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6_0129_금요일_04:00pm
김형곤『소박, 素朴, Naive』展 김세중『Nature, Dream, Eternity』展
후원 / 양구군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Park Soo Keun Museum in Yanggu County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박수근로 265-15 (정림리 131-1번지) 박수근미술관 내 현대미술관 Tel. +82.33.480.2655 www.parksookeun.or.kr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10기 입주작가 전시를 개최하며 ●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since 2006~)는 한국의 가장 위대한 화가 박수근선생의 깊고 열정적인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시작되었다. ● 생전에 제대로 된 작업실 한 칸 없었던 박수근선생은 창신동 마루를 아뜰리에 삼아 한국 미술사상 역대 최고의 작품들을 창작해냈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가로서 마침내 이름을 떨친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열정적이고 역량있는 작가들을 발굴하여 지원하고 있는 창작스튜디오가 어느덧 10년을 맞이하였고, 이번에 10기 입주작가인 김형곤, 김세중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 국내∙외 미술시장을 무대로 20년여 년 간 꾸준한 작품생활을 해온 두 작가는 이미 뚜렷한 작품세계관이 정립되어있는 작가이지만, 무한히 잠재되어 있는 작가적 소신과 작품세계가 아직 널리 알려지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이에 박수근미술관은 열정과 성실함으로 무장하여 묵묵히 화업의 길을 걸어가는 두 작가를 응원하고 지원하여 대한민국 미술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며, 이번 전시를 통해 보다 많은 대중들이 두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소박. 素朴. Naive ; 양구와 박수근선생으로부터의 잔상 ●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떠난 양구를 마흔이 넘어 다시 들었다. 눈에 들어오는 자연에 초연해졌었고, 소박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초상에서 깊은 울림이 들렸다. 박수근 선생의 작품을 처음 대했을 때의 그 울림과도 같은 것이었다. 생의 전반기를 이곳 양구에서 살았던 선생에게 체화된 소박성이 작품으로 구현되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꾸밈이 없고 순수한 자연 그대로'를 「소박」이라 정의하고, 그것을 삶으로 실천하였으며 작품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박수근 선생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고 싶었다.
일년 반,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을 양구에 머물렀다. 일상의 풍경과 기억에 대한 잔상을 그리는 일에 익숙한 나는, 청아한 양구의 풍경과 빛이 좋은 자연에서 자라는 「사과」와 「살구」를 그리면서 자연스레 이곳의 소박한 정서에 동화되어 갔다. 그러한 친근한 정서는 미술관과 인연을 맺고 찾아오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확장으로 이어졌다. 그들 중 몇몇은 이 나라의 안녕과 평화, 역사와 문화를 지키는 일에 삶을 헌신하고 있었다. 그들의 신념과 의지, 그동안의 노고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현재의 초상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감과 존경의 마음을 더하여...
얼마 전, 독일 수트투가르트에서 발레리나 강수진의 이름을 붙인 '난(蘭)'이 생겼단다. 아마도 생명력이 강하고 꼿꼿한 기개와 정신을 기리고자 함이 아닌가 생각된다. 미국에서 흰색 호접란을 키우며 느꼈던 부드러움과 강인함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고, 나의 의지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 그리고, 여기 강원도 양구 박수근선생의 미술관에 머무는 동안 선생의 탄생 100주년과 작고 50주기를 지냈다. 한편, 나라에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났다. 그림 그리는 일이 전부인 나는 아득하고 먹먹한 기억에 '숭고'와 '위로'의 마음을 담은 「흰장미」를 그려 바칠 뿐이다. (2016년 1월) ■ 김형곤
