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분석적 목차展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5_1217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나래_김아영_박아람×김정태 양아치_이윤호_차혜림
* 전시작업 관련 레퍼런스 자료를 상단 메인이미지에 링크된 홈페이지에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
기획 / 노해나 협력 / 장서윤 코디네이터 / 박지아 디자인 / 홍은주_김형재 후원 / 서울시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12월25일,1월1일 휴관
케이크갤러리 Cake gallery 서울 중구 마장로3길 28(황학동 59번지) 솔로몬빌딩 6층 Tel. +82.2.2233.7317 www.cakegallery.kr
분석적 목차1) 에 관한 인덱스 ● 이번 전시는 작업과정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그 이면에 드러나는 레이어의 진동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러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하기위해 작가에게 과거의 작업을 참조하라는 ‘방법’을 제안한다. 작업의 저자였던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다시 읽고, 쓰기를 요청받고 독자 혹은 또 다른 저자가 되고자 한다. 읽고, 쓰기를 하는 과정에 주목해 작업이 구축되는 방향을 함께하고 그것이 이동하는 움직임-작업과정, 작업에 몸짓이 있다면-을 지켜본다.
전시는 작업이라는 텍스트에 내재된 반복가능성을 불러낸다. 이전에 쓰여진 텍스트에는 어떤 흔적들이 남아있다. 전시라는 읽는 행위는 텍스트의 흔적을 다시 직조해낼 가능성이다. 텍스트의 흔적들은 저자였던 작가가 위험한 독자가 되어 텍스트를 다시 써내려갈 때 직조된다. 시간적으로 과거에 속해있던 작업은 이렇게 현재에 다시 쓰여 질 운명에 부쳐진다.
여기서 제시된 방법은 작가가 작업을 쓰게 하도록 움직이게 하는 장치이다. 쓰는 저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쓰고 읽는다는 것은 의미를 재생하는 것이 아닌 의미화 구조를 생산하는 행위이다. 이는 기존의 작업을 다시 문맥 위로 올려놓는다. 그리고 과거의 작업이라는 지점에 발목 묶이지 않는다. 전시는 과거의 작업이라 상정한 출발지점으로부터 움직인 어떤 몸짓이라는 행위의 궤적을 그리는 것에 있다. 실제로 전시를 구축해가는 방식은 6명(팀)의 작업이라는 텍스트 위에서 ‘몸짓’으로 존재했다. 박아람의 「운석들」의 100장의 이미지는 김정태에게 옮겨져 차원을 바꿔가며 항해했다. 최초의 DB소스는 차원과 역할을 달리하여 물리적으로 도출되는 과정을 거쳤다. 이윤호는 과거의 무수히 찍고 저장해 둔 사진 더미 속에서 기획자와 이미지로 대화하기를 이어나가며 이미지-문장을 만들어 갔다. 요청과 응답의 연쇄가 그 궤적을 만들어 나간 셈이다. 차혜림은 공간의 물리적 조건과 옆구리로 파생된 말을 잡아 유기적이고 입체적인 흔적을 펼쳐놓았다. 마치 시작이라 명명할 수 없는 시작에서 도착이라 할 수 없는 도착으로 기입하며 이동했다. 이들의 과정은 방향성을 가지지 않는다. 다만 쓰는 행위는 계속해서 표시를 남기며 수행적 구조를 드러낼 뿐이다.
과거에 남겨진 흔적을 텍스트 위에 기입하였더니 사라지는 자리에 새로운 흔적이 남겨진다. 김아영은 기록물보관소를 뒤적이며 역사의 죽어있는 흔적을 발견하고, 그 흔적들을 직조하여 음성으로 재생한다. 죽어있던 흔적은 악보와 나레이션으로 재생되면서 기입되는 동시에 사라진다. 과거의 흔적과 다시 기입된 흔적의 차이는 의미의 지연과 사건의 가능성을 예견한다. 흔적으로 인해 미래로부터 도래할 가능성은 양아치가 케이크갤러리 창문에 스크린을 장착했을 때에도 드러난다. 창문 너머 흐르는 시간성이 스크린과 겹쳐지는 순간을 마주하는 위험한 시청자는 그것을 다시 직조한다. 그가 창문 앞을 떠날 때 스크린은 언제나 도래하는 표시로 남는다. 김나래는 의도적이고 작위적으로 의미의 전달을 다른 문법으로 바꿔 말한다. 기존 텍스트의 의미를 무화시키는 번역을 통해 원작과 오역된 산물의 간극을 벌리고 전혀 다른 기로에 가져다 놓는다. 흔적과 흔적의 사이에서의 몸짓은 이처럼 오해 혹은 오역으로 인해 기입되는 행위이다.
분석적 목차는 작업의 생애주기를 거쳐 책장에 꽂혀져 분류된 책의 종착점을 지연시키고자 했다. 작업이 작업실 한 켠에 쌓여진 덩어리가 되고, 외장하드 속의 기록으로만 남아있거나, 해산되어 물리적 토대를 잃는다 해도 어떤 여지를 남긴다는 한 작가의 말은 전시 사후, 작업에 흔적이 남아 있음을 증명한다. 어느 우연한 계기로 여기에 다시 쓰여 졌지만, 텍스트로써의 작업은 언제나 다시 읽히고 쓰여 질 가능성을 남긴다. 이러한 읽고 쓰기는 텍스트 속에 기입된 흔적이 자리 이동하는 것에 불과하다. 텍스트 속에 기입된 얼룩은 사라지지 않는 채로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아무리 텍스트들을 분석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를 한다하더라도 실패는 예견되어 있다. 실패는 다음 흔적으로 이행되는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www.analytical-index.or.kr 2) ■ 노해나
* 주석 1) 전시는 저자로써 작가, 기획자에서 출발한다. 이 저자는 문장보다 그 사이의 공백을 바라보았다. 텍스트로써의 작업 이면에서 진동하는 것이자 흔적에서 흔적으로 이행하는 몸짓이기도 한 것을 말이다. 2) 본 웹사이트는 작업을 위한 부록으로 제작되었다. 전시장에 보여 지는 6명(팀)의 작업에 대한 인덱스 혹은 단서들인 셈이다. 텍스트-작업은 어쩌면 각주나 부록에 의해 읽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Vol.20151217j | 분석적 목차 Analytical Index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