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FRAME

이윤성展 / LEEYUNSUNG / 李昀省 / painting   2015_1125 ▶ 2015_1226 / 월요일 휴관

이윤성_Danae Yellow_캔버스에 유채_261×194cm_2015_부분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40516a | 이윤성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5_112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8:00pm / 주말,공휴일_10:30am~07:00pm / 월요일 휴관

두산갤러리 서울 DOOSAN Gallery Seoul 서울 종로구 종로 33길(연지동 270번지) 두산아트센터 1층 Tel. +82.2.708.5050 www.doosangallery.com

두산갤러리 서울에서는 11월 25일부터 12월 26일까지 이윤성 작가의 개인전 『NU-FRAME』을 개최한다. 이윤성은 2014년 제5회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자로 서양 미술사에서 자주 다루어졌던 그리스 신화나 성경의 이야기를 일본 만화의 형식으로 재구성한다. '최후의 심판', '수태고지', '라오콘'과 같이 잘 알려진 도상의 인물들은 일본 만화에 등장할 것 같은 미소녀로 변화해 팔, 다리가 잘리고 거기서 분출하는 피가 소용돌이 치면서 그림의 화면 전체를 채우는 새로운 유형을 만든다. ● 이번 전시에서 이윤성은 다양한 표정의 미소녀가 점프하는 모습을 삼면화로 그렸다. 쏟아져 내리는 황금비를 배경으로 한 미소녀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다나에를 차용한 것이다. 다나에의 전형적인 도상은 밀실에 갇힌 다나에에게 제우스가 황금비로 변신해 접근하는 장면으로, 다나에는 주로 순종적이고 수동적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일본만화 양식으로 변화된 다나에는 기쁨, 슬픔, 분노, 두려움, 혐오, 놀람과 같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모두 보여준다. 다양한 다나에의 얼굴들과 몸, 황금비는 서로 다른 형태로 만들어진 작은 사각형 캔버스에 그려졌다. 작은 캔버스들은 여러 프레임들이 합쳐져서 만화의 한 페이지를 구성하는 것처럼 하나로 합쳐지면서 전체 화면 안의 공간을 분리하기도하고 연결시키기도 한다. ● 이윤성은 이에 더해 화면을 구성하는 요소인 다양한 형태의 캔버스, 분리된 다나에의 6가지 얼굴과 삼면화의 배경들을 전시장에 독립된 작품으로 배열한다. 그리고 이 요소들이 다시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그의 회화적 실험을 화면 밖 공간까지 확장시킨다. ■ 두산갤러리 서울

이윤성_Danae Yellow_캔버스에 유채_261×194cm_2015
이윤성_Danae Pink_캔버스에 유채_261×194cm_2015
이윤성_Danae Blue_캔버스에 유채_261×194cm_2015

