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6_0311_금요일_06:00pm
Bongsan Cultural Center 기획展
참여작가 / 김안나_정세용_윤동희_최선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봉산문화회관 BONGSAN CULTURAL CENTER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길 77 1~3전시실 Tel. +82.53.661.3521 www.bongsanart.org
'GAP(갭)'은 '다름'과 '차이'를 상징하는 『유리상자-아트스타』 전시의 연계 프로젝트 'GlassBox Artist Project'를 일컫는 명칭이다. '공간의 틈', '시간적 여백', '차이', '공백', '사이'의 의미를 내포한 GAP은 유리상자 전시로부터 비롯되지만 유리상자 작가의 후속 성장과 변화 그리고 유리상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가의 또 다른 매력을 선보이는 사건의 요약이며, 이는 현대미술을 대할 때 '차이와 그 다름에 매료되는' 우리의 정서적 반응과 닮아있다. ● '유리상자(GlassBox)'는 봉산문화회관 2층에 위치한 전시 공간 'ART SPACE'의 별칭이며, 유리로 사방이 둘러싸여있고 보석처럼 소중한 작품들을 담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유리상자'로 불려진다. 유리상자 전시는 2006년 12월21일부터 시작된「도시 작은문화 살리기 프로젝트 - 유리상자」의 연장선상에서 기획되었으며, '미술창작스튜디오 만들기'프로젝트와 연계하여 젊은 미술가의 작업현장을 들여다보려는 작가지원 형태의 지속적인 실천에너지이기도 하였다. 2007년부터 시작되어 올해로 10년째인 유리상자 전시는 '스튜디오', '아트스타'라는 부제와 함께 진행되었으며, 4면이 유리라는 공간의 장소특수성을 고려하여 설계한 설치작품들은 패기 있는 신인작가의 파격과 열정을 느끼게 해준다. 이 전시의 주된 매력은 톡톡 튀는 발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젊은 예술가의 실험성을 가까이 느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 이러한 유리상자의 지향을 더 진전시켜, 유리상자와 시․공간을 달리하는 전시로써 이들 아티스트의 매력을 소개하려는 전시 프로젝트를 2012년부터 매년 1회 기획하게 되었다. 5번째를 맞는 올해 2016년 전시 계획을 설계하면서, 젊은 미술가에 대한 관심이 많고 전시기획 경험이 다양한 외부 협력기획자 박소영(예술학박사)과 김석모(미술사박사) 2인을 초청하여 전시를 위한 작가 추천에서부터 진행에 대하여 다양하게 협의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유리상자-아트스타'를 통하여 소개되었던 54명의 작가 중 4명의 작가를 선정하여, 유리상자 전시 이후의 활동 변화들을 선보이려는 기획전시 GAP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 주제는 우리시대 미술 태도의 경향에 주목하여 협력기획자 2인이 제안한 『Photon光子/Echo反響』로 정하고, 'Photon光子'와 관련하여 1전시실에 김안나, 정세용 작가를, 'Echo反響'과 관련하여 2전시실에 윤동희, 3전시실에 최선 작가를 초대하여 작가들의 조형 형식과 예술적 태도를 소개한다.
설치와 영상 작업을 주로 발표하는 김안나(79생) 작가는 2012년 유리상자-아타스타 Ver.6 『Out/In the Universe』展(11.2~12.9)에 소개되었으며, 그 전시에서 작가는 거울 재질의 다면반사체와 빛, 영상의 구성을 통하여 인간 삶의 '안과 밖'이 경계분리 없는 우주와 하나의 질서 있는 의미로 서로 연결된 생명력의 확장 상태임을 시각화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연 환경을 파괴하게 되는 우리의 일상적 소비활동에 대한 인식의 환기를 다룬다. 버려진 포장재 스티로폼과 골판지 등으로 연출된 숲속 풍경과 버려진 플라스틱 생수병을 연결하여 만든 '모두를 위한 물' 폭포는 생명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작가의 기대를 함께 연계시켜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
조각 작업을 하는 정세용(71생) 작가는 2008년 Ver.4 『Flying Machine』展(10.25~11.16)에서 우주선 날개를 은유하는 5미터 크기의 세로형 빛 묶음체로부터 새어나오는 수많은 빛들이 우주를 담아내려는 별빛을 상징하는 것이며, 그 연출 상황이 작가 자신의 기억을 통해 무한히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는 우주의 본질이 아닐까라는 제안을 했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우리들의 오래된 기억을 담고 있는 시계 오브제와 우주선의 날개를 연상시키며 빛을 뿜어내는 5미터 크기의 가로형 철재 조형덩어리를 설치하여, 시간과 빛, 소리, 움직임 등이 연출하는 시공간과 이와 만나는 관객의 사유 혹은 추억의 상태를 함께 수집하여 전시의 일부로 포함하려한다.