신화적 성상화性狀畵 ● 김세중의 작품은 사실적이다. 사실적이나 공상적이다. 사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사진 등 여러 매체의 필터링을 거친 의-사실(疑-事實)의 재현에 세밀화의 기법이 동원되고 있고, 세밀화의 특성이 그러하듯, 내러티브한 사실, 즉 공상의 차원으로 곧바로 이어지고 있다. 그의 작품은 모더니즘의 특성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으나 그 운동의 극, 즉 모더니즘의 이상으로 향하지 않는다. 연상작용으로 말미암아 상징적으로 보이는 대상물, 오브제들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으나 그로 인한 상징이나 의미의 무의미함, 무관성을 작가는 주장한다. 그렇다고 후기 구조주의나 해체주의 등 최근의 운동으로 망라되는 사상 및 문화적 흐름의 파도를 깊이 타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아마도 작가는, 자신이 언급하는 무확정성, 비명료성 등에 관한 생각을 중심으로 기존의 움직임과 차별화하거나, 때론 심하게 거부하고 반동함으로써 새로움을 추구하는 혁명적인 전위 예술의 움직임의 모습을 크게 발견하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언급할 것이다. ● 다른 한편, 작가 김세중이 전체 타이틀로 제시하고 있는 『Nature, Dream, Eternity』는 대표적인 고전적 철학 개념으로 명확하게 인지되고 다가온다. 과연 그는 고전에 근거한 개념과 철학, 미학으로써 그의 작품을 구축하고 있는가하는 질문을 무의식적으로 던지게 되겠지만 필자로서는 제목보다는 그림을 먼저 접한 때문에 그의 그림이 나타내고 있는 제작 수법, 필치, 표현 형식과 형태 등을 통하여 그 성격을 느슨하고 어느 측면에서는 낭만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에 이르러 알려진 작품명과 전시명은 그와 관련된 생각들을 되돌려 한층 더 골똘하게 만든다. 작품제목이나 전시제목이 내뿜는 아우라로 인하여 느껴지는 감정 가운데는 너무나 정확한, 이론의 여지가 없는 규정적 미학관과 예술관으로써 제작된 것이라는, 작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미리 지정된 시각을 벗어나지 않도록 지정하는 예술일 것이라는 강한 염려가 한 부분을 차지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접하면 그러한 염려는 의구심에 불과하였음이 드러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규정하기 어려운 성격을 어떻게 정의하고 설명할 것인가?
김세중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 오브제들은 그 선택의 이유를 설명할 이유를 가지지 않는다. 어느 누가 되어도 좋고, 어떤 의미를 지녀도 좋다. 무의미의 의미를 추구하던 경향은 미술계에 있어 표상의 제거나 절대적 존재를 표현하는 추상의 경향과 더불어 모더니즘의 주된 주제가 되었다. 이에 편재하던 '무제'라는 제목의 미술품들이 풍미하였음을 기억할 때 김세중의 작품은 최소한의 제목이 붙어있음을 새삼 인지하게 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제목 하에 일련번호조차 붙여지지 않은 그의 그림들은 하나의 그룹, 세계를 이루며 단체의 익명성 속으로 숨어버린다. 그의 회화는 개념상 – 시각적으로 리얼리티가 강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표현적 특성과는 대조적으로 - 구조체는 있으나 상세는 없는 건축물과 같은 느낌이 든다. 다소간 반역적인 이러한 태도는 전위성을 추구하는 예술운동의 공통적인 특징이었던 바, 과연 김세중은 이러한 혁명적 의도를 지니고 작업하고 있는 것인가? 기존 틀을 폐기하고자 하는듯한 그의 시도는 과연 전대미문의 운동으로 승격될 수 있을 만큼 파격적이거나 지고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인가? 새로운 형식은 기존 예술 형식을 붕괴시키곤 하는데, 그에 반해 예술의 세계는 장르 파괴, 형식과 논리적 기반 파괴의 힘을 지닌 새로움도 그 질서 안에 수용하는 강한 힘과 연관성이 있을진대, 김세중의 작품은 적어도 그만한 새로움을 가지는 충격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포용성과 수용성이 강한 예술문화의 세계에 파묻혀 이미 그 안에서 익히 소화되고 있는, 소화된 '낯섦'에 그치는 것인가? ● 김세중의 작업은 회화작업의 기초가 되는, 실제처럼 '완전한' 그림 그리기, 시각적으로 완벽한 재현에 집중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회화를 향한 그림의 승화보다는 회화의 원초적 임무인 완벽한 묘사, 즉 그림으로 '하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은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에 유사하나 - 새로이 조어를 하자면 – 원초적 리얼리즘, 즉 프리미티브-리얼리즘(primitive-realism), 또는 하양화의 강조를 고집한다면 하이포-리얼리즘(hypo-realism)에 가깝다. 