'참조'의 하이브리드: 여러 '전형성'이 한 기표에 섞일 때 ● '참조'의 하이브리드: 여러 '전형성'이 한 기표에 섞일 때 『뉴 프레임』과 『뉴 타입』. 화려한 수식어는 제거된 채 최소한의 골격만 남은 듯한 간결한 단어들이다. 이는 각각 작가 이윤성의 개인전 제목으로, 그의 작품을 감상하고 해석하도록 이끄는 첫 번째 단어기도 하다. 만일 그의 작업을 보지 못한 채 제목만 접한다면, 아마도 다음 같은 측면에서 그의 작업을 감상하고 해석하려고 할 것이다. 지난 개인전 제목인 『뉴 타입』은 어떤 새로운 유형이나 형태에 대한 질문에 작가의 관심이 드러난다고 추측할 수도 있고, 이번 전시 제목인 『뉴 프레임』이라는 단어에서는 회화의 기본 형식으로서의 '캔버스'나 '틀' 같은 구조의 문제를 떠올릴 수 있다. 그렇다면 두 번의 개인전을 거치면서 이 작가의 작업적 관심사가 내용적인 것에서 형식적인 것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과감히 유추해도 좋을까? 그런데 이 간결하고도 의미심장한 제목 사이의 연관성에 대하여 언급하기 전에, 꼭 짚어갈 수밖에 없는 그의 작업적 특징이 일단 이 글의 발목을 붙든다. 전시장에서 만나게 되는 이윤성의 작업은 시각적으로 매우 '일본만화 같다'. '일본만화 같은' 그 이미지는 관람객의 작품 감상에 매우 강력하게 개입하고 작용한다. 『뉴 프레임』, 『뉴 타입』이라는 전시 제목에서 시작된 어떤 연상들을 앞서거나 혹은 철저히 가려버릴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만큼 특정적이기 때문이다.(물론 『뉴 타입』이라는 말 역시 일본만화의 용어를 작가가 가져온 것이다.) 더러는 작가에 대한 몇몇 오해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일본만화'를 참조하는 비슷한 세대의 한국작가들이 피해가기 힘든 한정된 해석의 틀을 떠올리자면 말이다. 그런데 이윤성의 작업에서 '일본만화 같은' 이미지는 다소 복잡하다. 그 복잡함을 이야기할 단서를 찾기 위해 다시 '제목'으로 되돌아간다. 다름 아닌 '작품'의 '제목'이다. 이번 전시작 제목은 「다나에」 시리즈다. 잘 알려졌다시피 다나에는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이다. 그녀의 아버지인 아크리시오스 왕이 외손자가 자신을 살해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그녀를 지하 방 안에 가두지만, 황금비로 변신한 제우스에 의해 결국 아들 페르세우스를 낳는다. 다나에는 그리스 신화의 내용인 동시에 서양미술사 속에서 빈번히 그려진 보편적인 도상 중 하나이다. 즉 이윤성의 작업에서 '일본만화'라는 이미지 아래 숨어 있는 중요한 참조물로 '서양미술사'가 자리한다. 이미 앞서 작가는 비너스 여신상에서 영감을 얻은 「토르소」를 비롯해, 「최후의 심판」, 「라오콘」, 「수태고지」 같은 서양미술사의 도상들을 작업에 꾸준히 참조해 왔다. 신화나 성경 내용을 가장 중요한 소재로 다뤘던 서양미술사 속 작품들은 대부분 고유의 전형성, 즉 타입을 가진다. '고전'이나 '도상'이라는 말 속에는 이 전형성이라는 의미가 이미 내포된 셈이다. 「다나에」 역시 코레조, 티치아노 같은 르네상스 화가들부터 네덜란드 바로크 화가인 렘브란트, 그리고 1900년 이후 클림트까지, 수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려 왔다. 그들의 작품에서 되풀이되던 전형성이란, 하얀 천이 깔린 침대 위에 기대어 누워서 황금비로 변신한 제우스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다나에의 모습이다. 즉 다나에는 서양미술사 속에서 빈번히 묘사되어 온 '대상화된 누드의 전형' 중 하나다. 이윤성은 다나에의 전형성에 대하여 나름의 방식으로 두 번의 재해석을 거친다. 일본만화 같은 그림의 표현 방식이 그 첫 번째 재해석이라면, 늘 수동적으로 묘사됐던 다나에의 감정에 주목한 점은 바로 작가의 두 번째 재해석이다. 황금비를 접하는 순간 다나에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주체이자 성격을 지닌 존재로 묘사하기 위해 인물의 '표정'에 집중한 점이 그렇다. 웃고, 화를 내고, 조바심이 난 듯, 다양한 표정으로 발랄하게 그려진 다나에는 특정 캐릭터를 참조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자신의 방식으로 인간의 감정과 표정을 분할하여 그려냈다. 이윤성의 작업에 대해, 서양미술사 속 도상의 전형성을 일본만화 형식으로 재해석한 재치 있는 방식이라고 일반화시켜서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양미술사'와 '일본만화'라는 전혀 다른 문맥이 하나의 회화적 표면에서 교차되는 이 혼성의 장면은, 앞서 언급했듯이 단순히 재치 있는 이미지 처리 방식의 문제를 넘어 한층 복잡한 지점으로 나아간다. 