설치작업을 주로 하는 윤동희(83생) 작가는 2012년 Ver.7 『망령』展(12.21~1.27)에서 작은 목탄화 516점을 모자이크처럼 이어 붙인 큰 초상화와 그 목탄화를 그리는 행위를 담은 7개의 비디오 영상을 선보였다. 이는 반복되는 거대한 힘에 의해 사라지거나 가려진 개개의 사실과 주목받지 못한 무명의 면모들을 상기시키는 작업이었다. 이어진 작가의 이번 전시작업도 시대의 변화와 관계한 사회적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작가는 문명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가치로 읽혀지는 상징, 즉 더 이상 '평화'의 의미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비둘기를 매개로 현대미술의 상징으로서 뒤샹과 레디메이드를 추모한다. 작가는 시대에 따라 가치와 의미가 변화하는 우리들 세계의 상황을 예술가의 입장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최선(73생) 작가는 2015년 Ver.5 『자홍색 회화』展(2.20~4.19)에서 2010~2011년 발생한 대규모 구제역 파동으로 인해 죽임을 당한 돼지의 숫자를 지시하는 '돼지0000001'에서 '돼지3320000'까지의 자홍색 문자를 천위에 기록하고 집적하는 회화적 메타포를 통하여 우리들 현실의 삶과 그 대응 태도를 되돌아 볼 수 있게 했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회화의 환영과 그 내포된 의미에 대응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하여 유머러스한 해석을 선보인다. 사람들이 길 위에 아무렇게나 뱉은 침의 모양을 대형으로 확대하여, 천을 덧댄 벽 위에 직접 1주일동안 그린 이번 작업은 성스럽고 장식적인 보라색상의 침을 전시공간에 그려, 관객들이 주의 깊게 올려다보아야한다는 작가의 제안에서 탁월한 위트가 읽혀진다. ● 지금의 예술은 우리와 아무런 관계없는 '이상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생의 사건을 가치 있게 바라보는 다양한 태도의 목록, 즉 GAP의 영역이라 설명할 수 있다. 이제, 이 전시에 힘입어 다르게, 낯설게, 멈추어 돌이켜보고, 다시 생각하여 '차이'와 '다름'의 태도를 긍정하며 담론해보자. ■ 정종구
뉴-밀레니엄의 정보기술 혁명과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 ● 새로운 밀레니엄과 함께 밀어닥친 'IT혁명'이 삶의 기저(基底)를 재편성하면서 미술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지난 세기의 미술은 2차원적 화면에서 환영(Illusion)을 몰아내고 전통과 단절을 선언한 모더니즘(Modernism) 그리고 미술과 '미술 아님'의 경계를 붕괴시킨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점철된다. 미술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고, 파격적이고 전위적인 미술형태가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하지만 돌이켜 보건데 이들의 미술행위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결국 '시간'과 '공간'이라는 인식의 틀(frame)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진다. 물론 대지미술(Land Art)이나 플럭서스(Fluxus) 혹은 해프닝(Happening)이나 퍼포먼스(Performance)등과 같은 탈시공적 시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포스트모더니즘 역시 근본적으로는 전통적 미학의 전제 내에서 움직였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 지금의 미술은 규정의 '공백상태'에 놓여있다. 절대적 가치에 대한 부정 그리고 양식적 해체(Deconstruction)를 특징으로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패러다임으로 묶기에는 역부족이다.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기 전까지 '포스트-포스트 모더니즘' 정도로 부르면 되지않을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미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아직은 실체가 분명하지 않아 명확히 규정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드러나는 징후들을 통해 그 방향성에 대한 어렴풋한 예측은 가능할 것 같다. 