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하는 예술 BOXING ART

이아람展 / LEEAHRAM / 李아람 / installation   2015_1128 ▶ 2015_1129

이아람_3분3라운드_단채널 영상_00:10:30_2015

초대일시 / 2015_1128_토요일_05:00pm

후원 / 경기문화재단_안양복싱체육관

관람시간 / 12:00pm~06:00pm

안양복싱체육관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평촌대로 389

'권투하는 예술' 은 쉬지 않고 상상력의 스텝step을 밟으며 세상과의 끊임없는 수행의 난타전을 치러야 하는 젊은 예술가의 예술적 삶의 방식에 대한 프로젝트이다. 권투와 작업을 오가며 상상력의 뇌에 근육을 붙이고 이두박근과 삼두박근 사이에 뇌량을 만드는 프로젝트이다.

이아람_움직임을 추적하기1_단채널 영상_00:03:00_2015

나는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세상과 막 마주쳤을 때 마치 링 위에서 시합하는 선수처럼 삶의 불가해하고 부조리한 문제들의 경기를 쉬지 않고 이어나가야만 했다. 더욱 20대 초반, 작업과 생활과의 전쟁 같은 삶들은 너무 쉽게 육체적 체력을 방전시켜 조금만 걸어도 쉽게 지치길 반복하였고, 그로 인한 삶의 무력감들은 체력을 길러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건강과 몸매의 양자적 조건을 모두 성장시키는 방법으로 운동을 해야겠다고 판단하여 요가를 시작했었다. 그리고 헬스까지 이어진 운동들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나에게 요가와 헬스라는 이 두 개의 운동은 산에 칩거하여 고독하게 나만의 무술을 연마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수련에 가까운 운동이었을까? 태생적 허약함과 예술가적 나태함이 있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지만 나는 이 실패를 통해서 지금도 본인에게 맞는 운동과 기질의 궁합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배우 이시영이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권투를 하는 모습을 본 뒤, 마치 홀린 것처럼 집 근처 권투장을 찾았다. 그렇게 처음 3개월 동안 권투를 배웠고 한 달 정도는 정말 밖을 나가기 싫을 정도로 온몸의 살들이 근육으로 팽창이 되었다. 또 운동을 하면 오 분도 되지 않아 정강이의 뼈까지 아파서 병원에서 엑스레이라도 찍어 봐야하나 고민도 많이 했다. 그렇게 4년 정도 운동을 이어왔다. 물론 중간 중간 여타의 일들로 운동을 중단한 적도 많았으나 이상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찾게 되는 것이 권투였다.

이아람_움직임을 추적하기2_단채널 영상_00:03:00_2015

이제는 제법 스파링에 서서 3라운드까지 간신히 버티는 법을 배우고 있다. 물론 때리는 것보다 일방적으로 맞는 편이다. 하지만 경기를 해보면 우선 맞는 법이 제일 중요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다. 얼굴과 옆구리를 온전히 상대방에게 내어주면 숨도 못 쉴 때가 많고 집중력도 흐트러진다. 그럴 때는 마치 살아야겠다는 본능처럼 두 팔로 머리와 옆구리를 최대한 감싸면서 수그린 뒤 맞는 동안 잠시 숨을 고르고 상대방을 밀쳐낸 후 반격을 가한다. 그리고 또하나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눈을 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글러브와 때릴 곳을 보느라 정신이 없지만 지금은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면서 때리는 방향을 예측해보기도 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전달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상대방과의 거리를 조금씩 좁히고 있는 과정에 있다. 상대와의 거리와 근육의 신경, 눈의 지시 방향과 섬광 같은 찰나는 계산될 수 없다. 다만 그 텐션이 그 키를 쥐고 있을 뿐이다.