하이퍼-프리미티브-리얼리즘이란 양면적 특성을 지니는 그의 그림은 양단을 묶어 시각적 리얼리티를 강화하고 있으나 현실적, 논리적, 개념적으로는 현실과 분리되고 있다. 그러나 자칫 경멸적이고 비꼬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는 회화 임무의 본원을 향한 하향화의 장점 중 하나는 대상물들의 사실성이 아주 강하게 어필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특징 중의 하나는 단순히 사실처럼 그린다는 관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나 물체가 지니고 있는 자체의 재료적 물성까지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실질적 방법의 원칙이 세워진다는 점이다. 대리석은 대리석으로, 청동은 청동으로, 석고는 석고로, 목재는 목재로 정확히 인지된다. 감촉적 경험의 차원에서 이는 매우 생생하고 실제적인 실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김세중이 탄생시킨 대부분의 그림은 하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김세중은 무슨 이유 때문에 그토록 하늘을 중시하고 그에 거의 '집착적'인 태도라고 할 만큼 그에 공을 들여 묘사함으로써 열중하는가? 그리고 일반적으로 빈 공간이나 하늘을 배경으로 하면 오브제가 부유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품게된다. 그와 아울러 그것은 공간을 대표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평면 배경으로 여겨짐을 거부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기도 한다. 정확히 말하여 김세중의 그림에서 대상물과 하늘 및 부수적 오브제등은 분리되어 존재하는데 '그것들은 각각 고유한 그곳에 단단히 정착된 오브제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혹은 더 나아가 인지차원에서의 위계를 전도시켜 어느 것이 주된 대상물, 오브제가 될 것인가?'에 대한 물음조차도 던질 수 있게 느껴진다. 이러한 질문은 그가 근본적으로 불확정적이며 비체계적인 상태의 그림을 구현하고자 하는 열망으로써 설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마도 하늘에 관하여, 혹은 빈 공간으로 여겨지는 배경에 관하여 그가 제시한 작품들을 따라 논리적 차원에서 논하자면 아직까지는 그토록 중요한 의미를 제시함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액자형) 자연의 속삭임」은 문이 열린 액자를 통해 조약돌 그림이 보여지는 내면의 다른 그림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그림의 전체 배경은 단순히 아래로부터 상부로 올라가며 회색류의 색채로부터 깊은 흑색으로 전이되는 무채색의 뉘앙스만 찾아볼 수 있는 차원이 없는 배경을 형성하고 있다. 일련의 작품 「영원을 꿈꾸다」 중 일부 작품은 초점이 흐려진 풍경화나 혹은 다시 또 초점이 흐려진 서양화를 배경으로 하여 마치 정물화를 연상케 하는 그림들로 조성되어 있다. 이들 역시 공간적 차원은 약화되어 상징성 등 다른 차원으로의 옮김을 수월하게 만든다. 단적으로 그의 그림에서 여러 배경은 대상이 바뀌었을 뿐, 그 역할과 의미는 거의 동일하다. 불확정의 공간, 상상 속의 공간, 어찌 말하면 허공에 뜬 듯한 그림들은 회화사 내에서의 연결을 어느 정도 의식하고 정당화한다. 역사적으로 모더니즘 회화의 출발을 이룩했다고 일컬어지는 마네의 그림 중 「피리 부는 소년, 1866」은 이러한 연결, 연관성을 연상하게 한다. 인습적, 현실적 배경이 제거되고 인물만이 제시된 「피리 부는 소년」으로 대표되는 마네의 그림은 추상화 발생 초기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으며 당시 유행하고 당연시되었던 사실화의 이상을 벗어난 까닭에 많은 공격에 처했었다. 마네에게 중요했던 것은 정확한 사실적 재현보다는 형이상학적 시각으로써 이상화된 원색적 색채와 강한 실루엣, 그로 말미암은 정적 형태 등은 반드시 추구되어야 할 새로운 이상적 창조물이었던 것이다. 소위 존재론적 의미에서의 실제화, 근래에 회자되는 용어로는 시뮬라르크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작품은 한마디로 김세중의 작품들과 비교될 점이 많은 그림이기도 하다. 적어도 김세중은 하늘을 절대적 존재, 절대적 대상물로 여겨지지는 않는 것 같다. 만약 그리하다면 피상적 관념에서 논하고 있을 뿐이다. 그의 하늘은 시간과 장소,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달리 감지되는 것을 재현하고 있다. 그는 상황주의자의 눈을 가지고 작업을 하거나 현상학적 시각으로써 자연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훨씬 강하게 다가온다.
