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0307a | 김기태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5_1208_화요일_06:00pm
작가와의 만남 / 2015_1218_금요일_05:00pm_세미나룸
후원 / 미진프라자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공휴일 휴관
사진·미술 대안공간 스페이스22 SPACE22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 390 미진프라자 22층 Tel. +82.2.3469.0822 www.space22.co.kr
끝낼 수 없는 사진 ● 김기태는 지극히 사진적인 경로를 밟아온 작가이다. 사진학을 전공하고, 20대 후반부터 주요한 기획‧그룹전에 본격적으로 작품을 발표하며, 사진의 의미망을 견고하게 다질 수 있는 기술과, 사진에 대한 이해가 누구보다 치밀한 작가로 꼽혔다. 그런 그가 「마음속의 표적」 이후 오랜만에 개인전을 열게 되었다. 미학적인 이상과 멋진 작품의 생산에 대한 답이 아니라, 오직 사진찍기 안에서, 사진을 통해서, 사진만을 향한 고독한 그의 행보가 『늘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니다』展에서 결코 끝낼 수 없는 사진의 형태를 보여주게 되었다. 김기태에게 사진찍기는, 사진 자체에 대한 탐색이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다시 의심해보는 일이었기에 장르적 구분에 기초하지 않는 사유의 흔적이 그의 사진을 이루었고, 사진의 본질적인 고독과 유랑 속에서 기존과 기성을 전복하는 그만의 고유성을 보여주었다. 그의 전시를 기다려온 이들이 '중단 없는 그의 시작'에 주목하게 되는 것도 새로운 사진의 역량, 즉 말할 수 없고 사유할 수 없는 것들, 설명되지 못하는 것들의 개별적 가치를 결국 사진으로 표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해와 명료한 인식이 아니라, 끝없는 바스락거림과 중얼거림 속에서 반복되는 자율적인 사진이 김기태의 신작, 『늘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니다』이다.
모든 사진은 침묵의 바위이자, 바람의 중얼거림이다. 우리는 사진을 보며 말을 떠올리기도 하고, 침묵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사진은 세계의 축소이자, 편린이기에 많은 말이 있는 것 같지만 언제나 해독할 수 없는 바람의 언어로 스칠 뿐이다. 김기태의 사진은 의미를 지연시키며 오직 바라보기의 권리만을 허용한다. 알고자 하는 욕망은 그의 사진 앞에서 물러나게 되고, 침묵 속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바라보게만 한다. 『늘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니다』의 주요한 시간과 공간은 '분명히 존재하는' 듯하지만, '사뭇 다른 장소'를 개시하며, '자기 안에 끌어안고 사는 붉은 마음'이 언뜻 잡히는 일상 속에서 형성되어 있다. 일상이 오직 일상적인 것들로 이뤄진 시공이듯이, 사진의 공간은 사진찍기에 의해서 비로소 열리는 공간이다. 사진이 구체적으로 형성되는 조건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온 김기태는 『늘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니다』에서 기존의 가치와 기성 세계에 의존할 수 없는 것을 사진의 형성조건으로 배치했다. 그의 초기 사진이 의미 있는 세계를 건설하는데 치중했다면, 근작은 반대로, 의미로부터 이탈하면서 사진가/주체의 자리를 약화시키며 찍는다는 행위의 사유의 탐색으로 나아가고 있다. 모든 이데올로기적인 결정에서 벗어나, 끝없는 중얼거림으로 이어지는 그의 사진은, 의식에 의해 포착될 수 없는 가볍고 헐거운, '익명의 있음'만을 제시한다. 모든 것이 사라지면서 역으로 드러나는 텅 빈 충만함,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간과 한낮의 무료한 긴장 등 상반되는 것들을 결합하고 대립시키거나 분산, 헤맴을 통해 의미의 바깥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사진은 이처럼 단일성과 담론을 회피하며 재현이나 상징의 그물망으로 포섭될 수 없는 비변증법적인 형태로,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진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동일한 의미로 제시하기도 하지만, 미처 알 수 없었던 것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전자가 세계의 재현에 그친다면, 후자는 지식과 담론의 영역으로 수렴될 수 없는 진정한 사유의 자장이고, 그러므로 전자보다 그 힘은 배가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후자의 영역, 즉 의미의 바깥은 언제나 불안정하고 불편하며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과 같은 것이기에 위험하기도 하다. 또한 언제나 자기를 벗어나면서 자신을 드러내기에 상징적인 코드가 쉽게 형성되지도 않는다. 이러한 사진들은 체계와 진리를 위한 수단이기보다, 그 자체가 지향점이기에, 찍는 사람과 보는 사람에게 모두 어려움과 질문을 안겨줄 뿐이다. 하지만 사진의 힘을 솟아오르게 하는 이러한 의미의 미끄러짐은 찍는 자와 보는 자 사이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맺게 해주고, 길항 속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작품의 구현에 동참하게 되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요컨대 좋은 사진이란, 의미의 중심을 향한 동일시보다 난해와 (약간의) 고통의 체험을 안겨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기이한 모순이야말로 사진의 본질이 아닐지, 의미의 무의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오직 지속적인 사진찍기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라는 역설을 김기태는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김기태의 사진이 전하는 웅얼거리는 움직임은 사진의 언어자체라 할만하다. 그것은 이미지의 세계에 매혹된 자의 욕망의 의태어이기도 하다. '무작정 시내버스에 올라 창밖의 풍경을 보며 종점에서 종점으로 배회하기', '어두운 영화관에 무심히 길게 앉아 있기', '오래되고 신비로운 물건들을 수집하기'가 취미인 김기태에게서 불확실하지만 절대적인 매혹의 시선들을 보게 된다. 의미의 실패를 낳을 수밖에 없는 불연속적인 선과, 견고하지만 부드러운 모서리의 사물들, 삐딱하면서도 완곡하게 서 있는 나무와 꽉 차 있지만 성긴 화면, 선명한 그림자와 화사한 테이블, 부드러운 틈과 위태로운 가벽, 높은 채도의 주름진 빨강과 팽팽하면서 구멍이 난 포장지, 극도로 불확실한 지점 등 김기태의 사진에서 의미 있는 세계를 구축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이렇게 무기력한 것들을 힘으로 전환시켜 밀도 높은 고요를 이루고 있는 것이 김기태의 사진이다. 무한한 침묵 속에서 솟아나는 찰나의 이미지와 같은 것, 혹은 자유로운 공간속의 흔들리는 통일성과 거듭되는 우연들. 이해를 벗어나 있고 해석될 수 없는 열린 이미지이자, 닫힌 프레임이 바로 김기태의 사진임을 알게 된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이미지가 반복되며, 침묵만이 생성되고 있는 결코 '끝낼 수 없는 사진'인 것이다. 이 조용한 반란과 교란, 지속되는 부재는 결국 사진/가의 자리가 아닐지, 김기태의 사진을 마주하며 생각하게 된다. ■ 최연하
Vol.20151208e | 김기태展 / KIMKITAE / 金起泰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