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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5_1223_수요일_11:00a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주말,공휴일 휴관
갤러리 모이 ARTSPACEMOI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위시티2로11번길 22-14 동화빌딩 3층 Tel. +82.(0)31.966.0536 www.artspacemoi.com
본질은 변화한다! Manda_La - 1 ● 만다라Mandala는 우주법계의 모든 덕을 나타내는 불교 도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만다라 형상은 우리에게도 그리 낯선 이미지는 아니다. 중심으로부터 반복 . 확장되어 나가는 추상적 형태 속 어디에 삼라만상의 진리가 표현되어 있는지에 대한 원초적 질문은 일단 접어두고, 나에게 만다라Mandala, 즉 '우주적 진리'는 무엇이고 어떤 형상이어야 하는지 물음을 던진다. ● 나는 앞서간 현자들의 생각을 빌어 우주의 진리에 접근해 본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그 답은 여럿이지만, 지금의 나에게 울림을 주는 화두는 바로 무상(無常)이었다. 이는 인생사 모두가 덧없는 것이라고 체념해버리는 허무주의가 아니다. 그 뜻 그대로, '항상하지 아니함'을 말한다. 항상하지 않다는 것은 무엇인가.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 시간 속에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마음 속에는 불변에 대한 기대와 욕망이 생겨난다. 지금의 건강과 부와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그러나 기대는 실망으로 끝나고, 욕망은 좌절과 고통으로 이어진다. 불변과 영원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공평히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시간 속에 놓여있다는 것이 변화로 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상(無常)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숙명이다.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행복이 있으면 슬픔도 찾아온다. 이렇듯 항상하지 않음 이라는 조건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불확실함으로 물들인다. 인간이 느끼는 근원적 불안감은 결국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시간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는 이상 차라리 이 우주의 불확실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삶의 매순간 마주하게 될 불확실과 변화 앞에서 무상(無常)을 떠올린다면 우리는 조금은 다른 마음 가짐으로 그것을 맞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발견한 만다라Mandala, 즉 우주의 진리는 무상(無常)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만다라Mandala와 무상(無常)은 의미적으로 서로 무관하지 않다. 만다라Mandala는 고대 인도인들의 제사 언어인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하는데, Manda가 '본질'을, la는 '얻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결국 Mandala는 '본질을 얻다, 깨닫다'로 해석된다. 그런데 어떤 해석에서는 Manda가 본질을 의미함은 같으나, la는 '변한다'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해석하여 Mandala는 '본질은 변한다'라는 의미가 된다. 첫번째 해석과는 의미적으로 다소 거리가 있는 두번째 해석은 무상(無常)과 일맥상통한다. 산스크리트어는 자체에 복수해석의 가능성이 담겨 있는 매우 특이한 언어로, 결국 '본질을 얻다'와 '본질은 변한다'라는 만다라Mandala의 두 가지 해석은 모두 받아들여진다. 얼마나 매력적인 언어이고, 매력적인 단어인가! 우주의 진리가 무상함, 즉 고정된 실체가 없는 것이라는 점과 잘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의미의 다중해석적 여지를 남겨놓고, 본래 산스크리어의 특성도 보여주기 위해 Mandala를 어두와 어미를 구별해 Manda_La로 표기하고, 이번 시리즈의 제목으로 삼았다. 불교 도상으로서의 만다라Mandala를 나의 만다라로 재해석하고자 스스로에게 우주의 진리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그 답이 무상(無常)이었다. 무상(無常)을 명상하였을때, 드디어 그저 하나의 종교적 도상에 불과하던 만다라Mandala가 '본질은 변화한다'라는 동일한 명제를 나에게 드러냈다. 그리고 진정 이해하게 되었다. 중심으로부터 반복 . 확장되어 나가는 불교 도상 만다라Mandala가 결국은 세계의 변화와 그 순환적 구조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음을 말이다. ● 만다라Manda_la 시리즈에서 무상(無常)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을 때의 모습처럼 앉아있는 인물의 형태로 표현된다. 명상하듯 앉아 있는 인물은 고요 속에 홀로 있다. 그런데 그는 완결된 형상, 닫힌 형상이 아니다. 인물을 규정하는 검은 선과 면은 끊어지는 듯 이어진 하나의 열린 덩어리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확실하고 영원할 존재로 여기며 살아가지만 결국 시간 속에 덧없이 쓸려 내려가며 시시각각 변화의 파도를 맞이해야 하듯이, 그림 속 인물도 파편의 집합체에 불과하며, 언제든 그것이 유래한 본질적 세계로 되돌아 갈 준비가 되어있다. 전체는 그렇게 부분으로 완성되었다. 외부와 내부의 구분은 없고, 그 경계는 계속해서 허물어진다. 한편으로 각각의 선과 면은 매우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 이것이 밀어내면 저것은 당기고, 이것이 비워내면 저것이 채운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 의지하며 '나' 라는 조화를 이끌어낸다. 이렇듯 무상은 완결되지 않은 인물, 확정되지 않은 인물, 그래서 그것이 기원한 우주로 언제든 돌아갈 준비가 되어있는 열린 구조의 형상으로 표현된다. ● 이 작업은 회화라기 보다는 소묘, 드로잉에 가깝다. 안료물감으로 색채를 입히는 대신, 염료잉크로 무수히 선을 그어 완성하였다. 종이에 배어 든 검은 색의 잉크는 결코 가볍지 않다. 검은 색은 많은 심상을 담고 있다. 무겁고, 엄숙하고, 고요하고, 반성적이다. 그러나 또한 세련되고 산뜻하며 명료하다. 이보다 더 매력적인 색이 있을까. 이번 시리즈가 검은 색이어야 하는 이유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2 ● 이번 전시는 나의 2015아트프로젝트_ART IN LIFE를 마무리 하는 전시이다. 이 프로젝트는 작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예술에 대한 질문과 고민들을 해소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예술의 문턱은 낮아질 수 없을까? 예술이 우리의 일상에 좀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없을까? 예술을 오랜 시간 곁에 두고 천천히 익숙해지면서 즐길 수 없을까? 이것은 가장 이상적인 예술향유의 방법이고, 그럴만한 경제적 여건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게 예술을 누려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방법은 쉽지 않다. 그래서 작가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 보기로 결심하였다. 갤러리가 아닌 일상의 공간을 찾아 다니며 그림을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물론 특정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만 공개되는 단점은 있다. 그러나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갤러리에 전시된다 하더라도 사실 소수의 사람만이 찾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전시 방식은 오히려 제한된 관객에게 공개되지만 보다 친밀한 예술로서 그들의 일상에 침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난 6개월 동안 미용실, 병원, 큐레이터의 작업실, 디자인스튜디오, 불교문화원, 연구실, 가정집 등 다양한 공간에서 전시가 이루어졌고, 각각의 공간과 그 공간에 머무르는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관찰과 해석을 담은 Manda_La가 전시되었다. 이번 프로젝트의 마지막 전시가 바로 경기도 고양시 아트스페이스 모이 내에 자리한 작은 공간 갤러리 모이에서 선보인다. Manda_La에는 무수한 생각의 형상들이 흩어져 있다. Manda_La, 그 의미가 고정되지 않은 것처럼 나의 Manda_La 시리즈는 우리 삶의 곳곳으로 찾아가 공간과 시간과 사람에 반응하며 새로운 의미의 형상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 오숙진
Vol.20151221c | 오숙진展 / OHSUKCHIN / 吳淑眞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