바로 재해석을 위한 참조물로서 단순히 일본만화 '같은' 이미지를 넘어 일본만화의 '전형성'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윤성의 「다나에」는 미술사 속 수동적인 다나에와는 달리 다채로운 감정을 기반으로 한 표정을 주체적으로 표출하는 여성으로 거듭나지만, 일본만화 속 여성캐릭터가 지닌 전형적인 특징들, 과도하게 풍만한 신체로 여전히 남성적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시각적 기표로 탈바꿈된다. '일본풍의 만화'를 일컫는 '망가'를 인터넷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이용자의 연령에 따라 제한된 정보를 제공하는 상황이 증명하듯, 일본만화 역시 남성적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표현 방식을 하나의 '전형성'으로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한국에서 일본만화가 위치하는 특징 중 하나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그린 '일본만화 같은' 표현은 정확히 일본만화적이지도 않다. 대상화된 시각을 걸러내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에 의해서, 혹은 그의 작품을 본 어느 일본만화 전문가(이자 오타쿠)의 언급처럼, 오히려 '일본만화의 영향 아래서 만들어진 한국 만화'에 가깝다. 선정성을 희석시키기 위해 한국에서 만들어진 또다른 전형성 말이다. 서양미술사 속 고전적 도상의 전형성과 일본만화의 전형성이 맞부딪히는 혼성의 장면. 거기에 '한국'에서 성장하며 '일본만화'라는 보편적인 시각적 환경의 영향을 받았던 '한국작가' 이윤성의 회화 속 이미지에서 전형적인 다나에라는 기의는 미끄러지면서 일본만화의 전형성으로 대체되고, 이는 또다시 이미지라는 기표에 고정되지 못한 채 한국적인 일본만화 표현이라는 상태로 대체되며 미끄러지는 복잡한 기표에 가깝다. 이것이 이윤성이 보여 주는 참조의 하이브리드 이미지다. 더욱 주목할 점은 작가가 이를 '프레임'의 문제로 확장시키며 한층 유희하고 있다는 점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전형성'의 문제는 참조의 내용적 측면(타입)에서 나아가 '프레임'을 재해석하는 작가의 중요한 개념적 틀이 되고 있는 듯 보인다. 이제, 글의 서두에서 꺼냈던 '전시 제목'에 대한 얘기로 다시 돌아갈 때다. 이번 전시에서 이윤성은 회화 프레임을 분할시키고, 전시장 벽을 다시 화면 삼아 재조합해 설치했다. 그가 직접 제작한 틀을 따라서 캔버스는 반듯한 사각형을 탈피한다. '변형 캔버스'가 1950년대 모더니즘 이 미술사 속에 등장했던 순간을 우리는 물론 알고 있다. 그렇다고 이윤성이 변형시킨 캔버스가 다시 한 번 서양미술사를 중요한 참조물로 소환시키고 있다고 말한다면, 다소 과한 시각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변형의 실제 참조는 다시 일본만화로 향하면서 『뉴 타입』에서의 질문들을 자연스레 연결시킨다. 예상대로 그의 캔버스 프레임은 만화책의 페이지를 구성하는 컷의 분할을 참조한 것으로, 하나로 모이기도 하고 혹은 다른 방향으로 분산되기도 하는 각기 컷이 가리키는 선들은 작가가 바라보는 다른 소실점을 이룬다. 이제 『뉴 프레임』展은 작가가 이제 일본만화 같은 얇고 표면적인 기표를 가지고 차츰 '회화'라는 거대한 질문을 탐색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전시로도 보인다. 더욱이 전시장에 「다나에」 연작과 함께 소개된 작은 소품들은, 만화의 컷에서 풍경이나 감정의 뉘앙스를 표현하기 위해 관습적으로 사용되는 유형들을 별도로 그린 것이다. 만화적 장치의 전형성, 즉 만화의 도상들이 회화의 추상이라는 장르로 기묘하게 연결된다. 이처럼 이윤성의 작업에는 추상과 구상, 캔버스와 평면 같은 회화의 오랜 질문들이 일본만화라는 참조의 틀을 거치면서 드러나고 있다. 다양한 참조물들이 부딪히며 야기되는 혼성의 모습이 어떻게 내용과 형식의 문제로 두루 확장되어 갈지, 작가가 과연 그 다음 과정을 어떻게 전개시킬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윤성의 다음 전시의 제목은 무엇일까? 작가는 대화 중에 자신의 전시제목들이 어찌 보면 "말장난 같다"고 지나치듯 말했다. 그런데 그 아무것도 아닌 듯 흘린 말이 계속 뇌리에 남는다. 말장난이야말로 한 가지 의미로 고정되지 못하는 가변적인 기표이자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혼성의 결정체, 바로 하이브리드의 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 장승연

