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스기의 섬

고경애展 / Ae Goh(GOHKYUNGAE) / 高京愛 / painting   2016_0303 ▶ 2016_0424 / 일,공휴일 휴관

고경애_단지 잊기 위하여_캔버스에 유채_90.9×116.7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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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303_목요일_06:00pm

후원 / 로얄&컴퍼니(주)

관람시간 / 11:00am~07:00pm 토요일_11:00am~05:00pm / 일,공휴일 휴관

갤러리 로얄 GALLERY ROYAL 서울 강남구 논현로 709 로얄TOTO빌딩 6층 Tel. +82.(0)2.514.1248 gallery.iroyal.kr blog.naver.com/galleryroyal

Q. 이력이 특이하다. 미술 전공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작업으로 일본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처음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주센다이총영사관에서 한일문화교류의 일환으로 작가들을 초대해 작품전을 열었는데, 거기에 서 와타나베 타케히코(渡邉 雄彦) 선생님의 정물화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테이블 위에 가면과 새가 있는 정물 이었는데, 만나뵙고 싶어지더라.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일본작가의 도움으로 선생님께서 지도하고 있는 河北(가호쿠) tbc문화센터의 유화반 학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2007년 초봄의 일이다.

고경애_니나 부슈만_캔버스에 유채_116.7×116.7cm_2010
고경애_호쿠사이의 나팔꽃의 청개구리_캔버스에 유채_97×130.3cm_2010

Q. 한국에서는 처음 가지는 개인전이라고 알고 있다. 일본에서 고경애 작가는 어떤 작업들을 해왔는가 ● 여전히,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싶었던 대로 캔버스에 옮기는데, 특히 인물화가 많다. 2010년도에 '모차르트 카페'와 '모차르트 아틀리에'에서 열렸던 개인전은 첫 데뷔전이라고 볼 수 있는데, 1년 반을 준비해 16점의 작품을 출품 했다. 그 중 13점이 인물화다. 인물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같은 맨션에 사는 '키미코 '할머니는 나의 첫 모델로 그녀의 기억이 거의 남아 있을 때 까지 그 모습을 기록했다. 지금은 연세가 있으셔서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시간의 옷'은 내 여동생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를, '단지 잊기 위하여'는 연극을 하던 중학교 친구의 자살 소식을 듣고 아픔과 슬픔을 기록하기 위해 나를 그린 것이다. 전시 때 그 그림을 보고 눈물을 보였던 관람자가 있었는데, 그림이 말을 걸 수 도 있다는 생각에 놀랐고, 그 힘에 놀랐다. 2011년 일본 문화의 날에 열렸던 '레퀴엠(진흥곡)'전에 출품한 모든 작품에서는 공포와 불안과 우울함이 가득하다. 동일본대지진을 겪고 난 후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전시를 함께 준비했던 시인 프리에레누 베르페(미화코상)씨가 간병 중 돌아가셨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해엔 '존재의 불행'에 대해 깊이 고민했던 것 같다.가장 최근에 있었던 토갠도 갤러리 개인전에서는 처음으로 작품을 하는데 있어 제약이 있었다. 캔버스 사이즈는 작을 것, 인물화가 아닌 정물화를 중심으로 20점을 그려달라고 하더라. 판매가 되어야 하니까. 그건 하나의 실험이기도 했는데, 결과는 좋았다. 그중 '다카하시'라는 일본 아주머니가 기억에 남는다. 그림 세 점을 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겨울이 오면 '겨울장미'를 걸고, 봄이 오면 '카미스기'를 걸고, 여름이 오면 '염소' 그림을 걸고 싶다고 하더라. 내가 그린 그림이 다른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대부분 내 작업은 사진을 견본으로 삼아 진행 되는데, 의도할 때도 있지만 어떤 우연에 의해서 결과물이 나온다고 말하는 게 솔직할 것 같다. 그게 사실이기도 하니까.

고경애_키미코와 우타가와 요시토라_캔버스에 유채_130.3×97cm_2009
고경애_우리들의 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145.5×145.5cm_2012

Q. 전시의 타이틀이 마치 시어(詩語) 같다. '카미스기의 섬'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 센다이에 카미스기(上杉)라는 아름다운 동네가 있다. 주택가로 볕이 좋고, 조용해서 새 소리가 유난히 아름답게 들리는 동네다. 「우연이」 그곳에서 첫 둥지를 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내가 바라던 '나'를 만났고, 오직 나 자신에 이르기 위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섬'은 내가 닿고자 했던 생명을 잉태 하는 창조의 열정이다. 뒤돌아보면, 일본에서의 처음과 마지막을 그곳에서 보냈으니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고경애_생명의 찬가_캔버스에 유채_112×145.5cm_2010
고경애_겨울아침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13

Q. 인물들과 함께 등장하는 동물들이 보인다.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는 것인가 (나비, 두루미 등) ● 그것은 '나' 자신이다. 예를 들어, 키미코 할머니의 발밑에 있는 꽃, 그녀의 곁을 지나가고 있는 참새와 나비는 우리의 긴밀한 관계, 즉 영적인 교감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녀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는데, 그 게 그녀의 삶이었다. 나는 자주 위층에 사는 할머니를 불러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그림책도 보며 따뜻한 휴일엔 외출도 함께 했는데..., 그러면서 내 삶의 일부가 되더라. le의 초상화에도 같은 애정이 담겨 있다. 2011. 3.11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후엔, 하나의 선이 등장 하는데 그 역시 나 '자신'을 표현한 것이지만, 그 의미는 앞의 것과 다르다. 2008년도부터 내 작품을 눈여겨봤던 어떤 관람자 분이 '레퀴엠'전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따뜻함이 사라졌다고. 나는 아무런 의도도 없이 내 심정을 담았을 뿐인데 관람자가 알려 주더라. 그래서 알았다. 지진에서 살아남았지만 잃어버린 것이 더 많다고.

고경애_리베르테(자유)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5
고경애_환원_캔버스에 유채_145.5×145.5cm_2011
고경애_인간은, 인간의 통로_캔버스에 유채_162×97cm_2011

Q. 작가에게 작업이란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소모하는 일이다. 어떻게 채우는가 ● 피난처와도 같은 작업이 힘들지 않다. 오랫동안, 회사일이 끝나고 남은 시간을 이용해 그림을 그려서인지 노동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그 행위가 그림을 그리는 것 뿐이지. 그래서 육체적으로 지치긴 해도 내면이 소모되진 않는 것 같은데. 하지만, 삶의 표면적인 방식(휴대폰과 텔레비전 없는 생활, 출퇴근은 걸어서)이 작업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을 채워주는 건 확실하다. 한국에 와서는 휴대폰 없이는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로 되 있어 갖고 있긴 하지만.

Vol.20160303d | 고경애展 / Ae Goh(GOHKYUNGAE) / 高京愛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