우선 시각예술이 매체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나 제약을 극복하려는 경향성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매체들을 융복합 시키거나, 행위나 상황 그 자체가 작품의 형식으로 등장하는데서 관찰된다. 또 다른 하나는 IT 기술을 예술의 영역에 끌어들여 표현적 외연이 상상할 수 없는 범위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미술은 물리적으로 가촉적이거나 경험 가능한 형태의 작품만을 수용할 수 있는 전통적인 화이트 큐브가 공간적으로나 개념적으로 담아 낼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양상을 띨 것이다. ● 봉산문화회관 유리상자 전시 작가들의 후속활동에 대한 관심과 기대로 마련된 2016년 『GAP』전에 정세용 그리고 김안나 작가를 추천한 데에는 이 두 사람이 전통적인 매체에서 벗어나 '빛'을 통한 연출에 집중력을 보이고 있어, 미래지향적인 지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들의 예술적 중심화두에 반드시 빛이라는 소재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들이 주제적으로든 혹은 표현적으로든 어떻게 빛을 다루고 있는지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던지고 싶었다. ● 작가 김안나는 설치나 비디오, 평면과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회적, 정치적으로 엮여있는 복합적 층위들의 문제들을 일관성 있게 다루어 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두 점의 설치 작업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제작된 것으로 일상의 무비판적 소비행태가 만들어낸 '환경문제'를 주제로 다룬다. 편리성과 실용성을 앞세운 무비판적 소비지향성이 매일같이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발생시킨다는 것은 이미 식상할 만큼 평범한 소재거리가 되고 말았다. 생태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의 모든 행위가 불가분 환경 파괴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에 대한 자각과 자기반성이다. 김안나가 작품을 통해 환기하고자 하는 바 역시 일상의 편리가 몰고 온 환경파괴의 피상적 현상에 대한 기술(記述)이나 르포타주 형식의 사건고발이 아니라 자기반성의 부재와 결여된 참여정신이다.
작품 「450년: 폭포」는 빈 페트(PET)병을 잘라 천정에서 바닥으로 길게 연결해 만들어졌다. 기계적으로 연결된 펌프는 페트병 내부에 물을 순환시킨다. 서로 연결된 투명 페트병이 만들어내는 구조물은 그 자체로 폭포를 연상시키는데, 이와 함께 흘러내리는 물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되는 움직임과 소리는 폭포에 대한 이중적 은유로 이해될 수 있다. 작품이 지시하는 바는 명료하다. 일회용으로 사용되고 버려진 플라스틱, 물의 순환으로 연상되는 폭포에 대한 이미지 그리고 제목이 명시하고 있는 450년이라는 시간은 일상에서 가볍게 사용되고 폐기된 플라스틱이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며, 그 시간동안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자연에 남기는지를 직설적으로 이야기 한다. ● 영상 설치작품 「너와 나의 숲」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만들어 졌다. 일상에서 소비되고 버려진 알루미늄 캔이나, 스티로폼 그리고 박스 등과 같은 재료로 나무의 형상을 만들고 빛을 투사시켜 벽면에 그림자가 생성된다. 숲속의 고요와 평온함을 나타내는 듯 명상적인 음악이 나지막하게 흘러나온다. 쓰레기가 만들어 놓은 '위조된' 그림자 숲 사이로 숲의 이미지를 닮은 또 다른 영상이 투사되어 있다. 벽면에 투사된 그림자들은 숲을 이루는 나무처럼 보이지만 그 실체는 버려진 폐기물이다. 어른거리는 그림자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떠오르게 한다. 본질과 현상은 전혀 다른 논리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사유의 주체성 상실과 자기반성의 부재는 어른거리는 벽면의 그림자들처럼 끊임없이 우리를 기만할 것이다. 작품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사용된 재료들이 모두 그 스스로 본질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품을 담거나 보호하기 위한 포장 재료라는 것이다. 