이윤성_Danae cut-in 0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6×95cm_2015 이윤성_Danae cut-in 0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6×115cm_2015 이윤성_Danae cut-in 0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6×111cm_2015 이윤성_Danae cut-in 0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6×70cm_2015 이윤성_Danae cut-in 0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6×125cm_2015 이윤성_Danae cut-in 06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6×121cm_2015

구조의 단면 - 프레임 양식 ● 『Nu-Frame』 전시는 여섯 점의 원화 스케치와 여섯 점의 유화, 그리고 열두 점의 아크릴화로 이뤄져 있다. 작품에 사용된 재료와 도상은 다르지만 이들이 공유하는 것은 여러 형태의 사각형 프레임들이다. 작가가 2014년 『Nu-Type』 전시에서 서구 신화의 이미지를 아시아의 서브컬처 이미지(아니메, 망가, 게임) 양식으로 치환하는 콘텐츠 생산 방법을 탐구했다면, 이번엔 콘텐츠를 담는 프레임 양식을 탐구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 전시 작품의 주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나에(Danaë)이다. 하지만 맨 먼저 전시장 앞 윈도 갤러리에 놓인 것은 여러 사각형이 합쳐 긴 직사각형을 이룬, 노랑, 파랑, 분홍, 주황, 빨강, 보라의 여섯 가지 단색화들이다. 다음으로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작품은 안쪽 깊숙한 곳에 놓인 22x16cm 크기의, 다나에의 흑백 누드 스케치 여섯 점이다. 양옆으로는 파랑, 노랑, 분홍을 주색으로 한 추상 패턴들이 73x117cm 크기의 캔버스에 그려져 있다. 틈새에 끼인 듯 배치된 작품들을 보고 난 뒤, 관객은 돌아나와 안쪽으로 향하는 텅 빈 복도를 마주하게 된다. 복도 끝 벽을 따라 놓인 다나에의 여섯 표정들이 전시장 전체를 가르는 벽에 절반이 가려진 채 관객을 끌어당긴다. 각기 사각형(tetragon), 사다리꼴(trapezoid), 직사각형(rectangle) 등의 형태에 그려진 표정들은 관객의 동선에 따라 순차적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캔버스들이 윈도 갤러리의 단색화들과 동일한 형태와 크기라는 점을 상기해 보면, 다각형의 틀은 고정된 채, 도상, 색, 감정, 효과 들이 바뀌며 얹혀(import)지고, 또 합치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전시장의 가장 안쪽은 세 개의 캔버스가 붙어서 완성된 261x194cm 사이즈의 다나에들을 위한 공간이다. 세 다나에를 만드는 총 아홉 개의 캔버스는 결합과 분리가 가능하지만 전체를 연속된 퍼즐 이미지처럼 조합하기 위함도, 또 완결된 이미지를 해체하기 위함도 아니다. 면면이 살펴본 대로 캔버스 프레임은 큰 이미지를 나누거나 연결하지만, 내부의 이미지는 독립적으로 구성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구 정면에 놓여 있던 스케치 원화, 그 배경은 이 세 다나에에서 분화해 낸 데이터라고 생각되지만, 별도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 세 다나에의 전신은 각각 사각형(tetragon) 두 개와 사다리꼴(trapezoid), 혹은 사다리꼴 세 개의 형태가 합쳐1) 만들어졌다. 