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6_0204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갤러리 피치 GALERIE PICI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87길 25(청담동 122-22번지) Tel. +82.2.547.9569 www.galeriepici.com
지금, 여기에서 마주한 환상 ● 우리는 상상을 한다. 이는 어쩌면 가장 인간다운 본성 중에 하나일 지 모른다. 그 상상은 먼 훗날 나의 미래일 수도 있고, 지금 당장 내딛는 발걸음을 통한 기대일 수도 있으며 과거에 대한 기억일 수도 있다. 이를 누군가 말한 상상계나, 초인에 대한 기대 혹은 시뮬라크르의 세계로, 아니면 좀더 쉽게 천국이나 지옥으로 설명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나 자신이 지금(NOW), 여기(HERE)에 존재한다는 사실 외에는 모든 것이 믿기 어려운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작가 이채은은 현실(REALITY)이 투영된 환상적 이야기(FANTASTICAL NARRATIVE)를 '회화'로 나타내고 있다. ● 현실(REALITY)과 환상(FANTASY), 이 둘은 통념적으로는 매우 다른 개념이다. 그런데 상반된 방향을 가진 현실 세계(NORM)와 작가의 환상(FANTASY)과의 결합을 이채은은 '회화의 언어'로 엮어내고 있다. 회화의 특성은 평면성만이 아닌, 물감의 물성에 의해서도 규정된다. 캔버스의 천과 유화 물감이 만들어내는 결합과 분리는 회화 특유의 조형적 특성과 언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를 위하여 유화만을 고집하고 그 중에서도 고운 린넨 천을 선호한다. 린넨 위에 물감이 한겹 한겹 쌓여, 그 밑 색이 화면 속으로 배어들기도 하며 또 색을 드러내기도 하면서 유화 물감 특유의 물성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회화적 물성은 그저 물질 그 자체를 넘어서 이채은 만의 환상적인 공간을 만들어낸다. 수많은 레이어가 겹쳐지는 화면 속에서 우리는 뭔가 명확하게 이름 지을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오로지 감각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시각적 감각뿐만 아니라, 촉지적으로도 그림 속 공간의 열기를 느낄 수 있고 향기 마저 전해지는 듯 하다. 이처럼 작가의 회화를 바라보고 있으면 현실과 픽션의 공간을 넘나드는 유화 물성에 이끌려 화폭 속 다른 세계(TRANSENDENTAL PICTORIAL SPACE)의 공기를 우리의 폐에 담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이러한 환상의 공간에 이채은은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들을 하나씩 놓는다. 그리고 그 익숙한 사물을 단서로 삼아, 작가가 만든 환상의 세계를 넘나들게 한다. ● 하지만 기괴한 숲에 무지개, 말, 올빼미 등과 같은 그림 속 사물들은 분명 우리 세계에 존재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접하기는 힘든 것들이다. 어쩌면 판타지 영화나 소설에서 봤을 법한, 다시 말해 간접적으로 접했을 법한 비일상적인 사물들을 화면에 배치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자신이 만든 환상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마치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에 이끈 하얀 토끼처럼 말이다. 이러한 형상들을 통해 작가는 관람객들이 자신이 만든 환상의 세계에 마음을 열고 들어와주길 바란다. 그저 몸과 마음을 맡기고 그림 속 올빼미들처럼 고개를 기울여 보기도 하고, 화면 곳곳에서 퐁퐁 솟아나는 무지개를 보며 어릴 적 꾸던 허무맹랑한 상상들을 떠올려 볼 수도 있다. ● 고운 린넨 천 위에 켜켜이 쌓인 유화 물감, 그리고 그 물감층을 통해 만들어진 환상의 세계, 그 낯선 공간에 우리를 이끄는 어디서 본듯한 사물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그림 앞에 선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가는 듯하다. 지금, 여기에 있는 당신도 자신의 하얀 토끼를 쫓아 몸과 마음의 빗장을 풀고 이채은이 만든 환상의 세계에 들어가보면 어떨까? ■ 허나영
머리 속에서 뒤죽박죽 부유하던 단상들은 문득 어느 책의 한 구절을 읽다가 혹은 가사도 알지 못하는 제 3세계 음악을 듣다가 불현듯 떠오르기도 한다. 이렇게 꿈틀꿈틀 되살아 난 상념들은 일상적인 순간을 담은 사진들이나 SNS 등의 여러 채널을 통해 시시각각 얻어진 시각 이미지와 만나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된다. 이처럼 매 순간 보고, 느끼는 감정들이 이끄는 상상을 쫓다 보면, 어느덧 수수께끼 공간에 이르게 된다. 그 곳은 내 안에 살고 있는 아련한 기억의 공간, 가공된 가상의 공간, 그리고 이상적인 대안의 공간(Utopian Alternative Space) 그 어디 쯤으로 다중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 작업의 오랜 소재가 되어왔던 가상의 '숲'은 은밀한 쉼터임과 동시에, 죽음과 환생이 반복되며 자생하는 역설적인 공간을 상징한다. 이는 또한 과거의 잔재와 미래의 전조(轉調)가 공존하는 곳으로, 자아의 심리 상태가 몽상의 여정을 거쳐 재구성 된 것이다. 이렇게 원초적이면서도 심리적 풍경(Mindscape)은, '결코 채워지지 않을 결핍된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고, 다다를 수 없는 곳에 닿고자 하는' 우리 안에 내재된 욕구와 불안의 정서를 담고있다.
최근 작업의 가장 주된 관심사는 '소외된 감정'(Alienated feeling)에 관한 이야기이다. 매지컬 리얼리즘(Magical Realism) 문학가 미하엘 엔데(Michael Ende)가 자신의 소설 속 등장하는 인물이 처한 위태로운 심리적 상황을 회색 옷을 입은 사람들로 표현한 것 처럼, 본인 또한 '상실감과 불안'이라는 보편적 정서를 '제멋대로 우거진' 숲에 비유해 그렸다. 이를 통해 그 곳에서 '제멋대로 불거진' 위태로운 상상들이 현실 속 진부한 상념들과 상쇄되는 과정을 회화 언어로 표현하고자 했다. ● 본인에게 회화 언어란 수수께끼를 풀어가듯 모호한 이야기를 한 꺼풀씩 쌓아 올리거나 벗겨내는 방식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매체이자 디지털시대인 오늘 날의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비정형적이고 유동적인 회화 매체를 빌어, 보편적 감성을 불러 일으킬 만한 환영적(Illusory) 소재를 화면 곳곳에 배치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장치로 여기길 바란다. 이를 통해 관객들이 스스로의 내면을 투영한 자신만의 확장된 세계를 본인의 작품 위에 마음껏 펼쳐보기를 희망한다. ■ 이채은
Vol.20160202g | 이채은展 / CHAEEUNRHEE / 李彩銀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