넘쳐나는 상품들과 이를 감쌌던 흔적들은 본질과 비본질의 전복된 관계성에 대한 역설이기도 하다. ● 김안나의 시선이 날카롭게 외부로 향한다면, 빛과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정세용의 작업은 서정적이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재료는 표면에 구멍처리가 되어있는 금속철판이다. 철판을 구부리고 접합하여 이글루나 날개 등 특정한 형태를 연상시키는 조형물을 만든다. 조형물 내부에는 다양한 색상의 발광체(發光體)가 설치되고, 그로부터 발산되는 빛이 금속피막의 구멍들을 통과해 전시장 벽면에 일정한 패턴의 상을 형성한다. 작가가 지금까지 선보인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 같은 매커니즘을 기본으로 변형된 것이다. 때로는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상을 얻기 위해 모터와 같은 기계장치를 사용하기도 한다. 작품 「플라잉 머신」에서 철판 구조물은 비행체의 육중한 날개 모양을 하고 있다. 양 날개의 접합지점에 회전을 위한 바퀴가 부착되어 있고, 동력원이 되는 모터의 회전이 연결 벨트를 통해 확장되어 거대한 날개를 회전시킨다. 「플라잉 머신」에는 스피커가 연결되어 있어 이미 설정된 소리를 발산한다. 작가는 일상의 소리를 채집하고 금속판을 뚫을 때 발생하는 마찰음들을 결합시킨다. 모터의 회전운동이 증폭되어 날개를 움직이고, 음향과 뒤섞이면서 공감각적인 상황이 연출된다. 그런데 「플라잉 머신」이라는 이 작품은 그 자체로 역설적이다. 허술해 보이는 모터가 비행을 위한 충분한 동력을 생산해 낼 것 같지도 않고, 느릿느릿 돌아가는 둔탁한 날개의 움직임은 중력의 법칙을 깨고 비상(飛翔)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플라잉 머신」은 날기 위한 기계가 아니라 '날음'이 내포하고 있는 무수한 기억의 잔향들을 상기시키는 은유적 계기가 될 뿐이다. ● 날고자 욕망하지 않는 「플라잉 머신」이나 무한한 천공(天空)에 박혀있는 별무리들을 재현한 작품 「별자리」에서 관찰 되듯이 정세용의 작품세계는 항상 '노스탤지아'(nostalgia)와 연결된다. 지금은 버려진,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의 사적인 공간을 채웠을 오브제들에 관심이 많은 작가 정세용. 한 동안 버려진 장롱 등을 수집해 작품으로 각색했던 그는 언제부턴가 낡은 괘종시계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실 정세용이 수집하고 싶은 것은 기억의 궤적(軌跡)들이다. 추의 똑딱 거리는 반복적 움직임이 시간의 흐름을 각인 시키듯, 그 속에서 태어난 우리도 삶의 궤적을 만들며 언젠가 시간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 김석모
비둘기/레디메이드 - 평행의 이야기 ● 윤동희는 30대 초반 청년으로선 드물게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착안하는 작가이다. 그는 특히 군부독제체제 시기 전제주의의 폐해, 이데올로기에 순치되었던 사회적 가치를 재고하는 비평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그는 경제성장이란 미명 아래 모든 것을 통제하던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에 희생되었던 사람들의 아픔을 조명하는 작업에 관심을 둔다. ● 이번 전시에서 윤동희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그와 연관된 정치, 사회문제를 다루던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 속 예술가의 역할과 위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선보인다. 비둘기는 이 질문에 대한 단초를 제공했고 앞으로 이를 발전시켜나갈 핵심적인 매개체이다. 2016 GAP 전시에서 작가는 봉산문화회관 2전시실에 비둘기와 뒤샹의 레디메이드라는 일견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대상을 서로 어긋나게 설치했다. 