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홈페이지_teum11.wordpress.com, Soundcloud.com/teum11
초대일시 / 2015_1230_수요일_07:00pm
후원 / 제주특별자치도_제주문화예술재단_아트세닉
아트세닉 ART SCENIC 제주시 관덕로6길 16 www.artscenic.co.kr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는 지금, 이곳의 소리를 전하는 인터넷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입니다. 필드레코딩 아티스트이자 뮤지션인 김지연이 듣기, 걷기 그리고 녹음을 통한 사유의 방식으로 제주를 경험하고자 지난 2015년 8월 21일 시작하여 매주 한번씩 방송을 하고 메일링을 통해 아카빙된 음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www.mixcloud.com/weather_report) 『누워서 듣는 시간』은 지난 4개월간 진행된 스트리밍 활동을 정리한 소책자 발간의 자리이자 선별된 소리를 함께 듣는 청취회로 마련 되었습니다. 어둠 속 누워서 들을 수 있는 좌석이 마련되며, 작가가 기록해온 텍스트를 읽으며 소리를 감상할 수 있도록 헤드랜턴이 제공됩니다. 또한 아트세닉이 위치한 제주 원도심 건물 옥상에 설치된 스트리머를 통해 제주 저녁 도심의 실시간 소리를 듣는 기회도 마련됩니다. ■
소리로 나누는 대화 ● 단언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경험적으로 소리는 존재를 선행한다. 가령, 늦은 밤 귀가하는 동거인이 현관문을 여는 소리, 빈약한 아파트 벽을 타고 넘어오는 이웃집의 생활 소음 등 '소리'는 무언가가 거기 있음을, 다시 말해 '존재함'을 드러내는 가장 직접적인 신호이다. 나는 어떤 소리를 더듬으면서 그곳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인식하고, 때론 상상한다.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아진 최근에는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방 안의 적막을 대신할 수 있는 소리들을 찾는데, 라디오를 켜두는 것에서부터 인터넷 방송을 틀어두는 것까지 그 방식도 다양하다. 이제는 무선랜과 노트북만 있으면 불과 몇 년 전까지는 상상할 수 없었던 쉽고 다양한 소리의 전달 방식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 기술적인 이해는 차치하고, 보이지 않는 주파수와 인터넷 신호들이 '여기'라는 동시성을 가능케 한다는 것은 새삼스럽지만, 여전히 놀라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테크놀로지의 변화는 창작자들의 작업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김지연의 『웨더 리포트』는 프로젝트가 지닌 작가의 (날씨와 계절과 같은) 주변 환경에 대한 예민한 반응과 관찰이라는 현장성, 특정 장소성과 시간성 등이 디지털 기술과 영향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국내에선 아직 낯선 방식인 '생방 스트리밍'을 통해, 전 세계 누구든지 제주의 어느 낯선 곳에서 '발견된' 소리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데, 이처럼 시, 공간적인 체험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는 일종의 장소 특정성을 띤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이를 공유하는 방식의 확장성과 그 상호성에 있다. 이 작업은 제주라는 특정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존재들의 소리를 통해 공간의 정체성을 환기시키면서도, 특정 장소의 소리를 채집하여 제도공간(전시장, 공연장 등) 내부에서 재생되는 기존의 공유 방식이 아니라, 스트리밍을 통해 시, 공간을 확장해 청자의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맥락을 만들어낼 수 있다. 따라서 한 명의 청자로서 내가 서울이라는 도시의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듣는 방송은, 김지연이 작업한 원형의 시, 공간과는 다른, '의외의 순간'을 발생시킨다. 더군다나 시각적 재현에 익숙한 나에게, 이 작업은 지난 봄에 혼자 여행했던 제주도의 어느 곳을 추억하는 심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과 이어지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 물론, 더 솔직해지자면 이마저도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소리를 자원화하는 것에 익숙한 세계에 살고 있다. 개인이 일상적으로 경험 가능한 소리 대부분은 자본의 이해관계에 의해 철저히 구획되어 있다. 도시 공간의 각종 소음공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빼곡히 들어선 도심 건물들 사이에 '막힌' 소리, 부실하게 지어진 건물 내부의 층간 소음은 소리에 의한 재난에 가깝다. 그리고 이 불편한 소리는 누군가의 이해관계에 따라 관리 가능한 방식으로 쉬이 통제되거나 방치되곤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듣는 이에게 있어 '소리를 인식한다는 행위'는 소음과 소음이 아닌 것, 음악과 음악이 아닌 것, 말이나 언어가 아닌 것 등으로 정형화, 관습화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만큼 우리는 "보이지 않고 다만, 들려오는 것"에 대해 둔감해져 있다. 때문에 『웨더 리포트』를 둘러싼 일차적인 인식 또한 '자연의 소리'와 같은 전형성을 피하기란 쉽진 않은 것 같다.
지난 가을, 아파트 배수관을 타고 울려 퍼지는 한 마리의 귀뚜라미 소리는 차라리 소음에 가까웠다. 불면을 일으키는 반복적인 소리에 끝내 살생을 감행했던 그날, 『웨더 리포트』에서도 때마침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왔다. 도심 콘크리트 틈에서 공명하는 귀뚜라미 소리와 자연 한 가운데 놓인 풀벌레들의 소리는 분명 전혀 다른 정서와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귀뚜라미의 실제 소리와 재생된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지는 묘한 상황에서, 나는 소리에 대한 인식이 그것이 놓인 장소의 이해관계나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단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웨더 리포트』가 단지 거기 있음으로써 존재하는, 존재에 대한 감각을 깨워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단순히 '듣기'의 차원이 아니라, 소리를 매개로 '함께' 자연스러운 공감을 끌어낼 확장 가능성을 기대한다. 내가 경험하였듯, 그것은 익숙한 소리를 낯설게 지각하고 그 소리의 근원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그 되돌아봄은 어쩌면, 안다고 여기지만 실은 잘 모르는, 이제까지 존재감을 드러낼 방식이 없던 것들과 나누는, 대화의 시작일지 모른다. ■ 조은비
Vol.20151230b | 김지연展 / KIMJIYEON / 金知硏 / s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