만화라는 맥락에서, 틀의 형태는 만화 원고지의 칸을 현실에 확대 재현해 놓은 것 같아 보이지만 어딘가 다르다. 캔버스들 사이의 경계는 딱 달라붙어 일말의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다. 칸의 바깥쪽과 안쪽은 그 내부에 놓일 프로그램의 구분이 없는 것처럼 도상이 연속되거나 잘라져서 배열되어 있다. 굳이 만화에 비유하자면 흔한 쇼넨망가(少年漫画, 소년만화)―성적 대상화 양식을 소비하는 소년들을 위한―가 아닌, 쇼조망가(少女漫画, 소녀만화)의 컷 구성에 가깝다. ● 만화의 칸-경계선은 본래 도상과 시공간을 나누는 시각적 기호이다. 벽 안에는 여러 공간(도상과 시점)의 파편이, 그리고 벽과 벽 사이사이의 여백에는 시간이 끼어들 수 있다는 약속인 것이다. 서양의 코믹스를 기반으로 발전한 일본의 망가 형식이 칸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층의 소실점에 잡아 두려 했었다면, 다시 망가에서 분화되어 나온 쇼조망가는 극단적인 평면구성―마치 문학이나 잡지의 텍스트 배열 같다.― 그 자체이다. 쇼조망가에서의 "칸의 바깥"이란, 매체의 프레임 안에 둘러싸인 또 다른 칸으로 간주된다. 칸의 바깥은 안쪽에 그려진 도상 주변을 떠다니는 물방울, 빛, 식물과 같은―감정과 운동감을 나타내는 효과―상징물들을 담음으로써, 클로즈업된 얼굴과 대비되는 역할을 한다. 이런 현상은 칸이라는 기호에만 종속되지 않는다. 다나에의 얼굴과 머리카락 등 모든 선은 배경과 효과를 담거나 나누는 경계가 되므로 칸 바깥의 오브젝트들은 결국 모든 선을 칸처럼 넘나들며 안과 밖을 뒤섞기 시작한다. ● 이러한 연출에서 경계-대각선은 극단적인 평면구성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압축된 3차원 좌표로도 읽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게임 「드래곤 볼 Z 초 무투전」에서의 연출2) 처럼, 대각선은 화면에서 회전하며 캐릭터 사이 공간의 깊이와 거리를 확장, 축소시키고, 축의 방향도 바꾼다. 회전, 확대, 축소되는 대각선은 구(Sphere)의 표면 위 두 점을 내측에서 연결한 선분이 2차원에 투사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연속적인 구의 표면은 선으로 나뉘어 동시에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한 듯한, 분절된 이미지를 담는다. ● 인물의 표정과 신체, 효과들의 배치는 경계를 중심으로 나뉘고, 합치된다. 혼란스럽지만, 이러한 "맥락 없음"은 잴 수 없을 것 같은 감정들을 가시화한다. 표정과 신체는 감정에 맞춰 미묘하게, 혹은 과격하게 왜곡된다. 쇼넨망가의 양식으로 그려진 다나에의 왜곡된 신체는 쇼조망가의 양식으로 둘러싸인 공간 안팎으로 밀려다닌다. 쇼조망가의 공간에서 캐릭터와 배경 사이의 효과-오브젝트들은 도상의 앞과 뒤를 구분 지으며 단 하나의 사건―다나에가 특정한 감정을 분출하며 깡총 뛰어오르는 동작―을 치밀하게 구성하는 것을 돕는다. ● 이윤성이 지난 전시에서 보여 준 이질적인 두 양식―서구 신화와 서브컬처 만화/아니메/게임의 도안―의 충돌은 매체 형식을 고민하며 또다시 재연되었다. 즉, 소년들의 욕망이 응축된 모에 여성 캐릭터는 다시 소녀들의 욕망에 의해 완성된다. 완성된 평면은 투시도적 환영을 뛰어넘으며 재정의될 것을 요구받는다. 화이트 큐브의 소실점과, 화면 내부의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대각선들이 만나 연성된(transmuted) 키메라는, 프레임 양식의 부분과, 합성된 전체로서 유형(Nu-Type)을 나누고 합쳐 담는 "Nu-Frame"으로 명명되었다.