비둘기 사육에서 비롯된 다윈의 진화론, 그리고 냉소적 모더니스트이자 아방가르드, 포스터모더니즘의 정점에 위치한 뒤샹의 혁신적 예술이념인 레디메이드, 이 두 개의 거대담론을 평행선상에 놓은 윤동희의 대담함은 젊은 작가의 치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종의 기원」이라는 세상을 바꾸는 작업과 기존의 예술작품의 필요충분조건과 예술의 신비를 해체한 레디메이드라는 반예술 개념을 대위법적으로 구성한 그의 의도가 아주 허무맹랑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는 같은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서로 관련된 사건을 번갈아 보여주는 '패럴렐액션'(parallel action) 영화기법을 차용해 예술의 '탈신격화'와 비둘기의 '탈상징화'를 에둘러 연결시키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 관람자가 전시실에 들어서면 먼저 사격연습장에서 '피존'(pigeon)이라 불리는 도자기 파편을 향해 총을 발사하는 영상과 마주하게 된다. 과거 유럽 귀족들은 진짜 비둘기를 사격연습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비둘기는 이전의 찬란한 명성을 잃기 시작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통신의 수단으로 숭배 받았던 비둘기는 구약과 신약에서 각각 평화(노아의 방주)와 성령(하얀 비둘기 콜롬바)을 상징했지만 오늘날엔 전 세계 모든 도시에서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골머리를 썩여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태초부터 인간과 공존하며 진화해 온 비둘기는 산업화의 뒤안길에서 용도폐기된 채 인간의 삶에서 쓸모없는 대상으로 천대받는 신세가 된 것이다. 영상 좌측으로 도자기 파편들을 이어붙인 비둘기 형상들이 벽을 따라 나란히 하나씩 작은 좌대 위에 놓여있다. '피존' 파편들로 구성된 비둘기 형상작업은 유구한 시간 동안 인간을 위해 봉사했던 비둘기를 기념하는 제단처럼 보인다. 뒤샹의 「가방 속의 상자」를 연상시키는 박스에는 이율배반적으로 아직도 평화의 표상으로서 비둘기 이미지를 사용하는 단체나 기업 로고들이 곤충표본처럼 꽂혀 있다. 레디메이드가 대량생산된 산업물인 동시에 예술가 개인의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모순적이듯 말이다. 게다가 뒤샹은 분실되었던 자신의 레디메이드 원작(?)들을 1964년 밀라노의 한 갤러리와 8개 한정판으로 주문생산하는 계약을 했다. 미술의 종말을 선포한 레디메이드가 역설적으로 새로운 전통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 윤동희가 'Re-readymade'한 「병걸이」, 「자전거 바퀴」는 이미 여러 작가들이 뒤샹으로부터 차용해 특색있게 재생산함으로써 또 하나의 신화로 자리잡은 바 있다. 뒤샹이 패러디한 놀이성(Ludism)의 전형인 「L.H.O.O.Q」 또한 이미 수많은 작가들의 'Re-parody' 대상이 되었다. 윤동희는 복제된(디지털 프린팅) 「L.H.O.O.Q」의 모나리자 복부 위로 하얀 비둘기 한 마리를 그려 넣음으로써 비둘기에 관한 단상과 레디메이드의 연결고리를 찾고자 한다. 뒤샹의 말을 빌자면, "예술의 어원은 '손수 만들기'를 의미하는데, 내가 선택한 레디메이드는 예술의 정의를 내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제 윤동희는 비둘기와 레디메이드를 통해 예술적 통찰과 사고의 함수관계를 풀어나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메아리 - 역설의 변증법 ● '유리상자' 공모전을 거쳐 간 작가들 중 몇 명을 선정해 그들의 예술세계를 진일보시키는 작품을 선보이는 2016 GAP 전시에서 최선은 봉산문화회관 3전시실을 메아리의 현장으로 만들었다. 5일 동안 꼬박 전시장 바닥에 거대한 종이를 펼치고 작업을 한 작가에게 메아리는 여전히 망령처럼 남아있는 우리나라 모더니즘 회화의 독선에 대한 항거이기도 하고 압축성장의 결과로 나타난 우리 사회의 적폐를 직시하고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울려 퍼져가던 소리가 산이나 절벽에 부딪쳐 되울려오는 소리, 메아리는 부서져 산산조각이 난 현실의 고통으로 단순히 허구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에게 메아리는 과거를 반추함으로써 현재를 직시하는 장치이자 희망과 꿈의 결속을 지향하는 예술적 양식으로 존재한다. ● 전시실 벽면을 채운 보라색 그림 「멍든 침」에서 툭툭 화면 위로 던져진 큰 점들은 거센 비바람을 맞은 듯 화면 하단을 향해 사선으로 가파르게 흘러내리고 있다. 즉흥적으로 드로잉하거나 물감을 뿌리는 제스츄얼 추상화를 닮았지만 실상 이 그림은 화가가 세심하게 구성한 패턴을 세 차례 꼼꼼하게 채색한 결과물이다.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보라색(violet)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자는 보라색에 폭력(violence)의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있다. 