또렷한 형상과 윤곽선 등을 기조로 하는 이미지로 이어지는 김세중의 그림은 기법상 고전주의적이다. 자연히 그에 따라 부상되는 비교 대상물로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을 떠올리게 된다. 사진처럼 리얼한 그림을 제시하고 있으나 움직이거나 흔들린 카메라가 만드는 이미지처럼 흐릿하고 속도감이 느껴지는 리히터의 그림은 사진작업이 앞서고 그를 나름대로 재현해 내는 김세중의 또렷하고 움직임 없이 정지된 스틸 사진 같은 분위기의 그림과 대조적이다. 리히터의 그림 중 바다를 그린 일련의 작품 「해경(海景 Seestück(D) Seascape(E))」은 김세중의 그림 배경이 되는 바다와 극을 이룬다. 리히터의 바다는 생동하는 그 자체가 그림의 주제, 주체가 되고 있으나 김세중의 바다는 그와는 반대로 사진, 기록되어 정지된 바다를 출발로 하며, 주체가 되기보다는 아우라와 배경을 형성하는 느낌이 훨씬 더 강하다. 주어진 특정 현실의 모양보다는 그 상태를 재현해내는 리히터가 현상론적 작가라고 한다면 김세중은 존재론적 현상을 구현해내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전자가 현상의 재현이라면 후자 김세중은 대상물이 지니고 있는 – 예를 들어 '바다 = 파도'라는 특징으로 규정할 수 있듯 - 특정적인 대표적 현상, 즉 고유의 성상들을 더욱 강하게 표현한다. 그러므로 김세중의 그림은 미세한 부분까지도 자세하게 그려내는 상세 묘사가 아주 강한, 대상의 실제적 표현으로서 하이퍼 리얼리즘적 성격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정작 회화가 겨냥하는 대상과 목표는 실제의 오브제, 대상물이라기보다는 관념적이자 개념적으로 응고되어 있는 성상화(性狀畵)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위에 한 마디로 언급한 윤곽선, 표현방법 등, 기법만의 문제는 아니다. 동상, 석상은 동상이 가질 수 있는 음영과 시각적, 촉각적 재료의 성상이 잘 나타나 있으나, 한마디로 차원이 제거되거나 애매하게 취급되어 시간이 갈수록 오브제의 그림자는 제거되어 완벽한 자체만을 제시하고 시간성은 사라진다.
회화가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은 이미지를 통해서 가능하다. 하지만 김세중의 회화는 인물이나 대상이 있어도 그것의 정체가 무엇이 되었든, 그 통상적 상징과 의미가 무엇이 되었든, 그를 표현하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그러한 주제나 대상물들의 정체 역시 무엇이 되었든,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 환경 등 모든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로부터 영향을 받는 관자로서의 판단은 의미전달체나 인식의 도구가 되는 제조건과 제목적, 제결과가 제거된 그림 그 자체로서 성립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인식된다. 아마도 서양 사상에서 근원적인 두 가지 사유방식, 즉 소위 여러 다양한, 그러나 절대성을 지양하는 인식론적 측면, 즉 앎의 도구이거나 또는 눈앞의 현실 너머 이데아의 존재를 거론하는 형이상학적 태도를 김세중의 그림에 적용하면 적잖은 혼란이 도래될 수 있다. 그가 의도하는 그림들은 지극히 현실적이지 않은 것임을 작품 자체보다는 작품 및 전시회의 제목으로부터 알 수 있다. 연작의 제목 「Dream the Eternity」, 전시회의 제목 『Nature, Dream, Eternity』는, 다분히 심리학적 측면을 지니고 있는,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초현실주의와의 관계를 떠올릴 'Dream'을 제외한다면 상대주의적 시간성을 배제하고 절대적 영원성을 주장하는 서구식 존재론, 고전철학, 형이상학적 철학의 주된 개념들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로부터 쉽게 풀어 설명을 도출하거나, 또는 거꾸로 추론을 한다면 그의 그림은 존재론이 추구하고 있는 형이상학적 성격을 지니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정통의 개념으로 본다면 그의 구상적 회화는, 그의 의도에 의하여 추상화에 견주어 존재론적, 형이상학으로의 완성도, 접근도가 현저히 떨어지게 예정되어 있다. 