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00pm / 일요일 휴관
아트파크 ARTPARK 서울 종로구 삼청로 129(삼청동 125-1번지) Tel. +82.2.733.8500 www.iartpark.com
리처드 해밀턴의 콜라주 작품,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매력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는 변화된 매체 환경에 따른 중산층 가정의 기대를 예언해 주었다. 현대적 생활조건이 보편화되고 점점 개인화되는 오늘날 우리의 가정에는 어떤 기대가 있을까? 가정이 외부생활로부터 휴식과 안전을 구하는 내밀한 영역인 만큼 편안하고 쾌적한 공간이 되길 소망하는 것은 언제나 변함없을 것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광고 속에서 특정한 패턴으로 소비되는 보통가정의 이미지는 진부할 뿐 아니라 비현실적이고 아득한 상징처럼 보인다. 구성원의 의도와 상관없는 관계망 속에서 대를 물려 이루는 가정은 또 하나의 좁고 깊은 사회다. 서로 다른 꿈을 조율하며 더 큰 세상의 갈등과 이중으로 마주해야 하는 고난도의 수련장에서 개인은 자신의 마지막 윤리 시험을 치른다. 세 작가가 모여 가정의 신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정의 문제는 수리를 맡겨 고치는 가전제품이나 검색으로 해결하는 생활상식들과는 달랐다. 모든 가정에는 고유한 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창조적 해결책이 필요하고 구성원들은 관계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 일상을 살아내는 그들 나름의 노하우들을 들어본다.
여동헌의 길상 : 여동헌은 언제나 행운의 동물들을 그린다. 이들은 전설, 만화, 동화 등 온갖 이야기에서 왔지만 작가는 언제나 출처의 맥락을 잘라 마음대로 의미로 바꾼다. 스스로 마이다스 왕이라고 여기는 듯 자신의 손을 거쳐 비호감형 캐릭터를 복스럽게 미화하는데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 인간사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이 그의 그림 속에서 길길복복(吉吉福福)이 된다. 재앙과 고난은 현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일까? 그에게 그림이라는 물건은 신앙이 사라진 현대인을 위한 부적 같은 것이다. 평안과 번영이라는 그의 세속적 염원은 그림 속에 흉과 화가 끼어들 틈이 없을 만큼 강하고 집요하다. 그림은 기복으로 점철된 신령한 결정체인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수호신들로부터 놀라울 만큼 신통한 기운을 받아 창작의 동력으로 삼는 작가를 지켜보노라면 믿는 만큼 이루어진다는 그의 주장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길상(吉象)으로 길상(吉祥)을 불러오고 지성으로 화를 눅여 복을 짓던 할머니들의 지혜가 떠오른다.
「시집가는 날」에는 십이지신이 등장한다. 화면 전체를 뒤덮은 하늘의 열 두 신들이 운명처럼 피할 수 없는 강력한 복을 몰고 뒤를 따른다. 세상의 축복을 한 몸에 받으며 행차하는 꽃가마 행렬은 그의 다른 그림과 마찬가지로 명랑하지만 이렇게 극대화된 환희를 담는 작가의 모습은 오히려 경건하고 진지하다.
이인청의 아줌마 : 이인청은 「늑대」와 「아줌마」연작을 통해 직장인과 주부를 전형화 한다. 사회는 그에게 아줌마의 생존력을 권장하고 작가의 두 페르소나는 결국 보살이 된다. 「아줌마–궁지」에서는 가상의 열반에 오른 아줌마의 도취적 정신승리와 함께 싸이키델릭한 충만함이 만다라처럼 펼쳐진다. 새의 형상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궁지들에 둘러싸인 아줌마는 수호신 인형을 안고 수행을 한다. 늑대의 야성과 소심한 아줌마라는 극단의 심성이 얽혀 요란하게 무늬를 짜고 확장한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 가정의 조건에 대한 방어적 응답이다.
「아줌마–외줄타기」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정체된 개인의 불안을 그린다. 작가와 주부라는 경계를 오가는 하루하루는 외줄을 타는 일과 다름없다. 떨어지고 오르는 시도가 연속되는 하루는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도록 만드는 자동 리셋 장치 같다. 아줌마 한 명이 하루가 되고 이어진 아줌마들의 줄이 대각선으로 겹쳐 수많은 날들이 된다. 돌림노래처럼 줄의 시작과 끝이 연결되도록 만들었다. 제자리를 맴돌며 정체되고 있다는 일상의 불안감은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흔히 나타난다. 작가는 이렇게 의기소침한 감정의 보상심리를 동물의 위장술처럼 드러낸다. 위축된 감정은 패턴의 양적 팽창과 수평적 과시로 나타났다가 내리막 계단처럼 미끄러지고 다시 떠오르기를 반복한다. 반복되는 일상의 리듬을 단순하고 기계적인 패턴으로 아슬아슬하게 보여준다.
이유정의 사물 : 사물들은 식물처럼 금새 불어나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작가는 그들과 타협하여 수습하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다락이나 창고 같은 여유 공간이 점점 사라지는 오늘날의 주거공간에는 미뤄둔 걱정거리나 애매한 물건들의 처분을 보류할 여지가 없다. 물건들은 즉각 용도를 파악해 처리해야 하고 온갖 상념들은 머릿속에 방을 만들어 그것들이 불쑥 튀어나오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열어서는 안될 비밀 방의 거주자들과 함께 사는 꼴이 된다. 「은둔자의 티타임-손님은 해치지 않아」는 사물과 대결하는 호더의 분투기다. 사물은 생각이 머물고 쌓이는 장소이고 가정은 그러한 기억들이 거처하는 만신전이므로 신성으로 가득한 집안의 '거주자'들을 다스리고 달래고 학습하는 것이 살림살이라고 여긴다. 사물들은 황량한 가정에 비집고 들어온 잉여들의 신이다.
「성스러운 아기」는 작가의 돌 사진을 보고 그린 초상이지만 자화상은 아니다. 빛바랜 사진 속의 아기는 오랫동안 보아오며 축적된 애착의 대상일 뿐이다. 작가가 좋아했던 오뚝이를 제외하면 기억에서 모두 사라진 사진의 정황을 재구성하며 오뚝이의 사랑스러움만큼 스스로 고양되는 행복한 아기로 만들었다. 세상의 모든 소중한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렸다. ■ 이유정
Vol.20151119f | 가정의 신화展