이처럼 최선의 작품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구축과 비구축 영역을 교묘하게 교란시키는 반전이 숨어있다. 「오수회화」 연작의 베리에이션인 이 작품은 사람들이 길바닥에 함부로 내뱉은 침에서 아이디어가 나왔다. 「오수회화」의 모티브는 난지도 웅덩이에서 거품을 일으키며 고여 있던 공장 폐수에서 나왔다. 최선은 기름이 둥둥 뜬 폐수를 바라보며 아이러니하게도 하늘에 둥실 떠다니는 구름을 떠올렸다고 한다. 환경오염의 상징인 폐수나 더러운 침의 얼룩을 유기적인 형태의 그림으로 변모시켜버린 작가에게 미와 추, 고결함과 누열(陋劣)함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2012년 작 「녹색벽」에서 신록의 싱싱함을 머금은 녹색화면은 작가가 호수에 들어가 수면을 뒤덮은 녹조를 거대한 광목으로 떠낸 흔적이다. 이렇듯 최선의 작업은 한마디로 역설의 변증법, 즉 상반되는 힘을 통한 열림의 추구로 해석할 수 있다.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 과거와 현재가 더 이상 상반되지 않는 접점에서 그는 예술창조에서 커뮤니케이션이 무엇인가에 대한 담론을 제기하고 있다. ● 최선은 늘 스스로를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소개한다. 이런 이면에는 대학시절 강요당했던 당시 제도권 미술에 대한 반발이 깔려있다. 그림 표면을 이미지의 무화(無化) 구조로 환원시키는 한국 모더니즘 미술에 나타난 그린버그식 '평면성'을 비튼 그의 모노크롬 회화는 모유나 침으로 덮인 흰 캔버스란 기이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작년 '유리상자' 공모전에서 선보인 「자홍색 회화」도 일견 고운 마젠타색 천을 늘어트린 모노크롬 화면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제역 파동으로 참혹하게 생매장 당했던 돼지들의 숫자가 1부터3,320,000까지 나열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순간, 관람자는 TV 뉴스에서 봤던 돼지들이 처절한 비명소리를 내며 땅속에 파묻히던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 돼지기름, 태운 개털, 피 등 상상을 초월하는 재료들로 충격을 주는 최선의 작업은 기존의 사회적 정체성과 체계, 질서를 혼란스럽게 하는(cf. 줄리아 크리스테바) 측면에서 애브젝트(abject) 미술을 연상시킨다. 허나 그는 결코 모더니스트의 합리성과 형식주의자의 추상성을 반격하기 위해서, 또는 '충격가치'를 맹목적으로 쫓기 위해 애브젝트를 작업에 도입한 것은 아니다. 물감을 살 수 없는 가난함 때문에 물감을 대체할 재료를 찾는 과정에서 그는 인간의 이기심에서 기인하거나 자연재해에 의한 환경과 생태의 문제를 작업을 통해 숙고하게 된 것이다. ● 인간 사이의 관계, 사회의 부조리, 훼손되어가는 자연환경, 소통의 문제를 회복시키려고 노력하는 그의 예술세계가 선사하는 깊고 큰 메아리가 멈추지 않길 기대한다. ■ 박소영
■ 전시연계워크숍
□ 1전시실 - 김안나 1. 일시 : 3.19(토) 오전 11시 2. 대상 : 13세 이상 3. 준비물 : 스마트 폰, 데이터 케이블 4. 내용 : 스마트폰으로 풀, 잎, 나뭇가지 등을 사진으로 찍는다. 여러장 찍은 사진들을 연결하여 작가처럼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본다. 만들어진 영상은 개인의 이메일로 보낸다.
□ 1전시실 - 정세용 1. 일시 : 3.12(토) 오전 11시 2. 대상 : 11세 이상, 부모님과 함께 3. 준비물 : 램프를 넣을 수 있는 상자, 깡통 등 4. 내용 : 준비된 종 오브제를 활용하여 나만의 라이트 만들기
□ 2전시실 - 윤동희 1. 일시 : 3.26(토) 오후 3시 2. 대상 : 11세 이상 3. 내용 : 작가의 작업을 참여자의 방식으로 재구성 해보고, 이를 통해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시간을 가진다.
□ 3전시실 - 최선 1. 일시 : 3.11(금) 오후 4시 2. 대상 : 초등학생 이상 3. 준비물 : 앞치마 4. 내용 : 개개인의 보이지 않는 숨의 모습을 특수 제작한 잉크를 이용해서 종이에 나타내어 본다. 시각적으로 드러낸 숨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껴보고자 한다. 또한 빈 손수건에 실크스크린을 이용해 숨의 모습을 직접 찍어보는 워크숍이 진행될 예정이다.
Vol.20160115h | Photon 光子 / Echo 反響-2016 GAP(GlassBox Artist Project)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