이윤성_Danae cut-in color 0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6×95cm_2015 이윤성_Danae cut-in color 0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6×115cm_2015 이윤성_Danae cut-in color 0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6×111cm_2015 이윤성_Danae cut-in color 0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6×70cm_2015 이윤성_Danae cut-in color 0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6×125cm_2015 이윤성_Danae cut-in color 06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6×121cm_2015

뷰, 머티리얼, 텍토닉 시뮬레이션 View, Material, Tectonic Simulation ● 이윤성의 작업은 서브컬처 제작자들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공간에서 시작하지만 그림은 언제나 모니터를 넘어 실제 크기를 가진 회화로서 화이트 큐브 공간에 놓이게 된다. 작가는 디지털 환경에서도 3차원 좌표의 전시 공간과 구축 방법을 계속해서 질문할 수밖에 없다. ● 이 글은 사실 전시를 시작하기 전에 쓴 것이다. 실측된 실제 전시 공간 도면과 작품의 디지털 데이터를 모아서 모니터의 3차원 좌표에서 전시를 가상으로 재현하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교하게 가시화된 전시 공간은 현실에 한 발짝 앞서, 작가가 던졌을 법한 질문을 추적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 a. 캔버스를 개별적으로 제작해 하나하나 그려야 하는 현실과 달리, 디지털 환경에서는 곧바로 최종 직사각형 틀에 맞춰 도상을 그릴 수 있다. 작가는 그림 위에 간단히 레이어를 하나 더 얹어 잘라 내고 싶은 부분을 표시한 가상의 경계선을 그려 놓는다. b. 이 선은 실제론 깊이도 넓이도 존재하지 않는 개념적인 선이다. 작가는 선의 레이어를 껐다 켜고, 화면을 줌인-아웃 하며 오브젝트들을 배치했을 것이다. c. 이제 도상과 경계선은 3차원 공간에서의 실체화를 요구한다. 캔버스의 외곽선 x-y에 z 값이 추가될 것이다. 3차원 프로그램에서 검은 선과 캔버스의 관계를 재연하는 것은, 건축 설계 도면과 건물로의 가상-실체화에 비유해 볼 수도 있다. d. 하지만 경계선은 맨해튼 마천루의 그리드(Grid)나, 도심 외곽의 집합 주택이 일구는 집합주거 단지(suburban housing)의 형상처럼 올라타거나(top down), 상승하지(bottom up) 않는다. e. 오히려 경계선은, 회화의 표면을 따라 흐르며 경계에서 네거티브(-, negative) 깊이 값을 가지며 침하해 선의 주변을 들어올린다. f. 완벽한 시뮬레이션을 위해서는 접촉면의 미세한 유격을 만들어야 한다. 캔버스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따내고(Chamfer,) 각각의 캔버스 사이에 임의의 0.x~2mm 간격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현실의 캔버스는 결코 완벽한 결합을 이뤄 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g. 레이트레이싱 렌더링3) 은 이제 2차원 이미지에서 가상의 검은 선을 그림자로 드러낸다. 그림자는 초기 스케치에서의 뚜렷하고 명쾌한 검은색 선이 아니다. 픽셀 이미지를 확대해 보면 마치 물감의 산맥을 파헤친 대지미술처럼 보인다. ● 3D 프로그램에서 재현된 가상 전시회는 도상에 있던 경계선이 회화에서 필수 불가결한 물감과 캔버스로 번역되는 과정을 드러냈다. 많은 경우 번역은 실패를 암시한다. 하지만 도상 자체가 아닌, 매체를 나누는 경계의 번역은 실패에 따른 불안감보다도 무질서한 현실, 부유하는 감각들을 정돈할 수도 있다는 믿음을 준다. ● 먼저 도상, 이미지를 정리하는 새로운 물질 경계선은 프레임이라는 회화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정의된다. 이것은 단순히 포토샵 상하부에 가지런히 위치한 레이어가 아니다. 질료, 물감 색상, 또 물리적인 깊이 값의 차이를 내며 입체적으로 엮여 있다. 만화적 기호를 넘어 질료와 형태가 이루는 경계면으로 구축 가능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힘으로도 부술 수 없는 네거티브(-)의 벽, 경계는 이제 이미지와 상관없이 분리될 수 있다. 한편 재조합되어도 틀 사이의 간격은 반드시 남아 있게 된다. ● 렌더링 이미지에서 1픽셀 정도로 얇게 재현되는 경계선은 수 mm 내외로 실측되는 만화 칸 사이 공백을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스케일을 자유롭게 상상하게 한다. 이는 세계의 바깥과 세계의 중심에서 내부 표면을 포착하는 두 가지 방향으로 인식된다. 전자는 연속된 물감들의 단층―조경(landscape)―을 가로지르는 기하학 패턴 같은 것이다. 예컨대 일상을 뛰어넘는 위성궤도에서 관측되는 댐이나, 도로, 기찻길 같은 인프라스트럭처, 마이클 하이저(Michael Heizer, 1944~)의 더블네거티브(Double Negative)의 축소모델을 연상케 한다. 후자는 3D 스페이스라는, 가상세계에서의 내밀한 시점을 현실에 옮겨 놓는다. 즉, 디지털 스페이스에서 구면체로 이뤄진 세계의 안쪽에는 2차원 HDR 환경 이미지4) 가 얹혀지는데, 관측자는 구체 중심부터 소실점 공간까지를 평면적으로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윤성_NU-FRAME展_두산갤러리 서울_2015
이윤성_NU-FRAME展_두산갤러리 서울_2015
이윤성_NU-FRAME展_두산갤러리 서울_2015
이윤성_NU-FRAME展_두산갤러리 서울_2015