그의 회화는 구상화로서 존재론적, 형이상학적 방향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 혹자는 그의 작품이 지니는 성격, 즉 현실에 발을 둔 비현실적 작품이기에 초현실적이라고 쉽사리 단정하여 평하는 것 같다. 초현실주의의 원어 쉬르레알리즘(Surréalisme)의 원뜻을 – 용어 '초현실주의'의 창시자 앙드레 브르통이 주장한 복잡, 심오한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 문자 그대로 분해하여 해석한다면 현실(réel)의 위에, 혹은 그를 발판으로 하고(sur) 있는 것을 구현하고 제시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초현실주의는 – 김세중의 입장이나 방법론과 동일하게 현실 세계를 발판으로 하고 있는 것이며 - 무의식적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왜곡되거나 비틀어진 비현실을 향하여 상승하여 승화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김세중의 그림은 초현실주의 예술이 표현하는 강한 심리학적, 무의식적 측면의 제시나 왜곡된, 그리고 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나 상상의 세계에서는 다분히 가능한 승화의 단계는 언급하거나 비교하지 않고 있다. 김세중의 세계는 현실에 보다 더 굳건히 정초하고 있으며 꿈의 세계로 직접 연결되길 바라는 수평적 동등함을 지니는 이월(離越)의 세계이다. 이월 가능성의 특징은 한 화폭 내 병존하는 대상물간의 관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시간성은 환원되어 거의 생략되고 있으며, 각각의 스토리와 각기 분리된 세계를 표방하고 있는 배경, 대상물, 그리고 부차적 오브제나 대상물의 공존은 정적 혹은 정착적 종합의 세계뿐만 아니라 변화, 즉 운동성과 역동성이 강한 독립적 이산(離散)의 세계를 언급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세중의 작품을 관찰함에 있어 정통의 문화관과 비교하여 난외적 해석이 될 수 있는 이러한 리얼리즘과 연관된 시각과 더불어 또 다른 주요한 항목으로 들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신화적 순수함이라고 생각된다. 서양 신화가 고대 그리스의 것으로 거슬러 올라가듯 김세중의 그림 중 대상물은 대부분 신화적 인물의 조상을 회화로 재현하고 있다. 신화란 사실적 허구의 스토리임을 생각할 때 본질적으로 현세적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떠나 신의 세계, 그가 주장하듯 꿈의 세계로 향하는 것이며 그 허구성에도 불구하고 문화와 사회질서, 정신세계 등을 규정짓는 아주 구체적인 체계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김세중의 회화는 언급된 실증적 사상의 세계, 철학의 세계 이전에 속하는 정신세계, 즉 신화적 단계의 내용을 지닌 성격이 강하다. 그의 그림은 에토스(ethos)나 파토스(pathos)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는, 시간성이 제거되어 영원성을 표방하고 있는 뮈토스(mythos)만의 형이상학화(形而上學畵)일진대, 조각물 등의 형태로 등장하는 인물, 사물 그림들은 문화, 정치, 종교 등 여러 형태의 공동체의 사회적 기틀을 형성하는 역할이 제거된, 그러나 그의 회화 밖에서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지울 수 없는 거대한 문화-사회적 틀거지를 기본으로 한다. 그가 이토록 그림들로써 구현하고자 하는 '어느 곳에도 없는(ou-)' '땅(topos)', 즉 유토포스(outopos 혹은 utopos)는 적어도 역사, 사회적, 철학적 함의가 두터운 '유토피아 Utopia' 개념이 저지르곤 하는 온갖 이데올로기의 번식과 생식이 제거되고 전제되지 않는, 어느 정도 예술지상주의적 태도, 예술을 위한 예술과 같은 탐미적 특성으로도 연결되고 있다. 그의 그림은 순수하다. 그리고 그러한 온갖 얼룩없이 순진함을 겨냥하고 있다. ■ 김미상
Vol.20160130c |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10기 입주작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