이아람_서푼어치감상_종이에 유채_36×25cm_2015

건투하는 예술 ● 2014년 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장그래가 둔 바둑은 사회적 기준으로 실패자로 등장한다. 또한 내가 생각하는 청춘의 열정과 투쟁 역시 가끔은 지친 삶을 지속하는 진행형의 삶으로써 사회를 바라보게 한다. 여기서 사회는 청춘의 삶을 끊임없이 독려하며 스스로의 가치에 도전할 수 있는 삶의 환경을 제공할 책임이 있는 사회인가? 에 대한 질문이 늘 따라다닌다. 말하자면 나와 사회, 나와 타자와의 관계를 늘 긴장시킬 수 있으면서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관계의 성립이 가능해야만 진행형의 삶에 성장이라는 목표가 설정되는 것이다. 마치 미생의 '바둑'과 같이, 또 '탁구'와 같이 내가 핑하면 상대방이 퐁하는 관계처럼 말이다. ● 더구나 권투는 상대방과의 경쟁에서 내가 힘들 때나 불리할 때 상대방에게 잠시나마 기대는 것을 허용 할 수 있다. 실제 사회에서 경쟁을 하는 상대방에게 내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관계가 존재할 수 있을까? 권투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 스포츠다. 마치 너가 하는 모든 일에 건투를 비는 의식처럼 말이다.

이아람_서푼어치감상_종이에 유채_25×36cm, 36×25cm_2015

링 위에 서야 할 이유 ● 하지만 이런 불편한 과정에서도 링 안에서는 공정한 규칙과 집행을 판정하는 심판자가 있다. 3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내에 복서는 상대방을 넘어뜨리거나 심판에서 유리하게 작용될 수 있도록 경기를 펼쳐야 한다. 오고가는 펀치 속에 마치 탁구의 핑퐁을 글러브로 주고받듯 적절한 몸과 몸의 간격 안에서 투쟁을 이어가야한다. 마치 법과 규율이 있는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처럼 삶의 축소판을 링 안에서 집약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당신이라면 상대방에게 나의 강인함을 3분 안에 각인시킬 수 있는가?, 3분 안에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가? 아니면 3분 안에 상대방을 감동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답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아람_DUMMY_혼합재료_197×55×35cm_2015

또한 그 결투를 관람하는 관람자들은 어느 한 쪽의 열렬한 응원을 함으로써 그 의견과 행동에 동의하는 지지자들의 의견을 어떻게 통합해서 읽고 반응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 응원은 어느 한쪽의 편향되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응원 할 권리에 대한 자율적 반향의 응원이며 또한 타자와의 차이를 존중할 권리가 있는 응원이기도 하다. 이렇듯 나의 권투는 싸움과 갈등을 일으키는 움직임이 되기도 하고 먼저 시비를 거는 제안이기도 하면서 맞는 고통과 아픔을 참아보는 맷집을 기르는 방법이기도하다. 잘 맞고 잘 때리는 원초적인 행위 안에서 권투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맨몸으로써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이것이 내가 링 위에 서야 할 이유이다.

이아람_Interview_단채널 영상_00:10:30_2015

다시 권투하는 예술 ● 권투는 시합이 진행될 때 링 안에서는 발이 꼬이거나 옆구리를 맞거나 머리를 맞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3라운드를 채워야 한다. 물론 정신을 잃으면 미리 경기가 끝날 수 있다. 결과로는 승자와 패자가 갈리지만 몇 번 혹은 몇 십번의 경기를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같은 체급 안에서의 경기는 좋은 경기로써 즐거움을 받을 수 있다. 혹은 분노와 아쉬움을 갖고 다음 경기를 기약한다면 상대방과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경험이 수반이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마치 처음의 본인처럼 상대방이 무서워 등을 보이고 도망가느라 힘을 뺐지만 지금은 맞더라도 그 사이에 한 번은 펀치를 날릴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듯이 말이다.

그렇게 다시 체육관을 찾고 거울 앞에서 몸을 푼다. 그리고 경기를 회상하며 상대방의 빈틈을 노리기 위해 분주히 스텝을 밟아보고 부족한 팔 힘을 길러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것이, 예술로써 권투가 가지고 있는 방식들이 사회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과 관계를 추적할 수 있는 단초로 작동되고, 사회와 맷집이 기록되고 각인되는 몸이 펀치를 날리듯 나의 회화에 붓질을 가능하게 한다. ■ 이아람

Vol.20151128c | 이아람展 / LEEAHRAM / 李아람 / 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