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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2:00pm~06:00pm / 월,화요일 휴관
코너아트스페이스 CORNER ART SPACE 서울 강남구 신사동 580-6번지 제림빌딩 1층 Tel. 070.7779.8860 www.cornerartspace.org www.facebook.com/cornerartspace
불안은 신호이다. 바로 마음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 그동안 그의 불안의 신호를 줄기차게 보내는 근원지는 무엇이었을까? 이번 작업을 통해 비로소 실마리가 잡히는 듯하다. 끊임없이 바깥의 타자에게 끌려가듯 그러나 순순한 모습으로 그 타자를 좇아가며 그와 엉겨붙음으로써 불안의 신호를 소거하고 '온전해지는 자기'를 소망하면서 온 몸으로 온 감각으로 '자기'를 느끼고 찾아보려 했던 그가 어느 순간 그 엉겨붙기를 그만 두었다. 자의 반 타의 반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툭 끊어지긴 하였으나, 사실상 경계가 모호한 채로 어정쩡한 모습으로 그렇게 '자기'라는 상태로 덩그러니 남겨진 상태에서 작업은 시작된다. 그저 그 자신의 감각의 기억을 부여잡는 방법 외에 다른 자원은 없다. 게다가 그 마저도 어디서 어디까지가 자신의 것이고 타자의 것인지 분명치 않았다. 다만, 육안으로 보이는 자기의 몸만이 유일하게 자신이 타자와 세상과 구분되는 시작'점'이다. 고등어 작가에게는 감정이나 느낌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은 여전히 흐물거리고 모호한 까닭에 보이는 몸만이 그 자신의 존재감의 근거가 된다. 어떻게 보면 기억은 과거와 현재,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을 연결해 주는 다리이다. 기억은 현재의 몸이 지니고 있는 과거의 흔적이다. 기억은 보이는 몸이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 들어가는 비밀 열쇠이다. 조각나고 흩어진 기억의 파편들을 이리 저리 엮어 가면서 암호 해독하듯 내밀하게 풀어내는 과정을 통해 점차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어 나간다.
인간은 마치 점처럼, 태아조차 되지 않은 자궁 속 수정란에서 시작하여 점차 성숙된 몸으로서의 온전성, 개별성을 획득해 가는 발달 과정을 거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과정을 지속하게 하는 걸까? 지속의 힘은 '구별되는 자기'를 향한 본능적 갈망으로서만 설명된다. 작가는 그 본능적 갈망을 섹스, 곧 성성性性과 연결시키고 있다. 그동안 직접적인 테마로 '노동'과 '섹스'를 선택한 것이 매우 흥미로운데, 이는 프로이트가 인간의 본질과 관련하여 일과 사랑하는 능력을 언급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한 점에서 고등어 작가의 작품은 지극히 프로이트적이다. 어떻게 보면, 뜬구름 같은 상상이 아니라 가장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지점에서, 땀과 땀이 만나고 살과 살을 맞대듯 소통하기를 원하는 작가의 소망이 그대로 표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작가의 이번 작업은 그동안 자궁 속에서 엉겨붙음에 머물러 있다가 막 태아가 세상 밖으로 산도를 헤집고 나오는 과정을 보여 주는 듯하다. 아직 온전한 개별성을 획득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여전히 탯줄이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미 세상으로 나와 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연결되어 있는 그 탯줄은 스스로 잘라내지만 않았을 뿐 그 본연의 절대적 필요성은 상실하였다. 지금 보이는 탯줄은 불필요한 '줄'의 흔적일 뿐이다. 그럼에도 작가가 그 줄을 이번 작업에서 완전히 지우지 않은 것은 오랜 기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붙들고 있었던 그 타자에 대한 미련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 응어리, 채 분화되지 않고 뭉쳐 있는 느낌의 덩어리들을 엉겨붙음과 해체의 과정으로서의 섹스 행위를 통해 풀어내고자 하나 실상은 행위가 반복될수록 자기의 경계가 사라지는 모순에 직면한다. ● 자기의 경계가 흐물거리는 상태에서는 관계하는 타자도 자신도 그 어느 쪽도 제대로 느낄 수 없으며 더더군다나 타자를 온전히 받아들임이란 불가능하다. 이는 내가 있고야 너가 있을 수 있다는 단순한 진실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추구된 엉겨붙음을 통해서 자기를 획득하고 타자와의 관계도 구축하려고 한 시도는 시작 자체가 실패를 예고한 것임에 틀림없다. 정말로 실패의 결말을 알고도 어쩔 수 없이 뛰어들었는지 혹은 빠져 나온 뒤에야 알게 되었는지, 아니면 알기 때문에 뛰어들었던 것인지는 작가의 다음 작업들을 통해 더욱 분명해 질 것 같다. ● 불안을 이야기하는 고등어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몰두해 들어가서 무척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외부 세계에 신호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신호에 대한 반응을 기다리는데 더 이상 아무 반응이 오지 않을까봐 전전 긍긍해 하는 불안은 없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 신호에 이미 반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불안하지 않다. 아니, 마음껏 불안해도 괜찮다. ■ 성유미
끝이 난 후에야 시작되는 이야기들이 있고 끝이 난 후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불안의 순정』 작업은 사랑이 그리고 섹스가 끝난 후 남겨진 신체를 어떻게 기억되는가 그리고 그렇게 기억된 신체는 현재의 확장된 신체가 될 수 있는 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된 작업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경험한 사랑의 기억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극히 불안했던 마음에서 시작된 사랑이기도 했고, 불안으로 인해 주저하고 포기했던 마음 때문인지 기억은 불안에 집중해 있었다. 다른 작업 때보다 이번 작업은 특히 무언가 애써 표현해 내려 하기보다 기억하는 감정들을, 그때의 나를 가감없이 그려나갔다. 작업을 시작할 때 즈음 나는 아직 그 관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었고 되려 영원히 그 관계안에서 살아남기를, 이미 다 타버려 재가 되어버린 그 사랑을 다시 되돌릴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며 작업을 해나갔다.
그림을 하나씩 완성 할 때 마다 생각을 했다. / 아 나는 그때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구나. 이정도로 불안했던 건가. / 그림은 절대 불안을 다독이지도 상처를 치유하지 않는다. 그저 징후로서 곁에 남아있다. 남겨진 신체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림을 그리고 나서보면 남겨진 신체가 놓여있는 상황이 그려져 있었다. 그 상황(장면)_기억 안에서 나는 언제나 발가벗은 채 온 몸으로 '그 때'를 스스로 겪어내고 있었다. (작업노트 中) ■ 고등어
Vol.20151121i | 고등어展 / MACKEREL SAFRANSKI / painting.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