린팅 기술로 비용을 절감해 다량의 작은 소녀상을 만들어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염원하는 뜻을 나누기 위해서다. 크라우딩 펀딩업체와 3D업체, 그리고 피규어제작사와 협업하고 있는데, 온라인 모금을 시작한 지 이틀만에 목표치를 넘어설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이렇듯 이 듀오는 사회적 의제를 쟁점화하기 위하여 근대적 개념의 예술작품이 고집해온 작품의 일품성이나 저작권 등의 문제를 매우 유연하게 풀어서 탄력적인 대 시민 소통의 경로를 확산하고 있다. ● 끝으로 언급하고자하는 것은 민족주의 프레임의 비평 논점이다. 분명히 소녀상은 민족과 국가의 정동을 호명하는 민족/국가주의 예술작품이다. 민주주의와 민족주의 담론 두 축은 한국 현대사를 견인한 정신적 에너지다. 4·19 혁명의 민주주의 정신은 5·16 쿠데타라는 민족주의를 앞세운 국가주의 정신으로 바뀌었다. 모든 인식과 실천의 제1원칙으로 국가의 이익을 앞세우는 국가주의의 이데올로기는 계급과 지역, 성별, 세대를 불문하고 최고의 가치의 준거로 자리 잡았다. 예술 또한 마찬가지였다. 국가의 이해와 요구를 수렴하는 예술. 그것은 가히 국가주의예술이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그것은 민족주의나 애국주의와도 짝패를 이루는 개념으로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이어져온, 반일이나 반공의 국시를 계승하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1968년에 시작된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는 국가주도 민족/국가주의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벌였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민족과 국가의 이름으로 공동체의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문화정치 차원의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이어졌다.
일본군 위안부 협상 타결 이후 주목받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의 경우, 또 다른 맥락에서 역사적 기념인물상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2015년의 위안부 관련 한일협정이 있기 꼭 50년 전인 1965년의 한일협정은 일본제국의 침탈에 대한 사과와 적절한 배상이 없는 상태에서 한일수교에 이르렀다. 태평양안보라인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주도하에 1951년부터 14년에 걸쳐 이어진 한일국교정상화 협의는 두고두고 문제를 낳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당시의 굴욕적인 협상 타결의 구조와 과정은 50년 후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일본군 위안부협상 또한 미국의 대 중국 관련 이해관계를 반영하기 위하여 막후의 힘에 의해 진정성있는 사과와 적절한 배상없이 타결에 이르렀다. 게다가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는 대가로 배상금이 아닌 기금을 출연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이 협상은 반역사적인 졸속 협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상징의 힘을 재확인할 수 있다. 위안부 의제를 둘러싼 기억투쟁으로 작동했던 「평화의 소녀상」은 이제 위안부 협상 타결을 반대하는 이들의 상징으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민족/국가주의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어떤 주체가 주도한 프로젝트에 따라 상반된 결과를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김서경운성의 「평화의 소녀상」은 민족/국가주의 관점의 작품이면서도 국가주도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관점의 독해가 필요하다. 소녀상 현상을 높고 보건대 대한민국은 국가와 사회의 공론이 분리된 나라다. 나라와 백성의 뜻이 다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라와 겨레의 문제를 다루는 예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평화의 소녀상」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소녀 또는 소녀상에 부과되는 상투성의 한계를 넘어 제국주의전쟁의 상처를 다루는 역사성과 일본대사관 앞이라는 장소성을 토대로 분노와 치유의 기억투쟁이다. ● 역사는 집단의 기억을 직조하는 서사다. 역사적 모티프를 다루는 예술, 특히 역사적 인물을 다루는 기념인물상은 공동체의 기억을 표상하는 상징으로서 역사적 서사를 확대재생산하는 유력한 예술적 소통 방법이다. 일본군 위안부 졸속 협상의 대가로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할 것이라는 논란에 청년들이 한데서 밤새며 작품을 지키고, 협상 타결을 부정하는 온국민의 마음이 소녀상에게로 쏠리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작품이 얼마나 강력하게 나라와 겨레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강렬한 상징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국민과 시민, 그리고 개인의 정체성을 가진 우리에게 이 소녀상은 공동체의 연대감을 확인할 수 있는 상징으로서 다가서고 있다. 그것은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되어 성노예로 고통받은 아픈 역사를 추념하고 직접적 피해당사자는 물론 그 역사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시민사회와 개인들에게 다가서는 사회적 소통으로서의 예술공론장이다. (2016) ■ 김준기
Vol.20160315d | 소녀상 Peace Monument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