요소들의 분리를 바라보는 여러가지 방식은 이제 캔버스를 단순히 도상을 바라보는 창문에 안주하지 않게 한다. 캔버스는 1:1, 1:x 의 비례를 지닌 추상모델로서, 단순하지만 정교한 텍토닉(tectonic)의 흔적을 표면 요철에서 드러낸다. 프레임 내부의 이미지는 완성을 지향하지도 않으며, 회화 기법의 흔적은 물질성의 집착과도 거리를 둔다. 그러므로 『Nu-Frame』 전시는 스케치에서 질료와 색이 덧입혀지는, 완성으로의 여정으로만 보기 어렵다. 오히려 관람자는 일찌감치 완성되어 버린 세계의 파편들이 연결되고 부서지는 풍경을 반복해서 보게 된다. 그 풍경은 지탱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복합구성(Composite Figure)의 기둥-요소들을 꿰어 버리는(penetrate) 뒤틀린 구조-양식의 횡단면(Cross Section)일 것이다. ■ 정현

* 주석 1) 사각형 도형의 분류는 사각형>사다리꼴(등변사다리꼴)>평행사변형>직사각형(마름모)>정사각형을 따르게 된다. 작가는 대분류인 사각형과 사다리꼴의 부분들을 합쳐, 유형의 소분류인 직사각형 형태로 크게 만들고 있다. 2) 만화 『드래곤 볼 Z』를 소재로 만든 게임 중 명작으로 손꼽힌다. 일부는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다. 대전격투게임의 양식을 기반으로 드래곤 볼 세계의 세계관과 물리법칙을 재현하기 위해 시간, 거리를 압축하는 화면 분할 시스템을 도입했다. 3) 레이트레이싱 렌더링은 가상공간에 놓인 오브젝트의 표면에 빛을 쬐고 반사되는 경로를 계산해서 픽셀 이미지를 만드는 기술이다. 현실과 유사한 렌더링 방법으로 재현도도 높지만, 그만큼 컴퓨터의 사양이 요구되며 효과적인 결과를 내기 위한 조건이 까다롭다. 4) 하이 다이내믹 레인지 이미징(High Dynamic Range Imaging, HDRI)은 일반 사진보다 훨씬 높은 다이내믹 레인지를 처리할 수 있는 디지털 화상 처리 기법이다. 최초에는 컴퓨터 렌더링 이미지의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개발되었지만, 이후 서로 다른 노출의 여러 사진으로부터 높은 다이내믹 레인지를 갖는 사진을 얻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빛의 변화에 따른 현상(phenomena)의 재현이 가능하다.

Vol.20151125g | 이윤성展 / LEEYUNSUNG / 李昀省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